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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문화 진단

이정훈

분열된 사회 정체성

공공건축가 시스템이 만들어진 뒤 많은 건축가가 공공건축 설계에 참여하고 좋은 건물을 만들어갈 기회가 마련된 것은 분명하다. 특히 지방에 이 제도가 도입되며 공공건축물을 짓는 과정이 많이 개선됐다. 그러나 여전히 공공건축의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건축 자체의 퀄리티는 하향평준화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또 건축가가 전문가로서 사회에 이바지한다는 마음으로 이런 일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작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희생을 강요당하는 면도 있다.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건축 산업 자체가 건설 용역 같은 게 아니라 창의성을 기반으로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분야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건축가라는 집단의 정체성이 분열되어 있다. 작가주의적인 건축가로 인정받는 사람이 있는 한편, 다른 편엔 허가방 집단이 있고, 또 다른 쪽에는 교수 집단이 있다. 어느 집단에서도 사회에 공헌하는 일을 한다는 정체성은 찾아보기 어렵고, 각자가 속한 집단의 차이에서 오는 충돌만 있다. 소위 허가방만 접해본 사람에게 스튜디오 건축가가 제시하는 설계비는 터무니없이 높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결국 실력 있는 건축가도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공공건축을 포기하면 다시 과거로 퇴보한다. 공공기관에서 그냥 입찰을 내고, 최저가를 제시한 동네 인테리어 업체가 일을 맡는 거다. 이렇게 하한선이 계속 내려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러니 지금의 과도기적인 상황을 버텨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우리 중에 누군가가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어 건축의 창의성의 가치를 일깨운다면, 그제야 사회 인식이 조금씩 바뀔지도 모른다. 외국 건축가들이 좋은 조건의 설계비를 받고 일하고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노동의 가치 이상의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종이 도면 매수로 환산되는 것과는 다른 가치를 깨닫고 인정하는 때가 올 것이라 본다. 건축가의 창의성이 자본으로 환산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축 분야의 생존과 성장을 좌우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경색된 방법과 교류

건축 문화 영역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깊고 넓게 저변을 확대하는 활동을 충실하게 이어가는 것이 효과적일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요즘 어린이 건축학교들은 매우 의미 있고, 비엔날레와 여러 전시, 건축상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 활동들이 단기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대중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것은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이 시대와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는 건축계 인사들끼리 파티 열고 모이는 게 아니라, 스마트한 방식으로 접근해 사람들이 여러 건축 문화 행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걸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들 또한 시대를 이해하는데 충실해야 할 것 같고, 그러면서도 높은 이상을 버리면 안 된다. 사람 의식이라는 것은 한 번에 바꿀 수 없고, 한 번에 모든 것을 끌어내기도 쉽지 않다. 일정 목표를 설정하고 수행해 한 단계씩 나아간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획, 출판, 비평 분야가 활성화되어 하나의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건축의 흐름에 대한 이해를 기본으로 비전을 가지고 건축 문화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기획자로 나서고, 콘텐츠를 기획하고 발굴하고 아카이빙하고, 시민에게 되돌려 주고, 도시와 건축의 방향성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일반 대중도 건축을 문화로 즐기고 배우며 자기가 쓰는 공간이 어땠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고, 해외에 나가서도 좋은 건축가의 건물을 나름대로 독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로서 건축이라는 상품을 살 기회가 왔을 때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세금으로 지어진 동주민센터, 가로등 하나, 수챗구멍 하나, 횡단보도 표식 하나같은 공공공간과 도시 환경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면 사용자가 건축가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고 건축가들은 신선한 도전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커다란 시스템이 작동해야만 건축 문화가 전반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인터뷰이 이정훈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건축 문화 진단

분량2,022자 / 4분

발행일2022년 7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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