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로코
강승현, 김나운
분량10,646자 / 21분 / 도판 5장
발행일2023년 7월 6일
유형인터뷰
다양한 경험의 조합
김나운 미국에서 학부를 졸업했고, 워싱턴 DC에서 대사관이나 공립학교 위주로 설계하는 사무실에서 2년 반 동안 일했다. 이후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소하고 나서야 실무를 허겁지겁 배우기 시작한 셈이다. 그래서 고민도, 시행착오도 많았다.
강승현 국내에서 건축공학과를 졸업했고, 첫 직장인 진아건축에서 3년 좀 넘게 일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 30명 규모였는데 퇴사할 때 100명이 되었을 정도로 회사 규모가 커질 때였고, 나는 팀원으로 큰 규모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했다. 막판에는 광교 신도시라든가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첫 마을 사업 등을 하면서 도시 계획의 초반 작업도 경험할 수 있었다. 진아건축에서 참여한 작업은 중간에 엎어지거나 계획안으로 끝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실제로 지어진 게 없었다. 그랬기에 내적 갈증이 좀 생겼던 것 같다. 그다음에 어반엑스에 1년 정도 다니면서 처음으로 짓는 프로젝트의 PD가 되어 업체를 챙기면서 일해봤다.
이후 석사과정을 위해 유학 간 델프트 공대에서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교육을 하는 환경과 분위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학생 작업임에도 1:20 디테일까지 그리고, 빌딩 시스템까지 온전히 구축해야만 수업을 패스할 수 있었다. 실무 후 그런 교육 과정까지 거치고 나니 이제는 건물을 지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졸업 후에 현지에서 취업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짧은 기간 인턴십 이후 귀국했다. 국내에서 다시 취업할 생각은 없었고, 나이도 서른다섯이었다. 그래서 바로 내 작업을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김 소장은 국내 사무소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취업이 더 좋을지도 고민했지만 먼저 개소한 선후배 건축가들이 긍정적으로 조언하고 격려한 덕분에 독립적인 작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당선작으로 첫 프로젝트
김나운 개소하고 나서 이상도시건축사사무소의 안택진 소장님과 협업으로 수원시 청소년 문화의 집 공모전에 당선했다. 당시엔 몰랐지만 처음 시도한 공모전에서 당선한 것은 신기한 일이다.
강승현 공공 프로젝트는 담당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우리는 운이 좋았다. 담당 주무관이 건설사에 있다가 공직으로 옮긴 지 1년 정도밖에 안 된 분이어서 합심해서 잘 만들어 보자는 마음이 수월하게 모였고 마침 수원시에서도 신경을 쓰는 프로젝트였다. 설계에 10개월, 착공부터 준공까지 1년 정도 걸렸는데 그때는 이 일에 온전히 집중했다. 이 일을 통해서 오랜만에 현장 분위기를 환기했고, 일하는 방식을 많이 익혔으며, 다행히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김나운 그 이후로도 공모전을 계속 시도했다. 다른 아틀리에도 비슷하겠지만 지명도가 높지 않은 초창기에는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일이 녹록하지 않으니 공모전을 통한 노력을 계속한다. 공공건물을 지어 보면 민간 프로젝트를 할 때 경험하지 못하는 즐거움도, 힘듦도 있다. 공공건물이기에 요구사항이 지나치게 보편적이거나 모호하기도 하고, 담당 주무관이나 발주처에 휘둘리는 경우도 많지만, 건축가로서는 겪어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강승현 사실 민간일이 꾸준히 들어온다면야 공모전을 안 해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생계형 건축가로서 공모전 도전은 다음 일을 찾는 과정에서 꼭 필요하다.
다양성 vs 일관성
강승현 우리가 설계할 때 일관된 태도가 있다면, 디자인 빌드, 설계자가 공간의 완성 수준을 끝까지 책임지는 게 건축 설계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라는 입장이다. 건물을 하나의 구축물이자 시스템으로 보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계획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겉으로 드러나는 건물의 색깔이나 건축 언어, 형식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 작업은 일관성보다는 다양성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그 편차는 외부와 협업하는 작업의 구도 자체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타협하고 조율하는 성격 탓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결과물을 한데 모아두었을 때, 외부 요인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영향받은 건가 싶기도 하고, 이런 다양성이 좋은 것인지 고민도 한다.
