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미술 사이에서: 미술관 건축을 전시하기
윤원화
분량11,484자 / 20분 / 도판 3장
발행일2019년 8월 29일
유형비평
미술관에서 열리는 건축 전시가 역사적으로 아주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건축이 미술의 관점에서 예술의 한 부문으로 규정되는 데 그치지 않고, 잠재적으로 미술을 재규정할 수 있는 이질적인 힘으로 언뜻언뜻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것은 건축이 미술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친 결과라기보다, 오히려 그런 분과 간 경계가 느슨하게 유동하면서 미술과 건축의 여러 행위자들이 각자 자신이 처한 위치를 인식하고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일어난 변화다. 그래서 관객 입장에서는 건축 전시가 보여주려고 했던 내용보다 그것이 의도치 않게 노출하는 전시의 맥락이 좀더 흥미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 같은 맥락의 전면화는 미술관 건축 자체가 전시와 관람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 더욱 뚜렷해진다. 미술관 건축은 미술과 건축이 물리적으로 접하기 때문에 오히려 두 분과의 시점 차를 첨예하게 드러낸다. 미술관 건축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그것은 어떻게 보여야 하고, 또 어떻게 보이지 않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 앞에서 미술관 건축은 미술이 생각하는 건축의 이미지와 건축이 생각하는 미술의 이미지가 이중으로 투영되는 일종의 스크린이 된다. 결과적으로 미술관 건축의 전시는 어느 분과의 관점에서도 전체를 보기 어려운 이질적인 혼성물로 나타난다. 언뜻 보기에는 다중적 시점에서 바라본 장면들이 매끄럽게 접합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논리적인 접합면들이 전시를 가로지르며 잠재적으로 균열을 내포한다.
건축 전시가 미술 제도와 연계해서, 부분적으로 그 내부에서 가동되고자 한다면, 이 균열을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현재의 건축 전시는 미술의 주변부이자 건축의 주변부로서 어느 쪽에서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한산한 국경 지대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양쪽 중심부의 규율과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건축 전시는 미술 전시가 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건축 분과의 대중 홍보 수단으로 국한될 이유도 없다. 그것은 새로운 전시가 될 수도 있고, 고유한 방식으로 전시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 이 글은 서울관 신축 전후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시도했던 미술관 건축 전시의 몇 가지 형식을 살펴보면서, 근래 한국의 건축 전시를 둘러싼 맥락의 역동성과 다층성을 검토한다. 다양한 시선들이 서로 교차하거나 어긋나는 가운데 생겨나는 불안정한 공간이 있다. 건축 전시는 바로 그런 곳에서 태어난다.
미술관 건축의 전시
가까운 과거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새로운 세기, 새로운 미술관》은 1990년대 미술관 건축을 개괄하는 전시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벨기에, 독일,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이탈리아, 미국, 브라질, 멕시코, 일본의 17개 미술관을 순회하고 마지막으로 한국에 수입되었다. 이것은 여러모로 의외의 기획이었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건축 전시는 아직 정규 프로그램에 속하지 않았다. 전시를 제작한 스위스 바젤아트센터 역시 원래는 비서구권의 전통 예술을 유럽적 관점에서 미학적으로 연출하는 순회 전시에 특화된 업체로 현대 미술이나 건축과는 크게 접점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미술관 건축 전시가 만들어져서 한국까지 왔을까.

당시 출간된 전시 도록 『세계의 미술관』은 단편적이나마 여러 관계자들의 입장을 보여준다. 먼저 바젤아트센터의 수잔 그뢰브는 미술 에이전시로서 세계의 여러 미술관을 드나들면서 당대의 변화상에 순수하게 호기심이 생겼다고 이야기했다. 20세기 후반에 미술관의 양적 팽창과 질적 변화가 병행되면서 미술관 건축은 단순히 전시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미술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의하는 제도적 선언문이자 대중적 관광 명소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흥행을 약속했다. 실제로 미술관 건축을 다룬 《새로운 세기, 새로운 미술관》은 바젤아트센터의 가장 성공적인 전시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수차례의 후속 전시가 이어졌다.
