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후드
강우현, 강영진
분량5,765자 / 11분 / 도판 5장
발행일2021년 8월 6일
유형인터뷰
독립, 조금이라도 젊을 때
강우현 언젠가 건축사 자격증을 따면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해서 직접 디자인한 건물을 지어보는 게 막연한 희망 사항이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30대에는 개소하고 싶었다. 더 늦어지면 아무래도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칠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젊을 때 독립하고 싶었다. 그래서 강영진 소장이 먼저 건축사 면허를 취득한 뒤 계약된 일도, 제대로 된 사무실도 없이 개소했다.
첫 일을 소개받아 미팅까지는 수월하게 했고, 계약될 것 같았지만 결국 무산됐다. 그렇게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어떤 친구들은 아는 사람을 통해서 일을 소개받아 계약까지 진행한 다음에 독립하거나 공모전 등에 당선된 후 개소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우리는 그 정도로 영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능력도 안 됐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주 작은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하다가 우리 작업을 소셜미디어에 올렸고, 웹사이트를 손수 개설했다. 그러다 우리 웹사이트를 우연히 본 분이 찾아오셔서 첫 건축설계 프로젝트를 하게 됐다. 그게 틈틈집이다. 2014년 중반, 개소하고 10개월 만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비용을 받았다. 거의 사무실 유지비 정도였다.
강영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일이 없어 힘들고 불안했다. 그런데 그때가 아니면 우리가 건축가로 독립할 기회가 없을 거란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시작해 공모전을 찾아보고, 소규모 인테리어도 해본 것이다.
틈틈집은 첫 프로젝트임에도 계획이 우리 뜻대로 잘 나왔다. 건축주가 우리에게 일을 맡겼던 큰 이유는 비용이었던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기회였다. 그 일 덕분에 다음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
강우현 오직 나의 상상만으로 만들어지는 건축물이나 공간은 거의 없다. 결국은 내 경험에 기반을 두게 된다. 건물이라 보기조차 어려운 허름한 공간이든 세련된 건축물이든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거나 영감을 준 공간은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기억에 남아 영향을 미친다. 그런 걸 고려했을 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내가 바라는 방향이다. 궁극적으로 건물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건물 자체가 주는 인상은 단순한 걸 선호한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가면 공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들어서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보면 숨겨진 공간이 자꾸 나타나고, 여러 요소가 등장해 공간의 매력을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디자인이다. 그런 공간을 계속 탐구하는 중인데, 아직은 단어로 규정하기가 어렵고 거기에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싶지 않다.
강영진 공간에서의 경험을 다양하게 하되, 어딘가 익숙한 듯하면서도 새로운 감각을 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자연의 요소들이 변화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시간의 흐름을 하늘의 색으로 인식하거나, 물에 반사되어 일렁이는 빛을 보거나,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을 마주할 때 더 큰 감동을 받는다. 이러한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서림연가를 예로 들면 외부에 목재 패널로 세운 벽 사이로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가 시시각각 다양한 표정을 만든다. 그리고 사람들이 숲 속에 있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의도로 침실 양 옆에 작은 정원 을 만들었는데, 실제로 방문객들이 그 장소를 좋아한다고 전해 들었다.
강우현 한편, 설계 업무를 수행할 때 매번 익숙한 대로 설계하거나 즐겨 쓰는 시공법, 재료를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검토해서 약간만 바꿔주면 투자 대비 질이 올라간다 . 그런 부분에도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일하고 싶은 건축사사무소 만들기
강우현 가장 중요한 것은 일하고 싶은 건축사사무소를 만드는 것이다. 이게 최종 목표다. ‘건축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는 얘기가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게 앞세대와의 차이인 것 같기도 하다. 앞세대 중에서는 이런 생각을 이해 못 하는 분들도 간혹 있다. 그분들에게 일은 힘들게 배워 몸에 새겨야 하는 것이다. 나의 사회 초년생 시절을 돌이켜봐도 몇 년 고생하더라도 많이 배워서 내 사무소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다른 친구들도 비슷했을 거다. 하지만 그것 만이 정답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소 전, 회사를 다닐 때 야근을 참 많이 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렇게 해서 내가 얻은 것이 많은 만큼 잃은 것도 많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에게는 “너희가 지금 몇 시간 더 야근해서 일을 더 많이 하면 많은 걸 얻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그 외에도 이 세상에서 얻을 게 많다. 인생을 너무 짧게 보지 마라”고 얘기하며 정시에 퇴근하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연장근무를 하게 되면 법규대로 수당을 지급한다.
강영진 우리 직원들이 일하는 게 재미있는지 궁금하다. 만족해야 즐거움이 생길 텐데, 무엇에 만족하고 있는지도 알고 싶다. 모두가 재미있게 일하며, 같이 만들어가는 조직이 되는 게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다.
