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큐레이터의 말하기
정다영
분량10,409자 / 20분 / 도판 6장
발행일2019년 8월 29일
유형오피니언
한국에서 건축 전시가 이토록 빈번한 때가 언제 있었을까.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건축 전시를 보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다. 2014년 겨울에는 서울에서만 크고 작은 건축 전시가 15개나 열리기도 했다. 2014년은 베니스건축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이 황금사자상을 받은 해다. 2017년에는 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개막하고 UIA서울세계건축대회가 열렸고, 그해 가을 한국을 대표하는 국공립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은 대형 건축 전시를 열었다. 2018년에는 서울도시건축센터가 문을 열었고, 올해에는 구 국세청 별관 부지에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 개관했다. 이러한 행사에 대한 피로도가 쌓일 때쯤 건축 전시에 대한 비평적 검토가 제기되었다. 이제 전시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결과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요청하고 있다. 실제 건물을 가지고 올 수 없는 건축 전시는 왜 하는가? 무엇 때문에 건축 전시는 이토록 설명적인가? 건축 전시는 아카이브 전시 이상을 넘어설 수 없을까? 모형과 도면, 사진 외에 보여줄 수 있는 전시 매체는 무엇일까? 등 여러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글은 이러한 질문들의 출발점을 생각하고, 대답하기 위해 들어가는 여러 입구에 대한 이야기다.
건축 전시의 타임라인: 2011년이라는 시간
‘국내 건축 큐레이터 1호’ 라는 어색한 수식어를 달고 나는 2011년 7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건축 부문 연구와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한국에서의 건축 전시란 건축 단체가 주관하는 패널 형식의 협회전이나 소규모 갤러리에서 건축가 스스로 본인 홍보를 목적으로 짧은 기간 작품을 선보이고 끝내는 팝업 전시들이 많았다. 작가와 작품,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 비평적 활력을 불어넣는 큐레이터라는 전문인은 적어도 건축계에서는 낯선 존재였다.
그렇게 세기가 바뀔 무렵 여러모로 특별한 풍경들이 한국 건축계에서 포착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몇 가지 일이 오늘날 건축 큐레이팅 분야의 밑그림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2000년대 중반 건축계에서도 아카이브에 대한 학계의 관심과 연구가 있었지만 그것이 실행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런 가운데 실제로 건축가들의 물리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전문 기관이 출범한 일은 고무적이었다. 이를 주도한 목천건축아카이브는 건축의 도면과 문서와 같은 자료가 실제 건물과는 다른 새로운 지위를 획득할 수 있음을 알려줬다. 같은 맥락에서 2011년 초에 막을 내린 일민미술관의 《감응: 정기용 건축전》은 한 건축가의 아카이브가 보여주는 시각적 감동과 경이로움을 대면하는 기회였다.
한편으로 비슷한 시기 ‘일상’ , ‘초식’ , ‘동네 건축가’ 등 당시 독립한 건축가들을 호명하는 수식어가 문화면에 자주 등장했다. 건물은 아니었으나 전시와 출판으로 그들이 선보였던 작은 규모의 건축적 실천들이 주목받았다. 이러한 건축가들을 소개하기 위해 나는 『공간』의 동료 에디터들과 함께 2011년 1월부터 ‘젊은 건축 집단 탐침’ 이라는 연재 기사를 기획했다. 해당 지면에 소개했던 젊은 건축가 대부분은 “파빌리온 계열의 건축가”로 떠오르며 미술관을 비롯한 전시 공간에서 대중성과 문화 자본을 획득했다. ‘젊은 건축가’ 는 건축 기획을 진행하는 데 신선하고 매력적인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기사는 기자로서 나의 마지막 특집이 되었다. 『DOMUS』의 에디터 출신으로 현재 런던디자인뮤지엄 관장을 맡고 있는 데얀 수직의 말처럼, “책이나 잡지의 그 어떤 서술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풍부하고 더 실감나는 경험을 제공하는” 건축 전시를 만드는 일로 전향했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열린 건축 전시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이하 그림일기)는 여러모로 우리나라 건축 전시 역사에서 중요한 지점을 차지한다. 일민미술관에서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된 정기용 아카이브는 한국 건축가로서는 드물게 엄청난 양의 실물 자료를 건축가 본인이 직접 모은 것으로, 작가의 사후 그 행보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유족과 협의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정기용 아카이브는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이 아카이브 구축을 위해 설립한 미술연구센터를 개소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해당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만든 《그림일기》는 미술계에서 ‘올해의 전시’ 로 선정되며 “도면과 글도 전시 작품이 될 수 있음” 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지금과 달리 당시 아카이브 전시는 낯선 형식이었기에 반향이 컸다. 정기용 전시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5전시실은 건축가 이타미 준과 김종성, 김태수, 윤승중 전 등을 열며 몇 년간 건축 전문 전시장으로 사용되었다. 아카이브 바탕의 개인 건축가의 회고전들은 전시 평가를 떠나 우리나라에 취약했던 “학술적 전시의 약진” 을 보여줬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또 다른 형식의 건축 전시는 젊은건축가프로그램(이하 YAP)을 중심으로 한 파빌리온 설치다. 이 전시는 아카이브 기반의 학술적 전시와 반대 방향에 있다. 서울관 야외 마당에 설치된 이 작품은 대중의 큰 관심을 끌며 한여름의 야외 쉼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젊은 건축가들이 경합을 치른 이 전시는 건축가의 젊음과는 무관하게 미술관이 건축을 취하는 정책적 입장과 관련 있다. 이런 형식의 전시에서 젊은 건축가들은 대체로 문제 해결사 역할을 요구받는다. YAP뿐만 아니라 <아트폴리>, <복도 프로젝트> 등 미술관에서 이들이 선보인 설치 작업들은 구마 겐고의 말처럼 “건축이 지닌 전투 능력” 의 결과이다.

