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일: 함께, 즐겁게, 오래
심미선
분량2,413자 / 4분
발행일2021년 11월 1일
유형서문
건축가의 일이란 보통 작업 결과인 건축물을 지칭한다. 건축가에게 “당신은 어떤 건축가입니까?”라는 질문을 건넬 때에는 그가 어떤 작업을 했는지, 건축가로서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건축계 이슈에 어떠한 입장인지에 먼저 관심을 두게 된다. 건축가의 일은 이러한 개별성을 지니는 것인 한편, 업무 자체만 떼어놓고 봤을 때는 절차에 의해 수행해야 하는 과제가 명확하고, 전문적인 분업이 필수이며, 실현 과정에서는 더 확장된 영역의 사람들과 협업하는 일이다.
설계사무소 구성원이 일하는 모습은 각자 설계한 건물이 다른 것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그 이유는 전문 기술과 경력을 보유한 선임에게 일을 전수받아야 하는 설계 업무의 특성상, 업계에 체화된 시스템인 도제식 체제를 기본으로 운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10인 이내의 소규모 조직에서는 더 그렇다. 이 체제에서는 피라미드식 구조나 불합리한 처우는 지양한다 하더라도, 사무소를 이끄는 이들의 자의식이 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
사무소 경영 방식은 실무 과정에서 어깨너머로 배우며, 운영과 사업 전략은 감각적으로 갖춰나가곤 한다. 업계에 전해 내려오는 말처럼, “회사 차리면 무조건 5년은 굶는” 입장에서 일하는 방식까지 다잡고 가기란 쉽지 않다. 사무소 운영의 측면은 어쩌면 시간이 더 필요한 주제이겠지만, 건축가 일의 일면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젊은 건축가를 읽을 수 있는 하나의 필터다. 그런 차원에서 사무소 운영이라는 관점으로 이번 시즌에서 만난 열두 팀을 바라보고 짧게 소개하려 한다.
먼저, 소장 포함 5인(직원 2~3인)을 기준으로 나뉜다. 5인 이하의 작은 조직부터 들여다보면, 소장이 개념과 초안을 잡은 뒤 팀원과 분업하는 전통적인 구도의 지요와, 세 명의 소장이 브레인스토밍부터 최종 결과물 생산까지 합을 맞춰 만들어가는 설계회사가 있다. 이들은 마치 확장된 나처럼 긴밀하게 움직인다. 바래, 이심전심, 바운더리스는 후술하겠지만, 건축 설계에서 확장된 업역에서 인접 분야의 전문 인력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낮은 체급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 계획에 따라 점차 규모를 늘리거나,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대형 프로젝트에 관심을 두고 있는 mmk+나 RoA는 구성원 수가 8~9명으로 다른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원이 많지만, 비슷한 규모의 조직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지향한다. mmk+는 첫 프로젝트였던 노들꿈섬부터 협업 구도로 시작해 이후에도 다양한 팀들과 컨소시엄을 이루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RoA는 장기적으로 내부 인력을 인큐베이팅해 그들이 독립한 뒤에도 리좀 구조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방향을 그리고 있다.
사무소 운영 시스템을 구체화하는 팀도 있다. 팀 구성, 팀원의 역할 분담 등에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거나(BUS, 포머티브, 오피스아키텍톤), 업무를 진행할 때 생산되는 건축 정보의 공유와 기록을 철저히 하고(피그), 조직 운영과 재무에 관한 디테일을 구성원 에게 공개하는(포머티브) 등 각자의 철학에 따라 세부 내용이 달랐다. 그리고 앞으로 IT 업계의 업무수행 방식을 차용해 구성원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전환하고 싶다는 뜻을 가진 팀(아키후드), 지역 리서치나 책 강독회 등의 사내 프로그램을 통해 자체 역량을 키우고 사무소의 외연을 넓혀나가는 팀(오피스아키텍톤)도 있다.
한편, 사무소 규모와 관계없이 인테리어, 디자인, 미술, 건축이론 등 건축 설계 인접 분야의 인력을 포섭해 각자의 관심과 역량을 충분히 반영한 프로젝트를 기획, 실행하는 전략도 눈에 띄었다. 팀 결성부터 건축가와 미술가의 만남으로 시작되어 건축 설계와 제품 디자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이심전심을 비롯해, 공간 기획과 운영(포머티브, 바운더리스), 리서치와 전시(바래) 등의 영역에서 건축가들이 텃밭을 일구고 있다.
건축가가 일을 꾸려나가는 방식을 살피더라도 이처럼 조직 운영, 프로젝트 유형, 관심사, 방향성 등의 키워드를 포괄하여 그들이 그려나가는 건축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을 때, 구성원과 함께, 즐겁게, 오래 일하고 싶다는 바람과 더불어, 더 넓은 영역에서 더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답하는 그들과의 다음 만남이 더욱 기다려진다.
2020년 벽두부터 시동을 걸었던 <등장하는 건축가들> 세 번째 시즌이 팬데믹을 거쳐 ‘위드 코로나’ 즈음이 되어서야 어렵사리 막을 내렸다. 기존에 포럼 후 후속 인터뷰로 진행했던 것이 사전 인터뷰 후 포럼으로 순서가 바뀌었고, 오프라인 현장에는 40여 명의 청중 대신 사회자, 건축가, 초대 손님 등 최대 4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도 네 번째 시즌 역시 비슷한 형식을 유지하되 위드 코로나에 걸맞은 대안을 고안해서 2022년 여름에 돌아올 예정이다. <등장하는 건축가들> 기획 초기에는 시즌을 세 번쯤 진행하면 어느 정도 신인 건축가 군이 고갈되고 포럼도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는데, 우리가 만나야 할 후보가 자꾸만 늘어난다. 발걸음을 바삐 옮겨야겠다.
심미선 건축신문 편집자
건축가의 일: 함께, 즐겁게, 오래
분량2,413자 / 4분
발행일2021년 11월 1일
유형서문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