강우현 최근에 든 생각인데, 직원이라 하더라도 야망이 큰 사람이면 좋겠다. 그래서 예전에는 우리 회사에서 오랫동안 열심히 일할 친구를 뽑으려 했다면, 이제는 자기 계획이 있고, 여기서 한 3년 일한 뒤 다른 회사로 옮겨서 이것 저것 더 해보고 싶다고 하는 친구와 일해보는 게 어떨지 궁금하다. 야망이 있다는 것은 일 욕심도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 모두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직원이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강영진 첨언하자면, 자기 생각이 있는 직원이 필요하다. 우리가 일을 하다 보면 계획안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직원이 자기 생각을 분명히 표현하면 서로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결국 자기 생각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야근을 하더라도 무조건 회사 일에 얽매여서 할 게 아니라, 더불어 자기 생각을 정립하는 시간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운영 방식에 대한 관심
강우현 건축사사무소는 비효율의 대명사다. 야근이 많다, 월급이 짜다, 이런 이야기의 원인을 찾아보면 결국 비효율성이다. 그 비효율성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생각해보면 결국에는 한 명의 대표가 프로젝트 관리를 비롯한 모든 것을 좌우하는 상황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사무소에서는 대표의 결정이 절대적이라, 상당히 진행된 프로젝트도 한순간에 뒤바뀌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물론 그것도 잘만 된다면 그 사무소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할 수 있는 운영 방식 중 하나다.
나는 그런 유형의 조직이 갖는 장단점을 이미 경험해봤으니까 좀 더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조직 시스템 구성을 고민하게 된다. 다른 사업 분야, 특히 모바일, IT 등은 산업 구조가 많이 변하고 있어서 이들 분야의 벤처 기업 소식을 접할 때 새로운 방식의 업무 프로세스라든지 조직 구성 등을 유심히 본다. 건축사사무소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수장을 따라가는 피라미드형 조직보다는 말단 직원이라도 그 사람의 아이디어가 잘 발휘될 수 있는, 자율적인 시스템의 조직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직원 각자의 역량 증진과 확실한 동기부여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솔직히 이 부분이 제일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건축설계업이 언제까지 이렇게 계속 수동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으로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먼저 생산해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갈 수는 없을까. 소위 집 장사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또 그런 방향으로 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계속 고민 중이다.
강영진 나는 그럼에도 지금은 우리가 아키후드를 이끌어가며 우리만의 스타일,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게 있은 다음에 그런 조직 체계를 도입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건축이 생산-판매 구조로 전환되기 어려운 이유는 그야말로 디자인 작업이므로 구체적인 조건을 전제로 건축가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한편, 현장에서 직관적으로 진행되는 부분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피라미드 조직 구조가 효과적일 수 있다. 카리스마 있는 디자이너가 지휘해서 디자인을 잘 만들면 팀 전체가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한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운영 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개소하기 전부터 공유하고 있었다. 아직 구체화하지 못한 이유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했을 때 중요한 문제이고, 언젠가는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할 것이다.
세대론
미디어 활용의 세대차
강우현 앞세대와 우리 세대 사이에 대단한 혁명이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내가 가까이에서 본 앞세대 건축가는 조병수 소장님 뿐인데 단순하게 그분과의 차이점을 생각해보자면, 소통 방식이 다르다. 앞세대는 인맥을 중심으로 소통하다 보니 네트워크 자체는 폐쇄적이지만 상대방과 잘 알기에 서로의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쉽고, 사람을 소개받더라도 잘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일에 있어서도 그렇고, 개인적인 만남도 마찬가지다.
우리 세대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창구가 다양해졌다. 이는 소셜미디어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여러 기업에서도 홍보 수단으로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우리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 사무소 페이지가 있고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우리가 주체가 되어 소식을 알리기도 하지만 정보를 얻기도 하고 우리 건물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본다. 서림연가의 손님들이 어떤 공간을 좋아하고 어떤 공간을 싫어하는지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 수 있고, 교류할 수 있다. 가끔 우리가 건물 사진을 찍어서 올리기도 하는데, 우리는 좋다고 생각해서 올린 사진에 사람들 반응이 미지근한 경우도 있다. 한편, 우리가 설계한 건물에 “여러 번 왔다”는 게시물도 종종 눈에 띈다. 이들은 소위 ‘인생샷’만 찍고 간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주는 경험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재차 찾아온 것일테니 건축가로서 이런 글을 읽을 때 기쁘다. 그리고 이렇게 즉각적으로 반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재미있다. 그런 면에서 건축이 예전보다 많이 대중화됐다고 느껴진다.
세대에 따른 수요자의 변화
강영진 건축 시장의 변화에 따라 세대 차이가 생기고 있다. 신도시가 늘어나며 건물 수요가 상대적으로 매우 많아졌다. 그래서 젊은 건축가들이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더불어 클라이언트가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주로 부유한 누군가가 좋은 건물을 짓고 싶을 때 유명한 디자이너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일이 생겼었다. 요즘에는 젊은 건축가와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분들도 많아졌다. 또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건축가를 직접 찾기도 한다.
인터뷰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아키후드
아키후드 건축사사무소는 강우현, 강영진에 의해 2013년부터 서울에서 활동을 시작한 사무소이다. ‘틈과 경계’, ‘친숙한 낯설음’ 등을 관심있게 다루고 있으며, 대지와 건축의 유기적인 관계에 대해 탐구해 나가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voree’, ‘서림연가’, ‘숨어반’, ‘부암동 두집’ 등이 있다. 2018년에는 신진건축사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한국건축문화대상과 서울시 건축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였다.
- 개소 연도: 2013년
- 주로 활동하는 도시: 사무실은 서울, 프로젝트는 지방에 많은 편
- 현재 인원: 총6명(소장2명, 직원4명)
- 프로젝트 수주 비율 현황과 희망
(현황) 민간 신축 90%, 공공 신축 5%, 전시 참여 5%
(희망) 민간 신축 60%, 공공 신축 25%, 증개축 10%, 전시 참여 5% - http://www.archihood.com

아키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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