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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는 무엇을 그리는가

배윤경

2014년도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그래픽디자이너 슬기와 민의 작업 〈테크니컬 드로잉〉을 마주하고는 의문이 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그것은 드로잉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또한 지시 대상을 또렷하게 전달할 의무가 있는 그래픽디자인의 관습과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흑백의 기하학적 패턴들은 더러 숫자가 포함된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슨 의미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어쨌거나 모든 이미지는 지독한 근시안이 아침에 눈을 뜨고 보게 되는 최초의 장면처럼 불명확함 그 자체였다. 슬기와 민은 인터뷰에서 어떤 기술적 도안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해 흐릿한 장면을 포착했으며, 이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명확하고 투명한 시대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더불어 자신들이 창안한 인프라 플랫(infra-flat)이라는 개념을 첨언했다. 마르셀 뒤샹의 인프라 씬(infra-thin)을 응용한 인프라 플랫은 과잉 정보나 스마트 폰을 매개로 한 소통 강박이 지나치다 못해 깊이가 없게 만드는 상황, 즉 세상을 납작하고 평평하게 압축하는 힘이 도를 넘어 오히려 역전된 깊이감이 창출되는 아이러니를 가리킨다고 한다. ‘역전된 깊이감’이라는 표현으로 짐작하듯 포토샵으로 블러 처리된 이미지들은 거리를 멀리할수록 그나마 약간 선명해진다. 끝으로 작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주로 평면에 족적을 남겨야 하는 그래픽디자이너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계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무차원 세계의 원근법 회화를 상상할 수 있나? 우리도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근사하지 않을까?”

그래픽디자이너와 달리 건축가의 드로잉은 그 속성을 논하기에 경계가 무척 모호하다. 넬슨 굿맨의 말을 빌자면, 구문론적으로도, 의미론적으로도 조밀한 상태이다. 우편번호와 같이 구문과 의미가 일대일 대응을 이루는 상황을 희박하다고 표현한다면, 회화와 같이 붓질 하나하나를 일일이 구별하거나 전체 화폭에서 분리시킬 수 없는 경우를 조밀하거나 충만하다고 한다. 건축가가 그려내는 이미지들은 구체적인 정보를 지시하는 기호에 머무르지만은 않는다. 결과에 다다르는 과정이 스케치로 기록되기도 하며, 건축에 대한 이론을 검증하는 다이어그램도 있다. 드로잉 자체로 미학적인 완성도가 뛰어나 건축적 내용을 모르더라도 감상의 대상으로 즐기기도 하며, 따라서 회화처럼 전시되거나 귀중한 문화재가 되기도 한다. 알베르티가 추구했듯이 어떠한 부연 설명이 없더라도 현장에서 창작자가 의도한 바를 완벽하게 구현하도록 돕는 것이 건축 드로잉의 효용이지만, 정작 건축가마다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고민하고, 평·입·단면도 형식만으로는 수용자의 머릿속에서 공간이 잘 연상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도면에 옮긴 작업은 대부분 실질적인 구현을 전제로 한다. 건축가의 드로잉은 앞으로 발생하게 될지도 모르는 잠재적 현실에 대한 재현이며, 3차원으로 보이는 2차원이므로 완전한 평면 작업도 아니다. 평·입·단면도, 액소노메트릭, 오블리크와 같이 깊이가 사라진 장면은 재현하려는 사람과 대상간의 거리가 무한대에 가까울 때나 가능하기 때문에 살아생전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상상의 산물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어지는 결과는 숱하게 남긴 드로잉과 결국에는 차이가 발생하며 열화 복제 버전이 되고, 드로잉은 결국 예측하지 못한 미래였다는 안타까운 계시와도 같다.

가상현실이 난무하고, 플렉서블 디스플레이가 상용화되는 시대에서도 원근법에 대한 탐구는 계속된다. 인류가 육안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한 꾸준히 그럴 것이다. 한동안 건축학과 커리큘럼에서 제도 교육이 사라졌었다. 그 공백은 디지털에 대한 맹신으로 수작업을 번거롭고 느리기만 한 구시대의 산물로 치부한 데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2000년대에는 3D 소프트웨어의 발전과 더불어 3차원 곡면이나 난해한 기하학과 결부되지 않은 작업은 어딘가 고루하고 게으른 태도로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전 세계 경제가 더 이상 상승곡선을 향하지 않는다는 전망과 더불어 디지털 방법론과 비유클리드적인 공간을 생산하려는 동력은 힘을 잃고 말았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비숙련공들이 주도하는 습식 공사가 주를 이루고, 고딕 성당처럼 석재를 정교하게 다듬을 일이 없기 때문에 복잡한 형태를 재현하는 방법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폐허가 갖는 낭만성 혹은 가난한 브루탈리즘이라고 부르고 싶은 카페 인테리어가 유행이었던 것 또한 시대의 변곡점에서의 겪는 정체와 무기력이었을 뿐이다.

