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거날 써츠
강소진, 김사라
분량7,054자 / 14분 / 도판 16장
발행일2020년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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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awareness)
건축의 인생은 어느 한때의 문제보다 크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업을 지속하면서 ‘무엇을’ 고민할지보다 ‘어떻게’ 고민할지가 중요해지고, 고민도 조금 선명해진다. 일상은 느리고, 일반적으로 잘 인식되지 않는다. 인간은 기억(과거)과 상상 혹은 기대(미래)로 현재를 산다. 지금, 이곳을 인식할 수 있는 공간적 장치가 필요하다.
불확실성(uncertainty)
대치(對峙) 혹은 상보(相補), 낯섦, 과정(transition). 이중성 혹은 다중성을 작업에 내포한다는 것은 불확실성에 대한 확신이다. 이는 예견치 못 한 낯섦을 포용하고 나아가 가능성을 열어낸다. 상반된 상황들은 서로 대치하며, 동시에 관계를 맺고, 영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불협화음의 협업을 만들어간다. 우리는 이런 움직이는 변화와 과정이 건축적 경험에서 촉발되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건축이라 믿는다.
물질(matter)
물질은 건축 재료를 이루는 요소이며, 그 성질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것이다. 재료가 되기 이전에 가진 본래의 것, 건축 재료의 특징보다 물질에 집중하는 이유는 미처 발견하지 못 한 본연의 물성을 끌어내어 촉각을 통한 공감각적 경험을 재발견하기 위함이다. 만들기 과정에서 어떤 재료와 시공 디테일을 결정하는 요인은 특정한 경험에 필요한 건축적 장치를 최대한 근사치로 생산해내는 것에 있다.
다이아거날 써츠
다이아거날 써츠는 건축, 디자인, 사고를 매개로 작업하며 인간의 삶 속의 공간을 통한 크고 작은 인식과 지각 변화의 경험을 탐구한다. 아이디어와 그것을 구체화하는 물질 간의 치밀한 관계에 중점을 두고 프로젝트에 따라 국내외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실험적인 협업을 지향한다. 대표작으로는 부산 PPP, 문화역서울284의 〈도어, 펼쳐진 시공간〉, 경기문화재단에서 주관한 노마딕 경기 아트페스타 공공하는 예술의 〈마지막 장소〉 영상이 있다. 김사라는 국민대학교와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을 졸업하고 뉴욕의 오브라 아키텍츠와 조병수 건축연구소에서 다양한 실무 업무를 경험했다. 이후 국내의 홍익대학교와 덴마크의 아르후스 건축대학을 포함하여 미국, 인도, 중국 대학에서 강의와 워크숍을 진행했다. 강소진은 파슨스 스쿨 오브 디자인을 졸업하고 조병수 건축연구소에서 실무 업무와 다수의 건축 전시, 설계공모 경험을 쌓았고, 2015년 다이아거날 써츠에 합류했다. diagonal-thoughts.com

실무 경험에서 얻은 것은?: 사유와 감각
김사라 미국에서 대학원 졸업 후 오브라 아키텍츠와 조병수건축연구소에서 일했다. 오브라 아키텍츠의 파블로 카스트로(Pablo Castro) 선생님은 함축적 사고와 논리적 사고를 넘나들며 사유하는 분이다. 학교에서 그의 스튜디오 제목이 ‘Disremember to unforget(잊지 않기 위해서 기억하지 않는다)’이었다. 그 수업을 통해 건축의 주제를 발의하는 영감의 원천과 방법을 배웠다. 오브라 아키텍츠에서는 역사적 레퍼런스 연구를 꾸준히 하고, 그것을 재해석하는 방법으로 작업했다. 특히 모형 작업이 상당히 중요했는데, 만들기 과정과 물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조병수 소장님도 그런 맥락에서 인연이 닿았다. 파블로 선생님과는 작업 과정이 많이 달랐지만, 물성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유사점이 있었다. 형이상학적인 사유로부터 출발하는 건축가와 실제적인 경험과 만들기로부터 시작하는 건축가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다루는 법을 익혔다.
강소진 미국에서 학부 졸업 후 몇몇 사무실에서 인턴을 했고, 조병수건축연구소에서 첫 실무를 시작했다. 조병수 선생님은 직관적이고 감각적이다. 그런 경향이 내게 잘 맞았다. 그가 감각을 건축으로 구현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웠고, 나 자신의 성향을 확인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실무에서 익혔던 디테일이나 현장감보다는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을 하나둘 더 꺼내보게 되는 것 같다.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개념이나 방법론을 깊게 들여다보게 되고, 감각을 더 자유롭게 움직여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 같다.
현재 관심사는?: 공간의 경험을 통한 인식의 변화
김상호 발표 때 ‘또 다른 세계를 만들려고 한다’는 표현을 했다. 듣고 보니 다이아거날 써츠가 하고자 하는 것이 건축의 텍토닉이나 디테일한 면을 드러냄으로써 건축가로서의 만들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이나 감각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세계’를 만든다고 말하는 것인가?
