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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홍, 최윤희
분량9,890자 / 20분 / 도판 6장
발행일2021년 9월 10일
유형인터뷰
주체적인 건축가로 서기
전진홍 계획된 독립은 아니었다. 당시를 되돌아보면, 재직 중이었던 공간그룹의 법정관리 사태는 내게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전 세계를 누비며 다국적 회사로 운영되는 모델이 잘 작동될 수도 있지만, 건축가가 거대 자본의 흐름에 기대어 사무소를 운영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적 모델이 필요하지 않을까 스스로 많이 묻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OMA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세대로, 클라이언트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개인의 관심사를 연구하고 생각을 발전 시켜 나아가는 능동적인 건축가의 모습을 그렸던 것 같다. 이렇게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건축가로서 내적 논리를 탄탄하게 갖추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최윤희 학생 때 접했던 건축은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는데, 현실 속 실무는 서비스 업무에 치중할 수밖에 없어 괴리감을 크게 느꼈다. 졸업 후 윌킨슨아이어(WilkinsonEyre)와 같은 대형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하는 동안 그런 부분을 아쉬워했고, 제이슨 브루스 스튜디오(Jason Bruges Studio)의 소규모 워크숍 공간에서 직접 인터렉티브 조명을 제작해보며 예술 작업을 하는 곳에서 그 실마리를 모색해보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있었기에 독립 초기에 마주했던 상업적인 방향과 공공 프로젝트 사이의 갈림길에서 다소 고생스럽더라도 건축가로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길을 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좌충우돌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고민하는 건축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 서로 많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생각을 키울 수 있었고, 반드시 거쳐야 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전진홍 우리가 30대 초반에 독립했기 때문인지 마음속에 품었던 질문의 답을 찾아가겠다는, 다소 무모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일 40~50대에 독립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걸 보면, 스스로가 지향하는 건축가의 모습에 따라 독립의 시기는 중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업 방식
리서치와 전시
전진홍 리서치는 연구자 개인마다 각기 다른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맥락을 이해하려는 태도이며,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훈련이자 다양한 주체들과 협력을 위한 소통의 도구이다. 리서치 결과를 토대로 크고 작은 장치들을 제작해 다양한 환경에 개입하는 일련의 실험과 탐색은 우리가 건축가로서 내적 논리를 찾아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우리가 전시장 내외부를 ‘대지’와 동등한 조건으로 삼아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학생 때 함께 참여했던 ‘후크파크 크로싱 워크숍’이 있다. 워크숍 설치 과정과 연구 결과물을 몇 년에 걸쳐 다양한 형식의 전시를 통해 선보였고, 이 과정을 보며 전시가 또 다른 창작의 결과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
한편 우리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2014년부터 건축 관련 전시 붐이 일었다. 그러면서 미술관 등지에서 국내 젊은 건축가들을 호출하는 일이 늘어났고, 우리의 관심사를 대중에게 선보일 기회가 많았다.
최윤희 우리가 건물을 짓지 않기 때문인지, ‘실재와 재현의 분화구조’를 지닌 건축 전시에서 시도되는 도전이라는 측면에서인지, 혹자는 우리를 1970~80년대 페이퍼 아키텍트와 비교한다. 그들에게는 전통적 매체 중 하나인 ‘그리는’ 드로잉이 하나의 건축적 표현이자 그 자체로 완결된 작업 방식이었다면, 우리는 다변화된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며 1:1 스케일로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머리로 만들고 손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이 서로 다른 두 가지가 상보적인 관계를 맺으며 통합되는 방식에 관심을 두고 있고, 디자인과 메이킹을 통해 생각을 물리적으로 구체화하며 발전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실제로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은 신체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해주는 매개 역할을 하며 여러 사람과 함께 교감하고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매력을 지니고 있어, 계속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런 작업을 선보이는 장으로서 전시는 다양한 전문가와의 협업 속에서 우리 스스로 창의적인 질문을 던지고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해 주는 토대이자, 다른 분야와 대중에게 우리가 가진 생각을 소통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생산적인 자리가 된다.
전진홍 ‘건축 전시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중요한 지점이고, 우리도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전면에 드러내기보다는 관객이 즉각적으로 기획자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커미션 작업으로 풀어간다. 개인적으로 어떠한 장소에서 경험을 할 때 눈으로 보는 것보다 신체를 자극하는 행위가 동반될 때 더욱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꾸준히 탐구하고 있다.
관객이 전시품 일부를 변형할 수 있는 가변적 형태와, 행위나 감정에 반응하며 다양한 움직임으로 작동되는 전시품의 일부가 되는 작업은, 바라만 보는데 익숙한 시각예술 전시 경험을 확장해 대중들에게 다가가며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들어 준다.
