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를 위한 수식어들
김상호
분량3,327자 / 6분
발행일2022년 5월 19일
유형서문
디아의 건축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다. 디아의 건축은 미묘하게 ‘복합적’이다. 혼합적이거나 혼성적인 것은 아니고, 다채로운 것과는 또 다르다. 디아가 내는 색의 범위가 있기 때문이다. 범위 밖의 작업도 간혹 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다. 아직 발산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거기서 멈춘 것일 수도 있다. 정현아라는 건축가가 내뿜는 어떤 ‘서늘함’도 디아에 색을 입힌다. 그것이 작업의 바깥 표면을 코팅하는지, 속에서 스며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디아의 색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작업 하나하나를 다시 면밀히 살펴야겠지만, 짧은 인트로이니 수습할 수 없는 자료와 정보를 꺼내는 대신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 기억과 경험의 조각들을 모아본다.
아무래도 실물을 마지막으로 본 독수리학교가 먼저 떠오른다. 학교 외관과 지상층 교실은 평범했지만, 지하에 네트워크처럼 연결된 개별 특활실들과 성큰 보이드가 인상에 남아 있다. 그 중심엔 가변식 대강당과 그것과 마주한 계단식 야외 테라스 공간이 있다. 크고 작은 공간들이 크기, 높이, 재료를 조금씩 달리하며 선형으로 이어졌다. 좁은 땅에 많은 공간을 만들어야 했기에 복잡한 구성의 건물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밖으로 드러난 것보다 속에 든 것이 더 많은, 공간의 양과 음이 역전된 것 같은 건물이었다. 당시 개발이 덜 된 도시 외곽에 위치했기 때문에, 공간 구성의 논리는 건축의 내부, 그중에서도 기능과 동선에서부터 주로 기인했고, 미결정된 주변에 대해서는 대결하는 긴장 대신 열리고 뚫린 공간을 통한 이완으로 대응했다.
기억을 떠올려 글을 쓰다 보니 다음 생각이 용인 주택에 가 닿는다. 전체적으로 언밸런스하게 조합된 묘한 형상의 집인데, 독수리학교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용인 주택은 1층에 노출콘크리트 집을 놓고, 2층에 목조와 목재로 지은 다른 모양의 작은 집 두 채를 따로 얹었다. 빈 공간이 건축의 보이지 않는 본질적 요소라면, 용인 주택에서 가운데 비워진 보이지 않는 볼륨은 이 집의 정수다. 협소 주택 한 채가 들어갈 만한 볼륨의 중정이 2, 3층 높이의 집과 그 내부를 연결하는 동선이 둘러싸고 있다. 중정은 지면의 경사진 방향으로 비어 있던 인접 필지를 향해 완전히 열려 있었고, 그 위로 연결 다리가 가로지르며 가상의 영역을 확보했다. 집 안의 바닥, 복도, 계단이 높낮이를 조금씩 달리하며 이 보이지 않는 볼륨을 감싸며 흐른다. 이 집 역시 주변에서 참조할 만한 선이 희미해서, 대지와 건물의 내적 조건으로 지어졌다. 용인 주택과 독수리학교가 연결되는 것은 보이드를 가상의 볼륨으로 다루는 방식 때문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건물을 꽉 채운 덩어리로 만들거나 완결된 형태로 닫지 않고, 비워내고 연결하고 다시 감싸 안는 식으로 대지 위에 약간 펼쳐 놓는다. 이것이 디아 건축의 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용인 주택을 떠올리고 나니 생각이 자연스럽게 대전 한의원으로도 옮겨간다. 둘 다 필지 구획된 초기 신도시 개발지구에 지어진, 중정을 가진 2층 집이다. 둘 다 내향적이고 자가발생적이지만, 전자가 조합형이라면 후자는 일체형이고, 전자가 진취적이라면 후자는 방어적이다. 전자의 중정은 땅에서부터 입체적으로 솟아 있지만 후자의 중정은 땅과 분리되어 2층에만 놓여 있다. 1층이 한의원, 2층이 주택이니 당연한 결론이지만. 초기작인 대전 한의원에서는 비워낸 공간의 형태가 용인 주택이나 독수리학교에 비해 정적인 느낌이고, 건물의 전체를 단순한 형태로 완결지으려는 의지가 더 강하게 드러난다.