이제는 이러한 퇴행에 대한 반성이 눈에 띈다. 다양한 종류의 벽돌과 타일을 사용하여 정직하게 쌓은 공간과 조형 요소로서의 아치의 사용이 그렇다. 줄눈으로 나타나는 비례와 균형, 그리고 일점 투시에 의한 깊이가 강조된다. 회전율을 높이고자 하는 상업 공간들은 의도적으로 불편한 가구를 두는데, 최소한의 역할만 담당하는 가구들 덕에 공간이 갖는 구축적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두드러진다. 여기에 로만 아치까지 가세하니 그야말로 르네상스의 귀환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이러한 공간 구축 방식은 다시 드로잉과도 관련을 맺는다. 건축가들의 작업에서 3차원 평행투상도가 예전보다 자주 눈에 띄고, 특히나 평행투상도의 한 방식인 오블리크 프로젝션의 비중이 커졌다. 축측투상도인 액소노메트릭 중 아이소메트릭의 경우 여타의 3차원 드로잉 툴에서는 버튼 하나로 간단하게 변환시켜주지만, 오블리크의 경우는 하나씩 그려야 하는 추가적인 작업이다. 조선시대의 병풍인 동궐도와 같이 큰 그림을 여럿이 나눠 그려야 하는 조건이 아니라면 굳이 택하지 않는 시점이다. 따라서 오블리크에는 드로잉에 대한 애착과 관심은 기본이요, 낯선 표현 방식을 통해 남다른 작업을 전달하고 싶은 의도가 반영되었다. 나아가서는 프로젝트 전 과정을 지휘하는 젊은 건축가여야 가능하다고까지 추측해 볼 수 있다. 4.3 그룹에 속했던 승효상, 조성룡, 이일훈 등이 오블리크 시점을 전유하여(비록 매체에서는 액소노메트릭으로 표기하고, 승효상은 그마저도 투시도의 일종인 조감도로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전 세대와 차별을 두려했던 경우와 같이 말이다. 건축사무소 aoa나 오피스아키텍톤의 경우 사투상도 시점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특히 이들은 하늘을 나는 새의 시선에 반대되는 벌레의 시선(蟲瞰, worm’s eye view)을 즐겨 사용한다. 어째서일까? 그나마 일반적인 평행투상도는 높은 위치에서 망원렌즈를 통해 비슷한 수준으로 감상할 수 있는 방식이다. 반면, 충감도는 땅과 바닥 슬래브의 두께를 무시한 방식으로 불가능 중에서도 불가능한 시선이다. 1950년대 제임스 스털링의 작업에서도 찾을 수 있는 충감도는 내구 공간의 구성 논리를 보여주기에 지극히 구축적이며, 반면 위를 올려다보는 시점과 불가능이라는 측면에서 감성적이라 여길 수 있다.

최근 5년간 대학에서 시각표현기법을 가르쳤던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밝히자면, 무엇보다도 투상도에 집중했다. 알브레흐트 뒤러가 실습했던 방식 그대로 일점 투시의 원리를 체득하고, 특히 액소노메트릭과 오블리크의 차이를 여러 번에 걸쳐 강조했다. 그런데 계단이나 창문을 표기하는 방식과 같이 기술적인 부분을 더 자세히 다뤄야 하는지 고민했다. 액소노와 오블리크를 구별하지 않는다고 해도, 시선과 화면의 교차점이 의미하는 바를 모른다고 해도 설계하는 데에 문제는 없다. 남들보다 조금 나은 점이라면, 지하철 역사를 안내하는 3차원 입체도나 영화 상영 전 반드시 보게 되는 화재시 대피경로를  잘 이해하는 정도랄까. 3차원 모델링이 완료되면 명령어 하나로 원하는 시점을 즉각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시대에 손으로 투상도를 그리는 의미와 그 효용성을 찾지 못했다. ‘열린 창문’ 너머의 세상을 재현하고 싶었던 오랜 열망이 르네상스의 일점투시도법으로 이어졌다. 계몽주의 시대 백과전서를 채웠던 평행투상도를 비롯하여 입체파의 도전과 디지털 건축의 등장 또한 세상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의 이름이 도어나 포탈이 아니라  창문인 까닭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서양의 유구한 전통에 기인한다. 당장이라도 스마트폰의 화면을 통해 무수히 많은 창문을 여는 현대인에게 전통적 방식의 드로잉이 어떤 의미일지, 그리고 건축가들에게는 유의미한 차이를 낳을지 궁금하다. 