최윤희 건축적 정보를 쉽게 전달해야 하는 과제와 함께, 건축 전시에서만 가능한 스케일, 밀도, 분위기 등 공간적 경험도 중요한 과제이다. 두 과제는 동시에 수행되어야 하면서도 상충하는 지점이 있어, 이 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프로젝트 연작
최윤희 우사단로 연작을 하며 하나의 프로젝트가 단일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 창작을 위한 씨앗이 되고, 서로 영향을 주면서 확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 시작은 ‘촉촉 어반 아트 프로젝트’(2013)였다. 2개월 정도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이때 이벤트라는 일시적인 형식에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도시적·건축적 제안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다음에 진행한 ‘크로싱 우사단로 프로젝트’(2014)에서는 도시계획가, 아티스트, 지역 주민 등의 다양한 시선을 담았다. 그리고 앞선 두 작업에서 우사단로에 관해 축적한 정보와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상상한 결과가 ‘도킹시티’(2015)였다.

전진홍 2017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생산도시>전에서 세운상가군에 신설되는 보행 데크를 포함한 을지로 일대의 재활용 산업을 조명하며 로봇 운용시스템을 제안한 ‘루핑시티’(2017-)도 연작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제조 과정에서 버려지는 부산물로부터 그 전체 생산과정을 조명하며 새로운 가치 순환 체계를 탐색하는 프로젝트인데, 처음에는 드로잉과 목소리로만 존재했던 무인 이동 로봇 튜보(TUBO)가 전시를 거듭하며 재질에 따른 분류와 수집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해지고,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크기의 몸집을 갖는 프로토타입으로 제작되었다.

최윤희 이처럼 우리에게는 작업의 연속성이 중요하다. 프로젝트마다 주어진 조건과 제약이 있고, 그로 인해 실현하지 못한 아이디어가 남으면 그것을 다음 기회에 풀어내며 작업을 이어갔다. 주어진 일을 잘 수행하는 것 외에 스스로 어떻게 판을 만드는지, 어떻게 새로운 구도를 만드는지를 경험했던 기회였다.
전진홍 일을 시작할 때 빨리 무언가 구상하는 결과 중심의 사고 보다는, 한 아이디어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될 수 있을지를 고려해서 단계별로 생각을 가다듬어 만들어가는, 과정 중심의 사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처음부터 연작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계속 작업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방법론이 된 것 같다.
관심사: 도시, 지역, 가변적 조립식 구조
최윤희 ‘도킹시티’와 ‘루핑시티’ 프로젝트는 그 지역에 몇 년 동안 머물며, 그곳에 계신 분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기록되지 않은 현장의 실제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기록한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잠재되어 있던 지역 자생력을 찾아보며 이를 둘러싼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도시가 점차 회복해 나가는 방안을 도시 전술적 측면으로 담아 드러내어 보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긴 호흡으로 지역에 관심을 두게 된 배경 이유 중 하나는 점차 세계 어느 도시든 비슷해져 가는 현상 속에 지역 특이성을 보존함으로써 곳곳에 독특한 문화가 자리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형성하는 조건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의 삶을 어떠한 형식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진홍 재개발 계획으로 물리적인 변화가 멈추었지만, 필요에 의해 건축적 요소를 변용하고 그 지역 생태계가 작동되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종류의 이동망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도시적 요소에 관한 특이성을 발견하는 작업은 서울이란 도시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보텀업(bottom-up) 과정 중심의 사고를 지향하다 보니, 보다 직접적이고 유연한 접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계획이 실행되는 과정에 많은 변수가 있고, 그러다 보니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변화에 조응할 수 있는 체계와 형상에 대한 관심을 키워온 듯하다. 이러한 ‘건축적 요소의 변용’과 ‘도시적 요소의 모빌리티’에 대한 개인적 관심사는 지역 고유의 특성을 지닌 건축 자산(한옥 등 건축물, 공간환경, 기반시설)을 보전·활용하는 연구용역과 일정 기간 전시장 안팎에서 설치되고 사라지는 사물/장치로 건축을 비추어보며 생애주기에 대한 의미를 환기해주는 창작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윤희 조금은 다른 결의 이야기지만 최근 작업으로 실제로 물리적으로 구축하는 측면에서 해체와 이동이 가능한, 가변적인 조립식 구조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 ‘에어빔 파빌리온’이 있다. 여러 개선점이 숙제로 남아있지만, 음압 병실을 급히 필요로 하는 장소의 크기에 맞추어 길이가 변하며 압축과 팽창이 되는 에어빔 모듈 시스템으로 일주일 내에 항공 이송을 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이는 6개월간 시범운영을 마친 뒤 오픈 하우스 투어와 전시 <어셈블리 오브 에어>에서 넓은 스펙트럼으로 조망해 보며 가벼운 건축의 생성과 순환에 대해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건물을 짓지 않는 건축가의 일, 그리고 생존
전진홍 막 독립한 젊은 건축가들에게 건축계에서 등한시되었던, 개진할 부분을 찾아서 드러내는 시도를 독려해 주는 건강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노력이 이 사회에서 건축의 가치를 높이고, 건축 문화를 더욱 꽃피울 수 있으며, 건축가의 역할을 넓히는 데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사이트(site)를 땅으로 한정 짓지 않았을 때 비로소 건축의 미개척 영역이 펼쳐지리라 생각한다.