김사라 ‘다른 세계를 만든다’는 말은 이미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하지만 쉽게 지나치는 것을 일깨우는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헤겔의 휴일〉에서처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우산과 컵을 특정하게 병치함으로써 두 물건의 본질적 용도를 재인식하고 둘 사이의 내재적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같은 장소라도 어떠한 건축적 장치에 따라 사람마다 경험하는 게 다를 수밖에 없다.
김상호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공간의 경험이 중요하니 외부와 차단된 내향적 공간을 만드는 것 같다. 작업이 모두 내부 지향적이고, 그 안에서의 경험이 강조된다.
강소진 그것은 프로젝트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부산 PPP 프로젝트의 경우는 가장 중요한 건축적 요소이자 공간이 두 볼륨 사이의 장소다. 대지 주변 상황이 좋지 않아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경험하는 데에 집중했다. 폐쇄적인 곡면 벽과 의도적으로 길게 늘인 진입 동선을 따라 내부로 들어오면, 예상하지 못한 내부공간의 개방감과 의도적으로 제한된 외부로의 시선에 집중하게 된다. 예상하지 못했던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감각을 깨워주는 것,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나려는 발상은 우리에게 중요한 방법론이다.
청중A 마그리트 그림을 예로 들면서 ‘어떤 걸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어, 펼쳐진 시공간>이나 <마지막 장소>에서는 그런 방향성이 뚜렷하다. 다만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재적인 무엇인 것 같다. <마지막 장소>의 얼음은 비구축적이지만 매우 이상적인 정육면체이고, 그것을 통해 내재적인 무언가를 드러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한편, 건물 작업인 PPP 프로젝트는 다른 설치 작업에 비해 내재적인 무엇보다는 형태가 훨씬 더 눈에 들어왔다.
김사라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것들이 드러나면서 인식의 변화를 만드는 것이 마그리트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던 것 같다. 다들 마그리트의 작품을 보고 낯설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낯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나는 그가 초현실주의자가 아니라고 본다. 달리와 같은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완전히 다르다. 잠재의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의식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료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우리를 초현실주의자라고 부르면, 우린 정색하면서 “무슨 말씀을, 우린 극사실주의자야!” 라고 답한다. (웃음) 이미 있는 걸 더 잘 보이게 하는 것 뿐이라고. 우린 공간의 경험을 통해 어떻게 인식의 변화를 만들지에 관심 있다. 그런 면에서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마지막 장소>는 훨씬 더 실험적인 작업이다. 어떤 목표를 두지 않고 어떻게 만들지만 ‘설정’했다. 그런 설정 자체가 또 다른 구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임진영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이나 사고의 전개 방식이 예술가의 방식과 비슷하다. 기존 건축계에서 익숙한 접근법은 아닌데 혹시 그런 차이를 스스로 인식하고 있나?
김사라 모두가 작업하는 방식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각자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생각해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미 남들이 해온 방식을 차용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무엇을 고민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소통할지에 집중하고 있다. 6개월간 작업했던 <마지막 장소>는 프로젝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리 자신도 새로운 면을 보고 배우고, 당시에 생각하지 못했던 걸 깨우친다. 작업할 당시에는 프로젝트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과정에 놓이는 것 같고, 그래서 프로젝트 이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게다가 인간의 기억에 오류도 있다. 이 프로젝트의 진짜 이야기가 무엇인지 우리도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이 작업한 우리 둘도 전혀 다르게 기억하는 것이 있다. (웃음)
〈마지막 장소〉의 의의: 사고의 확장, 해석의 여지
청중B 다른 건축가의 작업 과정과 비교했을 때 다이아거날 써츠는 도큐멘테이션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느꼈다. 그 과정에서 작업의 의미가 확장되는 것 같다. 특히 <마지막 장소> 영상에서 중력의 방향에 대한 생각이 흥미로웠다. 현장에서 직접 작품을 봤다면 오히려 그런 건축가의 생각이 읽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상을 통해서, 특히 안무가의 몸짓에서 전혀 생각치 못했던 중력의 방향이 인지되는 것이 신선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나중에 있을 시각적인 도큐멘테이션 과정을 어느 정도 고려하는 편인가? 영상에서 안무가와 협업할 때 어느 정도까지 디렉션했는지 궁금하다.
김사라 중력을 바꾸는 시도는 안무가와 영상 작가와 우리가 처음부터 생각하던 장면이다. 10개 정도의 장면을 생각해 20여 분짜리 영상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도큐멘테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확장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런 부분에서 여러 작가들과의 협업하면서 우리가 보지 못한 부분까지 포착할 때가 있다.
