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전환, 다음
정현아
분량5,479자 / 11분 / 도판 17장
발행일2022년 5월 19일
유형인터뷰
디아는 사무소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우리를 직접 찾아온 민간 프로젝트가 주를 이룬다. 리노베이션에서 주택이 되고, 주택이 소규모 근린생활시설이 되고, 그러다가 간혹 독수리학교 같은 규모 있는 작업도 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작업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지금도 여전히 주택과 근생 프로젝트를 계속 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잘 볼 수 있는 게 주택이다. 새로운 주택을 조직하다 보면 가족 간의 관계도 알 수 있고, 세대 간의 변화도 알 수 있다. 가족이 어떻게 모이고, 어떻게 개별 공간을 가지고, 거실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프로젝트마다 미묘하게 다 다르다. 그런 차이를 탐구하는 것이 재미있다. 그리고 주택을 설계할 때는 외부공간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각각의 구성원과의 만남도 있지만 세상과도 만나야 한다. 주택이 개인적인 공간이기는 하지만 외부 시선과 만나는 방식으로서 외부 공간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개소 초기, 개인 건축주 프로젝트가 주를 이룰 때 건축가로서 사회적인 이슈를 소화하는 것에 한계를 많이 느꼈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이제는 자의든 타의든 공공 프로젝트 현상 설계의 시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공 프로젝트를 수행할 기회가 늘어났다. 주택이나 근생 프로젝트가 지겨워서 잠시 현상설계로 눈을 돌렸다가 다른 고민을 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만나게 되었고, 당선이 되기도 했다. 공공 프로젝트에 도전할 때는, 직원들 손이 빌 때이기도 하지만, 머리가 빌 때 하기도 하다. 나는 현상설계를 건축적 사고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계기로 삼는다. 예를 들어 문화 및 집회시설은 개인 프로젝트 형식으로 찾아오는 일이 드물어서 현상설계에서 시도해보곤 한다. 아니면 민주인권기념관처럼 건축적 화두가 있는 공모전이라면 관심이 간다. 이때도 김수근 선생님 건물을 한 번 공부하는 셈 치고 현상설계에 도전해보자 했는데 덜컥 당선되었다. 현상설계에 참여하는 것은 순전히 그런 이유다.
사무소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무소에서 공공프로젝트를 주력으로 삼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다. 나는 나와 우리 팀이 끝까지 맡아 밀고 나가서 퀄리티 높은 건축을 하고 싶고, 노력에 비해서 결과가 100% 나오지 않을 때의 허망함을 경계한다. 그러나 한쪽으로만 치우쳐서는 충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직원 트레이닝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또한 내 개인 관심사와도 관련이 있다. 프로젝트 규모의 문제는 아니고, 프로젝트가 갖는 이슈의 다양성을 고려한다.
데뷔작: 대전 한의원
개소 직후에 신사동, 논현동을 중심으로 노후한 주택 리모델링을 하면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작업이 쌓이자 신사동 근린생활시설과 평창동 주택 건축주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찾아왔고, 공사를 했다. 하지만 그 둘을 나의 데뷔작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많이 헤맸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은 문제가 분명하므로 그걸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빈 땅에 건물을 올릴 때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거나 건축가로서 자기주장을 실어야 한다. 평창동과 신사동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했다. 대전 한의원은 두 작업을 반추하며 생각할 시간을 잠시 가진 다음의 일이었다. 그래서 주제가 좀 더 분명했고, 스스로 덜 흔들렸다. 또한 작업을 매체에 발표하기 전에 글로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를 얻게 되는데, 앞의 두 작업과 달리 대전 한의원 글은 비교적 쉽고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전 한의원을 데뷔작이라 말하고 싶다.

비슷한 시기에 지은 대전 한의원과 신사동 근생은 닮은 점이 있다. 밀도가 높은 도시 상황에, 아래층은 업무 공간, 위층은 주거 공간으로 쓰여야 하고, 이 주거 공간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는 점도 같았다. 신사동은 평면 조직까진 좋았지만 외부로 건물의 성격을 어떻게 드러낼지 자신이 없었다. 건물의 안과 밖이 달라붙고 주변 상황과도 이슈가 맞아떨어져야 도시에 놓일 때 비로소 완결되는데 그 부분이 약했다고 생각한다. 한의원은 평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재료가 같이 정해진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마다 건물의 논리와 재료가 동시에 정해지기도 하고, 차차 풀어가다가 어느 순간 정리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신사동은 안이 거의 다 결정되고 나서도 재료를 한참 고민한 걸 돌아보면 주제의식이 명확하지 않았던 것 같다. 대안을 고민하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지만 그땐 방향성 자체가 흔들렸다. 그런 한편 한의원은 처음부터 어떤 주제로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적합한 재료를 찾아 풀었다.



