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 주제) 세대론
강승현, 김나운, 김종서, 백상훈, 신민지, 임명기, 조세연, 최민욱
분량5,346자 / 11분
발행일2023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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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함 30% 함량의 낀 세대
강승현(인로코) ‘앞세대’가 언제인지 누구인지 정의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대상을 좁혀 보면 일단 나의 선생님 세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분들은 한국성이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우리나라 건축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짐이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건축가로서의 품위와 위상, 권위 등을 중시했고, 그게 태도에서도 드러났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런 한편, 건축을 지나치게 비즈니스로만 여긴 경우도 많았다. 일이 차고 넘쳤다던 1980~90년대에 그런 이들이 절대다수였기에 적절한 설계비 요율, 대가 기준을 만들 기회를 놓쳤다고 본다. 결국 건축가가 이 사회에서 받는 낮은 대우, 설계비 덤핑 같은 수십 년 묵은 문제는 사실 지나간 시기의 특별한 상황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각자 필요와 판단에 의한 선택이었겠지만 후배로서는 아쉬움이 크다.
우리는 이곳과 저곳 사이에 낀 세대 같다. 한국성을 고민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지함이 한 30%는 남아 있어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을 고민하고 역사적인 무언가를 작업에 대입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있다. 우리가 기준과 원칙으로 삼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소소하더라도 규모 검토 같은 일도 반드시 비용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관공서 일을 할 때 용역사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 ‘나의 역할은 건축설계 내용 전반의 방향과 목표를 주도적으로 제시하는 것’임을 명확하게 한다. 주무관 중에서도 직접 설계하려고 나서는 분이 있는데 그럴 때 ‘여러분이 우리가 제시하는 것에 대해서 필요한 부분을 전달하면, 문제를 풀고 디자인하는 건 건축가의 역할이다’라는 사실을 초반에 알려드리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담당 공무원도 이해하고, 프로젝트가 순탄하게 가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의 문제들은 결국 전문가로서 건축가의 역할을 사회가 혹은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생겼을 수도 있고, 건축 작업을 대하는 건축가의 태도로 인한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한다.
현재 나보다 후배들, 혹은 30대 초반에 개소한 사람들을 보면 훨씬 편안하고 자유롭게 설계하는 것 같다. 건축의 의미가 조금 더 개인적인 사유나 취향의 차원으로 자리 잡았고, 자기표현이라든가 상상력에 기대는 느낌이다. 자연스러운 것 같고,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좋은 작업이 많다.
김나운(인로코) 세대론 패러다임으로 건축계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를 중심으로 직접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들 사이에 생성되는 주관적이고 작은 세계를 볼 뿐이다.
강승현(인로코) 어쩌면 이게 바로 나와 젊은 세대의 차이일 수 있을 것이다. 후배 건축가들은 굳이 역사적인 흐름이나 줄기를 더듬어 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며 바뀔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시대 정신, 그 세대만의 정신이 있는 것 같다. 지금의 60~70대는 20~30대 때부터 한국성을 찾았으니까.
일감 부족, 경험 부족, 기회 부족
백상훈(씨드하우스) 1980년대, 건설 경기가 좋았을 때만 해도 엘리트 건축가에 대한 대우가 괜찮았을 것이다. 일도 많았고, 공간, 정림 출신들이 건축가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전문가로서 존중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IMF를 기점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게 됐고, 무한경쟁의 시대가 왔다. 지금 설계비 기준이 1997년 수준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설계 대가가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설계를 시작하는 세대는 경쟁이 더욱 치열한 가운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가를 받기 때문에 더 많은 일을 악착같이 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건축일이 점점 줄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실무 경력이 적은 친구들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개소를 하고 있다. 내가 볼 땐 제대로 일을 배울 자리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취업을 고민하던 때만 해도 공간, 정림 등의 설계사무소는 연례행사처럼 20명 정도씩 신입 직원을 뽑았고, 졸업 예정자들이 회사를 골라서 갈 수 있었다. 이제는 그런 게 거의 사라졌고, 대부분의 회사가 경력직을 더 선호한다. 과거에는 신입 직원을 뽑아서 성장시키는 것을 설계 사무소의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비용을 감수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세대는 어떤 측면에서는 불행하다. 일을 밀도 높게 배울 기회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틀리에 중에서 실시설계에 시간을 들여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무소 또한 줄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명한 사무소 중에서도 도면을 충분히 그리지 않고 현장에서 처리하는 곳이 있고 그러한 사무소의 건물에 가 보면 빈틈이 많이 느껴진다. 한편 몇몇 설계사무소는 너무나 잘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일을 배울 수 있는 자리는 한정돼 있다. 경험치는 결국 실력으로 드러난다. 내가 100을 경험했는데 1000을 디자인하기는 어렵다. 1000을 디자인하는 것을 몇 번 보고 경험해야 그 근처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제대로 된 설계 프로세스를 경험할 수 있는 사무소가 줄어든 것이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짧은 경력으로 개소한 젊은 건축가에게도 당장은 자기 시장이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건축주 입장에서는 젊은 건축가가 저렴하고 적극적이기 때문에 일을 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젊은 건축가는 계속 공급된다. 그러니 그 정도 수준과 시장을 타깃으로 일을 계속 할 수는 없다. 최소한 추구하는 건축적 완성도에 대한 생각과 그에 따른 비용에 대해서 건축주에게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는 게 중요할 것이다.
