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과천프로젝트
김사라, 이정훈, 배수현, 이현주, 정다영
분량13,430자 / 26분 / 도판 11장
발행일2023년 9월 11일
유형좌담
MMCA 과천프로젝트는 노후화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전반적인 변화를 목표로 시작한 파빌리온 프로젝트 시리즈다. 미술관 내의 특정 공간과 기능을 설정하여 제안을 받는 방식으로, 당선작은 최소 5년간 존속된다. 2021년에는 버스 정류장을 예술버스쉼터로 바꾸어 과천관까지의 여정을 새로운 경험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다이아거날 써츠의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를 최종 선정했다. 2022년 프로젝트는 미술관 3층의 옥상정원을 대상으로, 2층 원형 정원과 연계하여 쉼과 산책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조호건축의 ‘시간의 정원’이 선정됐다. 과천프로젝트는 2026년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 설계자 발표: 김사라(다이아거날 써츠 대표), 이정훈(조호건축 대표)
- 기획/운영자 발표: 배수현(독립 큐레이터), 이현주(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과천프로젝트, 넥스트 파빌리온
이현주 MMCA 과천프로젝트는 2020년 시작되었는데, 그전부터 MMCA에서 진행했던 파빌리온 프로젝트들이 있다. 2012년 정다영 학예연구사가 진행했던 국립현대미술관 아트폴리 2012는 서울대공원 야외 광장에 설치되었는데, 미술관으로서는 새로운 시도였다. 2014~2017년에는 현대카드의 후원을 받아 진행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YAP)1으로 서울관 마당에 네 차례 파빌리온이 제작⋅설치되었다. 미술관에 초대된 젊은 건축가가 파빌리온이라는 새로운 작업물을 제안할 수 있었던 이 프로젝트는 미술관의 관람층을 다각화시키고, 다양한 종류의 작업이 미술관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 몇 년간 진행되지 않다가 2020년에 YAP와 유사한 형태로 과천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에스티피엠제이(stpmj)가 1만 평 이상 되는 광활한 야외 조각 공원의 지형적 특성을 살려 미술관의 야외 공간을 관람객들이 누리고 쉴 수 있도록 ‘과.천.표.면’을 제안했다. 당시는 코로나가 시작되던 때로 답답한 현실과 실내를 벗어나고자 했던 사회적 욕구와 잘 맞아떨어진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야외에 파빌리온을 일시적으로 설치했다가 해체하는 피로도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논의 끝에 새로운 방향을 설정했다. ‘Re: (redesign/rebirth/reboot) Project’라는 내부적인 주제 아래, 과천관의 기존 공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이끌어내되, 중장기적인 설치 프로젝트를 작가들과 함께 제안해 보자는 것이었다. 1986년 개관한 과천관은 2026년에 40주년을 맞이한다.2 이 말은 과천관이 그만큼 노후화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심에 위치한 새로운 문화 공간에 비해 부족한 지점들이 있고,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공간이 있다. 이러한 공간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안이 필요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길어야 반년의 수명을 가졌던 과천프로젝트가 최소 5년 이상의 중장기 설치 프로젝트로 2026년까지 유효한 공간을 차곡차곡 쌓아 과천관의 전반적인 변화를 만드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기존 프로젝트가 빈 공간에 커미션 작업을 설치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면, 2021년부터는 미술관 내의 특정 공간과 기능을 지정하여, 이에 대한 제안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프로젝트 운영 기간은 1년으로 잡고, 설치 존속은 최소 5년 이상으로 잡았다. 기존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파빌리온이 얼마나 유지관리가 될 수 있을지, 공간이 얼마나 유효하게 장기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5년이라는 유동적인 기간을 설정했다. 프로젝트 운영 기간은 전시처럼 기획 부서에서 프로젝트 운영과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기간을 기준으로 했다.