“건축이 지닌 전투 능력” 은 꼭 전시가 아니더라도 미술관의 새로운 공간 디자인과 운영 방식을 모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결과적으로 전시장 내부가 아닌 외부 공간에서 실행된 전시 경험은 실제로 보수적인 미술관의 기존 한계들을 깨는 선례가 되었다. 물론 설치, 운영, 관리, 보존 등 여러 면에서 미술과 다른 건축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나와 동료들이 위에서 언급한 건축 전시를 실행할 때 겪었던 많은 난제도 다른 지면에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지난 10년에 가까운 경험은 미술관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벌어진 건축 전시 실행을 위한 여러 참조점을 만들어냈다.
그 수는 적지만 건축 전문 큐레이터와 아키비스트 등 미술관 내에 건축 전문가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의 건축 큐레이팅 분야는 약진하는 듯 보였다. 물론 전문 건축 박물관이 아니기에 미술관이 실행하는 건축 전시와 연구는 예술적 가치에 주로 집중하는 한계가 있다. 미술관으로 들어온 건축은 문화예술계 공동의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성취다.7 그렇다면 최근 국립현대미술관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전시 장소에서 열린 많은 건축 전시는 계속될 건축 전시의 전성을 예고하는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사건인가? 질문을 바꿔 소모되지 않고 지속 가능한 건축 전시 생산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나아가 건축 전시의 경험은 쌓을 수 있는 앎의 형태가 될 수 있을까?
미술관 소장품을 통해 보는 건축의 위치
위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펼쳐졌다가 사라지는 전시가 아닌 좀더 영구한 제도의 체계로 눈을 돌려보자. 미술관은 어떤 정책과 전략으로 건축 작품을 수집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있다. 전시에 우선하는 것이 작품 소장인 것을 생각해볼 때 지속적인 소장품 확보는 건축이라는 장르를 제도적으로 구축하는 방법이다. 미술관이 아트센터와 구별되는 중요한 준거점인 ‘소장품 수집’ 은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결론만 보면 최근 건축 전시의 양적 성장과 달리 미술관의 건축 부문 소장품은 2018년 기준 8점으로 전체 소장품의 0.1%정도 밖에 되지 않는 빈약한 상황이다.8 미술연구센터 개소 이후 미술관이 건축 아카이브 구축을 통해 9만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 수집을 진행해온 것과도 대조적이다. 2013년 서울관 개관 이후 건축, 디자인, 공예 전문 큐레이터가 추가로 임용되고 응용미술 분야의 소장품 수집을 늘리자는 요구가 있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여전히 건축 소장품을 바라보는 ‘재현’ 과 ‘원본성’ 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건축이 처한 위치를 더 알기 위해 건축이 국가를 대표하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건축이라는 영역을 내부에서 설정할 수 있는 동력이 부족” 했던 전후 한국 건축계에서 “전시는 건축의 영역을 외부적으로 규정하는 것” 이었다. 국전은 건축이 예술로서 인준을 받는 유일한 경로였다. 1969년 경복궁미술관에서 열린 제18회 국전 개막에 맞추어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출범 당시 “미술관의 역할이나 의미에 대한 뚜렷한 고찰 없이 국전의 대행 기관으로서 시작한 기형적인” 탄생 배경을 갖고 있다. 건립 2년 후인 1971년부터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작품 수집과 관리를 담당하는 부서가 없는 상태에서 몇 가지 수집 기준을 마련했다. 그중 주목할 부분은 ‘국전 출품 및 수상작가’ 기준이다. 경복궁 시기 마련한 소장품 분류 체계인 ‘동양화’ , ‘서양화’, ‘조각’, ‘공예’ , ‘서예’에서 ‘건축’과 ‘사진’이 추가된 것은 1979년의 일이다.12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번째 건축 소장품은 김정신, 이윤, 김장열, 정동명, 한상훈의 1978년 작 현대미술관 계획안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에 건축 부문이 신설된 1979년 처음으로 수집된 작품이다. 