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v33-cover/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공기정원

임명기, 신민지

공간을 탐구하는 과정

신민지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이 스튜디오 베이스였다. 결혼하고 나서는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프리랜서로 일했고, 클라이언트와 인연이 이어지고 일이 계속 생겨서 사업자를 낸 뒤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그러다 임명기 소장이 독립하게 되면서 함께 공기정원을 열었다.

임명기 스튜디오 베이스는 내게도 첫 회사였고, 여기에서 12년 일했다. 신입으로 입사해 현장 경험부터 시작했고, 연차가 쌓인 후에는 디자인까지 관여하게 됐다. ‘인테리어’라고 하면 표피에 국한하는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스튜디오 베이스는 ‘공간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건강한 회사라서 생각을 많이 키울 수 있었다. 차츰 시간이 흐르다 보니 내 이야기를 좀더 편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독립하게 됐다. 애초부터 한 10년 정도 일하고 독립하겠다고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던 터라 좋게 헤어졌고, 지금도 대표님과 자주 뵙는다.

공기정원에 담긴 뜻

임명기 우리 사무소 이름에서 ‘공기’는 공간을 의미한다. 누군가에게는 공간이 벽체를 세워서 구획한 결과일 수 있지만, 우리는 공간을 채우는 분위기, 공간에 흐르는 ‘공기’를 만들고자 한다. 그것이 공간의 본질이자 콘셉트(이야기)라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정원’은 구현에 대한 이야기로, 사람들이 집 안에서 손수 가꿔나가는 정원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소박하게 가꿔나가겠다는 뜻을 담았다. 즉 ‘분위기를 가꾸다’가 우리 이름에 담긴 뜻이고, 공간의 본질을 구현하겠다는 취지를 표현한 것이다.

신민지 우리는 주어진 조건으로부터 콘셉트를 잡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팀원들과 회의할 때도 그 콘셉트 안에서 특정한 분위기와 감정을 일으킬 수 있는 개념적인 이미지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한다. 디테일이나 비례를 찾아야 할 때는 구체적인 사례를 찾더라도 그전까지는 공간 레퍼런스를 보지 말자고 약속하고 시작한다.

임명기 어딘가에 이미 구축되어 존재하는 레퍼런스는 우리만의 독창적인 개념을 찾고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내부에서는 가능한 한 멀리하지만, 간혹 클라이언트가 실제 사례 이미지를 수집해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클라이언트가 어떤 취지로 이미지를 제시한 것인지를 파악하려 하고, 클라이언트에게도 ‘취지를 얘기해달라.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자’고 말씀드린다.

대표작

오른

임명기 오른 프로젝트는 바다 바로 앞에 있는, 풍광이 아름다운 사이트라서 의뢰받은 순간부터 반드시 잡고 싶은 일이었다. 그런데 첫 미팅에서 클라이언트가 해수와 해풍에 대해서 잘 아냐고 질문했다. 바닷가에 건축해 본 경험이 없으니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에서 일한 경험이 있냐는 다음 질문에도 없다고 답했고, 찜찜한 상태로 헤어졌다. 그런데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진심을 담아 편지를 썼고, 일을 시작하게 됐다. 오른 프로젝트는 외부로부터의 접근이 아닌 ‘내부를 건축하다’라는 관점으로 내부에서 외부로의 접근으로 진행했던 첫 건축프로젝트이다.

신민지 오른 프로젝트는 ‘(제주도의) 자연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해 ‘그저 여기에’라는 콘셉트를 잡았다. 제주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느끼기 위해 찾아오는 것인지 고민해보니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누리려고 오는 것이고, 그 자연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충만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사이트에는 나를 내세우는 건물을 만들지 말고 원래 여기에 있었던 것 같은 모습으로 건물을 짓고, 그 안에서 자연을 바라보게 하자는 취지로 ‘그저 여기에’라는 콘셉트를 도출했다.