김나운 나는 건축가로서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작업에 잘 드러나기를 지향한다. 근데 우리 둘 다 한두 가지 재료나 형식언어, 건축적인 개념, 건축 사조에 오랜 시간 골몰하는 성격이 못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쓴 글을 봐도 표면적이든 관념적이든 다양함을 추구하려는 성향이 있다. 지나간 작업을 갈음하면서 ‘과연 이게 우리가 지향한 걸까’ 질문도 한다. 우리 포트폴리오가 마치 여러 스타일의 가구가 조화를 이루는 편집숍처럼 다채롭고 풍부하게 어울리면 좋겠는데 쉽지 않다. 고유한 스타일을 구축해 나가고 싶은 바람과 고민이 있다.
추상화한 섬네일
강승현 사무소 홈페이지를 구축한 초기에 각 프로젝트의 대표 사진을 섬네일로 모아보니 작업이 각양각색이었다. 홈페이지가 사무소의 인상이 되므로 건축가는 자기 작업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생각한다. 김 소장이 지나간 프로젝트를 다시 이미지화하면서 각 작업의 개념이나 구성의 핵심을 간략하게 스케치한 것이다.
김나운 우리가 각자 어떤 작업을 보고 좋다고 생각하거나, 아름답다고 느끼는 지점의 교집합을 관찰해 보면 자유로운 질감과 재료로 구현된 공간과 그 뒤를 든든하게 지탱하는 구조가 있다. 적은 수의 점선면과 거칠기로 프로젝트를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다. 프로젝트의 총합을 한 페이지로 그려내는 방식이다 보니 작업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아는 시점에 그릴 수 있다.
우리 둘 다 명료하게 정돈된 상태를 지향하는 편이지만 나는 상대적으로 모호하거나 추상적이거나 조금 까칠까칠한 것을 선호한다. 프로젝트를 보여주는 이미지와 작업의 본질 사이 거리에 관해 생각해 보면 건축가로서 프로젝트를 보여주고 싶은 방식, 표현 언어, 그리는 도구, 건물이 만들어진 상태, 우리가 추구하는 건축적 가치관 등이 특정한 궤도 안에서 운행하면서 달과 지구 사이처럼 가까워질 때도, 좀 멀어질 때도 있다. 그 거리를 응시하는 것 자체가 건축가로서 할 일이 아닌가 생각도 한다. 더 나아간다면 표현 방식부터, 언어, 내용과 형식의 거리에 대해서도 전체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강승현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보면 이 홈페이지가 친절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조차도 프로젝트를 찾느라 헷갈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김 소장이 홈페이지 관리를 전적으로 맡고 있는데, 앞으로 계속 고민하고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체계성이 보이는 건물
강승현 지금까지 공공건축, 공공 인테리어, 협소주택, 땅콩집, 다세대 다가구 등 계속 다른 유형의 작업을 해왔다. 경험의 폭이 무한정 넓어지지는 않겠지만, 아직 개소 10년이 안 되었으니 새로운 경험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공공건축에 꾸준한 관심이 있고, 그다음에 해보고 싶은 것은 빌딩 전체의 구조적인 시스템이나 공간 단위들의 연속적인 시스템이다. 건물 규모가 작으면 그런 것들을 해보기 힘들다. 보통 연면적 2,000제곱미터 이상이 돼야 가능하기 때문에 일정 규모 이상의 작업에서 시도하고 싶다.
김나운 경험해 보지 못한 유형의 일이 주어지면 반갑지만, 그 과정이 제법 고생스럽다. 건축가는 프로젝트마다 새로 배우는 것들이 많고, 똑같은 프로그램의 건물을 설계하더라도 지역마다 고려 사항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거듭할 때마다 새로운 상황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게 이 직업의 즐거움이자 어려움이다. 주택 설계를 하면서 얻는 즐거움이 크기에 앞으로 기회가 닿는 대로 해보고 싶다.
남원 월락동 다가구주택
김나운 현재 시점에서는 남원 프로젝트가 근작이자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파트를 향한 저항감, 반감이나 불만과 같은 우리의 생각들을 큰 내용이든 작은 내용이든 차곡차곡 모아서 적용해 보았고, 건축주 가족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의미가 있다.
건축주 가족이 모두 다섯 명이고 그중 자녀가 셋인데 아이들이 더 늦기 전에 각자의 공간을 가질 수 있는 집으로 옮기고 싶다는 건축주의 말과 지속적으로 나누었던 다양한 대화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를 그려 보기도 하고, 모형으로도 만들면서 가족들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집의 다양한 면을 생각했다. 앞으로 주택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 계속 이 작업을 돌아보게 될 것 같다.
