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v26-cover-emergingarchitects/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설계회사

강현석, 김건호, 이종철

건축하는 법

강현석 유학 기간 중과 졸업 이후에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에서 3년 넘게 실무를 했다. 학교에서는 상황과 맥락을 보고, 읽고, 생각하는 방식을 배웠고, 사무실에서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건축 어휘를 사용해 완결된 물리적인 문장으로 치환하는 법을 배웠다. 자크(Jacques)와 피에르(Pierre)는 항상 부연 설명 없이도 즉각적으로 발현하는 반-재현적인 건축을 강조했는데,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에서 두 사람의 생각이 무수한 시행착오와 부산물들을 거쳐 하나의 구축물로 귀결되는 과정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때의 과정들을 떠올리면서 설계한다. 물론 당시 함께 일했던 소중한 동료들과 여행에서의 경험들은 현재까지도 큰 자산이 되고 있다.

김건호 유학 전에 정림건축과 dmp에서 실무 했다. 조직의 일원으로 실무 기간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당시에는 스스로 정체된 기분이었고 유학을 결심했다. 공부를 좀 더 진지하게 하다 보니 오히려 나중에 깨닫는 것들이 많았다.

이종철 나는 이로재에 오래 있다가 두 소장님이 설계회사를 개소하던 시기에 독립해서 사무소를 시작했고, 강 소장과의 인연으로 설계회사와 3년 정도 협업 관계로 일하다가 지난해 설계회사에 합류했다. 나는 절대적으로 실무 경험에 기대어 지금 일하고 있다. 사소한 자세부터 환경, 태도, 복장, 시간 쓰는 법 등 모든 것을 보고 배웠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건축가가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는지를 비롯해 생활하는 모습도 보고, 막 독립한 분이 자금 조달을 하지 못해 굶으며 다니는 것도 봤다. 그런 모든 게 내 토양이다.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판단이나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판단도 그 시절을 통해서 배웠다.

독립, 내 이름을 건 작업

강현석 귀국해서 사무실을 열기로 결심했던 당시 나는 바젤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김소장은 보스턴에서 졸업을 앞뒀다. 각자의 생활이나 건축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통화를 자주 했고, 어떠한 맥락에서 즉흥적으로 ‘그럼 지금 한 번 해볼까’하고 입을 모았던 것 같다. 이타카에서 함께 공부하던 때, 언젠가 같이 일해보자고 스치듯이 약속을 하긴 했지만, 그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 얘기해 본 적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용감한, 혹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도모였을 수도 있겠다. 당시 딛고 설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원거리로 협업하던 공모전 하나 있었을 뿐이었다. 물론, 그 공모전은 순위에도 들지 못했다.

나는 ‘내가 회사에서 아무리 일을 잘 하더라도 결국 내 이름은 남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제는 내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던 상황이었다. 어떤 공명심보다는 온전한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컸던 것 같다. 사무실을 열게 된 결심에 크게 작용했던 다른 요인은 ‘회사 차리면 무조건 5년은 굶는다’는 선배들의 말이었다. 언제 개소하든지 5년을 굶을 거라면 차라리 30대 중반에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젊을 때 리스크를 안고 가자고 의견을 모았던 것 같다. 이 선견자의 계시와 같은 말처럼, 개소하고 정확히 5년 만에 첫 현상설계에 당선됐다.

김건호 나는 그 당시에 사무실을 굉장히 열고 싶었다. 30대 중반 정도에는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작업방식

내러티브 & 텍토닉

김건호 기술은 대부분 정교해지고 작아지고 가벼워지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건축 기술은 재료가 바뀔지 언정 기초 위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얻는 기본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럼에도 건물마다 차이가 발현되는 이유는 건축가가 유형의 안에서 짓고자 하는 공간과 용도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기술을 취사 적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어떤 공간을 원하는지, 어떤 감각을 불러 일으키려 하는지, 그 공간에 어떤 어휘가 어울리는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설계하고 있는 공간에 맞는 구축법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다.