청중B 처음에 의도하지 않았던 비결정적인 요소가 우연한 효과로 나중에 도큐멘테이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그건 처음부터 의도해서는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김사라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도록 작업하고 있다. 그래야 우리가 하는 작업이 한 번의 해석으로 끝나지 않고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다영 내가 볼 때는 건축가가 공간을 두고 안무와 결합하는 시도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어쨌든 그 작업을 통해 ‘비구축을 위한 구축’이나 형태보다는 공간을 말하려는 시도를 보여줬다. 나는 <마지막 장소>가 오히려 매우 형태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기하학적 형태가 주는 기념비성이 있는데, 영상은 마치 인디언이 재물을 바치는, 정방형 얼음을 신격화시키는 모습으로 묘사됐다. 작업 설명과는 반대 접근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구축’이란 말에서도 나는 무대 디자인을 떠올렸다. 얼음 오브제를 하나의 무대 요소로 삼아 그 주변의 풍경을 치밀하게 구축하려는 느낌이다. 그래서 정작 그 ‘비구축’의 의미가 무엇인지, ‘짓지 않음’을 뜻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김사라 이전 상영회 때도 비슷한 코멘트가 나왔다. 그때는 더 신랄했다. ‘봉춤에서 봉이 얼음으로 바뀐 거랑 뭐가 다르냐’고. (웃음) 그 상영회에는 건축계 사람보다 예술계 사람이 더 많이 왔는데, 당연히 예술계에서는 흔한 작업이고, 예술의 측면에서는 이것이 구축일 수도 있다. 이 프로젝트를 둘러싼 논쟁에서는 단어의 정의가 필요하다. 구축/비구축에 대한 정의가 서로 다르고, 물질/비물질의 정의도 다르다. 건축가에게 물질이란 당연히 건축 재료이겠으나, 어떤 건축 비평가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물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말씀한 부분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건축가가 기획하고 작업한다는 전제 조건에서 조금은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벽이나 바닥 없이 어떻게 공간을 만드는가’에 관한 작업이다. 예술가들은 늘 해왔던 일이고, 안무가도 자신의 몸이 만드는 경계를 늘 연구해왔을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의미를 찾고 생각하는 지점을 발견한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처럼 다른 생각을 말해주는 것이 우리에게 소중하고, 철학적 담론으로 자연스레 옮겨가는 이런 이야기가 우리는 재미있다.
강소진 덧붙이자면, 건축적으로는 ‘비구축’을 하려고 했지만, 우리는 어떤 결과물로 만들어보려 했고,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경험에 대한 ‘구축’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꼭 ‘구축’이 물리적으로 짓는 것만이 아니라 ‘생각’의 ‘구축’이 될 수도 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김상호 그렇다면 건축은 지어지지 않아도 성취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나?
강소진 일반적으로 건축가가 공간을 표현하는 방법이 설계도를 그리고 집을 짓는 행위에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굳이 짓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도면을 그리는 것도 그 방법론 중 하나다.
김사라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학창 시절에 ‘왜 공간을 꼭 도면으로 표현해야 할까’ 질문했다. 도면은 공간을 이야기하는 하나의 소통 도구다. 건축 교육을 통해 도면이라는 언어를 습득해서 잘 쓰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으로 채워나갈지 계속 고민한다.
구상하고 있는 조직의 모습은?: 활동 반경 넓히기
김사라 지난 몇 년간 각개전투로 달려왔다. 모든 일을 단둘이 하다 보니 항상 과부하상태다. 일이 정말 많았을 때는 신축 프로젝트 세 개, 전시 두 개를 동시에 진행한 적도 있다. 그땐 사무실에서 누굴 가르쳐가면서 일할 여력도 없었다. 이제부터는 시스템을 갖추고, 협업을 통해서 일을 분담하고 싶다. 무엇보다 건강한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 아직 생각이 구체적이진 않다.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활동 시장을 확대하고 싶다. 독립해서 일을 시작할 때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덴마크, 인도에서 강의를 했고, 지난 8월에는 상하이 동제대학교(Tongji University)와 부산대학교 학생들과 중국에서 워크숍을 진행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건축가 협회의 젊은 건축가 국제 교류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다녀왔고, 한국 재단에서 후원하는 잘츠부르크의 ‘영 컬처 이노베이터 포럼(Salzburg Global Forum for Young Cultural Innovators)’에 참가하여 각국의 사회 활동가, 예술인, 디자이너, 건축가와 네트워크를 넓혔다. <마지막 장소>와 같이 국제적인 협업 프로젝트와 그 네트워크를 통해 영역을 넓혀가고 싶다.
인터뷰어 & 패널
- 김상호(정림건축문화재단 실장)
- 임진영(건축전문기자 / 오픈하우스서울 대표)
-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 심미선(건축전문기자)
PPP






건축 개요
- 위치: 부산시 강서구 명지동
- 주용도: 레스토랑
- 대지면적: 299.00㎡
- 건축면적: 109.72㎡
- 연면적: 152.91㎡
- 건폐율: 36.7%
- 용적률: 51.14%
- 층수: 지상 2층
- 구조: 철골조
- 마감: 점토 파벽돌, 시멘트 미장
- 의뢰방식: 시공사 통한 소개
- 설계·공사기간: 2017.7–2018.4
- 설계: 김사라, 강소진
- 구조설계: 예정엔지니어링(김상곤)
- 시공: 정인하우징
- 모형: 자연공감도(김명례)
다이아거날 써츠
분량7,054자 / 14분 / 도판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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