임명기 어떻게 해야 ‘그저 여기에 있는 것 같지?’를 고민하다가 착안한 것은 제주도가 화산섬이라는 사실이었다. 제주도 곳곳에 기생하고 있는 작은 화산섬이 바로 오름이다. 오름이 지천에 있으니까 우리 사이트에 작은 화산섬 하나를 더 터트리자는 개념으로 풀어냈다. 프로젝트 초기 네이밍도 오름이었다. 그러다 오름에서 ‘오르고 있다’는 진행형을 연상하게 됐고, 그로부터 화산섬처럼 구축되는 매스나, 사람들이 오름을 오르며 여러 자연을 마주하는 것처럼 우리 건물에서도 계속 오르며 다양한 장면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른’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바다에서 제주도가 솟아난 것처럼, 오른도 매스 주변에 수공간을 함께 조성했다. 내부 공간도 층의 구분 없이 옥상까지 쌓아 올린 느낌을 강조했다. 이처럼 오름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부터 계속 쌓아 올리는 것을 일관되게 강조한 이유는, 우리가 사용자의 직관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건물 북쪽에 바다가 있어서 해를 등지고 바다를 바라보기 때문에 수평선이 매우 또렷하게 보인다. 그래서 통창을 놓을 자리에 이마를 내려서 창 높이를 2,100mm로 낮춰 수평 방향을 강조했다. 또한 메인 공간에 놓이는 테이블에 바다를 담고 싶다는 생각으로 유리를 세워 겹쳐서 투명하고 푸른 빛을 띠는 테이블을 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화장실과 같이 기능을 목적으로 하는, 그래서 디자인적으로 소외된 공간에 더욱 신경 쓴다. 그러면 공간 전체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다. 오른의 화장실은 중앙에 놓인 세면대를 남녀 공용으로 쓴다. 처음에는 관리가 되지 않을 것을 우려했지만 지켜보는 눈이 많으니 오히려 깨끗하게 쓴다.

오른 / 사진: 박우진
사진: 박우진

이도사유

신민지 이도사유는 세종시에 위치한 카페다. 클라이언트가 세종시는 계획도시이기 때문에 주말에는 할 일이 없어서 다른 도시로 빠져나가고, 평일에는 사람들이 집과 일터만 오가는데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인들이 잠깐 들러서 멍 때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멍 때린다는 건 결국 생각을 잠시 멈추고 사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클라이언트에게 이곳을 사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해 드렸고, 방문객이 사유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공간의 모든 것을 정제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임명기 외장 마감은 내장재로 주로 쓰이는 경량 철골 엠바(M-Bar)를 썼다. 날씨의 변화나 하늘을 그대로 담는 외장을 구현하고 싶었기에 금속재료를 생각했는데, 엠바는 녹슬지 않고 이미 시공 디테일이 있다. 그런데 어느 공장에서 생산하는지에 따라서 빛깔이 다 다르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빛깔과 필요한 길이에 맞는 엠바를 생산하는 업체를 수소문해서 찾았고 별도의 피스 작업 없이 입면에 조밀하게 시공했다.

이 건물은 밖에 창호가 하나도 없는 대신 3m 폭의 문을 통해 들어가자마자 중정을 마주하게 되고, 그 옆으로 돌아 내부로 깊이 들어가면 하늘이 열린 것이 보인다. 그리고 벽면에 설치된 의자는 등받이 부분을 뒤로 비스듬히 기댈 수 있도록 디자인해서 자리에 앉았을 때 비로소 하늘을 온전히 올려다볼 수 있다.

사람들이 사유하게 하려면 순간적으로 시선을 차단해서 눈으로 보는 것을 잠시 멈추고 내면에 집중하는 인상적인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이끌어내는 장치가 바로 중정의 안개다. 중정의 꽃과 나무가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데, 이 모든 것을 안개로 가리면 마치 시간의 속도가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곳에서만큼은 잠시 여유를 갖고 생각에 잠길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우리가 만든 공간에 흐르는 시간의 감각을 디자인해 볼 수 있었고, 무척 흥미로웠다.