강현석 우리는 건축적인 글쓰기, 내러티브를 작업의 기본으로 깔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맥락과 건축 자체가 되도록 작업하는 것인데, 경험자가 이 거대한 코끼리를 읽어낼 수 있는 장면들을 만들고 이들을 시간과 움직임에 따라 이어간다. 텍토닉은 각 문장에 순서를 부여하면서도 예상치 않은 배열들을 도모하는 프레임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통합수장고 프로젝트는 주어진 기능에 대응하는 190m 길이의 평평한 인공 지형이 경사가 다양한 자연 지형과 조우하며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프리젠테이션 당시 긴 스케일을 가진 공간 안팎의 장면들을 설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고, 이들을 구축 질서와 시퀀스를 따라 이어서 설명할 때 하나의 내러티브가 되도록 했다. 그냥 보기에는 단조롭거나 위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긴 매스 형태의 계획안이지만, 마치 ‘책가도’와 같이 다중 퍼스펙티브를 가진 박스의 개념과 인공과 자연의 사이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던 작업이다.

김건호 거기에 내러티브와 텍토닉이 함께 담겨있다. 투시도로 보여지는 장면들이 일종의 사건이고 이야기다. 그걸 위해 세워지는 구조물에서 텍토닉에 관한 생각이 따라 나온다. 그 둘이 잘 맞아 떨어질 때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기하학, 파르티, 언캐니

김건호 기하학은 역사적으로 건축가에게 중요한 도구였다. 거기에는 ‘어떠한 프로그램, 어떠한 유형을 담을 것인가’란 생각이 녹아 들어있다. 우리가 작업을 할 때에도 유형, 레퍼런스에 대한 탐구를 하고 나면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기하학적 결과가 도출되고, 마지막에 드러내려는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강현석 우리가 기하학적인 접근법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해보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이 많다. 다만 설계 공모나 클라이언트의 요구에서 어떤 지점, 어떤 문장을 뽑아내 건축적 언어로 강조했을 때 우리가 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보는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반-재현적인 건축’과 연관 지어 보자면, 그림이든 건축이든 사람들이 처음 봤을 때 어떤 종류의 충격을 느껴야 호기심을 가질 것이라는 전제하에 과장된 비율을 쓰거나 가벼운 구조물을 구축해 특정한 오브젝트로서 읽히게끔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 저게 뭐지?’하고 유심히 살펴보게 되는 지점에서 그 건축에 내포된 이야기가 공모 지침과 맞아 떨어지도록 전략을 세운다.

김건호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단어로 꼽아 보자면 ‘기괴한(uncanny)’, ‘매력적인’, ‘이야기’, ‘의미의 가로망’ 등이다. 건축가는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를 만들기 위해서 건물을 짓는다. 그래서 그것이 잘 짜인 그물과 같다면, 사람들이 건물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테고 그 자체로 재미있을 것 같다.

강현석 함께 일하다 보면 파르티(parti)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설계에서 어떤 부분은 변해도 전체에 영향을 주지 않고, 어떤 부분은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한다. 이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우리끼리 파르티라고 합의한다.

박정현 “파르티”, 중요한 키워드가 나왔다. 파르티라는 단어 자체가 보자르(Beaux-Arts) 어휘다. 아카데미에서 설계 도중에 파르티가 바뀌면 낙방하고, 파르티를 초지일관 밀어붙이면 좋은 점수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랑 프리 드 롬(Grand Prix de Rome)까지도 수상할 수 있다. 이건 지극히 평면의 논리, 기하학의 논리다. 그런데 두 분이 언캐니한 것을 좋아한다는 말씀은 파르티를 잡는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나는 그것을 매스나 전체 덩어리의 비례, 입면의 논리라 이해했다. 그렇다면 두 분이 설계할 때 파르티를 잡는 논리와 전체 외관, 입면을 만드는 논리를 전략적으로 분리하는지 궁금하다.