2021 예술버스쉼터: 환대와 환기의 장치
이현주 과천프로젝트 2021은 산속 깊숙한 곳에 위치한 과천관까지 들어오는 여정을 새로운 경험으로 전환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제안받고자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려운 발걸음을 한 방문객에 대한 환대이면서, 미술관으로 향하는 숲길 여정이 경험과 기억으로 환기되는 공간, 여운을 누리는 장소적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더불어 건축가, 디자이너, 조경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창작자들이 유기적으로 협업하여 경험을 확장하는 것도 목표 중 하나였다. 결과적으로 다이아거날 써츠의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가 최종 선정되어 예술버스쉼터 세 곳이 마련되었다.
구현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있었다. 지리적 조건으로는 과천관이 행정상 그린벨트 제한 구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공작물 설치 허가3를 받아야 했는데, 많은 제약으로 인해 허가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기존 버스정류장을 리모델링한다는 접근으로 겨우 허가를 받았다. 사실 2020년 과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부터 이슈가 있기는 했지만, 아마 자세하게 접근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번에 법적 규제를 따져보면서 여러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고, 논의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행정 절차를 밟으면서 건축가의 협조가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미술관 내부 공간이 아닌 외부 환경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며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에 대응해야 하는 부분에서도 고민할 것들이 많았다.
이러한 과정들을 안고 2021년 5월 1차 포트폴리오 심사, 7월 답사와 제안서 심사, 8~9월 당선안 결정과 실시 설계, 10~11월 설치, 12월 개막을 거쳐 현재는 운영 중이다. 12월 개막했을 때 준공 촬영 당시 눈이 내렸다. 추웠지만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전이되는 풍경이 담긴 것 같아 행복했다. 버스정류장 작업뿐 아니라 정류장과 버스 내부의 사이니지를 톤앤매너에 맞춰 개선했다. 사소하지만 버스 안에서의 향과 사운드도 새롭게 작업해 미술관 여정의 경험을 감각적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2021 예술버스쉼터: 장소성, 기능성, 물성
김사라 예술버스쉼터 작업 방향은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라는 제목이 많은 부분 설명해 준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버스정류장 리모델링에 수반되어야 하는 기능적인 것들에 앞서 고민한 것은 장소성이었다. 사실 버스정류장의 기능은 너무 명확했고, 오히려 기존 예술계의 파빌리온 작업에 대한 의문이 나에게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미술관의 버스정류장이기에 달라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와 그 안에서 기능성이 어떻게 발현되어야 할지를 고민했다. 무엇보다 차를 통해 과천관으로 가는 숲의 여정이 독특하고 새롭게 다가왔다. 과천관으로 향하는 길은 계절마다 다른 풍경으로 변화하고, 향이나 습도, 바람 같은 것들이 숲을 더 풍부하게 경험하게 했다. 미술관 내부로 들어가 예술작품을 관람하기 이전에 마주하는 버스정류장이 예술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이정표, 포털, 게이트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정류장이 어떤 장소성을 가져야할지 건축적으로 고민했다. 5~7분 정도의 배차 간격을 가진 도시의 버스와 달리 이곳의 버스 배차 간격은 20분 정도였고, 비교적 긴 이 기다림의 시간 동안 어떤 행위들이 일어날 수 있을지 생각했다. 로지에(M. A. Laugier, 1713~1769)의 ‘The Primitive Hut(원시 오두막)’4처럼 눈이나 비 등을 피할 수 있는 앉는 곳을 생각했는데, 그것은 꼭 의자라기보다 앉는 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주변의 자연을 관망할 수 있는 프레임으로서 지붕을 생각했다.
