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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예박물관, 역사 위에 얹은 또 하나의 켜

천장환, 고미경


서울공예박물관은 한국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으로 종로구 안국동에 위치한 (구)풍문여고 건물 5개 동을 리모델링하여 마련됐다. 2016년 서울시 설계공모를 통해 천장환, 송하엽, 행림종합건축사사무소의 ‘크래프트 그라운드(Craft Ground)’가 당선작으로 선정되어 설계가 진행되었으며, 2021년 완공 후 개관했다. 공예품뿐만 아니라, 공예를 둘러싼 지식, 기록, 사람, 환경 등을 연구하고 공유함으로써 공예가 지닌 기술적⋅실용적⋅예술적⋅문화적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설계: 행림종합건축사사무소, 송하엽 중앙대학교 교수, 천장환 경희대학교 교수
  • 운영: 고미경 서울공예박물관 학예연구사

관심과 우려 속 시작된 공모

고미경 서울공예박물관 프로젝트는 2015년에 시작되었다. 안국동은 공예와 밀접한 곳으로, 조선시대 최고의 공예품이 사용처인 경복궁과 육조거리와 이어지고, 그 공예품을 제작한 장인들, 즉 경공장들의 주요 활동한 지역이다. 서울시가 이곳을 매입하려고 준비할 때만 해도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초기에는 인사동 쌈지길과 같은 공예품 판매 공간을 만들자는 발의도 있었다. 2016년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문화정책과에 공예문화팀이 신설됐고, 뒤이어 박물관 건립 추진단이 조직되었다. 건립추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임명되면서 공간 활용에 대한 여러 공청회를 거쳐 공예박물관을 조성하기로 결정됐다. 토지 매입 완료 후 2016년 설계공모가 진행되었고, 그해 12월 당선작을 선정했다. 

하나의 박물관이 세워지기까지 건축뿐 아니라 콘텐츠, 행정, 법률 등 복잡하게 얽힌 여러 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리고 “1,600억 원 펑펑”과 같은 제목의 기사처럼 당시의 많은 우려와 논란들로 힘겨운 시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는 서울시 문화본부가 추진했던 가장 큰 사업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높은 관심 속에 한 단계씩 진척되었다. 그러던 중 당선작 선정 직후인 2017년 11월 포항 지진이 발생하면서, 건축물의 안전에 대한 경각심과 인식이 커지면서, 앞서 진행했던 건물 구조에 대해 전면적인 보강조사를 실시하였다. 막상 실시설계를 위해 건물을 해체하여 검사해보니 학교가 운영되고 있어 일부 소규모 샘플로 진단을 했던 초기 결과와 달랐다. 설계공모 단계에서 구조보강이 큰 이슈였다. 

과거와 현재의 풍경을 잇는 방법

천장환 설계공모에 참가하기로 하고 인사동과 북촌 일대, 그리고 대상지를 돌아보았는데, 골목들로 연결된 모습이 좋았다. 풍문여자고등학교 건물이 박물관으로 바뀌면 외부와 최대한 연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풍문여고와 덕성여고 사이의 감고당길을 따라 서 있는 담장은 안동별궁에서 경복궁으로 가던 후문의 자취로 추측됐다. 무엇보다 400년 넘은 은행나무의 존재가 인상 깊었다. ‘본관 앞에 월대를 만들고 이를 통해 서쪽의 감고당길과 동쪽의 윤보선 길을 연결하자’,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후정을 만들고 담장을 허물어 외부와 연결하자’, ‘아트플랫폼을 새로운 광장이자 길로 만들어 다양한 행위가 일어나게 하자’, ‘풍문여고 졸업생이 이 장소를 다시 찾았을 때 너무 낯설지 않도록 하자’ 같은 것들이 공모 당시 우리가 함께 했던 생각들이었다. 공모 당시 조감도 표현 방식으로 동궐도를 많이 참고했다.  

전체 땅의 면적은 1만 2천㎡, 프로그램 연면적은 1만㎡로, 최대 주차대수가 106대였지만, 100% 면제를 받아 장애인 주차대수 기준인 4대만 충족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주변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걸어오는 것이 좋은 장소라고 판단했다. 