김건호 그런 시각이라면 분리해서 볼 수 있겠다. 건물은 파르티, 평면을 돌출(extrusion)시켜 입체로 세워지는 것인데, 우리가 설계하는 건축물은 보자르식 건축물과 달리 단층이 아니다. 언제나 여러 층이 쌓인다. 그리고 만약 매스가 두 개라면 그것이 만나는 지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 부분이 어떻게 만날지, 어떤 식으로 구축될지가 궁금하다. 그런 것으로부터 어떤 다름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현석 동시에 단면이 ‘파르티’와 ‘언캐니’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단면에 신경을 쓰면서 그 둘을 조율한다.

인지 차원이 바뀌는 경험에 대한 관심

김건호 가끔 전제 자체가 크게 변하는 경험을 한다. 나는 스케일 자체가 아주 커지거나 작아지면 공간이나 건물을 인지하는 차원이 어떻게 바뀌는지 궁금하고, 거기에 늘 관심을 두고 있다. 보통은 인프라스트럭처에서 그런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재 진행중인 수장고 프로젝트는 건물이지만 일종의 인프라스트럭처다. 그런데 예술품, 수장물은 그 수가 계속 늘어난다. 누군가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면 생겨나고, 땅을 파다가 유물이 나오기도 한다. 이것들을 어딘가 모아 두어야 하는데 그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수장품을 그대로 둔 채로 계속 쌓아 올려야 한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수장고는 인프라스트럭처로 작용해야 한다.

그 작용을 하는 건물의 스케일이 도시에서는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거대 스케일이 됐을 때, 그걸 인지하는 차원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난지산은 사실 난지도가 쓰레기 매립지로 쓰였던 시기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지만, 사람들에게 ‘산’이라고 여겨진다면 인지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마치 한 사람 같은 팀워크

이종철 각자가 맡은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 각 소장 스타일에 맞는 직원을 뽑아서 그 부서가 커지는 구도를 그리고 있다. 셋의 스타일이 비슷하기도 하지만 명확히 구분되기도 한다.

김건호 우리는 공모전을 할 때 업무 분장을 하지 않아도 마치 한 몸처럼 글 쓰고, 렌더링 뽑고, 도면 치는 프로덕션이 가능하다. 그렇게 각자의 작업을 합치면 하나의 결과물이 완성된다. 이처럼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가 비슷한 수준으로 일을 파악하고 소화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 비었다 싶은 부분을 바로바로 알아채서 함께 메워갈 수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혼자 작업하든 집단으로 작업하든 온전하게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업무 상황을 다 컨트롤할 수 있도록 내 능력 안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

강현석 사무실의 인원이 늘어난다면 개인의 능력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 양적으로는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많은 양의 프로젝트를 해내고, 프로세스를 빨리 진행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모든 프로젝트에서 지향하는 바를 계속 지켜 나가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셋의 균형이 좋고, 훌륭한 시너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설계회사 사무실 풍경

세대론

과연 세대를 나눌 수 있을까?

김건호 귀국한 뒤 우연히 한국 건축가 1세대, 2세대와 관련된 프로젝트에 많이 참여했다. 그때 관심있게 봤던 자료나 작업 내용을 떠올리면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건축가의 처지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또 최근에 1950~60년대 건축가, 1960~70년대 건축가가 재조명되며 그 분들이 했던 이야기나 지은 건물들을 접하게 됐는데, 들여다보면 주어진 제약과 상황 안에서 시대적 요구와 개인의 창작 욕구, 이 두 가지 생각을 오가며 갈등하고 분투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대 선진국의 건축을 국내에 하루 빨리 이식해야 하는 와중에 건축가로서 하고 싶은 작업은 따로 있지만 국가에선 못하게 막았다.