강승현 이 프로젝트는 설계 과정에서 비교적 여유가 있었고, 시공 기간도 좀 길었기 때문에 조적조의 줄눈을 조색하고 채워 넣는 단계까지 챙길 수 있었다. 건축가가 생각하고 책임져야 하는 업무를 A부터 Z까지 원하는 만큼 충분히 고민해 본 작업이라는 면에서 가장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외장에서 아치가 눈에 띌 것이다. 기본적으로 건축의 구축적인 관점에서 아치를 아치답게 구사하는 방법에 관심이 있는 한편, 건축적인 유희로써 사용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 이 집에서는 구조가 아닌 의장적인 요소로 삽입했다. 유희라고 해서 어떤 기준점 없이 우리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기겠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요소가 건물에서 기능을 수행하지 않을 때 그것을 어떻게 얼마만큼 허용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는 보수적인 편이지만, 그 자체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기 위해 건축적 유희를 통해서 한 번씩 벗어나 보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공부하면서 크고 작은 도시와 건물 구경을 많이 다녔는데, 오래된 수도원같이 고전적인 구축법으로 지어진 공간에 가면 느낄 수 있는 강렬한 힘에 완전히 매료되어 언젠가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때 바랐던 몇 가지 중, 이 집의 거실에서 벽의 두께 안으로 들어가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구현했다. ‘요즘 시대에 가족을 위한 공간은 어떤 형태일까’라는 질문에 규모나 성질이 다른 공간이 응축되어서 공존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일 것으로 생각했고, 어느 정도 실현된 것 같다. 준공 사진을 촬영하러 갔을 때 가족들이 우리가 상상한 대로 그 공간에서 따로 또 같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니, 건축가로서 믿고 바랐던 바를 확인 받은 기분이었다.



다핵 조직
김나운 사무소 연차가 꽤 되기는 했지만, 그동안 조직 변화가 크진 않았다. 팀장급 직원 한 명이 오래 같이 일을 했고, 인턴이나 아르바이트가 한두 달 정도 오고 간 정도다. 그래서 본인이 일하는 성향이나 추구하는 조직의 규모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소장님들이 조금 부럽기도 하다. 우린 아직 사무소를 운영 방법이나 팀을 꾸리는 과정에서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거나 실험한 적은 없다. 다만 지향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두 소장이 사적인 사이이기도 하므로 그 관계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본인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두 명 이상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함께 일하는 관계가 좀 더 다핵화될 필요가 있다.
강승현 처음에는 막연하게 한 15명 규모의 사무소를 바라기도 했지만,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적절한 규모는 소장 한 명이 팀 하나를 꾸리는 정도라고 본다. 만약 소장 한 명이 3~4개 프로젝트를 맡는다면, 최대 10명 정도가 되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좋은 프로젝트가 여럿 들어왔을 경우에 직원 대여섯 명 정도가 함께 일할 수 있는 상황을 준비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치라고 생각한다. 첫 직원은 내 제자였고 이제 6년 차를 맞이했다. 신입으로 들어와서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준 소중한 동료이다.

진지함 30% 함량의 낀 세대
강승현 ‘앞세대’가 언제인지 누구인지 정의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대상을 좁혀 보면 일단 나의 선생님 세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분들은 한국성이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우리나라 건축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짐이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건축가로서의 품위와 위상, 권위 등을 중시했고, 그게 태도에서도 드러났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런 한편, 건축을 지나치게 비즈니스로만 여긴 경우도 많았다. 일이 차고 넘쳤다던 1980~90년대에 그런 이들이 절대다수였기에 적절한 설계비 요율, 대가 기준을 만들 기회를 놓쳤다고 본다. 결국 건축가가 이 사회에서 받는 낮은 대우, 설계비 덤핑 같은 수십 년 묵은 문제는 사실 지나간 시기의 특별한 상황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각자 필요와 판단에 의한 선택이었겠지만 후배로서는 아쉬움이 크다.
