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v29-cover/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데뷔, 전환, 최신

이정훈

스킨에서 볼륨으로

처음 조호를 시작했을 때, 경험 없는 신인으로서 모든 걸 한 번에 다 가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볼륨이 아닌 스킨을 선택했다. 일종의 전략이었다. 예산이 너무 빠듯해 구조는 손댈 수 없을 정도로 극한 상황에서 일을 시작했고, 그런 조건 속에서 내가 최소한의 선택권을 확보한 것이 스킨이다. 용접하는 방법, 벽돌 쌓는 방법, 금속 다루는 방법, 그것들의 단가, 생산 시스템, 국내기술의 레벨 등을 많이 테스트해볼 수 있었고, 초창기 조호의 방식으로 특화할 수 있었다. 스킨에 집중함으로써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작업도 맡을 수 있었고, 그런 규모의 프로젝트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경험할 수 있었다.

건물의 스케일에 따라 작업의 초점이 달라진다. 초창기 작업에서는 재료 유닛 결합에 신경을 많이 썼다. 차츰 큰 프로젝트로 넘어가면서 스킨 전략을 볼륨으로 확장하는 전략으로 바뀌어갔다. 

처음에 주차장이라는 특이한 프로그램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아주 작은 땅에 최저가로 건물을 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주차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주어진 대지 내에서 동선이나 볼륨은 손댈 수가 없다.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평면으로 풀었다. 건축주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은 합리성과 스킨 전략이었다. 그 일이 반향을 일으킨 뒤 리모델링 작업 의뢰가 다수 들어왔다.

헤르마 주차장 / 사진: 남궁선

농가 주택을 리모델링한 남해 처마 하우스 같은 경우도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조건의 프로젝트지만 정말 열심히 했고, 지금도 매우 좋아하는 프로젝트다. 그것도 스킨으로 형태를 재구축하는 일이었다. 스킨과 볼륨이 절충되어 가던 시기에 커빙 하우스플랫폼엘은 모두 스킨이 기본이자 주안점이었다. 실제로 내부 공간을 풀어내는 논리는 둘 다 공간의 합리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였다. 

남해 처마 하우스 / 사진: 남궁선
커빙하우스 / 사진: 남궁선

프로젝트 밀도가 높아지면서 스킨과 볼륨에 나름의 비율로 공사비를 배분해 투입하기 시작했다. 점차 규모가 커지고 건폐율, 용적률, 볼륨의 여유가 생긴 뒤부터는 스킨에 쏟아 넣던 공사비가 볼륨으로 넘어갔다. 이전에는 스킨에 80%의 공력을 썼다면, 지금은 30%까지 떨어졌다. 벽돌, 유리, 목구조, 콘크리트, 철골, 금속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본 노하우 덕분이다. 재료별 단가에 따르는 결과물의 기준과 장단점 분석을 만들어놓은 게 있다. 이제는 그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볼륨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그동안 데이터화된 재료들의 유니크한 특성 위에 공간감이 덧붙여지는 중이다.

전환점: 플랫폼엘

플랫폼엘은 조호의 전환점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공사비다. 건축주가 요구하는 퀄리티를 낼 수 있는 규모였다. 그 덕분에 좋은 건설사인 제효와 일할 수 있었고, 창호, 금속, 콘크리트, 바닥재, 외장재 등 모든 공정에 있어서 국내에서 손꼽는 업체와 일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건축주와 해외 답사도 같이 갔고, 답사 여행에서 볼 수 있었던 준수한 디테일을 구현해보자는 목표를 세우고 일했다. 관점에 따라서는 완성도가 미흡할 수 있지만, 국내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 작은 프로젝트지만 굉장히 난이도가 높았고, 그 과정을 통해 업그레이드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플랫폼엘이 미술관이다 보니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고, 그걸 통해서 다른 일도 수주할 수 있었다. 조호가 크게 한 번 도약한 시점이었다.

플랫폼엘의 대지 면적은 198평이다. 길에서 바라보면 큰 땅 같아 보이지만, 강남의 일반적인 근린생활시설 규모다. 크지 않은 땅에 상징성 있는 플래그십 매장을 세워야 했다.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스킨을 최대한 펼쳐 보이는 것이 중요했다. 한마디로 ‘작은 땅 크게 보이기’ 전략이었다. 전작에서 했던 실험보다 더 정교한 디테일에 조명이 결합된 방식을 써서 특수 가공한 알루미늄 루버로 외피 패턴을 만들었다. 선적인 요소로 외피를 만들 때 다른 위계의 선형 부재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만들면 입면에 깊이감이 생기는 효과를 십분 활용했다.

플랫폼엘의 중정은 어떻게 하면 땅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방안이었다. 오각형의 이형적인 대지를 가장 넓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매스를 양쪽에 배치하는 것이 답이었다. 매스를 양쪽에 놓아야만 스킨을 둘렀을 때 평범한 땅을 다르게 쓸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두 매스를 연결하는 브릿지를 만들고 가운데에 중정을 두면 외부에서 봤을 때 매우 큰 형태의 건물이 된다.

