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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 주제) 세대론

강영진, 강우현, 김건호, 김경도, 김세진, 김윤수, 박지현, 전필준, 조성학, 최영준

과연 세대를 나눌 수 있을까?

김건호(설계회사) 귀국한 뒤 우연히 한국 건축가 1세대, 2세대와 관련된 프로젝트에 많이 참여했다. 그때 관심있게 봤던 자료나 작업 내용을 떠올리면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건축가의 처지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또 최근에 1950~60년대 건축가, 1960~70년대 건축가가 재조명되며 그 분들이 했던 이야기나 지은 건물들을 접하게 됐는데, 들여다보면 주어진 제약과 상황 안에서 시대적 요구와 개인의 창작 욕구, 이 두 가지 생각을 오가며 갈등하고 분투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대 선진국의 건축을 국내에 하루 빨리 이식해야 하는 와중에 건축가로서 하고 싶은 작업은 따로 있지만 국가에선 못하게 막았다.

심지어 20세기 초의 건축가들에게도 당시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더니즘 건축에서 환경과 위생에 관한 논의가 등장하는 것처럼, 다같이 어떤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동시대성을 갖게 하는 의식이 있고, 한편으로 건축가 각자가 표현하고 싶은 창의적인 발상이 공존한다. 늘 이 두 가치가 부딪히곤 한다. 그런 상황은 시대를 막론하고 똑같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굳이 세대 구분이 필요한가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국내에서 건축가의 세대를 따져보자면, 일본이 소화한 모더니즘이 이식된 세대, 그들에게 배운 후, 직접 제일세계로 유학을 다녀온 세대, 아마 그 다음이 우리 세대 정도 될 것이다.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또 해외로 나가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모더니즘 건축의 원본에 점점 가까워질 뿐이다. 결국 “아, 앞세대의 이야기는 열화된 버전이었구나. 하지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같았구나”하고 깨달을 것이다. 본질은 같다.

김세진(지요건축)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시간은 흐르고, 세대의 변화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런 구분을 넘어서서 나에게 경이로움과 영향을 주는 건축물 자체가 곧 ‘나의 앞세대’라고 생각한다. 절대적인 기간은 의미가 없다. 판테온에서도, 경복궁에서도, 베를린 현대미술관 신관에서도 나는 놀라움을 느낀다.

존 서머슨의 『건축의 고전적 언어』를 읽다가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다. 1장에서 ‘건축의 다섯 오더’를 가지고 고전 건축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그것[오더]은 분위기를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쓴 문장이었다. 양식마다 기본적으로 부여된 성격이 있고, 이론가나 건축가 또는 건축주에 따라 의미가 비틀리고 바뀌기도 하지만 결국 특정한 분위기가 있다는 이야기에 공감했다.

건축은 순수 예술 장르는 아니어도 미적 경험을 하게 한다. 나는 고전이라 불리는 건축을 마주했을 때 마음이 더 크게 움직였던 것 같다. 그리고 분명히 나는 이전의 건축에 영향을 받고, 일정 부분을 기대고 있다. 건축은 독창적인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무언가가 지속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덧대어 나 스스로 원하는 감각이나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만큼 좋을 것 같다.

앞세대의 역할

김경도(RoA) 앞세대란 책임질 수 있는, 혹은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소장으로서 실무를 진행하다 보면 불합리한 부분이 많고, 전문가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부딪친다. 그런 측면에서 앞세대에 서운한 한편, 우리 직원들이 볼 때는 나 또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입장이다. 돌이켜보면 스스로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최영준(오피스아키텍톤) 우리 회사의 프로젝트 수주 비율을 보면 학술연구, 도시설계가 4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관련해 건축을 기획하고 타당성을 검토하는 일이 5% 정도 된다. 이런 일은 당연히 건축가의 업역에 속한다. 이렇게 넓은 영역을 오가게 된 것은 네덜란드에서 공부하며 체화한 것도 있지만 그에 앞서 앞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교훈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각 대학교의 건축 설계 교육이 스튜디오식으로 전환되던 시점에 서울건축학교(1995~2002)1를 비롯한 여러 워크숍이 열렸었다. 학교에서 충족되지 않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건축학교에 꼬박꼬박 참여했다. 워크숍 내용을 개괄하자면, 과거 융성했던 도시가 쇠락한 후 새로운 전환을 모색할 때 그 도시만의 고유한 정체성, 지역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도시가 변화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건축가가 도시계획가, 공무원 등등 많은 당사자들과 함께 건축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역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가르침을 준 앞세대에게 감사한 마음이 늘 있다.

우리가 선배가 되었을 때를 생각해서, 우리도 현재에 충실히 복무하고, 현대 사회의 중요한 가치를 읽어내 소화한 것을 현실 세계에서 만들어내는 건축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담론도 형성될 것이라 기대한다. 그렇게만 되어도 충분히 우리 세대의 역할을 다한 게 아닐까?