다른 한편, 전시를 위한 리서치와 큐레이팅을 담당한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건축역사이론연구소의 비토리오 마냐고 람푸냐니(Vittorio Magnago Lampugnani )는 미술관 건축을 현대 건축의 역사와 전망 속에서 바라보았다. 20세기 미술관 건축의 흐름을 조망하는 짧은 서문에서, 그는 미술관이 지역의 상징적 구심이 되는 현대의 대성당으로서 건축의 사회적 책임과 예술적 자유를 되돌려준다고 썼다. 미술관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가가 독단적 개인이 아니라 순수한 건축 이념과 사회적 요구의 대행자로서 동시대 세계에 걸맞은 새로운 예술을, 심지어 미술을 압도하는 예술을 창조할 기회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술관 건축을 그저 미술에 봉사하는 건축의 한 갈래가 아니라 건축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이상적 유형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이런 관점에서, 람푸냐니가 안겔라 작스와 함께 편집한 영문판 전시 도록의 표지는 1996년 완공된 오스발트 마티아스 웅거스의 함부르크미술관 현대미술갤러리 사진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이 전시가 2005년 과천관으로 옮겨져서 한국어판 도록이 출간됐을 때 ‘새로운 미술관’ 의 대표 이미지로 채택된 것은 1997년 완공된 프랭크 게리의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이었다. 정사각형 격자로 분절된 웅거스의 백색 공간이 수도원과 같은 권위와 겸허함 속에서 미술을 수용한다면, 은색으로 구불구불하게 물결치는 게리의 티타늄 외피는 노골적으로 미술과 경쟁한다. 어쩌면 그것은 이미 전통적인 분과 간 경계를 넘어 전 지구적인 가시성의 경쟁 속에서 빛나고 있는지 모른다. 미술가에게 그 광채는 하나의 도전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미술관 경영자의 관점에서 그것은 일종의 패션이다. 과천에서 서울로 이전을 추진하고 있었던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의 입장에서 《새로운 세기, 새로운 미술관》은 잠재적 쇼핑 카탈로그이기도 했다.
전시 머리말에서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미술관 건축 전시를 주최하게 된 것을 “대중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성심” 의 발로라고 설명하면서, “시원한 건축 이미지와 재미나는 모형을 구경하는 … 즐거운 경험” 을 제안했다. 건축 전시가 미술 전시보다 대중 친화적이라는 관념은 실로 막연하면서도 강고하다. 그것은 건축의 내재적 특성보다도 미술관이 건축에 기대하는 역할을 반영한다. 당시 전시 사진을 보면 《새로운 세기, 새로운 미술관》은 건축 모형과 사진과 도면을 나열하는 전형적인 건축 전시로, 딱히 대중적인 고려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시원한 건축 이미지의 재미있고 즐거운 경험이 실현되려면 서울관이 완공되고 젊은건축가프로그램이 당도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건축의 피난처로서 미술관
MoMA와 MoMA PS1이 공동 기획한 젊은건축가프로그램(Young Architects Program, 이하 YAP )은 말 그대로 젊은 건축가를 대상으로 하는 건축 공모전이다. 매년 미술관 외부 공간에서 방문객의 쉼터로 기능할 수 있는 가설 구조물을 공모하고 한 팀을 선정하여 실제로 구현할 기회를 준다. 전시 형식의 측면에서 YAP의 장점은 모형이나 도면 같은 건축적 재현에 국한되지 않고 실물을 직접 가져다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건축물은 순수한 작품으로 작가의 판단에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이 부여한 위치와 역할에 의해 제한된다. 그것은 전시물인 동시에 부대 시설로 미술관의 내외부를 나누는 경계선에 놓이며, 그런 점에서 미술관 건축의 연장선에 있다. 시선을 끄는 스펙터클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와 건축의 고유한 논리를 더 순수한 형태로 실현하려는 희망 사이에서 동일한 드라마가 반복된다.