목판에 아크릴로 그린 이 작품은 1978년 제27회 국전 건축 부문에 출품한 패널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다른 수집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국전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사실은 건축 소장품 수집의 맥락 및 정책 방향과 작품 자체의 가치 판단이 국전이라는 제도에 전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즉 수집 가부를 가늠하는 내적 가치 판단 기준을 확보하지 못한 건축 부문 소장품은 이후 소장품 수집 체계가 안정화된 이후에도 미술관에서 개최된 전시를 계기로 간헐적으로나 수집되었다. 1990년 《건축가 김수근》을 통해 수첩 형식으로 제작된 드로잉 4점이, 2002년 《올해의 작가: 승효상》을 통해 최가철물점 전시에 출품했던 가구가, 2013년 《그림일기》를 계기로 정기용의 무주프로젝트 드로잉이 수집되었다. 이처럼 국립현대미술관 건축 소장품은 매우 비정기적으로, 개인전 혹은 회고전 개최라는 미술관 내부 인준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제도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건축 작품에 대한 건축사적 가치나 구축성, 실험성 같은 건축 내부의 언어로는 작품의 수집 근거를 획득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누적되기 어려운 시간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온전히 획득하지 못한 건축은 여전히 미술관에서 불안정한 존재다. 미술관에서 건축의 시간은 “누적되는 발전의 시간이라기보다 언제나 미처 예측하지 못한 악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다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과거 건축 전시들을 살펴보자. 건축 부문 연구와 전시만 전담하는 큐레이터가 조직 내부에 없었던 2011년 이전 건축 전시로는 1987년 《한불건축》, 1990년 《건축가 김수근》, 1996년 《크리스티앙 포르잠박》, 1998년 《안도 다다오》, 1999년 《한국건축 100년》, 2001년 《프랑스 새로운 미술관과 박물관》, 2002년 《올해의 작가: 승효상》, 2005년 《새로운 세기, 새로운 미술관》, 2009년 《메가시티 네트워크》로 대부분 미술관 단독 기획보다 외부 단체와의 공동 주관으로 이루어졌다. 이 전시들을 놓고 보면 건축 전시 실행의 정책적 연속성을 알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한국 현대 건축 아카이브를 활용하고 파빌리온과 같은 지금은 익숙하나 당시에는 새로운 건축 전시가 시작된 것은 건축 학예직이 이러한 사업을 직접 주도하게 된 이후의 일이다. 건축 아카이브와 파빌리온은 외부 전문가나 단체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미술관 내부적으로 구축한 건축 큐레이팅에 의한 자율적인 프로그램이다. 건축 아카이브는 소장품과 달리 ‘재현’ 을 문제 삼지 않으며, 건축 모형과 실시 도면과 같은 건축 자료를 모두 일괄적으로 수집한다.14 또한 파빌리온은 그 기획과 실행, 운영 방식이 전통적인 미술 전시와 온전히 다르기 때문에 건축가와 미술관의 긴밀한 협업이 필요하다. 이를 수행하기 위한 행정 절차 및 운영 계획 수립 또한 기존 미술 전시와는 다르며, 별도의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료(아카이브)와 작품(소장품/컬렉션)의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건축은 여전히 소장품 체계로 진입하지 못하고 ‘자료’ 라는 이름으로 보관된다. 파빌리온과 같은 설치 작업은 건축의 언어로 전달되지 않고 ‘쉼’ , ‘놀이’ 와 같은 대중 언어로 소비되고 있다.
동시대 미술관이라는 명제 속에서 건축은 전시를 통해 유의미한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지만, 그것들을 쌓아 올릴 수 있는 지속적인 힘이 더 필요하다. 기반이 불안정한 가운데 새로운 기획적 실천을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 전시를 열기 위한 ‘역사적 · 정책적 명분’ 이란 허들을 넘어 운 좋게 전시가 시작되더라도, 기획자가 고고학자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 큐레이터는 전시를 완수하기 위한 동력을 상실하기 쉽다.