형태적으로는 자의성을 드러내지만, 기능적으로는 당위성을 함께 고민했다. 두 가지가 서로 충돌하듯 보이는 이중적이고 완벽한 구조물 말이다. 그 외 세부적으로는 20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움직임과 그 연속성을 담아낼 수 있는 조형적 장치들을 선택했고, 기지개를 켜거나 몸을 구부리는 등의 움직임에서 발견되는 몸의 형태를 스케치로 스터디하며 공간과 구조를 구성해 갔다. 최종적으로 설치된 세 개의 예술버스쉼터는 각각 다른 구조를 갖는데, 이는 장소에 따라 관찰된 사람들의 움직임이 달랐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버스정류장은 가운데 공간이 열려 있고 양쪽에 기둥이 있다. 5~6m 간격으로 내리는 곳과 타는 곳이 정해져 있는데, 과천관에서는 버스가 정류장의 어느 부분에서 정차하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타고 내리는지 관찰했다. 사람의 동선을 어떻게 유도해야 할지, 필요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들을 어떻게 만들어 주어야 할지 등 여러 상황을 고려했다. 주재료로는 대비감이 강렬한 프로스트 미러 알루미늄과 탄화목을 선택했다. 실시 설계 단계에서 일부 구조체로 알루미늄을 사용할 수 없는 곳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변경하고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앉거나 닿는 부분의 탄화목은 블랙 UHPC로 변경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비일상의 공간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전체적으로 두 물성 간의 대비는 지켜져야 했다.
세 개의 버스쉼터 중 대공원역의 버스쉼터의 경우 미술관뿐만 아니라 대공원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유입되는 곳이기에 포털 역할을 하며 미술관에 대한 호기심을 심어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뒤쪽의 한국카메라박물관이 반사유리로 되어 있어 그와 이질적이지 않은 재료를 고민하다가 비슷한 재료인 프로스트 미러 알루미늄을 다른 두 개소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주변의 전경이 반영되면서 금속의 날카로운 선은 뭉개지고 날씨에 따라 다양한 색이 담기게 됐다.
과천관 정문에 위치한 버스쉼터의 경우 내린 사람이 앉는 곳이 아니라 관람을 마친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장소였기 때문에 대공원역 버스쉼터와는 성격이 많이 달랐다. 뒤쪽으로는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앞쪽으로는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었기에, 앞쪽보다는 뒤쪽 소나무 숲과 더 가까운 위치에서 휴식을 취하며 사색하는 시간을 갖길 바랐다. 대공원역의 버스쉼터에 비해 훨씬 정적이고 내향적인 장소였기 때문에 탄화목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후문에 위치한 버스쉼터는 기존의 정류장의 모서리 부분에 어슷하게 버스가 정차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고, 이에 내리는 사람들은 도로에 내리는 상황이 되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버스쉼터의 구조체를 중앙으로 위치시키고, 양쪽의 공간으로 타고 내리는 동선을 유도했다. 구조적으로는 대공원역과 정문의 버스쉼터가 거의 유사하다. 하지만 입면의 방향이 반대로 계획됐고, 재료를 대비해서 사용하면서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경험할 수 있다.
조형적인 형태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기능보다는 감각으로 설계한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법적인 치수들을 다 지켜 설계했다. 세 곳 버스쉼터에 공통적으로 설치된 동그란 원형 반사판만이 유일한 장식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예술 작업이 지녀야 하는 은유를 가장 잘 반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요소이다. 낮에는 주변의 풍경과 일시적으로 빛을 반사하지만, 밤에는 반사판만 발광한다. 낮에는 버스쉼터의 기능을 하고 밤이 되면 작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미술관의 버스쉼터이기에 기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작은 디테일에 공간의 감동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22 옥상정원: 쉼과 산책의 공간
배수현 <MMCA 과천프로젝트 2022: 옥상정원> 기획을 맡았다. 과천 공간 특성화의 세 번째 프로젝트로 옥상 공원이 추진되었다. 2021년 예술버스쉼터가 미술관 도입부에 활력을 더했다면 2022년에는 미술관 옥상에 새로운 감각을 담은 쉼, 산책의 공간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앞서 2021년 원형정원을 미술관 2층에 조성했는데, 원형정원의 자연과 조응하는 예술적 시도를 3층의 새로운 건축적 장치를 통해 확장하고자 했다.
