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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인 양수인

양수인

약간 건축가

건축가로서 만들고 싶은 궁극의 건축, 그런 것은 없다. 다만 도전은 항상 좋아한다. 궁극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일을 하는 변하지 않는 이유 단 하나가 남들이 안 해본 것, 아직 세상이 보지 못한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다. 조각이건, 굉장히 독특한 디테일이건, 희한한 형태이건, 벽돌 붙이는 방법이건 간에 역사상 없었던 것을 만드는 게 언제나 좋다.

평생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며 건물을 설계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진 않지만, ‘건물 짓는’ 건축가를 10년 정도 더 한 후 ‘약간 건축가’를 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크리에이티브한 것들을 좋아했다. 건축 주변의 것들을 더 여유 있게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정제된, 비례감이 좋은, 멋지고 깔끔한, 잘한 작업보다 거칠어도 아무도 안 해본 것이 언제나 더 매력적이다. 사무실에서 설계하는 건축물과 다르게 원심림 같은 ‘약간 건축’을 할 때는 수공예 정신이 발휘된다.

‘약간 건축’의 또 다른 시도로 에어백이 외피를 이루는 자동차도 계획했다. 자율주행이 적용된다면 모빌리티는 그저 이동만이 아닌 담소, 휴식의 공간이 될 것이고, 이를 가볍게 하면 새로운 이동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1:1 목업까지 만든 작업이었다.

원심림(2017) / 사진: 신경섭
원심림 개념도 / 자료 제공: 삶것

회사 운영자

내가 사는 작은 세계에서는 많은 일들이 새롭다. 어딘가의 다른 사람들은 이미 해본 일일 수 있겠지만, 이 정도 규모의 사무실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를 나의 세상에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고, 배우지 못했다. 지금 사무실 운영 방식은 나 스스로 터득하고 고민해서 만든 것이다. 엑셀 포맷 하나를 만드는 것도 이 설계사무소에 딱 맞는 것이 세상에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에 어떻게 야근 관리를 할지, 프로젝트마다 다른 정보를 어떻게 연동시킬지 등을 고민하며 3년째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꿈이 작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기보다는 소소하고 소박한 꿈을 꾼다.

나에게 건축가로서의 정체성은 인생의 극히 일부분이다. 그것보다는 반백을 앞둔 전반적인 나의 삶, 사무실 운영과 사무실 식구들에 대한 고민이 더 많다. 젊었을 때와는 다르게 건축가를 대단한 소명이나 야심, 사회에 대한 의무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직업인으로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삶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직업이다. 이런 생각은 건축가로서의 자아를 스스로 잘 길들일 수 있게, 동시에 상황판단을 잘하게 해준다. 나의 크리에이티브한 재능을 원하는 사람과 건축 전문가의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을 빠르게 구분해서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두 역할을  동시에 원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서로 다른 두 역할을 헷갈리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은 즐겁게 텐션을 유지한다. 천성이 그렇다. 그렇지만 올해 초까지 한동안 게으름을 피우기도 했다. 3~5년을 일하고 나면 한두 달 정도 휴식을 취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것 같다. 

재빠른 전략가

사무소 내에서의 역할은 아침 6시부터 11시 정도까지 일하면 끝난다. 나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건축주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다. 보통 건축주를 만나러 밖으로 나갔는데, 요즘엔 주로 영상 편지를 보낸다. 작년 겨울부터 시작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우연히 알게 된 좋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건축주와 만나서 하던 프레젠테이션을 영상으로 촬영해 보내는 것이다. 그 영상은 프로젝트의 기록이 되기도 한다.

프로젝트 매니징, 실시 도면 그리기, 디테일 생각하기, 감리하기, 현장관리, 인허가받기는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잘하는 것은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안에서 내가 해야 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추진하는 것, 지금 상황에 주어진 과제를 가장 잘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전략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최근 나대지를 소유한 기업이 향후 번듯한 건물을 지을 때까지 땅을 비워둘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가장 싸구려 가건물을 짓기는 싫은 상황에서 5~10년 정도 잘 쓸 건물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냉간성형강(C.F.S)을 사용한 프리패브 가건물을 제안했다. 가(벼운)건물 시리즈라 부르기로 했는데, 그중 하나는 설계 계약부터 점포 오픈까지 석 달밖에 안 걸렸다.

기본 전략 수립 이후에 도면을 그리고, 아이디어를 풀어내고, 멋있는 건물을 만드는 일은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연예 기획사를 보면 곡을 쓰는 프로듀서도 많고, 다른 곳에서 사 오기도 하지만, 결국 시장의 흐름을 보고 아이돌 그룹을 어떤 컨셉트로 기획하는 지는 대표의 몫이다. 그런 부분이 내 역할이다.

언젠가 가까운 건축가들을 만나 이야기하던 중에 누가 ‘업력’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건축 업계에서 10년 정도 일하며 쌓인 업력은 능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틀, 클리셰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각자가 업력이라는 단어를 듣고 생각하는 바가 너무 달라서 매우 흥미로웠다. 어떤 선배는 내공이 느껴지는 잡철 디테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다른 선배는 건축주 다루는 법 이야기를 했다. 내가 생각하는 업력은 프로젝트가 다루어야 하는 땅의 건축법적인 본질을 빨리 파악하고 해결 전략을 짜는 것이다. 같은 법을 다루면서 서로 판이한 변호 전략을 세울 수 있듯이 건축법도 꽤나 전략적이고, 약간은 창의적으로 다시 살펴보게 된다.

인터뷰이 양수인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김보경

직업인 양수인

분량2,701자 / 5분 / 도판 6장

발행일2023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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