미술관을 건축의 잠재적 피난처로 보는 시선이 있다. 부동산의 논리에 따라 맹목적으로 파괴되고 건설되는, 공통적 삶의 공간이 아니라 추상적인 금융 기계로 최적화된 도시에서 한 걸음 물러나, 어떤 형태로든 자체적인 시공간을 가설하고 다른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여지를 미술의 영토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지난 세기 미술가들이 미술관을 번쩍이는 무덤으로, 살아 움직이는 문화를 억압하는 족쇄로 느끼면서 오히려 도시에서 예술의 새로운 자원을 구하려 했던 상황이 의외의 방식으로 역전된다. 이는 지난 반세기 동안 도시와 미술관이 서로 참조하고 협력하면서 닮아간 결과이기도 하다. 도시는 마치 확장된 미술관처럼 관람 또는 관광의 장소로 재개발되고, 미술관은 공간과 프로그램을 확충하여 마치 압축된 도시처럼 다채롭고 풍부한 체험을 약속한다. 그렇지만 미술관과 도시의 경계가 전부 무너지지는 않으며, 도시의 공공성이 약화되는 만큼 미술관은 오히려 공공성에 대한 요구를 더 강하게 받는다. 모든 것이 쇼 비즈니스로 변모하는 세계에서 역설적으로 미술관은 조금 더 이상적인 세계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구가 되어가는 듯하다.
이처럼 도시와 미술관의 관계가 변모하는 과정은 YAP의 초기 역사에도 각인되어 있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버려진 학교 건물을 재활용한 뉴욕의 유서 깊은 대안공간 PS1컨템포러리아트센터에서 출발했다. 이곳의 미술가들은 미술관을 벗어나 도시 공간의 예술적 재발견과 활성화를 도모하는 제도 비판적이고 장소 특정적인 미술의 관점에서 전문적인 건축이나 도시 계획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도시적 맥락에 개입했다. 이처럼 미술가들이 창조적 사용자이자 반(反)건축가로서 공간을 대하는 방식은 사후에 첫 번째 YAP로 기록된 1998년 <Pecuraneous Delights(피부를 통한 즐거움 )>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미술가 그룹 젤라틴(Gelatin )의 작업으로, PS1 앞마당에 폐가구로 만든 탑, 파란색 풍선 테디베어, 낡은 냉장고와 양철판으로 만든 냉방과 사우나, 비닐을 씌운 일광욕장과 풀장 등을 가설하여 여름 음악 축제 《Warm Up》을 위한 야외 댄스 클럽을 조성했다.
그러나 당시 PS1은 건축가 프레데릭 피셔를 고용하여 기존 건물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전시 공간을 확충하는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완료한 직후로, 이미 기존의 정체성을 일정 부분 탈피한 상태였다. 이듬해 PS1이 MoMA로의 인수합병을 공식화하면서 1999년의 《웜 업》은 두 기관의 결합을 축하하는 일종의 피로연이 되었고, 이 행사의 상징적인 공간 디자이너이자 두 번째 YAP의 주인공으로 필립 존슨이 초대되었다. 1930년대 MoMA의 건축 분과를 이끌었던 93세의 건축가 겸 건축 큐레이터가 디제잉 파티를 위한 <댄스 파빌리온>을 만든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MoMA가 현대 예술을 분리하고 분별하는 엄격한 근대적 시스템에서 더 나아가 창조적 혼란을 촉진하는 젊은 문화적 플랫폼까지 아우르겠다는 야심의 표현이었다. 또한 건축이 현대 예술의 한 분과로서 미술관에 수용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활동들이 교차할 수 있는 다원적 공간의 생산자로서 미술관에 개입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했다. 바로 이 가능성을 바탕으로 2000년부터 신진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YAP가 현재와 같은 형태로 출범했고, 칠레 산티아고의 컨스트럭토, 이탈리아 로마의 국립21세기미술관(MAXXI ), 이스탄불현대미술관을 거쳐 2014년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이르렀다.
순전히 미술관의 유휴 공간을 활용하는 것뿐이라면 건축가만 대상으로 할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서 2013년부터 시행하는 《The Roof Garden Commission(옥상 정원 커미션 )》은 미술가를 대상으로 장소 특정적 작업을 의뢰하는데, 그중에는 파빌리온 형태의 설치물도 있다. 그러나 《옥상 정원 커미션》이 조각 정원의 전통을 바탕으로 확장된 미술 전시를 지향한다면, YAP는 건축 전시의 연장선에서 좋든 싫든 미술관 건축의 문제를 건드린다. 건축가는 미술가와 다르게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분과적 관심과, 건축과 미술을 막론하고 미술관 공간을 감각적이고 개념적인 방식으로 어떻게 활성화할 수 있을까 하는 다원적 관심이 반드시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건축은 미술과 다른 역사를 바탕으로 다른 관점과 방법들을 발전시켜 왔다. 그것이 미술관에서 새로운 자극을 주고받을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문제는 2010년대 초반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건축 전시는 분과적 관점이든 다원적 관점이든 간에 똑같이 낯선 존재였다는 것이다.
