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새로운 영역
황정현, 현창용, 박혜선, 임윤택, 고석홍, 김미희
분량2,400자 / 5분
발행일2020년 2월 29일
유형인터뷰
건축가의 역할은 점점 세분되고 다양해지고 있다. 건축 프로젝트의 기획이나 좋은 건축주들을 만들기 위한 책 집필까지, 건축가의 관심사와 역량에 따라 충분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다. 초대 건축가들과의 인터뷰 가운데 ‘건축(가)의 새로운 영역’에 대해 이야기한 네 팀의 말을 한데 모았다.
H2L: 커뮤니티 기획, AI 설계
황정현 도시재생 분야를 들여다보면 공동체 전문업체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주민을 교육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일에서 건축가가 주민 협의를 이끌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실행력이 좋아진다. 하지만 건축 지식을 바탕으로 한 인력이 부족하다. 이 분야가 생소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도전만 한다면 건축가가 충분히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현창용 스페이스워크의 랜드북이 개척이라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사례인 것 같다. 필지를 선택하고 규모 검토를 요청하면 결과가 자동으로 산출되는 프로그램은 대단히 혁신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플랫폼을 건축가가 만들었다는 것도 획기적이다. 대중들이 건축가를 선택하는 폭이 넓어지고 접근하는 문턱이 낮아져서 능동적으로 움직일 여지가 많아졌고, 랜드북은 거기에서 디지털 정보 기술의 힘을 더해준다.
이제 사업 타당성 검토나 건축 가능 규모 산출의 기본 단계까지는 건축가를 만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마련된 것이다. 앞으로는 거기에 시공 업체나 개발사의 자본이 투입되고, 규모 검토부터 건물 기본 설계까지 프로그램 하나로 할 수 있는 시대가 5~10년 안에 올 거라 예상한다. 프로그램을 이용해 출력한 꽤 괜찮은 설계안을 미리 들고 건축가를 찾아가는 시대가 온다면 인공지능이 만든 기본 설계를 바탕으로 실시설계와 인테리어 디자인을 진행해서 건물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서가건축: 책 쓰기
박혜선 책 쓰기인 것 같다. 건축에 관련된 책을 내는 일이 건축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는 내용, 건축가가 하는 일이 뭔지, 시공자와 어떻게 다른지 같은 내용이다. 집을 지으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건축주들이 많지만, 일반 교양서는 부족한 것 같다.
우리에게 사옥을 의뢰했던 출판사 편집장님이 책 쓰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집을 지으려고 할 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좀처럼 알 수가 없는데, 기존의 몇몇 책들은 너무 비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다른 대부분의 책은 건축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성격이라서 그 중간에 있는, 일반인이 실질적 도움이나 교양을 쌓을 만한 책이 없다고 한다.
문제는 건축가의 언어와 일반인의 언어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 건축가의 언어로만 글을 쓰다 보니 일반인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누가 됐든 그런 책을 정리해서 내주면 일반 독자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원더 아키텍츠: 역량과 관심에 따라
임윤택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이 꽤 넓고 다양해서 마음먹기 나름인 것 같다. 인테리어 작업은 그간 적지 않게 해와서 재밌게 일하는 편이고, 의미 있는 작업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도 있다. 제품이나 전시 작업도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다. 모두 형태, 형상, 조형, 공간을 다루는 일이라서 결은 조금씩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서로 맞닿아 있는 일이다.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분야 사람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들은 새로운 영역이라기보다는 접근 가능한 영역이다. 다만 거기에 건축가로서 참여할 역량이 있는가의 차이라고 본다.
정말 ‘새로운’ 영역에 대해서는 요즘 별로 관심이 없어졌다. 예전에는 컴퓨테이션이나 파라매트릭 디자인을 보면서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고, 말 그대로 ‘새로운 영역’에 대한 꿈이 있었다. 지금은 차분하게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다. 우리 주변도 제대로 돌아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앞으로만 전진한다고 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수건축: 설계에서 벗어나기
고석홍 예비 건축가들이 건축 교육을 기반으로 여러 분야로 진출했으면 좋겠다. 인턴이나 학생들을 만나보면 졸업 후 설계 일을 하려는 사람은 절반이 안 된다. 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우려도 있지만, 내 생각엔 오히려 건강한 기회인 것 같다. 그들이 건축을 토대로 다른 분야로 퍼져나가서 거기서 건축을 접목한 다른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거꾸로 건축가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게 되지 않을까.
기존 건축가는 지금 부여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현업 건축가가 해야 할 영역이 있다면, 앞에서 이야기했듯 건축가로서 대중들과 만나서 대중이 건축을 더 잘 접하게 돕는 일이다. 그런 역할을 하는 건축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대중 매체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들을 두고 예전에는 말이 많았지만, 나는 그런 분들을 응원한다. ‘진짜 젊은’ 다음 세대 건축가들을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건축의 진정한 대중화라고 생각한다.
김미희 우리 학창 시절에 설계 수업에서 그냥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게 예쁠 것 같아요’라고 하면 ‘건축가의 어휘’가 아니라며 혼나곤 했다. 요즘 학생들이 쉽게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점도 우려하지만, 나는 그게 긍정적인 것 같다. 솔직하고, 쉽고, 오해가 없는 심플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그들이 건축가가 되면 대중과 훨씬 더 원활하게 소통할 것이다.
건축(가)의 새로운 영역
분량2,400자 /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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