미술관 3층 옥상은 과천관 주변의 자연을 전망할 수 있는 최고층이다. 진입 경로에 백남준 작가의 다다익선 작품이 설치되어 있고, 원형 램프 코어 길을 따라 위로 이동하면 종착지인 옥상정원의 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3층 옥상정원 공간 전체가 이번 프로젝트의 대상지였고, 공간 재생 프로젝트이기에 노후화된 난간, 2층 연결계단, 출입구 또한 실행 대상에 포함되었다. 미술관 관람의 경험 가치를 높이는 방향성 아래, 건축가 혹은 작가의 다양한 해석을 지향하는 열린 프로젝트였다.
과천관을 설계한 건축가 김태수는 정문에서부터 미술관 입구에 이르기까지 호수와 정원 층대 등의 다양한 공간적 요소를 제시하면서 옥상정원에서 클라이맥스로 펼쳐진 자연을 조망할 수 있도록 산책로를 조성했다. 미술관은 이곳을 적극적으로 개방하지 않다가 2017년쯤 관람객이 접근할 수 있게 했지만 숨겨진 명소 정도로만 존재했다. 이번 예술적 공간 재생을 통해 원래 설계자의 의도대로 산책로의 경험을 회복하고자 했다.
최종 후보 다섯 팀에게 제시된 세 가지 키워드는 ‘쉼과 산책의 공간’, ‘자연의 감각과 예술의 공명’, ‘미술관 내부와 연결되는 공간/경험의 연결과 확장’이었다. 미술관 내 휴게 공간이 부족해 2021년 2층 원형정원과 동그라미 쉼터를 신설했고, 이번에 3층 옥상정원을 예술 쉼터 공간으로 조성하고, 추후 2, 3층을 연결하는 콘텐츠를 개발할 계획이다. 빛, 바람 등 자연의 감각을 환기해 보고 풍광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함으로써 미술관에 대한 관람객의 새로운 욕구와 기대를 충족시켜 줄 것으로 생각했다. 예술 무대로서 잠재적 가능성도 고려했다. 360도 파노라마로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옥상정원이 전시실에서의 미적 경험을 자연 속 다양한 감각으로 확장시켜 줄 것으로 보았다.
작가의 선정 과정은 앞선 2021 예술버스쉼터와 동일하게 추천위원 10인에게 18인의 후보를 추천받았고, 최종 후보 5팀5의 제안 중 최종 1팀을 선정했다. 최종 후보 모두 옥상정원의 장소적⋅역사적 해석에 따라 흥미로운 안을 제시했다. 이 중 과감하고 독특한 디자인을 적절한 재료로 공학적으로 풀어낸 조호건축의 ‘시간의 정원’이 선정되었다. 미술관 관람 경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 이번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를 잘 반영하고 있었다. 3층 옥상정원은 과천관의 주변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열린 캐노피 구조를 통해 자연과 예술이 공명하는 새로운 산책 공간을 제시했다.
특히 계절과 자연의 변화에 따라 빛과 그림자가 변주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했다. 해의 방향이나 계절에 따라 변하는 과정을 가시화하여 평소 생각하지 못한 자연의 순환과 생태적인 부분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캔틸레버 구조를 사용해 미술관 입구 방향은 막아 시야를 닫고,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부분은 열어준다. 옥상정원을 따라 360도를 걸을 수 있는데 곳곳에서 색다른 조각적 풍경을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시간의 정원을 통해 그간 적극적으로 개방되지 않았던 공간을 새로운 감각의 산책 공원으로 제시하며 자연과 교감하는 예술적 경험을 확장하고자 했다. 이로부터 원형정원의 생태적 가치를 건축으로 확장하는 모색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2022 옥상정원: 시계, 풍경, 돛대
이정훈 ‘시간의 정원’은 구조를 다루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을 겪었다. (차라리 건물을 짓는 것이 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전문적인 구조 안전 진단이 필요했다. 기존의 옥상을 방문했을 때 난간이 희한한 형태로 되어 있었다. 과거 건축법에서의 난간 높이는 90cm였지만, 안전 기준이 강화되면서 120cm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급조해 높이를 조정한 조악한 디테일의 난간이었다. 마치 난간이 시간에 따라 자란 것 같이 보였는데, 잘못 자란 느낌이었다. 120cm의 난간이 주인공이 되어 구조물로 자라 마치 숲처럼 형성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으로 시작했다. 어설프게 올리기보다는 아예 원형정원을 덮는 구조체를 생각했는데, 초기에는 삿갓 형태로 스케치했다. 이후 단순화하는 작업을 거쳤고, 그냥 뻥 뚫린 느낌이 아니라 풍경을 열고 닫는 시퀀스를 계산했다.