아트플랫폼의 경우 현재 완공된 것보다 훨씬 개방적인 모습을 상상했다. 크래프트 헛(Craft Hut)이라고 불렀던 아트리움(안내동)은 이 공모에서 유일한 신축 건물이었기 때문에 고민도 많이하고 힘을 싣고 싶었다. 높은 층고를 활용한 다양한 전시와 강연, 공연이 열리는 모습, 1층 부분이 열리면서 생긴 반외부공간에서 플리마켓이 열리는 모습 등을 상상했다. 

현재 감고당길 쪽에서의 랜드마크가 되는 어린이 박물관은 본래 풍문여고 과학관이었다. 풍문여고의 건물들 중 가장 늦게 지어진 건물로 둥근 형태 때문에 실제 규모보다 크게 보였는데, 감고당길에서 특히 못생긴 모습이 눈에 잘 띄었다. (웃음) 그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공모 당시 재료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루버를 통해 동그란 형태를 유지하되 부담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예박물관 측에서는 깔끔하고 투명한 커튼월 방식을 제안했지만, 우리는 커튼월이 실제로는 더 폐쇄적이라고 판단했다.

설계공모 당시 지드앤파트너스의 장재삼 소장과 조경에 대한 많은 고민을 나누면서 안을 만들었다. 과학관과 안국빌딩이 없는 것으로 보아 1965년 이전으로 추측되는 풍문여고 모습을 보면, 운동장에 정화당, 경연당, 현광루를 볼 수 있다. 문화재 발굴 조사 후에는 이들의 위치가 확연하게 보인다. 안동별궁의 본래 배치도를 보면, 후정에는 연지 연못이, 전면부에는 한옥들이 있었다. 이렇게 후원과 내원으로 나뉘어 있었던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는 이 땅을 잠시 빌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안동별궁이나 풍문여고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남겨진 역사 위에 또하나의 켜를 살포시 얹는다는 생각이었다. 서울공예박물관 또한 먼 훗날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위를 연결하기 위한 장치 이외에 400년 동안 자리를 지킨 은행나무와 그 땅을 가능한 있는 그대로 놔두자고 생각했다. 

추후 박물관이 더 좋은 곳으로 옮기게 된다면, 아트플랫폼의 월대 역시 덮었던 박석을 걷어내어 원상복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경의 관점에서 월대는 강조되고 후원은 은밀한 느낌이 들도록 하여 기존의 지형처럼 앞뒤가 대비되는 분위기를 살리려고 했다. 당선작에서는 본관의 가운데가 뚫려 있어 은행나무가 더 잘 보이고 앞뒤 연결이 더 자연스러웠다. 스케일은 다르지만 로마 스페인 계단에 앉아 도시를 바라보듯, 이 계단에 앉아 송현동 부지를 바라볼 수 있고, 반대로 멀리서 이곳의 은행나무와 루버가 보이길 바랐다. 일단 이곳을 열어두어야 추후 송현동 부지가 어떤 방식으로 바뀌더라도 풍경이 연결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예적인 레노베이션 

천장환 풍문여고 과학관은 건축가 김정수가 1965년 PC 공법으로 지은 건물이다. 개인적으로 서울공예박물관에서 가장 특색있고 멋진 건물이라고 생각한다. 직물공예관(전시3동)은 본래 3개 층 건물이었다. 추후 2개 층을 추가로 증축했는데 반복된 모듈 디자인 때문에 증축한 티가 나지 않아 처음에는 몰랐다. 지금 보아도 현재 비율이 더 맞아 보이기도 한다. 창호는 거의 사용할 수 없어 전체를 교체했다. PC 패널도 깨져서 쓰지 못하는 부분은 걷어내고 살릴 수 있는 부분만 최대한 살렸다. 본래 모습을 잘 드러내기만 했는데도 상당히 멋지다. 

입면에서 튀어나온 부분은 금속으로 만들어졌지만 기존 PC 방식이 가진 형태와 동일한 방식으로 구축해서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했다. PC 패널과 어울리는 새 창호를 제작하는 데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썼다. 예산 문제로 일반 관급 자재 창호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공예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일반적인 치수 창호 프레임에 가로 부재는 그대로 사용하고, 세로 부재의 경우는 위에 알루미늄을 접어 덧붙였다. 양옆으로는 등박스를 만들고, 가운데 멀리언 부분이 튀어나오게 하여 입체적인 느낌을 냈다.  