우리는 이곳과 저곳 사이에 낀 세대 같다. 한국성을 고민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지함이 한 30%는 남아 있어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을 고민하고 역사적인 무언가를 작업에 대입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있다. 우리가 기준과 원칙으로 삼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소소하더라도 규모 검토 같은 일도 반드시 비용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관공서 일을 할 때 용역사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 ‘나의 역할은 건축설계 내용 전반의 방향과 목표를 주도적으로 제시하는 것’임을 명확하게 한다. 주무관 중에서도 직접 설계하려고 나서는 분이 있는데 그럴 때 ‘여러분이 우리가 제시하는 것에 대해서 필요한 부분을 전달하면, 문제를 풀고 디자인하는 건 건축가의 역할이다’라는 사실을 초반에 알려드리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담당 공무원도 이해하고, 프로젝트가 순탄하게 가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의 문제들은 결국 전문가로서 건축가의 역할을 사회가 혹은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생겼을 수도 있고, 건축 작업을 대하는 건축가의 태도로 인한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한다.
현재 나보다 후배들, 혹은 30대 초반에 개소한 사람들을 보면 훨씬 편안하고 자유롭게 설계하는 것 같다. 건축의 의미가 조금 더 개인적인 사유나 취향의 차원으로 자리 잡았고, 자기표현이라든가 상상력에 기대는 느낌이다. 자연스러운 것 같고,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좋은 작업이 많다.
김나운 세대론 패러다임으로 건축계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를 중심으로 직접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들 사이에 생성되는 주관적이고 작은 세계를 볼 뿐이다.
강승현 어쩌면 이게 바로 나와 젊은 세대의 차이일 수 있을 것이다. 후배 건축가들은 굳이 역사적인 흐름이나 줄기를 더듬어 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며 바뀔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시대 정신, 그 세대만의 정신이 있는 것 같다. 지금의 60~70대는 20~30대 때부터 한국성을 찾았으니까.
공감 얻기와 수준 높이기
공감대 형성
김나운 학생들에게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설명할 때는 ‘공감을 얻어내는 능력’을 강조한다. 어떤 건물이 지어졌을 때 누군가는 ‘저 건물이 새로 생기니까 동네가 좀 좋아졌네’라고 생각하도록, 그 건물이 존재가 적정 수준 이상의 사회적인 반향이나 긍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건축가는 자기 집을 짓거나 가족의 집을 짓는 등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남의 재산으로 연고가 없는 지역에 설계하는데, 그 자체가 사회적인 행위일 수밖에 없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소통하기 위해 말의 표현도 연습한다. 건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전문성으로부터
강승현 건축의 ‘사회적 역할’은 전문성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겠다. 단독주택이라도, 심지어 상업 공간이라 하더라도 거리에 등장하므로 어떻게든 노출되고 누군가가 경험하게 된다. 이를 고려하는 건축가가 수행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역할은 할 수 있는 최선의, 최고의 공간을 짓는 것이다. 공공 건축물 중에는 분명히 최근 작업임에도 구식을 답습한 경우가 왕왕 있는데 만약 건축가가 좋은 공간과 조형을 구현하려고 충분히 고민했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랐을까 생각하게 된다. 무심하게 짓는 건물은 도면집부터 얄팍하다. 관 공사는 어떤 시공사가 입찰에 들어와서 일을 가져갈지 모르는데 건축가가 도면을 대충 내보내면 그 완성도를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론적으로 건축가가 본업에서 수행하는 크고 작은 공정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게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첫걸음이라 본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설계 시장
김나운 하나의 프로젝트가 시작돼서 완성되기까지 굉장히 길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함에도 요즘에는 건축물이 정말 많이, 빠르게 만들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나는 카페나 공공공간, 오래된 건물을 재생한 공간들의 퀄리티가 매우 높아졌고, 또 특정한 도시만이 아니라 곳곳에 무수히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현상 바탕에는 소셜미디어가 있어서, 새로운 공간이 생겨난 순간을 즉각적으로 포착한 이미지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많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 같다. 이런 이미지들을 통해 필요한 레퍼런스나 디테일, 재료 사용법을 빠르게 알 기회가 많아진 건 좋지만, 직접 가서 경험해 보고 내가 어디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주체적으로 알고 결정하려면 더 부지런하고 치열해야 한다. 내가 온전히 파악하기도 전에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신(scene)이 바뀌고,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고 느낀다.