더불어 2층 원형정원을 어떻게 함께 보여줄지 고민했다. 2, 3층이 한번에 눈에 들어오기보다 처음에는 원형정원이 보이고 끝으로 갈수록 자연의 원경이 보이도록 두 개의 원을 교차해 계획했다. 빛에 따라 구조물의 그림자가 변하는 풍경을 상상했다. 발표 당시 ‘만약 시간에 물성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로 드러날 것인가? 이곳에서 시간은 공간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형체로 자신을 드러낸다. 시간은 빛에 의한 그림자로, 그것들 총합의 입체로 자신을 증명해 낸다’6고 글을 썼다. 조금 난해하나 쉽게 쓰였고 마음에 드는 설명글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어려웠지만 나름의 확신을 가졌다. 계절별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원형 구조체가 일종의 시계처럼 보였다. 측우기, 해시계, 혼천의처럼 보이지 않는 실체를 증명하는 거대한 해시계를 만들자고 생각했다. 건축물 자체가 시간을 책정하기 위한 거대한 도구로서 시간을 증명한다는 콘셉트를 잡았다. 여름에는 9시, 11시, 13시, 14시 겨울에는 9시에 깊은 그림자가 지며 변화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작업했다.
원형 프레임은 가장 낮은 2.1m 높이에서 시작해 4.2m까지 높아지며 풍경을 열어준다. 건축가로서 항상 구조에 대한 욕심이 있다. 원형 프레임 설치를 위한 구조 문제는 포스트를 박으면 쉽게 풀릴 수도 있지만 디자인상 도저히 박을 수 없었다. 포스트 없이 약 70m 길이의 스팬을 지지하려다 보니 구조 난이도가 올라가 복잡한 시련이 찾아왔다. 두 개의 원이 서로 교차하며 각도가 생기고 스팬의 길이가 길다 보니 고안해 낸 것이 돛대 구조였다. 구조를 뒤에서 잡아당기는 인장 구조를 만들었다. 서로 얽혀있기 때문에 어느 한 구조를 자르면 구조체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서스펜션으로 밀고 당기며 서로 지탱하는 돛대 구조가 되었다.
직경 13m의 원에서 시작했다. 단면을 보면 원의 경사가 2.1m부터 4.2m까지 나는데 각 원의 기하학이 서로 반대로 각도가 설정되어 있다. 내부의 원형정원을 바라보는 틸팅은 사선 방향으로 접혀 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틸팅 각도를 갖고 있고, 이를 엮어주는 방식이다. 같은 단면이 하나도 없는 형태다. 시공자와 제작자 모두 어려운 구조라고 혀를 내둘렀는데, 짐작할 수 있는 어려움이 아니었다. 두 개의 원형 프레임이 수평이 아닌 서로 다른 각도를 가지고 만나기에 하나하나 맞는 절단 각도를 가진 파이프여야 용접이 가능했다. 그 와중에 파이프의 두께를 최대한 얇게 만들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파라메트릭 디자인을 충분히 파이프로 구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모델링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공작물 축조 신고7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인허가를 받아야 했다. 처음 설계 당시와 현재 옥상정원의 컨디션이 많이 달랐기 때문에 현황 측량 기계를 활용한 3D 스캔을 계획했다. 기존 도면에는 500m로 표기된 치수가 실제로는 449.25m인 식으로 차이가 제각각이었는데, ‘시간의 정원’ 구축을 위한 루버는 조금의 오차만 나도 제작이 힘들었다. 5mm 단위로 정확히 계측하여 데이터값을 만들고 모델링과 설계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계측한 데이터를 통해 구조 평면도를 다시 그렸고 정확한 구조 하중값을 계산했다.