플랫폼엘 전경 / 사진: 남궁선
플랫폼엘의 주출입구이자 두 개 동을 연결하는 입면 / 사진: 남궁선
땅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고안된 중정 / 사진: 남궁선
플랫폼엘 입면 디테일. 세 가지 크기의 금속 부재를 사용했다. 큰 부재가 중간 크기 부재를 물고 있고, 중간 크기 부재가 작은 부재를 물고 있다. / 사진: 남궁선

야심작: 설해원 클럽하우스

설해원 클럽하우스는 벽돌을 제외한 모든 건축 재료를 사용했고, 지금까지 경험해본 모든 구조 설계 경험과 지식을 동원했던 리모델링 프로젝트다. 원래 건물이 드라이비트 마감에 스페인식 기와로 이루어진 건물군이었고, 다양한 어휘로 구성되어있어서 통일하기 쉽지 않았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전체적인 마스터플랜을 보아야 했다. 기존 건물군과 클럽하우스의 관계성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특히 숙박 시설의 연계가 중요했다. 회의를 한 번 하면 운영팀, 골프캐디팀, 관리팀, 호텔숙박팀 모두 모여야 했다. 그야말로 복합 프로젝트였다.

클럽하우스의 전면은 차량이 진입해 입구에 잠시 주차했다가 돌아서 빠져나가는 공간이고, 반대쪽은 사람들이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그래서 야누스의 얼굴처럼 이중적으로 보여야 했다. 전면은 기존 온천의 목구조와 같은 맥락으로 설계했고, 골프장으로 나가는 면은 세련되고 모던한 이미지로 읽히도록 설계했다. 하나의 소재로 하나의 공간을 끌어내기보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이야기를 엮어내는 방향으로 풀었다.

전면 입구에 마치 한옥처럼 음각으로 캐노피를 만들었는데, 기존 박공지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자 형태로 연결했다. 마치 모던한 디테일로 해석한 서까래처럼 보이도록 의도했다. 라인을 따라 재료와 재료가 맞붙는 필연적인 디테일이 요구되는데, 그 부분을 강조하거나, 재밌게 만들어서 통일감과 비례를 만들었다.

메인 트러스는 목구조이고 하중을 받는 부분은 철골조로 처리한 하이브리드 구조로 전단력을 받아내고, 구조 프레임을 엮었다. 순수하게 목구조만을 쓰기 위해 벽체가 두꺼워지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다. 그라우팅 공법으로 기초를 보강했고 수직 증축이 필요한 부분은 철골로 구조보강했다. 철골, 철근콘크리트, 목조, 금속, 노출콘크리트, 석재를 모두 활용한, 종합세트 같은 프로젝트다.

설해원은 하나의 주인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요소에 따라서 각각이 결합하여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합쳐졌을 때 다양한 맛을 내는 프로젝트다. 과거에 일관성, 완결성을 중시했던 태도에서 약간 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소재를 써도, 내가 원하는 스토리를 지켜가면 된다. 그런 부분은 새로이 시도했다.

설해원 클럽하우스 전면 진입로 / 사진: Archframe
설해원 클럽하우스 캐노피 / 사진: Archframe
남쪽에서 바라본 설해원 클럽하우스. 우측에 스타트하우스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 사진: Archframe
골프 코스에 면한 스타트하우스 / 사진: Archframe
골프 코스에서 바라본 설해원 클럽하우스 전경 / 사진: Archframe

도전, 탄소배출 저감 설계

디자인의 한계는 기술에 달려 있다. 마음 한편에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들과 새로운 시도로 시대의 이정표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독일에 있는 컨설턴트에게 연락해서 찾아가기도 하고, 구조설계 엔지니어를 직접 만나서 프로젝트를 제안해 실제로 일한 적도 있다. 참여 공모전 중에 세종시 뮤지엄 콤플렉스 단지 공모 1단계, 2단계에서 2등을 했다. 우리로서는 잠시 일이 한가할 때 겁 없이 뛰어든 일이었다. ‘마운드 스케이프’라는 프로젝트였고, 이때 목표했던 것 중 하나는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 시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정확하게 계산해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건물을 만드는 것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만드는 모든 행위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을 줄이는 방식으로 건물을 짓자는 관점으로, 기존의 생태 건축의 개념과는 조금 다른, 에코 시스템 차원으로 접근했다. 그래서 국내 엔지니어를 수소문했지만, 당선 확률이 낮은 작은 사무소에서 던진 낯선 의문을 해결해줄 파트너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다들 이런 프로젝트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고, 국내 공모전에서는 오직 건물 위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 지인을 통해 슈투트가르트의 소벡을 찾아갔다. 이 회사는 우리가 어떤 안을 제시하면 ‘안된다, 못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고, 엔지니어 입장에서 더욱더 극한 대안을 주었다. 그래서 일을 하는 게 너무 재밌고 즐거웠다. 국내 엔지니어들이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건축 토양이 너무 보수적이기 때문에 생긴 문제일 뿐이다.

마운드 스케이프 투시도 / 자료 제공: 조호

인터뷰이 이정훈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데뷔, 전환, 최신

분량4,461자 / 9분 / 도판 13장

발행일2022년 7월 11일

유형인터뷰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