우리 세대, 이상주의자에서 현실주의자로

전필준(이심전심) 이전 세대는 건축과 도시의 문제를 관념적 개념과 이상주의적 태도로 이해하고, 의제화 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발 담근 행위의 주체라기 보다 관조적 태도로 비평하는 자리에 스스로를 위치시켰다. 일종의 엘리티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에 따른 현실적 감각 부재랄까? 건축가가 현실 세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가 모호하다 보니 때로 주어지지도 않은 임무, 너무 많은 역할에서 오는 부담감을 떠안기도 했다.

사실 건축가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는 단계는 도시 환경에 대한 유의미한 결정이 이미 끝나 있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으로 보면 건축 계획 자체가 가지는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말이다. 미학적 방향과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을 되풀이하기 보다 실제 일이 기획되고 추진되는 과정에 집단의 힘과 노력을 결집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세대에게는 지금 여기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개적인 입장의 소셜 코디네이터 역할이 우리 직능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구성단위들, 행위자들 사이에서 건설된 환경을 조금씩 개선해 나가고자 하는 조정자로서 역할을 스스로 부여하고 있다. 그게 우리 젊은 세대 건축가들의 정체성이라고 여겨진다. 이상주의자에서 현실주의자가 된 것이다.

김윤수(바운더리스) 한 현상설계 공모전에 작업을 제출한 뒤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나보다 5살에서 10살 정도 나이가 많은 심사위원 건축가들이 내가 짐작했던 그 이상으로 개념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듯했다. 내가 봤을 땐 ‘저 안을 뽑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상향에 가까운 작업이나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높이 평가했고, 그런 성격의 작업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그런 평가 기준을 이해는 하지만, 나는 어느 정도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구체적인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앞세대는 상대적으로 이상을 추구하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우리 세대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그런 성향이 드물다. 전반적으로 어떤 개념을 좇거나 이상적인 또는 이념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보다는 공간 자체의 질에 집중하고 완성도 높은 디테일을 고민한다. 개념적인 작업을 하더라도 현실과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긴다.

다양성

김세진(지요건축) <등장하는 건축가들 3>에 함께 소개되는 팀을 보면 나와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분명 있다. 나는 동시대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을 통해 자극받으며, 그들을 존중한다. 하지만 서로 다르다고 해서 그들과 비교해보거나 의식하지는 않는다. 이는 아마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자신의 색깔을 뚜렷하게 표현하고 주장하는 것이 흔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각양각색이 주된 흐름으로 바뀌는 느낌이다.

젊은 건축가들의 기량이 전반적으로 좋고, 작업의 수준이 높으며, 결과물의 양도 많다. 그렇기에 오히려 내가 원하는 나의 건축을 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주변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무덤덤함으로 작업한다. ‘젊은 건축가이기 때문에 뭔가 특이하거나 차별화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같은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비슷한 나이의 건축가들과 나의 공통점이 아닐까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건축에 있어 세대를 나누는 것이 나에게 크게 의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선배 건축가분들에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는 듯하다. 대체로 익숙하고 편안하기는 하다. 그와는 달리 젊은 건축가들을 만나게 되면 개별적인 독특함이 느껴진다. 스스로의 작업에 몰입한 모습과 결과를 보면 언제나 즐겁고 기분이 좋다.

독립하고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이전 건축가들과 어떤 지점에서 다르고 어떻게 비슷해야 할 것인가?’하고 고민을 해보았을 것이다. 나도 생각해본 적이 있긴 하지만 이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옆이나 앞에 의해 내가 변하거나, 나의 정체성이 결정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끊임없이 묻고 나름의 최선을 다해 작업과 노력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은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솔직하게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느냐이다.

조성학(BUS) 앞세대를 거론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마치 축구 얘기할 때 펠레나 마라도나가 위대한 선수였다는 사실은 알지만, 실제 플레이를 보지 못해서 상대적인 기량을 가늠할 수 없는 것처럼, 앞세대 건축가들이 어떤 여건에서 작업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세대가 이끄는 몇몇 회사들을 만나 보니 대부분 팀으로 일한다. 이걸 세대의 특징이라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게 과거에 선생님들도 팀으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팀으로 일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공통분모 같다. 이건 다른 분야에도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짐작한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특정 CEO가 생각나는 회사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개별 브랜드나 기업이 주는 느낌이 즉각적으로 떠오른다. 그런 것처럼 하나의 팀, 회사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정보의 접근과 활용에 따라

김건호(설계회사) 세대 간에 다른 게 있다면 정보의 양 뿐이다. 과거에는 해외 정보를 먼저 입수한 소수의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선진 문물을 빠른 시일 안에 국내로 도입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예를 들어 김중업, 김수근의 건축을 보면 그 안에 정말 많은 레퍼런스가 동시에 등장한다. 김수근의 건축에서 단게 겐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김중업의 건축에는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동시에 등장한다.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만 국내에서 그 둘을 동시에 배운 사람에게는 둘이 공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접근이 가능했던 것은 동시대 건축을 배울 수 있는 채널 자체가 너무나 좁았고, 그걸 배워 실현할 수 있는 사람도 극소수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넘쳐나는 정보 중에서 각자가 취사선택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만 들어가도 수백가지 이미지가 뜨고 학생들은 거기에서 고른 것을 레퍼런스로 들고 온다. 조금만 더 찾아보면 관련 정보를 찾는 것은 너무나 쉽다. 오히려 그런 걸 찾아보지 않는 아이들에게 ‘너는 왜 하지 않냐’고 물어볼 정도다. 이제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정보는 평준화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레퍼런스를 이미지로만 소비하고 끝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학생에게 ‘그 레퍼런스가 왜 좋게 느껴지는지에 대해서 분석을 해야한다’고 주문한다. 그 사례가 좋은 이유는 재료 혹은 환경 때문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눈에서 대상까지의 거리, 공간의 폭과 높이, 재질 등으로 구체화해 수치적으로 해석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체화했을 때 비로소 건축가로서 설계를 통해 그 느낌을 재현할 수 있다.