전체적으로 박물관의 층고가 상당히 낮은데, 그중에서도 직물관(전시3동)의 층고는 더욱 낮다. 특히 1층은 2m가 겨우 넘는 정도다. 이 때문에 공조 방식을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을까 상당히 많이 고민했지만, 예산과 일정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방식을 따랐다.

내부 공간의 경우는 이미 좋은 전시로 가득 찰 예정이었기 때문에 디자인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인포데스크나 벤치도 공예 작가들의 작품이다. 그래서 공용공간의 계단실이나 난간 디테일에 신경 썼다. 기존의 풍문여고 난간이 분홍색인데, 높이가 800mm라 새로 만들어야 했다. 기존 난간을 활용해 새로운 난간을 덧붙이면 세로 부재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세로 부재가 생각보다 많아졌다. 계단참에 식수대가 있는 것이 특이해 이를 활용해 전시대로 만드는 것을 제안했지만, 구현되지 못했다. 이처럼 최종 모습에 여러 아쉬운 면들이 있다. 그래도 구석구석 디자인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서 했다. 이를테면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계단의 논슬립 같은 경우도 공예적인 느낌을 살려 새로 디자인해 제작했다.

본관(전시1동) 입면은 박물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할 만큼 큰 요소였기 때문에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다. 설계공모 시에는 기존 건물을 그대로 살리고 좌우측 날개 부분을 털어내고 투명한 유리를 사용하려고 했다.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종묘 정전과 월대의 관계를 상상하면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기존 건물을 그대로 쓰고 가운데 뚫려 있는 외부 공간을 통해 뒤쪽의 은행나무가 훤히 보이도록 했는데, 결국은 막혔다. 기존 입면이 가진 질서를 살리면서 조금 더 깔끔하게 정리하는 정도로 실현됐다. 석재는 이집트 룩소르 지방 석재 색깔이 나는 ‘룩소르 베이지 대리석’을 사용했다. 현장 소장과 하남 공장에 가서 여러 샘플을 보고 골랐는데, 지금 와서 보니 선택을 잘했다 싶다. 시공성을 따졌을 때 600×1,600mm 이상을 넘으면 안 되었지만, 기존 모듈에 맞추기 위해 한 판의 크기를 최대로 만들었다. 줄눈을 최소화하여 본래 재료의 질감이 잘 드러나도록 했다. 

구조 역시 많이 고민했다. 공모 이후 막상 내부를 뜯어보니 도저히 그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건물은 조적조였고 슬래브만 콘크리트였다. 심지어 1층 나무 바닥 아래에는 슬래브가 없었다. 특히 당선안의 3층 전시장 모습을 보면 목재 트러스가 남아있지만 이 또한 너무 낡아서 그대로 쓸 수 없었다. 게다가 3층은 목조로 증축한 지라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결국 철거 후 철골로 새 구조를 만들었다. 

박물관에 덕트, 배관 파이프, 스프링클러가 이렇게 많이 필요한 줄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MEP를 고려한 단면 스터디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시공을 한 다음에 현장을 방문하니 덕트가 천장을 가로막고 있어서 박공지붕과 천창에서 내려오는 빛을 거의 볼 수 없었다. 덕트를 1.5m가량 최대한 좌우로 벌려 그나마 현재 모습이 됐다.  

본관 후면부는 원래 있던 화장실을 철거하면서 나온 벽돌을 재사용했다. 후면부의 벽돌의 개수를 일일이 세어 그린 입면을 현장에 넘겨주었다. 우측면은 디자인한 대로 잘 나왔지만, 좌측면은 여러 차례 요구했음에도 결국 실현되지 못해 아쉬웠다. 건물 우측 하단의 준공 표지판에 참여자 이름이 있다. 초록색 바탕에 금속 글씨로 쓰이는 전형적인 표지판과는 다르게 만들었다. 난간과 금속 디테일에 많은 신경을 썼고 각 건물의 상황에 따라 난간의 형태와 방식을 다르게 했다.  

