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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건축

정현아

기술의 한계

건축설계가 전문직인 이유는 오랜 훈련을 통해 불편하거나 낭비하는 공간 없이 합리적인 평면을 계획하고, 그것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안전하고 효율적인 기술을 선택해 건물이 무너지지 않고 잘 쓰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적정한 공사비 내에서 건물을 만들 수 있는 기술, 노하우는 건축가로서 꼭 가져야 하는 실무적 능력이다. 의사를 예로 들어보자. 전문가로서 의사의 역할은, 굉장히 축소해서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병을 잘 치료하는 것이다. 그리고 병을 잘 고친다는 것에는 ‘기술’이 깔려있다. 여기에서 기술은 선도 기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사람이 할 수 없는, 테크니션으로서 지식과 기술이 있고, 그로써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건축가도 마찬가지다. 아주 간단한 레벨로 예를 들자면, 천정을 노출한 건물을 지을 때 보를 합리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구조, 미학, 쓰임이 다 맞물린 문제다. 또, 석재를 얇게, 가늘게, 길게 쓸 때 어떻게 붙일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공중 부양하는, 매달린 건물을 설계하고 싶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떤 구조를 써야 안전하고도 가뿐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굉장한 장 스팬 건물인데 부재를 얇게, 디테일을 잘 구현했다면, 그것에 대해서 논하고 가치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이런 기술적 해결 방법은 건축가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고 잘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은 일단 소통에 장벽이 있어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데에 한계가 있다. 언어로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것에 가치 부여가 되지 않지만, 이제는 그런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과다한 공사비를 들이지 않으면서, 건축적인 표현을 하기 위한 트레이닝을 해야한다. 기술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뉘앙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고, 책무라고 생각한다.

디아건축은 첨단 기술을 쓴다기보다, 기술을 학습하고 공부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젊었을 땐 써보지 않은 구조 방식이나 재료를 실험하자는 생각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했고 그 자체를 즐겼다. 거듭해보니, 새로움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걸 하며 얻는 자기만족은 의미가 없다. 결국 내가 무엇을 구현하고 싶은지, 어떤 표현을 하고 싶은지에 따라 기술을 떠올리고, 적용해야 한다. 아주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도입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려면 그런 상황을 만나야 한다.

담론의 한계

“건축이 유형과 상징의 차원일 때, 구축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말지만, 구축은 건축의 실체일 뿐 아니라 건축물의 외부를 표상하며 사회를 반영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 기존의 익숙한 구축 방식의 재현으로써의 구축이 아니라, 개념으로써의 구축 방식을 정하고자 하였다. 이로써 건축은 개별 부재 하나 하나를 실현하는 기술과 구조 방식에 의해 투사된다.”

정현아, ‘구축으로서의 건축’, 「SPACE」 561호, 2014.8.

“건축가의 작업에는 사회와 도시를 읽는 관점, 공간과 프로그램의 조직 방식만이 아니라 그 구축에서 재료와 구법에 대한 도전과 연구가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 실체를 주제에 맞게 드러내는 가장 적절한 방법에 대한 탐색은 아직 많지 않은 경험을 가진 내게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실험이다.”

정현아, ‘나는 무엇을 고민하는가, 지을 때와 지은 후’, 「SPACE」 529호, 2011.12.

음악을 하면서 멜로디 라인이나 화성으로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듯이 건축에서는 구조나 재료 등을 통해서 그런 것을 해야 한다고 집착하던 시기가 있었다. 공간을 다 그리고 나서 어떤 구조를 쓸지, 어떤 재료를 쓸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구조를 통해서 하고 싶은 공간의 짜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담아 글도 썼었고, 그게 건축의 어떤 특별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 국내에서는 물질을 담론으로 만들어내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 보니까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서 오히려 건축과 개념이 잘 이어지지 않는다. 한편, 건축가에게 물질에 관한 담론을 직접 생산하라고 하는 것은 음악가가 자신의 음악을 다 들려주었는데 그에게 음악을 해설해달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 하는 사람은 음악을 하는 것이고, 음악을 비평하는 이가 언어를 생산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시인이 시를 쓰고 시에 딸린 해설서를 직접 덧붙이면, 그것은 시집인가, 시 해설서인가? 

다시 말씀드리면 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기보다, 건축에는 여러 면이 있는데 너무 형태에만 비평이 쏠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이 사람은 왜 두껍게 쓰고, 저 사람은 왜 얇게 쓰는지’와 같은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건축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해독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비평한다’고 생각하니 거창한 것 같다. 공간에 대한 느낌을 풍부한 형용사로 편안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진 보고 하나의 이미지로서 멋있다고 하는 것 말고, 공간에 대한 일상적인 언어가 쌓이고 나서 비평하는 분들이 역사적인 언어로 정제해주면 자연스럽게 비평이 자라날 것으로 생각한다.

기후 위기

기후 변화에 관해 영화 ‘그레타 툰베리’(2020)를 보기도 했는데, 기후 위기를 생각하면 건축을 하지 않아야 한다. 친환경적인 건축은 존재하지 않는다. 리모델링도 골조를 다시 쓰긴 하지만 결국 새로 만드는 것만큼 자원이 투입된다. 따라서 짓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럼에도 건축가로서 어떻게 할 것인가 묻는다면 ‘장수명 건축’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오래 가는 건물을 지어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새로운 기술 도입보다는 잘 짓는 것도 포함되고, 잘 짓는 것에도 여러 의미가 있다. 기능적으로 잘 작동하고, 사회의 요구에 잘 대응하는 건물, ‘오래 생존할 수 있는 건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고쳐 쓰는 것도 포함된다. 그래서 비싸게 받아서 잘 짓고, 오래 가게 설계해야 한다.

물론 “건축가는 건축물을 짓지 않아야 해요”라고 하는 말을 넘어서는 제안을 기대하고 기후 관련 질문을 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예외적인 사례로 건축가 시게루 반의 만든 일련의 종이 건축 프로젝트가 있다. 작업이 훌륭하고, 건축가로서 환경문제를 고려하는 안을 제시했다고 본다. 2006년에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을 선보이기도 했고, 특히 2011년 도쿄 대지진 때 임시 대피소를 제공하면서 더욱 빛을 발하기도 했다. 그런 특수한 여건이나 상황에 맞춘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서는 일반적인 여건 속에서 개인 건축가의 대응은 환경 차원에서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한편 기후 위기로 인해 건축가가 구체적으로 맞닥뜨리는 이슈는 새롭게 생겨난 수많은 인증 제도다. 이런 제도는 건축가를 직능인으로 만든다. 나는 건축가가 작가이기를 바라지도 않고, 기술이 중요하다고 앞에서 강조했지만, 기술로써 창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말씀드린 것이다. 제도가 생김으로써 설계에 보탬이 되는 것을 고민하기보다는 점수 계산하고,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불필요한 문서 작업을 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낸다. 인증과 규제가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건축의 정의 자체가 달라지는 것 같다. 건축가의 사회적 위치는 점점 내려가고, 계산하는 사람, 서류 작업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기후 위기도 일종의 구호로 느껴진다. 결국 이런 규제로 인해 파생되는 해결 방법은 ‘기후 위기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주 관심사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설계에 추가해서 건축주들이 전기료를 내지 않거나 저렴하게 전기를 공급받아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싶은 거다. 오히려 그런 걸 하지 않고 에어컨을 틀지 않는 것이 기후 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이 아닐까?

인터뷰이 정현아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위기의 건축

분량3,786자 / 8분

발행일2022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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