미디어 활용의 세대차

강우현(아키후드) 앞세대와 우리 세대 사이에 대단한 혁명이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내가 가까이에서 본 앞세대 건축가는 조병수 소장님 뿐인데 단순하게 그분과의 차이점을 생각해보자면, 소통 방식이 다르다. 앞세대는 인맥을 중심으로 소통하다 보니 네트워크 자체는 폐쇄적이지만 상대방과 잘 알기에 서로의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쉽고, 사람을 소개받더라도 잘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일에 있어서도 그렇고, 개인적인 만남도 마찬가지다.

우리 세대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창구가 다양해졌다. 이는 소셜미디어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여러 기업에서도 홍보 수단으로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우리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 사무소 페이지가 있고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우리가 주체가 되어 소식을 알리기도 하지만 정보를 얻기도 하고 우리 건물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본다. 서림연가의 손님들이 어떤 공간을 좋아하고 어떤 공간을 싫어하는지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 수 있고, 교류할 수 있다. 가끔 우리가 건물 사진을 찍어서 올리기도 하는데, 우리는 좋다고 생각해서 올린 사진에 사람들 반응이 미지근한 경우도 있다. 한편, 우리가 설계한 건물에 “여러 번 왔다”는 게시물도 종종 눈에 띈다. 이들은 소위 ‘인생샷’만 찍고 간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주는 경험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재차 찾아온 것일테니 건축가로서 이런 글을 읽을 때 기쁘다. 그리고 이렇게 즉각적으로 반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재미있다. 그런 면에서 건축이 예전보다 많이 대중화됐다고 느껴진다.

최영준(오피스아키텍톤)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에서 세대차를 느낀다. 먼저, 건축가가 미디어에 접근하는 이유는 좋은 건축을 하기 위한 토대와 환경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라고 믿고 싶다. 건축가는 미디어에 노출됨으로써 인기와 명성을 높여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는가 하면, 클라이언트의 횡포, 변덕, 무리한 요구로부터 균형점을 찾고 건축가로서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자기 건축을 할 수 있는 긴장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런 전제 하에 예전에는 전통적인 매체를 통해 건축이라는 분야 안에서 비평과 함께 스스로를 단련하면서 명성을 얻고자 했다면, 우리 세대 건축가들은 오히려 건축 밖에서 인지도를 높여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것에 비중을 두고 새로운 매체를 적극 활용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동세대와의 공통점을 찾기가 어렵다. 오히려 우리 세대가 목적하는 바와 거리를 두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는 대중적 인기를 얻는 데에 큰 관심이 없고, 요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싶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을 비판하기보다 타산지석으로 삼고 긴장감을 갖고 싶다.

세대에 따른 수요자의 변화

강영진(아키후드) 건축 시장의 변화에 따라 세대 차이가 생기고 있다. 신도시가 늘어나며 건물 수요가 상대적으로 매우 많아졌다. 그래서 젊은 건축가들이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더불어 클라이언트가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주로 부유한 누군가가 좋은 건물을 짓고 싶을 때 유명한 디자이너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일이 생겼었다. 요즘에는 젊은 건축가와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분들도 많아졌다. 또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건축가를 직접 찾기도 한다.

박지현(BUS) 내가 느끼기엔 설계 의뢰를 하는 건축주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앞세대 건축가 중에 다가구 다세대 주택이나 협소 주택 같은 소규모 주택을 주로 다루는 분들은 드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선생님 세대 건축가의 웹사이트는 보기만 해도 작가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니까 사람들이 내가 사는 공간, 내 주변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게 되고, 그만큼 본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건축가를 필요로 한다. 그런 흐름에 따라 우리 세대에 그런 요구를 받아줄 수 있는 건축가가 많아진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장르가 다른 건축가도 다양하게 있지만, 그 다양성이 확보되고 있다는 자체가 과거와는 다른 것 같다. 예전에는 건축의 주요 흐름이 있거나, 건축계 안팎에서 ‘아, 저런 사람이 건축가다’ 혹은 ‘이 사람이 건축가 맞아?’ 이런 고정된 건축가상이 있었다. 지금은 모난 돌도 있고 둥근 돌도 있다. 그리고 건축가에게 맡기는 일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어서 생태계가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

(공통 주제) 세대론

분량7,854자 / 16분

발행일2021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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