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빌드업
이정훈
분량3,284자 / 6분
발행일2022년 7월 11일
유형인터뷰
자기 통제
건축가의 일에 있어서 각자의 성취를 판단하는 기준은 서로 다를 것이다. 하나의 프로젝트로 내가 원하는 목표치를 단숨에 얻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프로젝트를 지속함으로써 미완의 가능성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단계적으로 나아가기 위해 힘을 빼는 방법, 자기를 내려놓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현실과 타협한 것은 아니다. 한 프로젝트에 주어진 조건 내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한계점을 냉정하게 보고, 목표를 설정해 그것을 성취하는 전략을 택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앞으로 달리고 있지만, 나름대로 일에 집중하는 시간의 총량을 제어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10년 전의 작업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 하는 일이 10년 후의 나를 만든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중간점검’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건축가로서 종착점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때를 맞이하기 위해 꾸준히 작업을 쌓아가고 있다.
화두를 좇아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은 결국 화두로부터 온다. 화두는 진화하는 하나의 개념이다. 단순히 하나의 목표를 이루겠다는 것은 화두가 아니고, 하나씩 이루어가며 진화되는 것이 화두다. 나는 사소한 계기로 여러 개념을 접한 뒤 그것들을 더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유학하고 실무를 쌓았다. 그렇게 내재한 개념들로부터 촉발된 호기심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축적된 노하우가 다른 것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맥락을 얻는다.
개인의 화두를 건축계로 넓혀보면 어떻게 계보를 만드느냐로 이어진다. 계보는 결국 영향을 주고받은 사람 사이를 잇는 선이다. 그것이 다층화, 다원화될수록 건축 생태계가 풍요로워진다. 나는 시게루 반, 자하 하디드와 같은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는 방식이 너무 좋아서 그곳에서 일을 배웠고, 감동했고,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에 동의한 사람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구조와 설비, 건축으로 쓰는 ‘이야기’의 가능성을 보았다. 작은 주택의 설비 하나를 바꾸는 것으로는 이야기를 쓰기 어렵다. 하지만 예를 들어, 한국 전통 건축에 온돌로 데운 뜨거운 실내 공기를 바깥으로 빼내는 시스템을 지금의 건축에 적합하게 해석해보면 좋겠다는 접근으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런 식의 해석이 모이면 재밌는 시스템, 통합된 기술로 진화할 수 있다. 아주 사소한 덕트 하나에서 건축의 모티브가 만들어질 수 있고,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
내가 학교 다니던 때, 담론과 비평이 만드는 심각함, 진지한 주제가 있었던 시절과 지금은 다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건축가에게는 각자의 방향성이 필요하다. ‘방향성 없음’이 방향성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남들과 자기 생각을 구분 지어 볼 필요는 있다. 소설가마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과 문체가 다르듯이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근본적인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이는 시대정신과 무관한, 자기 작업의 기본이고 기저다. 그게 결코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도 가끔 노먼 포스터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르 코르뷔지에의 자서전을 읽는다. 어느 곳이든 건축 행위가 수월하게 이뤄지는 곳은 없다. 그들조차도 건물 하나 지을 때 치열하게 고뇌한다. 나는 그게 옳다고 본다. 당장 시대의 흐름이 가볍고 쉬운 것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다가올 10년은 지금과 다를 것이다.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이 그때 오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부하 테스트
기술의 진화와 접목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새로운 시도를 하는 순간 두 배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난이도가 열 배는 상승한다. 그럼에도 모든 프로젝트에서 디자인이든, 공학적인 요소든, 재료든, 무엇이든지 간에 진화시키려고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재료의 구법과 시스템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체계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생산 시스템에 접근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실제로 한 발짝 더 내딛기 위해서는 건축가 개인의 노력만으로 되지는 않고 산업 시스템이 받쳐줘야 가능하다. 따라서 합리적인 구축 시스템과 결합성이 시공 현장 상황과 어떻게 최적화될 수 있는가를 꾸준히 실험하고 있다.
재료 실험과 투입 비용을 맞추는 과정을 극한까지 끌고 가보면 성취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예를 들어 기성 벽돌을 쓰는 것과 새로운 벽돌을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이때 비로소 생산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벽돌 공장에 가서 제작 방식을 직접 보고, 몇만 장이라는 기본 단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한 뒤로는 우리가 원하는 특별한 벽돌을 직접 발주할 수 있게 되었다. 재료의 생산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밀어붙일 수 있게 되고, 거기에서 차별성이 생긴다. 그리고 현장 조건에 맞게 개량하면서 임계점을 계속 시험하다 보면 평당 공사비 내에서 성취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한계점을 알 수 있고, 우리가 원하는 건축을 합리적인 비용 내에서 할 수 있다. 설계하며 맞닥뜨리는 수없이 많은 한계는 어떻게 극복하는가의 문제다.
시스템 준비
사무소를 처음 시작할 때는 도면, CG, 홈페이지까지 혼자 다 했다. 그리고 한 10년 지나면 조직이나 설계가 시스템에 의해서 굴러가고, 내가 크게 관여하지 않아도 알아서 돌아갈 것이라 상상했었다. 일반적인 비즈니스라면 그렇게 됐을 수도 있다. 10년이 흐른 지금, 전혀 편해지지 않았다.
초기에는 규모가 큰 프로젝트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그런 일을 하면 그만큼 수익이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내 DNA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못하게 했다. 끝까지 뭔가를 더 만들어보려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다 보니 수익이 늘지 않는다. 수익의 문제를 떠나서 일하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면 됐는데 이젠 팀원 간의 호흡이 잘 맞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긴다. 뒤늦게 조직으로 일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설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투입하는 노동력과 그 결과가 합당한 지 지속해서 점검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개소 10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부터 내가 불을 붙이면 내부에서 일이 돌아갈 수 있도록 최적화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투자하고 다듬고 있다. 처음보다는 합리적인 해결법을 찾아가고 있고, 예전에는 10시간 걸려 할 일을 이제 1시간 내로 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압축적으로 일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가는 게 지금 내 역할이다. 직원 인건비는 계속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회사가 성장해야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좋은 일을 해야 내가 원하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계속 나아가는 중이다.
인터뷰이 이정훈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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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3,284자 / 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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