큐레이팅, 공동의 지식 생산을 위하여
0.1%도 되지 않는 미미한 지위를 차지하는 건축 소장품은 미술관에서 자리매김하는 건축의 실제 위상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MoMA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건축 작품 수집에 대한 여러 선례가 있지만, 유서 깊은 MoMA의 큐레토리얼 전략과 체계를 국내 현실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미술관이 건축에 갖는 태도뿐만 아니라 건축가, 건축주, 사진가, 영상감독 등 건축 담론을 생산하는 여러 주체들이 컬렉션과 아카이브 구축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 형성에 함께 나서야만 지난한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업무를 진두지휘할 수 있는 큐레이터, 아키비스트, 도큐멘터와 같은 전문가 양성이 절실하다. 이들이 건축 전시와 그 위에 놓이는 작품의 가치를 건축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건축 전시가 일시적으로 소모되지 않고 건축계 전반을 위한 공동의 지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전환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세종시에 건립될 예정인 국립도시건축박물관(가칭) 등 제도적 상황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건축 전문 박물관의 설립을 논하기 이전에 기관이 아닌 개별 기획자들의 건축 큐레이팅에 대한 여러 입장을 고찰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큐레토리얼 실천을 짚고 말하는 것이 이 분야의 성장과 확산을 위해 당장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설명이 많고 소통하기 어려운 건축 전시를 어떻게 대중과 공유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공동의 경험을 제공하는 전시 형식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전시 기획과 설치 전반을 다루는 전문가들과의 협업이 중요한 이유다. 예전에는 참여 작가인 건축가가 큐레이터이자 전시 디자이너로서 많은 일을 병행했지만, 이제는 전문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건축가와 소통하며 전시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술과 디자인 등 다른 분과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촉발되는 건축 전시에 대한 기대도 크다.
한편, 전시장에 펼쳐지는 건축 전시의 풍경들도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들이 최근 건축 전시가 만드는 자료 배열 중심의 엇비슷한 모습을 비판한다. 이는 아카이브의 해석과 배치에 대한 부분과 연결된다. 아카이브를 어떤 기획 의도에 따라 어떻게 배열하느냐에 따라 전시 성격은 달라지지만, 대부분의 건축 전시는 지루한 자료들을 펼쳐놓은 아카이브 전시로만 치부되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기획했던 《그림일기》와 《종이와 콘크리트》만 비교해 보더라도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다른 차이가 있다. 아카이브에 대한 해석과 기획자의 개입 정도에 따라 건축을 말하는 전시물의 위상에는 뚜렷한 차이가 생긴다. 《그림일기》가 기획 의도를 가능한 한 지우고 작가가 남긴 아카이브의 원 질서를 최대한 존중하는 배치였다면, 《종이와 콘크리트》는 편집된 각각의 아카이브가 충돌하며 발생하는 에너지를 다루는 전시였다. 기획적 관점에서 각각의 건축 전시가 만드는 풍경의 차이들을 밝히는 일이 필요하며, 그 맥락을 교육적으로 재해석하여 전시를 해설하는 것도 지금 건축 큐레이팅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다. 2014년 플라토미술관에서 열린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의 경우도 건축이 아닌 건축‘하기’ 라는 실천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다른 형식의 아카이브 전시다. “퍼포먼스로서의 건축” 에 주목한 이 전시는 “건축을 정물의 예술이 아니라 행위의 예술로 보는 입장”을 토대로 건축의 비평적 지점을 확장하려 했다.15 건축이 단순한 미학적 대상이 아니라, 시간의 구조 속에서 건축주, 사진작가, 구조기술자, 사무소 스태프 등 다양한 주체들과 관계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망으로서 건축의 속성을 이 전시는 강조했다. 이처럼 각각의 건축 전시가 내미는 차이들을 밝히는 것은 건축 큐레이팅의 지식 생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밖에도 건축 큐레이팅을 둘러싼 실무적, 이론적 논의는 무수히 남아있다. 예컨대 미술 전시보다 큰 비용이 투여되는 건축 전시의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전시용 2차 가공물은 어떤 기준으로 생산할 것인지, 전시 이후 작품이 되어버린 매체들은 어떻게 보관할 것인지, 건축물을 찍은 사진과 영상 등은 어떤 지위로 전시장에 놓여야 하는지 등. 작품의 라벨링을 어떻게 작성하느냐 하는 미시적 차원부터 그 작품이 전시가 끝나고 다시 작가(건축가)나 소장가에게 돌아가는 작품의 이력을 건축 분야에 맞게 고안하는 일도 숙제로 남아 있다. 복잡한 건축 설계의 과정만큼 건축 전시도 수많은 고민과 결정의 순간과 만난다. 사실 이제는 건축 작품이든 자료든 그것을 전시라는 무대로 올리는 제반 과정에 대해서는 견해차가 크지 않다. 이제는 전시를 올린 이후의 파생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질문하고 말할 때이다. 전시 비평이 그중 하나다. 건축 전시를 생산하는 경험은 우리가 건축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하고, 나아가 건축 전시 비평이라는 새로운 비평 장르의 출현을 기대하도록 만든다. 건축 전시 비평은 전시의 대상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적이고 감각적인 공간 경험 자체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보고 말하는 것이어야 한다. 과거 비평을 수록했던 책의 지면들이 사라졌고, 전시라는 매체를 통해 다양한 지식이 생산되는 지금이야말로 비평가들이 건축 전시를 자신의 활동 무대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새로운 구상을 위해 우리는 미술 전시의 선례들을 들여다보며 유용한 단서를 찾을 수도 있다.
