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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

서승모

아이코닉한 스테레오타입의 한국 건축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 건축이 성립된 것은 건축이 학문적 바탕 위에 있기 때문이다. 서양 건축들도 마찬가지다. ‘스위스 박스’라는 특유성이 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건축은 서로 구분되며, 독일은 또 다르다. 모두 구분할 수 있다. 그것을 ‘○○성’이라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독일 건축가들은 다 독일 건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건축가가 일본 건축가처럼 건축을 하진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 건축가처럼 하기도 하고, 미국 건축가처럼 하기도 한다. ‘한국 건축가처럼 건축을 한다’는 개념은 없다. 그것이 바로 한국성에 대한 공감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004년 일본에서 한국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이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였다. 개량 한복을 입긴 싫었고, 딱히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다. 일본 건축가들은 일본 패션 디자이너의 옷을 많이 입는다. 거기에 어떤 일본의 것이 녹아 있고, 누가 봐도 일본 옷이다.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쌓였을 때 뭔가가 나온다. 건축은 그런 발현이 가장 더디다. 한지로 도배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인테리어 공간을 꾸미는 것은 쉽게 할 수 있지만, 건축의 꼴이 한국적인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두고 작업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분명 달라진다.

개인적으로 한국성에 대한 관심은 있다. 몇 년 전 『공간』에 「현대적이면서 즉물적인 답변들」에도 썼지만, 관심은 있으나 자신이 없으니 땅이라는 키워드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비교할만한 서양 건축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 글에서 ‘땅’, ‘적층’, ‘골목’, ‘이름 없는 것들’ 등 몇 가지 키워드로 내 생각을 풀어 봤다. 건축가로서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의 현상을 잘 읽어내고 작업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작은 한국성이라고 할 수 있다. 미학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기는 사실 어렵다. 노력과 시도는 계속해왔다. 메인 테마로 삼지 못할 뿐이다.

한국성을 끌고 나아갈 단초는 결국 감성일 것이다. 감성적으로 이것이 한국적이냐, 한국적인 정서가 느껴지느냐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다. 논리적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마당을 만들었다고 한국적인가? 나도 그랬고 다들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이야기 속의 말일 뿐이다. 마당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지겹지만, 한국 건축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또 언급하게 된다. 다만 요즘의 중정형 건물에서 그 마당의 질이 옛날과 다른 느낌은 있다. 한국적인 감성을 말로 설명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언젠가 누군가가 할 것이다. 나도 그것을 찾고 싶다.

요즘 양양에 호텔을 설계하고 있다. 보통 호텔 복도는 실내 공간이고, 복도에 방이 붙어 있다. 나는 복도와 방을 떨어트리고 그사이를 투명한 상자로 연결했다. 연결 상자 바깥은 모두 외부 공간이다. 그렇게 해서 방 한 쪽이 외기와 접하고 그 앞에 놓인 작은 마당을 지나 객실로 들어간다. 그런 설계가 방의 개별성을 좀더 도드라지게 만들고 개방적인 복도 공간에서 계절 변화를 좀더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연결된 복도와 방을 일곱 개 층으로 쌓아 올렸다. 아마 본 적 없는 호텔 형식일 것이다. 

예를 들어, 처음부터 한국성을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런 디자인이 한국적인 감성으로 읽히려면, 건축가가 어딘가 이상한(미묘한) 한국형 틀을 만들고, 그것을 감싸는 톤과 매너도 같은 방향으로 잘 정돈하면 K-○○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지금 이 프로젝트는 그럴만한 여건은 못 된다. 하지만 적어도 이 틀은 나만의 것이고, 다음에 이를 좀더 복합적으로 풀어내면 사무소효자동만의 스타일이 될 수 있다. 주택에서는 채 분리를 많이 한다. 단일한 형태에서 점점 채를 분리하고 이를 다시 연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작은 영역의 외부 공간들을 평면 곳곳에 산재시키기도 한다. 최근에는 김포 주택이 그랬다.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언젠가 뭔가가 될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드는 또 다른 생각 혹은 불만은, 한국은 크고 새로운 이야기로 빠르게 흘러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때 작고 촘촘히 이어지는 부분이 약해서 이전의 큰 이야기가 갑자기 무너지는 모습을 많이 본다. 문화의 영역에서는 무너질 것조차도 없다. 쌓이질 않으니까. 건축문화, 건축문화, 말은 많이 하지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사상누각 같다. 차이라면 최신 유행이 ‘자하 하디드’에서 ‘스위스’로 바뀐 것뿐이다. 건축 행정, 민원 내용, 시공 시스템, 설계사무소의 구조, 설계비, 건축 매체들은 그냥 그대로다. 조목조목 뜯어서 보면 20년 전이 오히려 더 나았던 것 같다. 전반적인 디자인 수준은 높아졌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렇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20년 전 시점에서 다시 그 전 20년을 돌아볼 필요도 있는데, 그렇게 보면 김수근 시절의 건축들이 훨씬 좋다. 건축가 눈에는 그 시절에 제대로 공들여 만든 작업이 더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인터뷰이 서승모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김상호

한국성?

분량2,452자 / 5분

발행일2023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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