무한 경쟁 세대
김종서(제로리미츠) 과거 선배들은 닫힌 풀 안에서 안정적이고 안전한 기회들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은 그때보다 일이 훨씬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경쟁이 심하고 그 시대에 비해서는 전반적인 실력이 상향평준화됐다. 이건 내가 개소한 시점과 비교해도 많이 다르다. 클라이언트의 태도, 연령대도 바뀌었다. 가장 큰 틀에서는 건축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졌다. 기회가 많아진 만큼 건축가의 역할도 더 늘어났고, 그만큼의 노력을 요구한다. 만약 내가 이 시점에 사무소를 시작했다면, 지금 모습처럼 일궈올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내 첫 클라이언트는 ‘소위 건축가라는 사람은 어디 있는지 도대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고 연락처도 알 길이 없다’고 했었다. 근데 지금은 포털 사이트 검색만 해도 수두룩하고, 건축가 스스로 소셜미디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너무 광범위하게 노출되어 있으니 우리 입장에서는 무한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요즘은 2~3년 정도의 경력만으로 설계사무소를 빨리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건축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높아지는 만큼 클라이언트가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아지다 보니까 경험이나 정보가 부족한 젊은 건축가가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클라이언트가 곳곳에서 이런저런 자료를 보고 들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소규모 건축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게 태반이다. 계약서만 해도 규모나 주체에 따라 내용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여러 사무소를 거치며 공공건축이나 큰 규모, 다른 용도의 건축을 경험했기 때문에 규모와 용도에 따라 적용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고, 이런 클라이언트에 대응할 수 있다. 근데 그런 경험이 없고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까다로운 상대를 만나게 되면 엄청난 고난을 겪게 된다. 내 주변에서도 이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런 부분들은 기회가 독이 되는, 어두운 면이다. 예전에 비해 시작하는 건 쉬워졌지만, 살아남기는 훨씬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과 세대 차이
임명기(공기정원) 과거에는 매체가 한정되어 있어 사진과 같은 이미지를 통해 공간을 습득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공간에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워낙 소셜미디어가 발달했기 때문에 공간을 만들 때부터 휴대폰 카메라에 잘 담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하나의 장면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검은 벽을 만들 때, 까맣게 태운 목재로 마감한 것과 페인트칠한 것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하지만 그 질감까지 사진에 담기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대충 쉽게 칠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너무 이미지로 소비되는 데 초점을 맞춘 디자인을 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 앞세대는 상대적으로 힘이 들어갔고 카리스마 있고 ‘디자인은 이런 거야’라고 보여주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디자인을 통해서 사용자와 교감하려 노력하고, 편안하고 담백하게 접근한다는 차이가 있다. 요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이런 부분은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민지(공기정원) 인테리어보다 건축 분야 내에서 더욱 세대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 같다. 김수근 시절의 예전 건축물들을 보면, 이미 거기에 시간이 배서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공간감과 깊이가 충만하다. 요즘에는 재밌다는 느낌을 받는 건물은 많이 보이지만 과거의 건축처럼 내부에서 느껴지는 공간감까지 감동을 주는 건물은 상대적으로 적지 않나 생각한다.
친근하게 다가가기
조세연(노말) 앞세대는 건축 담론이나 학술적인 차원, 또는 공공성에 집중하는 등 더 큰 이야기에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하드웨어의 완성도나, 사용자가 직접 경험하는 요소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세대는 소셜미디어 환경 속에서 건축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는 입장이 되어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많이 노력한다. 나도 그중 하나다. 많은 사람이 패션을 말할 때 자기는 어떤 스타일을 좋아한다든가, 특정한 브랜드를 좋아한다는 말을 쉽게 하는데, 건축에 대해서는 어떤 건축물 또는 건축가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우리는 늘 건축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관심이 적다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 건축을 너무 어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건축을 말할 때 ‘예쁘다’라는 평을 금기시하지만, 건축가끼리 사적으로 모이면 ‘예쁘고 아름답기 때문에 좋다’는 표현을 쉽게 한다. 그래서 나는 건축을 표현하거나 감상하는 단어도 쉬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처음에는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에 프리츠커상 수상자, 다음에는 엘크로키가 다룬 건축가들을 짤막하게 다룬 포스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건축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나 여기에 관심 있는 일반인으로부터 상당한 반응을 얻었다. 이처럼 건축은 어렵다는 인식을 깨기 위해서 부딪혀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해 왔고 나름대로 실천하고 있다.
삶과 일의 균형
최민욱(노말) 일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야근이나 주말 업무가 많았는데, 요즘은 가급적 정해진 업무 시간 내에 일하고 이외 시간에는 가족이나 본인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등 ‘워라밸’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식으로 일하면 일이 안 된다고 했었다. 그러나 균형을 지키다 보면 일이 되고, 더 좋은 생각도 나오는 걸 느낀다.
(공통 주제) 세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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