최윤희 우리가 생각하는 사이트는 하나의 고정된 영역이 아니다. 건축적 사고를 통해서 생각을 짓고, 작게라도 그 의미가 담긴 물리적 형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 건물로 구현할 기회가 없었고, 전시장 안팎에 놓인 사물들 혹은 장치들로 생산되었을 뿐, 우리에게는 전시장이든 도시의 한복판이든 스케일을 넘나들며 건축적 의미를 생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오히려 땅에 대한 생각은 열려 있고, 열고 싶다.
전진홍 건물을 짓지 않으면서 생존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돌이켜보면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우리의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여기에 매 순간 집중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우리의 행보는 건축가가 건축 설계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도 생존할 수 있음을, 한국 건축 문화의 기반이 두터워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바래도 이제 8년 차가 되었다. 이런 방향성에 확신하기까지 절대적인 시간과 경험치가 필요했다. 앞으로도 BARE(Bureau of Architecture, Research & Environment)의 이름처럼 건축을 중심으로 리서치, 그리고 환경에 주는 영향을 함께 고민하자는 신념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수많은 ‘바람’을 잘 담아내는 건축을 꾸준히 실천하고 구현하고자 한다.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과 함께 건축의 영역을 확장하기
전진홍 지금까지 이어온 생각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건축가에게 주어지는 ‘대지’를 더 넓게 생각하고, 작업의 규모도 다양하게 접근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중요하고, 각자가 고유한 분야의 창작자로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팀이 되어야 한다. 지금 같이 있는 팀원만 해도 건축 설계를 전공한 친구, 건축 이론을 전공한 친구, 미술을 전공한 친구 등 다양하다.
최윤희 다음 목표로 연구를 위한 체계적인 데이터 베이스 화와 창작을 위해 스튜디오에 직접 프로토 타입 목업을 제작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워크숍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건축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서
전진홍 건축은 다른 창작 분야보다 발상부터 결과를 내기까지 훨씬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수반된다. 짐작하건대,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크고 무거우며 보다 영속성을 지닌(timeless) 기념비적 건축에 대한 열망이 건축 역사에 자리 잡아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불변의 가치와 더불어 우리가 주요하게 탐구하고 싶은 점은, 그 어느 때 보다 산업과 사회의 역학 관계가 빠르게 변모하는 지금에 조응하는 건축의 생산과 경험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이다.
최윤희 30대 초반에 독립하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 지금 아니면 못하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시도를 다양한 환경 속에 놓아 보며 관심사를 키워 올 수 있었다. 일을 만들어나가는 여러 행위자의 관심과 도움으로 가능했던 만큼, 건축가의 새로운 활동 무대로 ‘문화로 확장하는 건축’이 지속할 수 있도록 일정 부분 기여하고 싶다. 이로써 건축가로서 잘 할 수 있는 일과 건축이 잘 할 수 있는 일의 경계가 지워져 나가길 바란다.
새로운 영역
매체의 확장으로 생겨나는 새로운 공간
전진홍, 최윤희 우리는 리서치로 축적한 많은 양의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영상에 담아내고, 영상 매체를 주요한 표현 형식 중 하나로 다룬다. 그렇게 작업을 지속하면서 ‘건축가로서 영상을 다룰 때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그 답을 찾다 보니, 영상을 만들고 보여주는 방식까지 하나의 작업으로 접근하고, 비물리적 속성의 영상이 물성을 지닌 구조물과 만나 입체 영상환경으로 공간화되는 방식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건축 이외의 분야에서 가속화되는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가상의 세계가 점차 활성화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이는 건축 분야에서 영상이 지닌 기록과 시뮬레이션의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서는 확장 가능성을 감지하고 그로부터 생겨나는 새로운 공간 영역을 어떻게 탐구해야 할지 고민할 지점을 안겨준다. 동시에 기술의 발전이나 다학제적 접근방식을 통해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는 시도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 건축가 혹은 건축을 중심에 두고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근본적인 물음을 품고 다가갈 필요가 있다.