또 다른 문제도 많았다. 방수 문제 때문에 바닥에 구조체를 넣을 수 없어 벽으로 기둥을 태워 설치해야 하는 엄청난 제약 조건이 있었다. 벽체에 구멍을 내어 구조체의 프레임을 형성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재료비 상승으로 매월 물가자료표를 제출하기도 했다. 운반도 문제였다. 한 유닛을 최대 크기로 잡아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을 계획했지만, 휴관일인 월요일, 관람객이 많은 주말, 좁은 진입 도로 등 제약이 많았다. 크레인이 놓일 위치와 트럭 정차 공간 등 많은 협의 절차가 필요했다. 학예사도 건축가도 힘든 상황이었다.
배수현 기존 건축물에 결착되는 방식이기에 건축물의 구조, 안전, 방수, 법률 등의 전문적인 검토가 필요했다. 프로젝트 시작 단계부터 공모심사까지 학예팀, 시설팀의 긴밀한 협업과 외부 전문가, 자문위원, 구조기술사와 지속적인 협업을 진행했다. 외부 전문위원으로는 과천관을 잘 알고 옥상 정원 바닥 방수 설계를 진행한 건축가를 섭외했고, 구조기술사의 경우 2층 원형정원의 구조를 검토했던 구조 기술사에게 동일하게 의뢰하여 2, 3층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협업 구조를 마련했다.
이정훈 기자간담회가 다가올 무렵 장마가 계속되어 속앓이를 했지만 개막 당일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좋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희한하게 운무가 멋있었다. 그날 사진 촬영도 하고 드론으로 영상 촬영도 했다. 과천관의 메인 작품인 다다익선의 제작 비디오 개수가 1천 300개인 이유는 개천절에 개관했기 때문인데, 시간성이 담긴 ‘시간의 정원’ 또한 개막날의 운치와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파빌리온 다시 생각하기
정다영 가장 먼저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건축가의 정체성을 어떻게, 얼마만큼 반영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파빌리온은 임시 구조물이기에 일반 건축물보다 작업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건축 작업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현주 옆에서 김사라 소장이 파빌리온을 구현하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건축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게 됐다. 고되며, 경제적인 보상도 적고, 좋은 포트폴리오가 될지도 의문을 품으면서도 끝까지 밀고 나가며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어떤 것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대단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건축가, 디자이너는 기본적으로 클라이언트의 어떤 의뢰에 따라 작업을 구현하는 직업적 특성을 지닌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에서 초청하는 작가와 달리 평상시 온전히 본인의 표현 욕구를 반영하는 작업을 진행하기 쉽지 않다.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중간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에서는 예산 등 여러 문제로 조율하거나 포기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파빌리온 프로젝트의 경우 미술관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의뢰하기에 예산 등의 범위 내에 큰 무리가 없다면, 작가의 선택과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토대가 있다. 그렇기에 건축가에게 파빌리온이란 일반적인 작업에서 실행하지 못한 여러 시도를 할 수 있는 테스트 베드,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유형의 프로젝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술관은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소개하지만, 건축가의 여정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와 도약으로서 유의미할 것 같다.