미술관의 건축 전시
건축이 미술관의 정규 프로그램으로 들어오던 상황을 잠시 되짚어보자. 국립현대미술관은 2013년 서울관 개관을 계기로 활동 영역을 확대하고 전시장별로 체계적인 전시 프로그램을 구축하려고 했다. 미술사학자 출신의 당시 정형민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국제적 조류에 발맞추는 만큼이나 한국 미술사의 정립에 힘써야 한다고 보고, 서울관에 동시대 미술을 할당하고 덕수궁관과 과천관은 각각 한국 근대, 현대 미술에 특화시켰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역사적 배분이 자연스럽게 분야별 배분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회화와 조각에 더하여 건축, 디자인, 사진이 한국 현대 미술사의 연구 대상으로 과천관에 배치되었고, 필름과 비디오, 미디어 아트와 퍼포먼스, 아카이브 전시와 다원 예술이 실험적인 동시대 미술로 서울관에 배정되었다. 이는 과천관에 없었던 공연장과 상영관, 디지털 라이브러리가 서울관에 신설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좀더 근대적 전통에 뿌리내린 분과와 그런 분과적 구획을 가로지르는 좀더 최신의 다원적 장르를 암암리에 구별한 결과이기도 했다.
현대 예술의 전 영역을 체계적으로 조망하려는 시선은 반드시 그 체계를 해체하려는 접근까지 포함하게 된다. 반체계적 움직임은 특정한 장르나 시대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모든 국면에 언제나 잠재하며, 각각의 분과는 그런 움직임을 진압하거나 때로 흡수하면서 발전해 나간다. 이 시기 국립현대미술관은 역사를 따라잡는 일, 역사를 확립하는 일, 역사를 뒤집어 보는 일을 한 번에 해치우고 싶어했다. 결과는 혼란스러웠다. 접근성과 가시성이 높은 서울관이 동시대성과 링크되면서 과천관은 점차 구시대적인 것과 동일시되었고, 분야별 구획과 별도로 중요한 전시는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압력이 발생했다. 결국 동시대적인 것이란 미술사학자의 관점에서 식별되는 역사적 체계의 특정한 위치가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하며 그 중요함을 어떻게 결정하고 관철할 것인가?
건축은 이 같은 체계화의 계획과 그에 대한 반발 속에서 미술관으로 들어왔다. 미술의 성전과 문화적 의회 사이에서 미술 제도와 정치적 권력 사이에서 미술관은 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의사 결정 시스템이자 다소 특이한 형태의 미디어로서 존재한다. 여기에 건축이 취급 대상이 아니라 행위 주체로 진입했을 때, 건축 큐레이터는 시민권을 획득한 이민자, 민간 외교관과 외국인 노동자 사이 어딘가에 위치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1년 처음으로 건축 큐레이터를 임용하고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건축 전시를 내놓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었다.
먼저 과천관의 경우, 1990년 《건축가 김수근》과 2002년 《올해의 작가: 승효상》의 연장선에서 원로 건축가를 한국의 대표 예술가로 호명하는 회고전이 이어졌다. 2013년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2014년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조화: 건축가 김종성》, 2016년 《김태수: Working in Two Worlds》, 2017년 《윤승중: 건축, 문장을 그리다》, 2018년 《김중업 다이얼로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편 서울관의 경우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14년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 의 일환으로 YAP가 런칭했다. 2017년부터는 과천관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미술관 복도에 일시적 구조물을 설치하는 〈회랑 프로젝트〉가 개시되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전시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한국 현대 건축사를 재해석하는 기획 전시들이 조금씩 만들어졌다. 이 전시들은 때에 따라 과천관에서 열리기도 하고 서울관에서 열리기도 했는데, 후자는 대개 서울에서 개최되는 대규모 국제 행사와 연계된 경우였다. 2014년 《장소의 재탄생: 한국근대건축의 충돌과 확장》은 서울도코모모세계대회의 일환으로 도코모모코리아와 공동 주최했고, 2017년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은 서울시가 공동 주최하는 UIA서울세계건축대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등과 함께 서울도시건축주간에 맞추어 개막했다. 한국 건축가들이 유토피아적 욕망으로 새로운 도시를 꿈꾸었던 프로젝트들을 재검토하는 2015년 《아키토피아의 실험》은 과천관 제5전시실에서 열렸다. (이것은 해당 공간을 공식적으로 “건축 갤러리” 로 지칭했던 유일한 전시였다.)
