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안녕을!
박세미
분량2,038자 / 4분
발행일2023년 2월 15일
유형서문
건축은 대개 공공을 향해 서 있지만, 모든 건축물이 다 공공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건물이 도시의 시각적 풍경 변화에는 기여하지만, 시민의 일상 변화와는 동떨어져 있다. 아쉽게도 도시와 건축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오늘날 자본의 논리에 잠식되지 않은 영역을 찾기란 힘들겠지만, 자본주의 도시 문명에서 공간 경험은 경제 논리 그 자체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불평등, 혹은 소외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최소한의 방어선이 공공 건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이 기획되고 생산되고 운영되는 전 과정에 지속적으로 안부를 묻고 들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2021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당선작들, 안녕하십니까>는 “공공건축 설계공모 당선작의 디자인, 실현 과정, 운영 현황을 모니터링함으로써 건축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시민사회에 건강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돕고자” 마련되었다.
2016년 서울시가 공공 건축물 설계 발주 제도를 개선하고 가격 경쟁에서 디자인 경쟁으로 방식을 전환한 후 실력 있고 믿음직한 건축가들에 의해 크고 작은 공공 건축물이 도시 곳곳에 안착했다. 매체에 종사하고 있다 보니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를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 과정을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답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푸념처럼 들렸고, 다음엔 울분처럼 들렸고, 그다음엔 초월의 경지에 이른 수도자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프로젝트마다 조금씩은 차이가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말하는 공공 건축 프로젝트의 어려움과 한계에 대한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이번 <당선작들, 안녕하십니까> 2021에서 다루는 프로젝트(서울서진학교, 양천공원책쉼터, 서울공예박물관, 종암박스파크, 한남뜨락) 역시 공모 배경에서부터 실현 과정, 운영 과정에서 겪는 난제들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목록을 이제 자동으로 읊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이 청원이 도달해야 할 정확한 수신처를 찾지 못했으므로, 이곳에 다시 한번 적어둔다.
- 정보가 부족하거나 까다로운 공모 지침
- 짧은 설계 기간
- 합리적이지 않은 예산
- (다양한 이해관계에 의한) 수차례의 설계 변경
- 관급 자재 사용으로 인한 품질 관리의 어려움
- 분리발주로 인한 통합적 시공 관리의 어려움
- 지역 이기주의로 인한 민원
이 외에도 많겠지만, 이쯤 되니 새삼 의문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가가 공공 프로젝트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양천공원책쉼터를 설계한 김정임(서로아키텍츠 대표)에게 “공공 프로젝트의 경우 여러 측면에서 어려움과 한계가 따르고, 특히 소규모 공공 프로젝트는 사무소의 운영 측면에서 리스크 감수까지 고려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 건축에 계속 도전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하고 물으니, “건축가에게 공공 프로젝트에 대한 의미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접근이 가능한 건축이라는 의미와 보람이 가장 크죠. 저의 경우는 공공 건축을 통해 나의 전문성이 사회에 기여하고 불특정 다수와 소통할 수 있다는 보람을 가장 크게 느끼게 됩니다.”라고 답했다.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다시 묻고 다시 답을 들으니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건축가들이 사명과 투쟁으로 만든 공공 공간에서 우리가 공동의 감각과 개인의 기억을 구성하면서 그 공간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러보면 그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 도서관, 박물관, 학교, 교실, 소방서, 동주민센터, 고가하부 공간 등이 도시 곳곳에서 새롭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우리는 어떤 존재와 관계해나가고 그 관계를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할 때, ‘지속적’이고 ‘진심’으로 안부를 묻곤 한다. ‘안녕’이라는 인사는 쉽지만, 힘이 있다. 공공 건축을 건립 추진하고 발주하는 기관이든, 물리적 실체로 구현하는 건축가든, 이를 향유하는 시민이든, 이를 모니터링 하는 매체든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이번 포럼을 원고화하며 속속들이 알게 된 서울서진학교, 양천공원책쉼터, 서울공예박물관, 종암박스파크, 한남뜨락의 안녕을 기원하며.
박세미
시인이며, 건축전문기자다.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 『내가 나일 확률』이 있다. 「SPACE(공간)」 선임기자로 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안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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