어린이박물관에서는 다양한 방식의 재료를 실험해보았으나 원래대로 테라코타를 썼다. 색상도 많은 고민 끝에 세 가지 색상을 선택했다. 총 아홉 가지의 다른 크기와 색을 가진 테라코타를 옮겨가며 색 표현 방법을 실험했다. 주문 후 제작에 2개월 이상 걸렸기 때문에 목업을 통해 제대로 검증해 볼 시간이 부족했다. 살짝 휘어진 원은 직경 30m, 둘레는 200m 정도였기에 일자로 이어 붙이면 크게 티가 나지 않으면서도 시공성이 좋아지고 가격이 저렴해진다고 시공사에서 주장했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경우 각진 모습 때문에 휘어진 얼개의 느낌이 살지 않았을 것이다. 원형 테라코타가 사용된 현재 모습에서 공예적인 요소가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박물관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다. 자세히 보면 창문보다 조명이 많다. 대부분 전벽돌로 막혀 외부에서 안쪽이 너무 까맣게 보일 것 같았다. 조명을 창 크기로 크게 만들어 배치했는데, 어린이박물관이 감고당길을 비추는 청사초롱의 역할을 하길 바랐다. 저녁쯤 마당에서 바라보면 어린이박물관 창문 옆 조명이 켜지면서 아름답게 보인다.

현대공예관(전시2동)은 전체 배치에서 후면에 위치해 존재감이 없지만, 은행나무와 어린이박물관 뒤에서 차분한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했다. 이를 위해 골조를 유지하되 전벽돌로 마감했다. 세로창의 위치를 고민했지만 엇갈리게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현대공예관과 본관 후면을 전벽돌로 마감한 이유 중 하나가 건물 어디서나 창을 통해 은행나무를 바라볼 때, 배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관리동과 수장 공간 뒤쪽의 아기자기한 경사로 역시 상당히 분위기가 좋다. 기존 담장은 철거할 수 있었지만 아랫부분이 안동별궁의 흔적이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뤘다. 하부를 건드리지 않고 유리 난간과 철제 계단으로 연결하여 시원한 개방감을 주었다.

안내동 / 사진: 신경섭
본관(전시1동) / 사진: 신경섭
현대공예관(전시2동) / 사진: 신경섭
직물공예관(전시3동) / 사진: 신경섭
어린이박물관 앞 광장과 은행나무 / 사진: 신경섭
서울공예박물관 전경 / 사진: 신경섭

변경된 건축과 지켜낸 정신 

고미경 설계공모 발표 이후 크게 두 차례의 설계 변경이 있었다. 가장 큰 부분은 담장과 연결된 조경이다. 건물 준공 시점에는 보안을 비롯한 여러 문제 때문에 부지 전체를 두르고 있는 담장이 기존 상태로 유지되었다. 안동별궁 담장 자체가 조선시대 상태 그대로 북촌의 중요한 경관의 일부였기 때문에 해체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다시 한번 검토하였다. 그런데 담장 해체를 위한 문화재조사를 거쳐 2차 문화재 심의를 거치면서 담장 유구를 보존 존치하면서 활용하는 방향으로 담장의 경관을 수정하였다. 그와 함께 조경 계획도 전체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한편 배리어프리 부분에서는 전체적인 경사로 인한 단차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조경에 반영하여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조경으로 변화하였다. 결과적으로 박물관의 개방감이 커져 더 열린 공간이 되었다.  

설계 및 건축 과정에서 공간의 개방성 확장 및 차량진입로 확보를 위해 지구단위계획을 변경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현재 감고당길 쪽으로 시원하게 트여 진입이 수월해졌고, 이웃한 송현동 부지와 연결되는 효과가 생겼다. 또한 안국빌딩과 접한 담장은 수목을 조경하면서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지금 사실상 삼면이 트인 열린 마당이 조성되었다. 또한 안동별궁 담장이 개방되면서 박물관 마당이 광장의 기능을 지니게 되었다. 감고당길 담장 유구가 있는 데크는 모두가 편하게 광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경계이자 하나의 객석으로도 사용되었으면 하였다. 실제로 버스킹을 하거나 공연하는 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는데,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천장환 설계공모 때 제출했던 조감도를 보면 완공된 지금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모든 공공 건축이 그렇듯, 설계와 시공이 진행되면서, 또 예산과 현실적 제약들 때문에 여러 가지가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우리에겐 기적 같은 일이다. 당선안과 완공된 건물을 비교하면 분명 달라진 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건축에서 중요한 것, 그리고 남는 것은 물리적인 실체보다 어떤 정신이나 생각인 듯하다. 

