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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필수, 김지훈, 문동환
분량7,864자 / 16분 / 도판 8장
발행일2021년 7월 2일
유형인터뷰
실무 경험: 건축에서 도시까지
맹필수 대학원 졸업 후 공간건축에서 5년 반 정도 근무했다. 원래는 건축 설계 업무를 기대하고 입사했는데, 당시 공간건축은 턴키나 해외사업을 많이 하고 있었고, 내가 맡았던 프로젝트들은 굉장히 규모가 컸다. 바쁘게 일하다가 문득 내가 도시 설계와 관련한 지식도 없이 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덜컥 당선되기도 하고, 아프리카 알제리 등지에서 내가 그린 도시가 실제로 생기기도 할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건축보다 더 큰 스케일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유학을 갔다.
대학원에서 도시 디자인과 건축을 공부하고 나서 퍼킨스 이스트만에 입사했고, 도시 설계를 주로 하는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대부분 도시 스케일에서 건축까지 오갔다. 터미널도 그냥 터미널이 아니라 가능하면 공원도 같이 만들고 하부에는 주차장도 들어가는 복합 시설이었다. 그리고 건축 프로젝트를 할 때는 70~80층 규모의 초고층 주거 실시설계 등을 했다. 여러 경험과 관심이 쌓여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하는 일들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문동환 나는 KPF와 포스터 앤 파트너스에서 근무했다. 실무에서 경험한 주요 프로젝트는 송도 신도시를 비롯한 신도시 마스터플랜이었다. 그런 큰 규모의 프로젝트는 배경 지식의 범위가 매우 넓고 수많은 요소를 디자인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의 업무로 보면 한 프로젝트에서 지극히 일부분을 담당한 셈이지만 도시를 만드는 전체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 외에 초고층 타워 외피 디자인, 고층 주거 평면 계획 등을 해봤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시민단체의 프로젝트에 참여중이다. 매년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에 가서 학교도 짓고 마을 설계도 한다. 단순히 예쁜 디자인을 하는 것, 도시 안에서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것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건축이 무엇인지 지켜보고, 인터뷰도 해서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를 근간으로 건축적 해결 방법을 제안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또다른 노하우가 쌓이고,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새로운 방향을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김지훈 국내 사무소 경험은 전혀 없고,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7년 정도 뉴욕에서 일했는데 사무소를 많이 옮겼다. 덕분에 다양한 스케일과 유형의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었다. 초고층 타워 설계도 했고, 헤르조그 앤 드 뫼롱에서는 미술관을 했다. 가장 마지막에 있던 회사가 바이어 블린더 벨인데, 건축물 보존이 주력 분야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그랜드 센트럴 스테이션 등 역사적 건축물부터 작은 스케일의 주거까지 뉴욕 안에서 보존 지구로 정해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역사적인 건물을 현대적으로 고쳐 쓰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많이 한 회사다. 미국, 특히 뉴욕에서는 건축물 보존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인데, 반드시 지켜야 하는 부분 이외에 현대적인 개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시 차원에서 도와준다. 그래서 색다르고 재밌는 결과물을 많이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일하면서 도시의 역사적 차원과 유서 깊은 건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 프로젝트들은 기존 도시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우리 작업에서 최대한 기존 조직을 유지하거나, 또는 그게 사라질 예정이라면 과거의 흔적을 다시 끄집어내서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나의 그런 경험과 연관되지 않나 생각된다.