공간이라는 모호한 대상
이런 맥락에서 2016년 《보이드》는 예외적인 사례다. 자신을 둘러싼 미술관 건축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전시는 2013년 서울관 개관 전시의 일환으로 조그맣게 열렸던 《미술관의 탄생: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기록전》,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서울관 착공 전인 2010년 부지 내 구 기무사 강당에서 공개되었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축설계 아이디어 공모 출품작》 전시의 연장선에 있다. 세 전시는 순차적으로 미술관 설계, 건립, 사용의 시간을 다룬다. 맨 먼저 건축가들이 서울관 건축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도면과 모형 전시가 있었고, 그다음에 미술가들이 주축이 되어 구 기무사 건물의 철거와 서울관 공사 과정을 기록한 사진, 영상, 사운드 전시가 있었다. 그리고 서울관 건축과 개관을 둘러싼 소란이 잦아든 후에 열린 《보이드》는 전시를 만드는 사람에게나 보는 사람에게나 슬슬 익숙해진 이 미술관 공간에 대한 새삼스러운 조명과 탐색을 시도했다.

하나의 건축물이 다 지어지고 건축가에서 시공사에 이르는 건설 과정의 행위자들이 사라진 후, 사용자는 건축가의 의도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고 또 얼마나 그에 따라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건축 전시라면 가급적 건축가를 대변하려고 할 것이고, 미술 전시라면 자연히 건축가 이외의 다른 관점을 드러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보이드》를 기획한 정다영 건축 큐레이터는 실제로 미술관 공간을 이용해서 건축 전시를 만들어야 하는 건축가의 연장선에 있는 사용자다. 건축가가 볼 수 없었던 것과 사용자가 볼 수 없었던 것을 모두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양쪽의 시야를 종합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곤경에서 출발한 《보이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작가들에게 각자의 관점에서 전시장 안팎의 공간을 건축의 초점이자 맹점으로 재발견해줄 것을 요청했다.
결과적으로 참여 작가들은 물리적으로 서로 다른 공간에 주목했을 뿐만 아니라 개념적으로 상반되는 공간 관념을 가지고 돌아왔다. 먼저 공간을 움직임의 무대이자 진동에 반응하는 투명한 매질로 접근하는 퍼포먼스와 미디어 설치의 관점이 있었다. 미술가 장민승과 음악가 정재일이 전시 공간 하나를 통째로 빛과 소리로 채웠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다원 예술 잡지 『옵.신』은 전시장 바깥의 주변적 공간을 관객이 직접 걸어 다니면서 경험할 수 있도록 일종의 퍼포먼스 스크립트를 만들기도 했다. 이것은 아예 미술관 바깥으로 나가서 주변 공간들을 조사하고 관객 답사 프로그램을 구성한 도시 건축 축제 오픈하우스서울의 접근과 비슷해 보이지만 달랐다.
오픈하우스서울은 ‘보이드’ 를 건축물이 점유하지 않는 빈 공간으로, 건축물의 윤곽선을 형성하는 동시에 건축물과 동등하게 형태와 기능을 가질 수 있는 건축적 대상으로 접근했다. 그러니까 보이드는 길이나 마당, 또는 예상치 못한 만남과 이벤트가 벌어지는 다목적 공용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접근은 애초에 서울관을 상징적 형상을 가진 거대한 덩어리가 아니라 분산된 구조물 또는 크고 작은 보이드가 꿰뚫고 들어오는 방식으로 설계한 건축가 민현준의 관점과도 일치한다. 모든 공간이 의미 있게 분절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건축적인 환상이다. 반면 『옵.신』은 미술관 내에서 길이나 마당이 되지 못하는 공간, 딱히 용도도 형체도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경비원이나 차단봉 또는 무관심한 불안으로 가로막힌 죽은 공간들을 가리켜 보였다. 그것은 건축가가 실패한 자리일까, 아니면 건축가가 개입하기 이전의, 심지어 투명한 ‘공간’ 의 개념으로 이상화되기 이전의 자연적 상태일까. 어느 쪽이든 『옵.신』은 거기에 고여 있는 무언가를 휘저어보기를 권했다.