미래 기술과 새로운 사물의 등장
전진홍, 최윤희 리서치의 일환으로 1960년대 이후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모아 시대별로 살펴보니 삶의 양식에 따라 주거 공간이 변화하고, 이에 가전/가구가 밀접하게 맞물리며 변해왔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미래 기술과 새로운 가전제품의 등장으로 실내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 공간의 관점이 아니라 사물의 관점에서 보면 흥미로운 상상을 해볼 수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IoT(사물 인터넷)를 통해 사물끼리 서로 소통하고 이동하는 상황에 맞춰 인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공간을 생각해보자. 움직이고 소통하고 말하는 지능을 갖게 된 다양한 기계의 행동 패턴과 속성을 연구한다면 그것이 잘 작동할 수 있는 공간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구체적인 예로 바퀴가 달린 로봇 청소기에게 문지방이나 다리가 달린 가구들은 로봇 움직임의 방해요소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바닥에 단차가 없게 만들면 공간이 하나로 연결되지만, 쓰임새의 구분이 모호해질 수 있다. 지능을 지니고 움직이는 사물들의 탄생이 인간의 삶에서는 어떤 의미인지 한번 생각해볼 대목이다. 이처럼 공간에 놓이는 똑똑해지는 가전/가구와 같은 사물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또한 건축가의 새로운 영역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건축 교육, 설계와 이론의 균형이 필요
전진홍, 최윤희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며 이전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건물을 짓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국내에서 매년 수천 명의 졸업생이 사회로 나오고 있는데, 그들 모두가 설계만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구는 이미 그런 상황에 직면했다. 건설 경기는 진작에 위축되었고, 한 대학 건축학과에 10명의 선생이 있다면 그중 한두 명만 건물을 지어본 경험이 있을 정도이며, 졸업생 대부분도 전시, 출판 등 설계 이외 분야에서 진로를 찾아가고 있기도 하다.
다행히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건축과 관련된 전시, 행사 등이 양적으로 늘어나고, 목천김정식문화재단, 정림건축문화재단, 김중업건축박물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서울도시건축센터, 서울도시건축전시관, 그리고 2025년 목표로 건립 추진 중인 국립도시건축박물관 등 건축 문화와 관련된 일을 전담하는 기관들이 자리를 많이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건축의 기율(discipline)이 생성되고 발현하는 방식이 건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시, 연구, 출판, 교육 등 다양한 방향으로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것들을 담을 수 있는 기반이 꾸준히 생기고 있고, 앞으로도 가능성이 클 것 같다.
그러므로 교육 현장에서도 학생들이 설계와 함께 연구, 전시, 출판 등 건축 담론 생산과 관련된 영역에 호기심을 갖도록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에 선생님들이 이론과 실무의 간극을 오가는 것이 큰 자극이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생들과 함께 지난 몇 년간 동아시아 고도경제성장을 대변할 수 있는 도시인 서울을 대상으로, 근대화 과정에서 압축적 시공간의 변화를 견뎌내며 나타난 상황적 특징이 드러나는 지역들을 중심으로 이해의 폭을 넓혀왔다. 지역 리서치과정에서 발견된 단서들을 바탕으로 ‘적응력을 내재한 건축’을 위한 설계 방법론을 모색하며 ‘적응성, 이동성 및 유연성’의 주제를 심화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가속화되고 있는 디지털 미디어와 기술이 새로운 종류의 지역주의를 만들어내고 있는 부분을 살펴보며 교육과정에 전시와 출판을 포함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리서치는 길게 보면 결국 설계로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정 중심으로 사고하고 탐구하며 하나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질문하는 훈련을 건축 교육에 있어 중요한 부분으로 다루려고 한다.
인터뷰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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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모하는 도시의 환경과 시간에 조응하는 리서치 기반의 건축 작업을 2014년부터 지속해오고 있다. 《새로운 유라시아 프로젝트》(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15) 키네틱 파빌리온 설치를 시작으로, 《생산도시》(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2017),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베니스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한국관, 2018), 《한국현대건축 세계인의 눈 1989-2019》(주헝가리한국문화원, 2019)전시 등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전진홍은 AA스쿨을 졸업하고, 네덜란드의 건축사사무소 OMA와 한국의 공간그룹에서 실무를 쌓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겸임교수이며 제3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2021)서울전 공동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최윤희는 케임브리지대학교와 AA스쿨을 졸업하고 영국건축사를 취득했다. 영국의 윌킨슨 아이어 아키텍츠와 제이슨 브루지스 스튜디오, 한국의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등에서 다수의 건축 및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했으며(2016-2018)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초빙교수이며 제3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2021)서울전 공동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 개소 연도: 2014
- 주로 활동하는 도시: 서울
- 현재 인원: 5명
- 프로젝트 수주 비율
(현황) 조형물(공공/민간) 30%, 전시기획 및 참여 40%, 학술연구 30%
(희망) 신축/증개축 40%, 조형물(공공/민간) 20%, 전시기획 및 참여 20%, 학술연구 20% - http://ba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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