전시장을 넘어선 큐레토리얼 실천과 가치
질문과 질문을 잇다보니 반대로 이런 생각도 든다. 최근 기술의 진보와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에 힘입어 빠르게 변화하는 우리 사회의 움직임에 건축 전시는 제대로 응답하고 있는가? 자료를 모으고 해석하고 그것을 다시 편집해서 설치하는 긴 시간이 필요한 전시가 거기에 적합한 방법일까? 건축은 태생적으로 무겁지만 이에 반하는 새로운 형태의 건축 실천이 도래하고 있는 지금, 전시장 안에서의 전시가 건축 큐레이팅의 최선의 선택은 아닐지도 모른다. 따라서 출판, 포럼, 워크숍, 리서치 등 건축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로 새로운 큐레이팅 플랫폼을 구상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것은 전시장을 넘어선, 우리 도시를 대상으로 한 좀더 큰 사유의 영역을 대상으로 삼는 건축적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다. 건축 기획의 스케일을 확장하고, 전시장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서고, 나아가 건축의 재현의 문제를 극복해보려는 큐레이팅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작은 공간을 점유하는 사물이나 건축의 디테일 등 더 작은 스케일에 집중하는 반대 방향의 실천 경로도 검토할 수 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갤러리 속에 갇힌 전시회가 아니라 도시를 직조하는 일상이고자 한다. 결과물을 보여주기보다는 기존의 도시에 다중의 행위 주체들을 끌어들이고자 한다. 이것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건축’ 의 뜻이다. 그것은 재현의 건축이라기보다 조직과 수행의 건축이다. 집을 짓는 행위를 포함하지만, 직업으로서의 건축이라는 원리주의적 개념을 넘어선다.”16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초대 총감독이었던 배형민 교수의 말처럼 재현을 넘어선 조직과 수행의 건축에 대한 탐색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과거부터 다른 분과가 쌓아놓은 경험과 이론을 기반으로 전통적인 전시의 문법을 공부하고 수행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큐레이팅 실천을 위한 건축 내부의 방법론을 함께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전시 자체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며, 실패한 전시일지라도 그 전시 이면에 깔려 있는 기획의 방법론을 찾고 기록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 미술관에서 진행된 건축 전시가 건축 큐레이팅의 여러 참조점을 제공했지만, 역설적으로 미술관이, 혹은 전시장에서의 전시가 건축 큐레이팅에 최적의 플랫폼은 아닐 수도 있다. 큐레이팅이 모든 건축의 지식 생산 과정에 개입할 수 없고, 그 자체가 만능 도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건축 내부에서도 기획의 과정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전시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건축 큐레이팅이라는 툴을 더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은 불확실한 건축 큐레이팅의 여정 속에서 여러 가능성의 다리를 짚어가며,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 바라보게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정다영
건축과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공간』에서 기자와 편집자로 일한 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건축 부문 전시 기획과 연구를 맡고 있다. 기획한 주요 전시로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2013),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2014), 《아키토피아의 실험》(2015), 《상상의 항해》(2016), 《보이드》(2016),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2017), 《김중업 다이얼로그》(2018) 등이 있다.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2015)를 비롯해 여러 책을 다른 연구자와 함께 썼다. 2018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 한국관 공동 큐레이터로 참여했으며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겸임교수로 디자인문화 연구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건축 큐레이터의 말하기
분량10,409자 / 20분 / 도판 6장
발행일2019년 8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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