시선을 근린생활시설로 돌려보면, 역삼동 근생, 도곡동 근생, 논현동 근생(스튜디오) 등이 직접 봤던 작업이다. 역삼동 근생은 소형 근생에 드물게, 그 시점에 디아의 이력 상에서도 드물게 전체 철골 구조를 사용했고, 대조되는 컬러 아연 강판을 외장재로 선택했다. 건물 덩어리의 비례나 조합도 그의 작업 속에서 생경했다. 도곡동 근생은 기존 건물을 재포장하는 프로젝트답게 가볍고 표피적으로 접근했는데, 건조하고 투명한 은빛 금속재의 조합이 왠지 모르게 디아다운 느낌이었다. 논현동 근생은 형태와 공간의 짜임새가 복잡한 듯 보였고 그로 인해 조형의 의지가 유독 강하게 느껴졌다. 벽돌 덩어리의 묵직한 중량감을 잘라내고 유리 상자와 철골 기둥을 조합함으로써 일부러 상쇄시킨 느낌이었다. 조금씩 시차는 있지만 연이어 지어진 세 작업에서 보이는 건축의 색이 다 제각각이다. 사용한 재료와 구조 방식도 다르고, 전체적으로 풍기는 물성과 색감도 다르고, 건축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도 모두 달랐다. 사실 같을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는 어느 특정한 색깔이나 형태를 고수하지 않아 왔으니까. 한 가지 어렵지 않게 짐작하는 것은, 근생이라는 건물의 유형이 건축가에게 열어주는 약간의 자유를 기회로 삼아 평소 자신의 관심사를 하나씩 실험한 결과물일 거라는 점이다. 역삼에서는 그간 안 써본 구조와 재료였고, 도곡에서는 (내 기억이 맞다면) 형태 생성 논리였는데 도중에 디자인을 바꿨고, 논현에서는 매시브한 조형성이었다. 그런데 이 실험들도 지금 돌아보니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이렇게 이어지는 비슷하거나 다른 점은 모두 주어진 조건에 반응하는 건축가의 태도와 방법을 보여주지만, 거기서 그만의 색을 추출해내기는 쉽지 않다. 그것 모두가 그의 성향은 아닐 수도 있고, 기간 한정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 시야에서 보는 개념화된 색은 어떤 막연한 느낌, 인상, 분위기에 그칠 수밖에 없을지 모르겠다. 진짜 색은 아주 가까이에서 물질적인 수준에서 찾아야 하는 게 맞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재료와 구법, 부재와 결구, 디테일과 상세를 보려고 애쓴다. 하지만 거기서 찾아낸 것 역시 오롯이 건축가의 순전한 색일까 또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색이라는 것은 단일한 원소적 요소가 아니라 온갖 것들이 서로 간섭하고 어우러져 발현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디아의 작업을 긴 시간 드문드문 취재해오면서 꼭 가 보고 싶었는데 결국 못 가 본 집이 하나 있다. 와촌리 창고주택이다. 이번에도 이유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이 집이 디아의 건축을 매우 잘 대변해준다고 생각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는 이 집을 재미있어 했고, 만족스러워했다. 경제적인 회색 골강판으로 마감된 벽과 지붕, 박공지붕을 길게 늘려주는 간소한 삼각 트러스들, 무심하게 기능에 충실한 창과 문, 용도에 맞춰 당연하게 선택된 인테리어 재료들, 자재의 생산 방식과 품질을 그대로 드러낸 결절부와 연결부, 기능을 따르는 듯한 형태 속에 발현되는 비례와 조화, 황량한 대지에 툭 놓인 창고 같은 집이다. 서늘하고 건조한, 직설적이지만 주변과 다투지 않는, 무심하게 무장한, 최소의 획수로 그린, 디아의 건축이다. 인터뷰 중에 그가 한 말에 비춰보자면, “가장 단순하고 명료하게”, “각각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짓는 건축이다.
김상호 건축신문 편집장
디아를 위한 수식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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