강승현 소셜미디어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학교 수업에서는 핀터레스트 이미지로 레퍼런스를 삼기도 하고, 건축주에게 상상하는 공간을 이미지로 수집해 보기를 권하기도 한다. 실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특히 개인 주택 같은 개인의 공간을 이야기할 때는 너무 막연할 수도 있고, 건축주 생각과 건축가의 생각에 온도 차이가 크면 차후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건축 시장 변화는 양극화되는 경향이 있어서 한쪽에서는 다양해지는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 다품종 소량 생산에 대한 니즈가 분명해지는 반면, 부동산 상품으로서의 아파트 수요는 여전하다. 아파트 시장은 절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굳건해서 아파트 설계를 하는 건축사사무소의 규모도 양극화 혹은 다양화 되어있다. 내가 실무 할 때만 해도 30~50명 규모 사무소가 있었는데, 요즘은 10명 이하거나 100명이 훌쩍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주거 건물 작업에 일정 수준의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해법을 담아보려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도심형 다가구 주택에서 우리가 제안한 유형이 확대 재생산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을지 실험한다.
안착된 설계 교육 방법론
김나운 둘 다 건축학교에서 설계 수업을 가르치면서 이야기를 서로 자주 나누곤 한다. 우리가 설계 수업을 처음 맡고 나서 깨달은 것은, 대부분의 건축가가 건축을 배우긴 했지만, 건축을 가르치는 방법은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각자 건축가가 자기가 실무 해온 방식으로, 아니면 본인이 설계 교육받았던 내용을 따라 가르친다. 나는 처음 설계를 배울 때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어떻게 건축적으로 풀어가야 할지 몰라서 막연했고 교수님에게 질문하는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가르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막막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을 만나면 비교적 구체적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편이다. 강 소장은 본인이 알고 있는 건축적인 지식이라든지 좋은 레퍼런스를 충분히 알려준다.
강승현 내가 경험한 학부 설계수업은 5년제나 스튜디오 체제도 아니었고 한 반에 15명이라 팀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졸업 설계도 최종 발표 없이 패널만 제출했다. (우리 학부가 특히 그랬다.) 졸업해서 실무한 후 네덜란드에서 대학원 교육을 2년 받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학부 4년과 직장생활 4년을 겪으면서 얻지 못한 자신감이 생겼다. 직접 적용가능한 실제적인 내용을 배웠다는 뜻만은 아니다. 건축 설계를 할 때, 자신이 관찰하고 분석한 도시적 논점에 근거해 주체적인 이론을 만들고, 이에 기반해 공간의 이야기를 풀어가며 배치계획에서 디테일까지 다룬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게 하는 건축 교육은 굉장한 힘이 있고, 잘 마치고 나면 실무에서 일할 준비가 된 건축가로 학교를 벗어날 수 있다. 여러 학교에서 가르치고 게스트 크리틱으로 학기말 발표를 참관해보니 이제는 제법 오래된 5년제 제도 안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인터뷰 심미선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인로코
인로코(IN LOCO)는 “원래 자리에, 제 자리에” 라는 뜻으로 다양한 건축 요소와 가치의 가장 적합한 자리를 찾으려는 바람이 담겨있다. 자기 자리에 놓인 요소가 그 주변과 구축하는 진솔한 관계를 지향하며, 이를 위해 재료 표현과 공간 안팎의 눈높이 장면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강승현은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진아건축과 어반엑스에서 실무했으며, 델프트 공과대학 건축학 석사를 취득했다. 졸업 후 덴하그 소재의 Geurst & Schulze Architecten에서 일하면서 첫 번째 독립 작업실인 2 Walls Architects를 열어 다양한 디자인 공모전에 참여했다. 몽골 울란바타르 소재 후레대학교 건축학과 학과장 및 교수를 역임했고, 한국 건축사(K.I.A)이자 네덜란드 등록 건축사(B.A)입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김나운은 버지니아 공과대학교(Virginia Polytechnic Institute and State University, U.S.) 건축학부를 졸업했다. 워싱턴 D.C 소재 Sorg and Associates에서 실무한 후,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에서 건축석사 학위(M.Arch)를 취득했다. 로테르담의 Mei Architecten en Stedenbouwers에서 일했고, 네덜란드 등록 건축사다. 현재 서울시 공공건축가이고, 2014년 가을부터 단국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설계수업을 가르쳤다.
- 개소 연도: 2014년
- 주로 활동하는 도시: 서울과 경기도 인근
- 현재 인원: 4명
- 프로젝트 수주 비율 현황과 희망:
(현황) 민간신축 60%, 공공신축 10%, 공공재생 및 증개축 20%, 기획 및 연구 10%
(희망) 민간 신축 및 증개축 40%, 공공 신축 및 증개축 40%, 기획 및 연구 20% - 웹사이트: http://www.inloco.kr
- 인스타그램: @studio_in_lo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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