심지어 20세기 초의 건축가들에게도 당시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더니즘 건축에서 환경과 위생에 관한 논의가 등장하는 것처럼, 다같이 어떤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동시대성을 갖게 하는 의식이 있고, 한편으로 건축가 각자가 표현하고 싶은 창의적인 발상이 공존한다. 늘 이 두 가치가 부딪히곤 한다. 그런 상황은 시대를 막론하고 똑같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굳이 세대 구분이 필요한가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국내에서 건축가의 세대를 따져보자면, 일본이 소화한 모더니즘이 이식된 세대, 그들에게 배운 후, 직접 제일세계로 유학을 다녀온 세대, 아마 그 다음이 우리 세대 정도 될 것이다.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또 해외로 나가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모더니즘 건축의 원본에 점점 가까워질 뿐이다. 결국 “아, 앞세대의 이야기는 열화된 버전이었구나. 하지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같았구나”하고 깨달을 것이다. 본질은 같다.

정보의 접근과 활용에 따라

김건호 세대 간에 다른 게 있다면 정보의 양 뿐이다. 과거에는 해외 정보를 먼저 입수한 소수의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선진 문물을 빠른 시일 안에 국내로 도입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예를 들어 김중업, 김수근의 건축을 보면 그 안에 정말 많은 레퍼런스가 동시에 등장한다. 김수근의 건축에서 단게 겐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김중업의 건축에는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동시에 등장한다.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만 국내에서 그 둘을 동시에 배운 사람에게는 둘이 공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접근이 가능했던 것은 동시대 건축을 배울 수 있는 채널 자체가 너무나 좁았고, 그걸 배워 실현할 수 있는 사람도 극소수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넘쳐나는 정보 중에서 각자가 취사선택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만 들어가도 수백가지 이미지가 뜨고 학생들은 거기에서 고른 것을 레퍼런스로 들고 온다. 조금만 더 찾아보면 관련 정보를 찾는 것은 너무나 쉽다. 오히려 그런 걸 찾아보지 않는 아이들에게 ‘너는 왜 하지 않냐’고 물어볼 정도다. 이제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정보는 평준화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레퍼런스를 이미지로만 소비하고 끝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학생에게 ‘그 레퍼런스가 왜 좋게 느껴지는지에 대해서 분석을 해야한다’고 주문한다. 그 사례가 좋은 이유는 재료 혹은 환경 때문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눈에서 대상까지의 거리, 공간의 폭과 높이, 재질 등으로 구체화해 수치적으로 해석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체화했을 때 비로소 건축가로서 설계를 통해 그 느낌을 재현할 수 있다.

아이디어 제안,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

김건호 건축가가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제시하는 해법은 사회학자나 운동가들이 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그들이 오랜 시간 다양한 사회의 층위를 고려하여 연구한 방안을 제시하는 방식이라면, 건축가는 ‘이런 것은 어떨까?’ 하고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에 가깝다. 물론 건축가가 다양한 층위를 연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건축가가 내는 목소리는 건축적이고 거기에는 분명한 다름이 있다. 건축가가 사회적 문제를 다룰 때, 제안하는 것이 결과로서 건축물이든 다른 미디엄을 통한 지적 생산물이든, 이를 통해 사회의 특정 문제나 상황을 환기하거나 그에 대한 이슈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제안이 완성된 디자인으로서 그 만의 내적 논리를 가질 수 있다면 더욱더 좋겠다.

강현석 클라이언트는 건축가가 제시한 도면을 통해 구체적인 미래를 상상한다. 이렇듯 건축가의 드로잉과 그에 결합된 텍스트는 다가올 시간의 이슈에 대한 논의와 제안을 촉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매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60, 70년대의 아키줌(Archizoom), 아키그램(Archigram) 혹은 슈퍼스튜디오(Superstudio) 등을 포함한 실험적 건축 그룹의 작업들을 통해서 이러한 건축 작업의 고유하고 독특한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건축가가 과거의 레퍼런스와 담론에 기대어 현재를 그려내듯이 현재에 대한 분석과 성찰을 통한 근미래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행위가 건축가의 사회적, 시대적 역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에서 ‘문제와 해결’보다는 ‘드러냄과 질문’이 화두가 될 때 더욱 가벼운 태도로 풍성한 가능성들이 모일 수 있을 것이다.