김사라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실험적인 프로젝트에 임하는 태도에 있어 건축가의 욕망이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웃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이현주 학예사와 이야기하면서 일반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라면 경제적인 이유로 어느 선에서 협의했을 부분을 파빌리온 프로젝트에서는 1mm도 타협하지 않는 지점이 생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다영 또한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젊은 건축가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있다. 미술관에서 건축가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파빌리온이 유용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다 보니, 오히려 일반적인 건축보다 작업이 쉽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고,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젊은 건축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정훈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주관하는 서펜타인 파빌리온8은 전 세계 건축가의 등단의 장이다. 이런 권위를 만들고 힘을 얻는 과정은 주목할 만 하다. 연배가 높은 건축가도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면 충분히 서로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다영 사전 인터뷰에서 이정훈 소장의 ‘소프트 랜딩’이라는 표현이 매우 와닿았다. 기획, 제안, 심사를 통한 공모 발표까지 그 과정을 주목하지만, 그 이면에 소프트 랜딩을 위한 실천 방식은 잘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이번 발표를 통해 협력에 대한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예술적 차원으로 시작하지만, 큐레이터가 행정가로서 면모를 가지고 임해야하는 부분이 크다.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작업을 실행할 때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이정훈 상대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민간 미술관에 비해 전문 인력과 행정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간 미술관에도 파빌리온 프로젝트에 대한 수요가 있지만, 아직 활발하게 확장되지 않는 데에는 이러한 전문가들의 협력 구조가 마련되지 않는 것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사라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겉으로 볼 땐 건축가만이 전력투구하며 작업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뒤에 숨겨진 학예사의 행정적 지원이 더 크다고 느껴졌다. 파빌리온 진행 경험이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조차도 행정적인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과 노하우가 없는 민간 미술관에서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진행할 경우 건축가가 고심하여 새로운 것을 제안하고 실행하고자 하더라도, 구현 시에 예상치 못한 행정적 제한과 제도적 한계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자본은 민간 미술관이 더 클 수 있겠지만, 수반되는 행정적 절차와 경험에서 오는 노하우 등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배수현 이번 과천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문위원, 구조기술사 등과 많은 협업을 경험했다. 개인적으로 다음 프로젝트는 어떤 행정적 구조를 짜고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소프트 랜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됐다.
정다영 반영구적인 파빌리온, 그리고 미술관-건축(가)의 제도로서 파빌리온은 새롭게 재정의 될 수 있을까?
김사라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와 ‘시간의 정원’ 모두 ‘파빌리온’이라 일컫지만 반영구적인 설치 작업으로서의 첫 시도이고, 서로 유형도 다르다.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파빌리온을 재정의하겠다는 원대하고 구체적인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제목을 통해 근본적인 질문을 나 스스로와 미술관, 사용자들에게 던진 것이다. 지속적으로 소비되는 파빌리온 문화에 인식의 변환점을 제시하고 싶었다. 특별히 예술버스쉼터를 통해서 단순히 편리함을 제공하는 기능이 아닌 미술관의 버스정류장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이 장소가 당신에게는 무엇으로 인식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이정훈 얼마 전 과천에 거주하는 후배가 ‘시간의 정원’의 야경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야간에서의 조명 설계는 야간에 방문한 누군가도 관람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자 했던 시도였다. 그간 파빌리온 작업을 해온 입장에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를 담기도 했다. 파빌리온 프로젝트에 있어서 예술로 시도된 어떤 것이 일상생활과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의 나의 과제가 아닐까 한다.
정다영 사실 파빌리온에 대한 논의를 30분 안에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 발표를 듣고 김사라 소장의 작업에서는 구조적인 서사가 있다고 느꼈고, 반대로 이정훈 소장의 작업에서는 물리적인 구조 이면의 서사성을 발견했다.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와 ‘시간의 정원’ 모두 미술관이 폐관한 이후의 시간과 장면까지 고려했다는 지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장소와 시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빌리온의 순기능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원고화 및 편집 박세미
MMCA 과천프로젝트
분량13,430자 / 26분 / 도판 11장
발행일2023년 9월 11일
유형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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