실현되지 않고 사라진 디자인을 이번 기회를 빌려 소개하려 한다. 이 자리가 아니면 볼 수 없는 내용이다. 직물관 로비는 두 개 층을 오픈하여 개방감을 줄 계획이었다. 내외부가 하나로 통합되어 보이도록 외부 바닥재가 안으로 연결되게 하여 훨씬 개방감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재는 창문으로 막혔다. 본관 가운데의 로비는 방풍실 역할을 하면서 앞마당과 은행나무가 있는 뒷마당을 이어주는 전이공간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이 또한 실현되지 못했다. 2층과 바로 연결되는 아트리움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야 했지만, 하부에서 석등 유물이 발견되면서 설치할 수 없게 되었다. 설계 변경을 하면서 2층 에스컬레이터 위치에 기계실이 놓였다. 아트리움 우측 바닥 면적은 반은 약 50cm 정도 들어올려야 했다. 공예 작품이 돋보여야 하는 공간의 바닥을 평평하게 시공해야 했는데, 지금 보니 맞는 생각이다. 어린이박물관 역시 내외부가 연결된 투명한 공간을 원했다. 하지만 공사를 진행하던 도중 막바지에 강당이 필요하게 되어 바뀌었다. 현재 아트리움에 사용된 유리가 로이삼중유리인데, 샘플로 봤을 때는 투명했지만, 막상 설치하고 나니 외부에서 볼 때 초록색으로 보였다. 그 바람에 욕을 많이 먹었다. 원래 출입구도 안내동과 직물관 양쪽에 모두 계획했지만, 현재는 사잇길로 출입구가 옮겨졌다. 

설계공모 당선안의 배치도에서는 월대의 존재감이 훨씬 강하고,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한 후정을 볼 수 있다. 담장도 부분적으로 열어 외부에서 은행나무까지 직접 연결했다. 하지만 최종 디자인에서는 월대가 축소되고 후정이 유기적으로 바뀌면서 담장도 앞쪽만 열렸다. 시공 도중 후정에서 정화조가 발견되어 대지 레벨을 불가피하게 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지를 경사면으로 처리하게 되면서 장애인의 접근성이 훨씬 좋아지기도 했다. 

시공 감리는 무영CM건축사사무소에서 맡았다. 초반에는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매주 찾아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6개월 정도 후에 사후 설계 관리 계약을 하고 나서 정식으로 현장 디자인 감리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시공 도중 큰 도움을 준 최정익 단장과 황철희 현장 소장 덕에 지금의 모습이 구현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도 시공 당시 함께했던 관계자분들을 두세 달에 한 번씩 만나 박물관 이야기를 한다. 무엇보다 서울공예박물관의 탄생부터 모든 고민을 함께한 김홍남 관장님, 이하 여기 계신 고미경 주무관님, 박물관 관계자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서울공예박물관 설계공모 당선작 조감도 / 자료 제공: 행림
설계 변경 후 전체 조감도 / 자료 제공: 행림

공간을 완성하는 전시 

고미경 서울공예박물관의 다섯 개 건물 중 안내동을 제외하고 모두 재생 건축물이다. 각 건물은 기존의 모습에 존속되어 보이지만 내부는 많이 달라졌다. 풍문여고 시절 교문으로 가로막혀 있던 공간이 지금은 시민들의 광장이 되었다. 요즘은 이곳을 가로질러 출근하는 사람들, 점심시간에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 저녁에는 산책과 조깅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오늘(포럼 당일 2021.11.4.)로 사전 열람을 시작한 지 81일째인데, 그새 박물관은 ‘핫플’이 되었다. 처음에는 의아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개관을 준비하는 동안 그날의 일들을 소화하느라, 그리고 공간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골몰하느라, 정작 개관 이후에 이처럼 환영받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현재까지 5만여 명이 방문했고, 예약률은 거의 100%에 육박한다.