건축은 공간의 예술이라는 현대 건축의 명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자면, 건축가가 만들어 보여야 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서 건축 큐레이터가 보여줘야 하는 것도 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고,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가? 건축가 최춘웅은 <실종된 X를 찾습니다>라는 렉처 퍼포먼스를 통해 한국 건축사에 숨겨진 이 ‘공간’ 의 빈자리를 연극적으로 추적했다. 미술가 김희천이 건축가 시점의 미술관 모형과 사용자 시점의 미술관 렌더링 영상을 스마트폰 스크린으로 교차시키면서 가리켜 보인 것 또한 이 수수께끼의 공백이었다. 건축가는 시점과 스케일을 바꾸어가며 건축물을 하나의 대상처럼 이리저리 돌려보고 변형해본다. 그러나 사용자에게 건축은 언제나 자신을 에워싼 환경으로 주어져 있다. 사용자를 건축가의 시점에 탑승시켜서 그가 설계한 ‘공간’ 을 실제로 보게 할 수 있을까? 김희천의 <요람에서>는 바로 이 일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반대로, 건축가에게 자신이 내면화한 시점의 특수성을 납득시키는 일이 정말로 가능할지 생각해보게 했다.

건축 전시의 자리
모든 전시가 그렇겠지만, 특히 건축 전시는 자신이 놓이는 장소와 무관하게 성립할 수 없다. 그렇다면 건축 전시는 어디에 위치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미술이 미술관을 만든 것처럼 건축 또한 자체적인 건축 뮤지엄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순수하게 건축에 봉헌된 하나의 성전이든, 건축에 관한 학제적 탐구를 지원하는 실용적인 연구센터든 간에 그 또한 하나의 가능성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금의 건축 전시는 대체로 건축이 주인이 아닌 곳, 건축 이외의 많은 것이 교차하는 곳에서 출현한다. 사실 이 같은 소원함과 혼잡함은 좁은 의미의 건축 실무가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작업 여건이기도 하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반응하여 그 세계의 일부를 고쳐 그리는 것이 건축의 일이라면, 그것은 언제나 건축이 아닌 것들 사이에서 발현한다. 건축이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은 건축 외적인 요소들을 모두 제거한 사막 같은 곳이 아니다. 건축 전시 또한 건축을 자기 자신의 기념비로 환원하기보다 거주와 사용의 장소로서 이 세계에 대한 각자의 책임과 의식을 독려하는 일이 장기적으로 건축의 활동 공간을 확보하는 데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미술관을 단순히 건축의 대상 또는 건축이 아닌 다른 분과의 영토라기보다 오히려 여러 가지 이질적인 것들을 실어나르는 일종의 방주처럼 접근하면 어떨까. 말하자면 과거에 무엇이 위대했는가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무엇이 보호되어야 하는가를 질문하고 실행하는 것이 미술관의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 전시가 나름의 관점에서 이 질문에 응답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건축의 전시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이라는 프로젝트 속에서 건축을 고쳐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전시는 문자 그대로 무언가를 보여주고 거기서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것이기 이전에 우리가 그것을 여태까지 어떻게 봐왔는지 의식하고 그 관점을 다시 생각하도록 독려하는 행위다. 모든 것이 자신을 볼거리로 전시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를 둘러싼 공간의 점증하는 거주 불가능성 앞에서, 전시의 형태로 건축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일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전시가 일어나는 미술관은 어떤 장소가 될까. 건축 전시는 바로 이 미확정의 여지에서 새롭게 상상될 수 있다.
윤원화
시각문화 연구자로 주로 동시대 서울의 전시 공간에서 보이는 것들에 관해 글을 쓰고 번역한다. 건축과 영상이론을 공부하고 미술과 시각문화, 도시와 미디어의 접점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저서로 『그림 창문 거울: 미술 전시장의 사진들』(2018),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2016) 등이 있으며, 역서로 『광학적 미디어』(2011), 『기록시스템 1800/1900』(2015) 등이 있다.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2014)를 공동 기획했고,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 〈부드러운 지점들〉(2018)을 공동 제작했다.
건축과 미술 사이에서: 미술관 건축을 전시하기
분량11,484자 / 20분 / 도판 3장
발행일2019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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