구축적인 측면에서는 좁은 폭의 진보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다가구 주택을 설계 중인데 공용 부분을 늘리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세대별 전용 면적이 임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건축주를 설득하기가 어려웠는데 선배 건축가들이 최근 구축한 선례들에 기대어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 있었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것은 이렇게 한 걸음씩 이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건축,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김건호 요즘 신입 사원 포트폴리오를 받아보면 내용 자체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 학교마다 2학년 주택, 3학년 오피스 리노베이션, 4학년 도시 스케일의 복합시설 등의 형식으로 커리큘럼이 비슷하게 짜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꼭 문제일까 싶고, 그 목적에 대해서도 공감하면서도, 수업의 내용이나 진행 방식, 결과물에 있어서 좀 더 인스트럭터의 자율성이 있었으면 한다.

설계 수업에서 ‘이 건물은 알프스산맥에 위치한 대피 공간이다’ 같은 주제로 수업이 진행될 수도 있고, 중력이 없는 공간에서 뭔가를 해보자는 식의 발상이나 과거의 건축물이 시공을 초월해 (현재로) 들어왔을 때 어떻게 적용될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학생들이 건축적 상상력을 발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고, 특히 저학년일수록 그런 수업을 통해 좀더 재미있게 건축적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순수하게 공간을 상상하고 구축하는 일은 원초적으로 즐거운 일이다. 건축을 모르는 아이들도 레고를 가지고 노는 것을 보면 구축은 본능적 유희 같다. 하물며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현실적 차원을 넘어서서 각자의 논리로 저마다의 공간들을 상상해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서 배리어 프리나 엘리베이터 사양을 따지면 어색하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건축 교육은 아쉽다.

강현석 미디어 매체의 발전으로 대부분의 학생이 내가 학생이었던 시절보다 훨씬 많은 ‘건축적 단어’들을 알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사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무슨 ‘건축 어휘’로 어떤 ‘건축적 문장’을 써야 하는지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건축 사례들의 내적 논리와 구축 질서에 대한 이해보다는 단편적이고 속도감 있는 이미지들에 편중되어 노출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학생들에게 중간 과제물로 내러티브 북을 만들게 하고 있다. 건축 드로잉과 글로 구성된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다. 매 페이지가 독립된 정보를 담는 PPT 형식이 아닌 일련의 시퀀스를 가진 이야기 책의 형식을 갖추도록 하고, 그 결과물을 건축 비전공자이자 신문 기자인 지인이 읽고 코멘트를 주도록 부탁하고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건축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텍스트로 써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선 글을 짓고 건축 어휘로 치환하는 방법이다. 나 또한 이러한 과정을 꾸준히 연습하고 있다.

인터뷰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설계회사

설계회사(SGHS)는 강현석, 김건호에 의해 2015년 설립된 건축사무소로 내러티브와 텍토닉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강현석은 성균관대학교와 코넬건축대학원에서 공부하고 헤르조그 & 드 뫼롱의 바젤 사무실에서 일했다. 김건호는 성균관대학교 졸업 후 정림건축과 DMP건축에서 근무했고, 이후 코넬건축대학원과 하버드디자인대학원을 졸업했다. 이종철은 이로재 등에서 긴 실무를 쌓은 후 2020년 설계회사에 합류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0년 특별전 <상상의 항해>(서울, 2016)에 참여했고,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7>에 최종 후보군에 선정된 바 있고,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에 작가로 참여했습니다. 서울시 통합 수장고 건립 프로젝트 당선작을 실현 중에 있고, 최근 ‘진실과 화해의 숲’ 조성사업 국제설계공모에서 당선했다.


  • 개소 연도: 2015
  • 주로 활동하는 도시: 서울
  • 프로젝트 수주 비율
    (현황) 공공 신축 80%, 민간 신축 10%, 전시 및 학술연구 10%
    (미래) 공공 신축 45%, 민간 신축 45%, 전시 및 학술연구 10%
  • http://www.sghs.tv

설계회사

분량9,731자 / 19분 / 도판 10장

발행일2021년 7월 1일

유형인터뷰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