이도사유 / 사진: 박우진

가치관을 공유하는 조직

임명기 지금은 전체 인원이 일곱 명인데, 우리의 최대 규모는 우리를 포함해서 최대 열두 명 정도로 본다.

신민지 인원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일도 많이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놓치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서로 소통하고,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규모를 지키려 한다.

임명기 우리가 추구하는 분위기는 직원들이 업무적인 관계를 넘어서 서로 진심으로 대했으면 좋겠고, 마치 놀이터에서 노는 것처럼 즐겁게 일했으면 좋겠다. 그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업무량과 난이도를 적절히 분배할 수 있도록 연차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리고 직원을 뽑을 땐 출신이나 배경보다 공기정원과 잘 맞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직원 중에 유리 공예를 전공한 친구가 있다. 처음 면접 때 왜 유리 공예가 아닌 다른 길로 전향하는지 물었는데, ‘조형 언어라는 측면에서 보면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에 크게 다른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인상적인 답변을 들었다. 물론 건축은 공예와는 달리 현장도 있고, 실무 경험이 없으면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 친구가 입사 후에 이도사유를 맡아서 잘 해냈다. 이처럼 당장의 업무 능력이나 학력보다는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공간의 분위기(콘셉트와 스토리)에 대한 생각이 잘 통하는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과 세대 차이

임명기 과거에는 매체가 한정되어 있어 사진과 같은 이미지를 통해 공간을 습득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공간에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워낙 소셜미디어가 발달했기 때문에 공간을 만들 때부터 휴대폰 카메라에 잘 담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하나의 장면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검은 벽을 만들 때, 까맣게 태운 목재로 마감한 것과 페인트칠한 것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하지만 그 질감까지 사진에 담기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대충 쉽게 칠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너무 이미지로 소비되는 데 초점을 맞춘 디자인을 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 앞세대는 상대적으로 힘이 들어갔고 카리스마 있고 ‘디자인은 이런 거야’라고 보여주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디자인을 통해서 사용자와 교감하려 노력하고, 편안하고 담백하게 접근한다는 차이가 있다. 요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이런 부분은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민지 인테리어보다 건축 분야 내에서 더욱 세대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 같다. 김수근 시절의 예전 건축물들을 보면, 이미 거기에 시간이 배서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공간감과 깊이가 충만하다. 요즘에는 재밌다는 느낌을 받는 건물은 많이 보이지만 과거의 건축처럼 내부에서 느껴지는 공간감까지 감동을 주는 건물은 상대적으로 적지 않나 생각한다.

공간 디자이너의 업역 확대

신민지 건축의 규모가 작을수록 클라이언트가 공간 디자이너를 찾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 공간 디자이너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인 내부를 중점적으로 구현하는데, 점차 업역이 확장되면서 건축까지 아우르는 작업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인터뷰 심미선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공기정원

공기정원은 ‘분위기를 가꾸다’라는 모토로 공간을 만든다. 공기정원은 겉으로 보이는 표피가 아닌, 대기의 공기처럼 그 자리에 감도는 기분이나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공간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서 생겨나는 그 무엇을 고민하며,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의 공간을 가꾸어 나가려고 한다. 최근 작업으로는 이도사유, 오른, 모습 등이 있다.


  • 개소 연도: 2018년
  • 주로 활동하는 도시: 서울
  • 현재 인원: 8명
  • 프로젝트 수주 비율:
    (현황) 설계:시공=60:40, 인테리어:건축=70:30
  • 웹사이트: https://www.atmoround.com
  • 인스타그램: @atmoround_official

공기정원

분량5,462자 / 11분 / 도판 5장

발행일2023년 7월 6일

유형인터뷰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