독립
노들꿈섬 공모전
맹필수 우리 셋은 대학원에서 만났고, 졸업한 뒤 뉴욕 등지에서 각자 다른 회사를 다녔다. 김지훈 소장은 바이어 블린더 벨, 문동환 소장은 포스터 앤 파트너스, 나는 퍼킨스 이스트먼에 있던 시기에 회사 일만 하는 것은 좀 아쉬우니 미래를 생각하면서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마침 그즈음 한국에서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설계 국제공모’,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공모’(서울도시건축전시관) 등 현상설계공모가 열렸는데, 외국 건축사에게도 개방된 형식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참가할 수 있겠다 싶어 준비했다. 세운상가, 세종대로는 떨어졌고, 세번째로 참가한 ‘노들꿈섬 공간·시설조성 국제설계공모’에 당선되면서 회사를 설립했다. 이때 각자 근거지를 정하게 됐다. 김 소장은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귀국을 결정한 상태였고, 나는 귀국을 고민하고 있던 시점이었으며, 문 소장은 미국에 기반이 있었다. 그래서 김 소장과 나는 귀국해 자리잡았고, 문 소장은 미국 뉴욕 지사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당선부터 귀국까지, 딱 한 달
맹필수 노들섬 당선 소식을 2016년 6월 말에 들었다. 뉴욕에서 새벽에 전화를 받았을 때는 비현실적이었다. 곧바로 팀원에게 연락을 돌렸고, 첫 몇 시간은 날아갈 듯이 기뻤다. 그러나 그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시에서 요구 사항들이 밀려 들어왔다. 일례로 공모전에 조감도 없는 패널을 제출했는데, 당장 조감도에 모형에, 추가로 제출할 것이 많았다. 당장 출근길에서부터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서울에서 업무를 맡아줄 사람을 수소문해 가며 정신없이 지냈다.
그 다음에는 당시에 우리가 한국 건축사 없이 미국 건축사로 당선이 된 상황이라 시와 계약을 하려면 한국 건축사 파트너를 구해야 했다. 즉, 파트너 선정과 업무 배분이 당면과제였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10여 개 회사에 ‘우리가 노들꿈섬 공모전 당선이 됐는데 함께할 파트너를 구하고 있고, 7월 초 시상식 때 귀국하니 한 번 의논했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드렸다. 그래서 여러 팀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러 조건을 정리했다. 어느 회사는 “우리가 한국에서 다 해결할 수 있으니까 mmk+는 미국에 있어도 된다”고 했고, “그래도 제대로 하려면 귀국해서 사무소를 차리는 게 좋다”고 조언하는 회사도 있었다. 최종적으로 우리의 참여도가 가장 높은 옵션을 제시한, 우리를 잘 도와줄 수 있는 회사를 선택했고, 그게 토포스였다.
그렇게 7월 시상식 주간에 큰 일을 해결했고, 미국으로 돌아가서 영구 귀국 준비를 했다. 회사에 퇴사 준비기간 2주 고지하고, 인수인계하고, 아이도 태어나고 그런, 그야말로 난리도 아닌 시기였다. 귀국을 결정하고 나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무실 위치는 같이 일하기로 한 토포스 사무실이 서촌에 있었고, 시청도 자주 오가야 하니까 서촌에 자리 잡자 정했고, 부동산에 바로 가서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았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와서 프로젝트 계약을 한 게 8월이었다. 모두 한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관심사: 도시적 접근과 공공성
맹필수 우리는 프로젝트의 규모와 상관없이 도시적인 측면을 많이 생각한다.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본 적도 있는데, 우리의 건물이 도시에서 어떠한 장소로 역할할 것인가, 그리고 공공성을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풀어가는 방법으로는 사이트를 입체적으로 보고, 공간을 열어주는 방법을 찾아간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계속 고민한다.
김지훈 맹 교수나 문 소장이 워낙 도시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라 우리 사무실 규모에 비해 큰 스케일의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던 것 같다. 나는 상대적으로 작은 건축 스케일에 관심이 많았는데, 덕분에 도시 프로젝트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그 사이에서 내 역할을 찾았다. 일반적인 파트너십은 공통 관심사를 바탕으로 하는데 우리는 그 반대인 것 같다. 오히려 각자 다양한 스케일에 관심이 있고, 다른 영역에 흥미를 두기 때문에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노들꿈섬, 잠실5단지
김지훈 지금은 준공작이 하나뿐이니까 노들꿈섬이 대표작이다. 하지만, 노들꿈섬은 우리 생각의 결정체나 지향점이라기보다 시작점이다. 그 이후에 이어진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노들꿈섬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시대 변화와 사용자의 요구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때 우리가 생각했던 공공성과 공공장소에 관한 이야기, 구체적으로 건축물이 도시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고, 어떻게 사람들에게 열려야 하고, 어떻게 쓰여야 하고,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를 계속 생각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후속 작업에 반영하고 있다.