전환작: 독수리학교
내게 엄청난 전환의 순간이 있었나를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다. 비슷한 규모와 성격의 프로젝트를 지루하게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다른 작업을 해보고, 다시 늘 하던 일로 돌아간다. 그중에 독수리학교는 전환작이라기보다는 10여 년간 이어진 관계 속에서 어떤 계기가 되어준 일이었다.
내가 건축가로서 맡았던 첫 프로젝트가 독수리학교 리모델링이었다. 분당에 있던 회색 화강석 마감의 근린생활시설 건물을 대안 학교가 매입했고, 그것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지명 공모를 했었다. 그리고 한참 뒤 독수리학교 측에서 용인에 교사 신축 현상 설계 공모를 했고, 유수의 설계사무소들과 경합해 우리가 당선했다. 하지만 토지 매입과정에서 무산됐다. 그로부터 다시 3~4년 후 학교에서 지금의 대지를 매입해 새로운 현상 설계를 진행했고, 참여 건축가, 결정권자, 심사위원 모두가 바뀐 상황에서 또다시 우리가 당선됐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몇 번의 기회가 반복되며 우리도 독수리학교가 갖는 특수성을 이해하게 되어서 최종 당선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학교는 대안 학교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따라 교실 크기가 가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신축 현상을 준비하며 내가 리모델링했던 분당의 건물을 다시 찾아가 보니 당시 학교 커리큘럼을 설계에 반영했음에도 이후에 커리큘럼 자체가 달라져서 공간을 바꾼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신축안에도 그러한 조건을 잘 수용할 수 있게, 나중에 공간을 변형해도 문제가 생기지 않게 조정하고 평면 모듈에 반영했다. 그리고 기존 건물의 강당을 잘 활용하는 모습을 보고 신축안에서 강당 대공간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프로젝트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됐기 때문에 그사이에 대전 하기동 주택에 사용해본 시멘트 벽돌을 마감재로 무리 없이 적용할 수 있었다. 독수리학교가 규모는 더 컸지만, 저예산 프로젝트였고, 학교라는 주제에 시멘트 벽돌이 잘 맞는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동안 신도시 외곽에 프로젝트의 경험을 통해 경기도 주변이나 신도시의 척박함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신도시 나대지에 신축 건물을 지을 때 옆에서 얼마나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나중에 와서 보면 주변 컨텍스트가 얼마나 많이 달라지고 망가지는지를 학습할 수 있었다. 이러한 도시 컨텍스트의 상황, 말도 안 되는 법규로 뒤엉킨 고난도의 허가, 이 모든 것들이 지난 10년의 역사였다.
독수리학교 프로젝트는 우리 사무소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던 프로젝트다. 그전에는 개인 클라이언트의 작은 프로젝트를 해오다가 1천 평이 넘는 규모에, 훌륭한 건축가들 사이에서 우리가 당선되니까 ‘우리도 뭔가 하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격려가 됐다. 최근 독수리학교에서 주변 땅을 추가 매입해 운동장과 주차장을 조성했다. 그리고 우리가 설계한 100평 규모 중강당 건물이 착공 준비 중이다.



야심작: 민주인권기념관, 춘천 체육센터
야심작을 고르기 전에, 야심작의 의미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질문이 생겼다. ‘건축가로서 구현하고 싶었던 컨셉이 이뤄지거나 완성도가 높은 작업인지?’가 하나의 카테고리라면, ‘단일 건물을 넘어서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프로젝트인지?’가 또 하나의 카테고리인 것 같다. 나는 그동안 개인 클라이언트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사회가 건축계에 기대하는 어떤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죄책감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순간에는 ‘그냥 프로젝트를 잘하는 게 가장 건축가의 공공적인 역할을 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싶기도 하다. (너무 윤리 교육을 잘 받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건축가로서의 동전의 양면 같은 포지션이 있다. 건축이 갖는 사회적 포지션도 항상 그런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야심작이 대단한 게 아니고 그저 다음 작업, 내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늘 다음 작업이 나의 야심을 드러낼 수 있으면 가장 좋겠다 싶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두 개 작업을 골랐다. 건축가로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을 야심작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대공분실 건물을 직접 건드리지 않고 그 옆에 건물을 짓는 프로젝트라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설계하면서 어떤 표현을 하기보다 배경을 잘 만들려고 했다. 대공분실 건물을 보면 외부공간, 도시와 엮여 있지 않고 따로 논다. 그래서 우리의 설계안으로 대공분실과 주변을 잘 엮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기존 건물이 전시 공간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새로 짓는 건물과 전시 동선이 연결된다. 그래서 새로운 건물에서 대공분실을 바라보는 공간이 중요하다. 대지로 들어설 때 그 공간을 어떻게 주인공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고, 프레임을 만들어서 대공분실이 잘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시선을 낮게 하는 것을 신경 썼다. 지하 공간이 주를 이루는데, 동선이 완벽하게 이어질 수는 없지만, 성큰 공간을 통해서 뒤 동선으로 연결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이 프로젝트에 관해 묻고 궁금해할 때, 순간 긴장이 되면서 ‘내가 제대로 설계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그 프로젝트에서 새로운 개념을 구현하거나 질문을 던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도 그 장소가 갖는 상징성이나,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 사회적 상처가 있으므로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작업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다른 하나는 춘천 체육센터다. 이 프로젝트 또한 현상 설계를 통해 당선했다. 개인적으로 수영을 좋아하기 때문에 수영장 설계를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수영장은 장스팬 구조에, 태양광이 들어오는 공간이고, 물이라는 물성의 매력이 있다. 지금 실시 설계를 진행 중인데, 매달린 구조에 몰두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설계 의도 구현을 우리에게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공공 프로젝트지만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이다. 그래도 공사비가 워낙 적어서 결국 설계 변경을 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반면 민주인권기념관은 우리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설계의도 구현을 건축가에게 주라고 열심히 얘기했지만 발주처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터뷰이 정현아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데뷔, 전환, 다음
분량5,479자 / 11분 / 도판 17장
발행일2022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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