박물관의 주인은 관람객이고, 공간의 완성은 궁극적으로 공간 운영의 만족도에 달려있다. 운영자의 이야기는 결국 내부자의 시선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운영자 측에서의 고민은 건축물의 완공 이후에도 계속된다. 공간의 쓰임을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전시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그에 따르는 공간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들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공간을 구성하고 배치하면서 공간의 생김새와 전시 콘텐츠가 이질감 없이 하나로 통합시키고자 했다. 전시 공간으로 구현함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낮은 층고와 폭이 좁은 복도형 전시실이다. 그만큼 공간 활용과 조명 등의 연출이 어렵다. 당초 설계 단계에서는 전시2동을 현대전시동으로 사용하고자 1, 2층의 중앙을 터서 대형 설치물을 거치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그런데 전시실을 조성하면서 박물관 전체 조닝을 고려하여 전시1동 3층을 기획전시실로 사용하게 되었다.  

가장 오래된 건물인 전시1동은 본관 역할을 한다. 1층에는 로비와 도서실이 위치하고, 2층에서는 상설전시가 열리는데 공예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다. 3층은 기획전시실로 계획되어 다양한 기획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전시2동의 3층은 개방형 아카이브실로 운영 중이다. 전시2동의 1층에서는 개관특별기획전시의 하나로 ‘관특 공예’를 테마로 기획전시를 개최하였다. 전시2동은 외부의 은행나무와 연결되면서 휴게 공간을 제공한다. 2층에는 공예역사상설전시 중 고대에서 고려 시기 전시가 운영되고 있다. 

전시3동은 직물공예관과 사무실로 사용중이다. 1층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가변형으로 교육프로그램이 운영되고, 2층과 3층은 서울공예박물관의 핵심 컬렉션인 허동화예박물관 기증 유물로 구성한 직물공예 상설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다. 4층은 직물공예보존센터가 있는데, 직물공예 전용 수장고와 보존관리실을 개방형으로 조성하였다. 이는 관리동에 위치한 본 수장고와의 동선이 멀기 때문에 수장고 자체를 개방형으로 조성하여 수장과 전시의 기능을 겸하게 되었다. 5층은 사무실이다.

전시1동 내부 전경 / 사진: 신경섭
전시3동 내부 전경 / 사진: 신경섭

모두를 향해 나아가는 공간

고미경 박물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교육동 옥상 전망대에 꼭 올라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송현동은 이건희 미술관 건립 예정지이기도 하다. 이 컬렉션 중 대표작이 <인왕제색도>인데, 우리 박물관 전망대에서 인왕제색을 직접 관람할 수 있다. (웃음) 

이 장소의 역사를 기억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야외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현재는 이축된 안동별궁의 옛 전각을 공예마당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3D로 스캔하여 AR로 구현하였다. 공예마당(옛 풍문여고 운동장)에 있었던 세 개의 전각 중 경연당과 현광루 건축물을 가상체험할 수 있다. (정화당은 민간건물로 스캔이 불가했다.) 

한편, 풍문여고 건물은 근대건축으로서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했기 때문에 건축부재를 업사이클링 하는 방안도 검토하였다. 건물 철거 전에 건축 재료를 수집하고, 일부 바닥재와 벽돌은 재활용하였다. 전시2동의 교실 바닥재는 어린이박물관 철물공방의 벽면 게시판으로 활용하였는데, 풍문여고 졸업생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기를 바란다. 

서울공예박물관은 외연의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설계 과정에서 안동별궁 옛터의 일부인 작은 한옥을 매입해 별채로 사용 중이다. 현재 지하는 직원 휴게소로, 2층은 교육실로 사용하고 있는데 앞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준공 이후에 안동별궁 별채 건물을 추가로 확보하였다. 이곳은 근대문화재로 등록 후에 보수를 거쳐 박물관에서 활용할 예정이다. 

‘모두의 공예, 모두의 박물관’이라는 슬로건으로 2021년 11월 29일 서울공예박물관이 정식으로 개관될 예정이다. 앞으로 서울공예박물관에 더 많은 분들이 방문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진정 ‘모두의 박물관’이 되기를 바란다. ‘집은 큰 공예다’라는 말처럼, 이 공간에 담길 공예를 기대해 주길 바란다.

원고화 및 편집 박세미

서울공예박물관, 역사 위에 얹은 또 하나의 켜

분량11,000자 / 22분 / 도판 10장

발행일2023년 2월 15일

유형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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