노들꿈섬 자체는 아쉬운 점이 너무 많다. 어떠한 프로젝트든 어느 정도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그때 부족했던 부분을 다른 작업에서는 잘 해보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시작점일 수도 있고, 잘 마무리된 부분은 서울의 다른 공간, 다른 도시, 다른 장소에서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는 점에서 시작점이기도 하다.

맹필수 현시점에서는 오히려 ‘잠실5단지 주거복합시설 국제설계공모’ 3등작이 우리 생각을 집대성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그 프로젝트를 할 때 노들꿈섬에서 구상했던 여러 공간이나 장소를 조금 더 넓은 도시적인 스케일 안에서 시도해봤다. 노들꿈섬에서는 세 개의 레벨로 적층하고 프로그램을 배치해서 도시로 열어주고 풍경을 담아냈다면, 잠실5단지는 그보다 훨씬 더 다층적으로 복합적인 레벨 안에서 과감하게 해보고, 재밌는 것들을 담았다.
당시에 우리가 주축이 되어서 EMA, 플로건축, 슈퍼매스와 함께 젊은 사무소 네 팀이 컨소시엄으로 도전했다. 다들 계획안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결국 낙선했고, 2020년 말 현재까지도 서울시에서 상금을 받지 못했다. 이건 우리뿐만 아니라 1등, 2등 모두에게 해당된다. 지금까지도 문제가 많은 프로젝트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 설계!
김지훈 건축가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건축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건축을 바라보는 일반 사람들의 시각을 바꿔 나가는 것이다. 지금은 다수가 건축을 부동산 가치로 보고, 만드는 사람도 거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공공건축 마저도 경제 논리에 의해 추진되다 보니 아쉬운 부분이 많다.
우리가 공공성을 갖는 건축에 관심이 많으니 그런 성격의 작업을 지속하고 잘 만듦으로써 건축이 부동산 가치를 넘어서는, 문화적으로 도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나와 가까운 사람부터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노력을 지속해 사회에서 건축의 문화적인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면 건축계 내부의 시스템적인 문제점들, 예를 들어 건축사 시험, 건축 설계 대가의 문제 등이나 공공건축의 문제점 등이 그런 바탕 안에서 자연스럽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디어 제안
맹필수 ‘건축이 사회를 바꾼다’는 식의 사회적 역할을 한다고 얘기하긴 조심스럽다. 하지만 건축이 사회 변화를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따라서 더 좋은 사회가 되거나 그런 기반이 만들어진다. 건축가는 그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되 그중에서도 건축적 접근을 통해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선별하고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거나, 혹은 보지 않아서 뒤처져 있는 공간, 사람이 살고 있는 정주 환경 등에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개입함으로써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계기는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건축가가 사회를 바꾸겠다고 직접 팔을 걷어붙이지 않아도 할 일은 많다.
서비스 제공 이상의 사회적 역할
문동환 ‘건축가가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 ‘수동적으로 일을 받고 일하는 서비스업 종사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나아가서 먼저 소신 있게 이야기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학교에서 배웠지만, 건축가가 사회에서 리더가 되어 외치고 바꿀 수 있는 상황이 많진 않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런 환경과 분위기가 어느 정도 형성된 것 같다. 노들꿈섬 프로젝트만 봐도 작은 그룹이긴 하지만 건축가가 다른 전문가들을 이끌어가며 일한다. 그런 것처럼 조금 더 범위를 넓힌다면 사회 안에서 건축가들이 역할할 수 있지 않을까.
건축 교육
실무 교육의 맹점
김지훈 회사에서 신입사원 채용할 때 보면, 요즘 애들은 다 준비가 안 돼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난 그런 얘기가 달갑진 않다. 도리어 인증 프로그램에서 요구하는 것들 때문에 상상력을 키우고 하고 싶은 공부를 도와주는 교육보다 기능공을 만들어내는 직업훈련학교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나는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유일한 인증 대학원이고 3년 코스로 건축학 석사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곳에서 비전공자들의 잠재력이 특히 어마어마한데, 난 이 점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그 친구들이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실무에서 요구하는 기술과 지식을 다 갖추고 졸업하기는 어렵다.
인증 프로그램 때문에 실무 관련 교과목 수업 비중은 크지만, 학교의 실무 교육은 어차피 소개 수준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그냥 학교에서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싶은 과목들도 있다. 그런 부분이 아쉽다.
맹필수 5년제 학부에서도 제일 안타까운 점이 그런 점이다. 그리고 인증제 심사는 성취도가 가장 낮은 학생 그룹이 그 과목이 목표하는 기술 수준을 갖출 수 있느냐 없느냐로 평가한다. 그래서 최저 기준을 맞추다 보면 재능이 많고 자질이 넘치는 학생들이 성장하는 데 있어서는 오히려 천장이 낮아지는 경우가 생긴다. 교수들은 자신이 맡은 수업 안에서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걸 시도해보라고 하고, 어떻게든 자유롭게 가르쳐보려고 하지만 짜여진 틀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설계사무소에서 졸업생들이 학교에서 배워 오는 게 하나도 없다고 쉽게 말하는데, 나는 설계사무소도 운영하고 학교에도 나가는 입장에서 그런 이야길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사실 학교는 그런 걸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설계사무소에서 요구하는 것들은 사무소에서 프로젝트 하나만 제대로 해도 충분히 스스로 깨우칠 수 있다. 오히려 학교에서는 건축이 어떻게 구축되고,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체계를 가르치고, 학생들이 뻗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
다학제적 접근의 필요
문동환 미국의 건축 교육에서 강조하는 것은 다학제적 접근(multidisciplinary approach)이다. 내가 학생일 때에도 건축, 도시, 조경, 그리고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참여해 협업하는 스튜디오를 많이 경험했고, 가르치는 입장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요즘에는 코로나와 같은 시대적인 상황을 교육과정에 적극 반영한다. 예를 들어 ‘건강과 디자인, 기술, 도시’와 같은 새로운 커리큘럼을 만든다. 그리고 건축이 이런 시대에 어떻게 반응하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리서치를 하고, 스튜디오를 만들어서 다른 학교 학생들을 초대하기도 한다. 국내에도 다학제적 접근법으로 운영하는 학교가 있다고 들었다. 이런 교육 방식이 적극적으로 시도된다면 기능적 교육에서 나아가 세상을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학생들에게 형성해줄 수 있다고 본다.
인터뷰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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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필수는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조교수이며 미국 뉴욕주 건축사이며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였으며,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건축 및 도시설계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의 공간건축과 뉴욕 퍼킨스 이스트만에서 다양한 스케일의 건축과 도시설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김지훈은 대한민국 건축사, 미국 뉴욕주 건축사다. 건국대학교 건축공학과와 하버드 디자인대학원에서 건축설계를 공부했고, 이후 뉴욕 에스오엠과 헤르조그 엔 드 뫼롱, 바이어 블린더 벨에서 다양한 종류의 설계 작업에 참여했다. 현재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문동환은 미국 시라큐즈대학에서 건축학과와 하버드대학 디자인대학원에서 건축 및 도시설계를 전공했다. 뉴욕 Kohn Pedersen Fox와 Foster and Partner에서 실무경험을 쌓았다. 현재 mmk+에서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설계 작업을 하고 있으며, 미국 뉴욕공대 (New York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건축설계를 가르치고 있다.
- 개소 연도: 2015(뉴욕), 2016(서울)
- 주로 활동하는 도시: 서울, 뉴욕
- 현재 인원: 8명
- 프로젝트 수주 비율
(현재) 공공신축 40%, 민간신축 40% , 도시재생 10%, 건축기획 10% - http://mmk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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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7,864자 / 16분 / 도판 8장
발행일2021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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