이러한 의문에서 〈두 번째 탐색〉 포럼을 빛냈던 김효영의 작업은 생각지 못한 답을 주었다. 그 역시도 오블리크 드로잉을 즐겨 그리지만, 단일 두께의 선을 사용하거나, 다이아몬드 형태의 평면을 구상하여 평면성을 극대화한 존 헤이덕의 방향과는 사뭇 다르다. 그가 선택한 시점은 과거 이탈리아 성직자가 포교를 위해 중국에 건너가 서양 회화를 통해 그들의 관점을 전파했을 때 중국이 가졌던 반감처럼 ‘예술성이 희박하고, 폭력적인 시선’ 그대로이다. 하지만 특정 시간대의 그림자를 반영하고 명암 대비가 뚜렷한 채색은 그것만으로도  큰 차이를 낳는다. 울산 벽집 입면도와 같이 작가적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드로잉은 과거 베르트랑(Bertrand the Elder)이 1817년에 그린 투스칸 오더를 연상할 수 있다. 사영기하학의 발달과 함께 정확하게 그림자를 작도하는 방식은 과거의 인물들이 관찰과 경험으로 익힌 대략적인 스케치와 다르게 오더가 갖는 변화무쌍한 굴곡과 부재들이 수직적으로 놓인 위계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김효영은 이렇게 공들인 드로잉을 통해 건축의 ‘살아있음’을 강조한다. 건축은 각자의 얼굴과 인상을 갖고 있으며 이를 찾아주는 것이 건축을 낳는 건축가의 역할로 생각한다. 이는 대부분의 건축가가 비슷할 것이다. 비록 캐드 드로잉이 대부분의 업무를 차지하더라도 기왕이면 제도판에 앉아 홀더를 쥐는 모습을 남기고 싶어 하고, 오구(烏口)에 잉크를 먹이거나, 전지 복사를 하러 뛰어다니고, 트레이싱지의 도면이 청사진으로 복제되었을 때의 감흥을 추억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신체 감각을 동원한 창작 활동이 건축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1984년 9월호에 발간된 『건축문화』에서는 당대 건축가들의 드로잉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이타미 준이 글을 남겼으며, 김중업, 김기석, 조성룡 등 7인의 작업을 실었다. 이미 10년 전 형성된 서양과 일본의 담론에 눈을 뜨며 건축가의 드로잉도 예술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반갑지만, 사실상 지면을 채운 드로잉들은 한 때의 자의적인 유희에 불과하고, 조성룡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수준이 낮았다. 반면, 일본의 경우 이토 도요는 1976년 화이트U 주택 작업에서 입면 오블리크를 남겼으며, 안도 다다오를 비롯한 일본 건축가들이 80년대 활동 당시에도 수준 높은 석판화를 남겼다. 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일본은 총감독 모모요 카이지마의 지휘 아래 〈건축적 민족지〉라는 주제로 세계 각지의 드로잉을 일본 파빌리온 안으로 가져와 드로잉에 대한 논의를 꾸준히 이어가며 동시에 자국의 표현 방식을 마치 하나의 상품처럼 세계를 상대로 수출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와 비슷한 이웃 같아도 실상 들여다보면 태생적으로 다른 세계라는 인상을 받는다. 주요 도시가 대부분 평지에 조성되었고, 교토 같은 곳은 현대의 계획 도시 못지않게 직교 그리드 체계를 이룬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경험하는 외부 세계에서 자연스레 일점 투시가 강조되기 마련이다. 벽, 문살, 다다미 바닥, 지붕 구조 모두 곧은 직선들로 이루어졌으며, 실내 공간은 발터 그로피우스가 가쓰라 리큐를 방문하고 놀랐던 것처럼 서양보다 더 고집스럽게 그리드 체계를 구성한다. 에도시대의 우키요에에서 즐겨쓰던 일점 투시 화법은 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시점이었다.

마침 이번 포럼에 초대된 오헤제 건축의 이해든, 최재필은 동경예대를 졸업한 관계로 이들에게 일본에 대한 경험을 듣고 싶어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비록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아직은 뚜렷한 확신과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라 피상적인 접근에 머물렀지만, 향후 논의에 대한 출발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간략하게 나누었던 내용을 옮긴다.


인터뷰: 오헤제 건축 × 배윤경

배윤경 일본 잡지 『주택특집』 2017년 1월호에서 12회 다이와주택공모전 결과를 봤다. 수상자 총 16팀 중 한 팀을 제외한 모든 건축가가 손으로 그린 그림을 제출했다. CG를 의도적으로 멀리한 듯한 분위기를 느꼈는데, 일본의 전통인가? 아니면 일부에 국한된 추세인가?

오헤제 건축 핸드 드로잉이 전체적인 풍토라고 할 순 없고 캐드 드로잉도 병행한다. 상황에 따라 작업 방식을 달리하는데, 우리나라보다는 손을 쓰는 작업이 많은 것 같다.

배윤경 일본 건축가들의 드로잉에서는 건물뿐 아니라 주변의 사소한 사물들까지도 세세하게 묘사해서 인상적이다. 실제로 도쿄 주택가를 걷다 보면 화분을 내놓은 집도 많고, 주민이 자기 집 주변을 청소하는 장면도 자주 보게 된다. 자기 구역에 대한 소속감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오헤제 건축 우리가 일본은 이렇다고 단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이번 포럼에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에 대한 질문을 받은 후 생각해 본 점은 있다. 생활 공간이 얼마나 개방적인지로 서로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창이 크고 많다. 다들 남쪽으로 창을 낸다. 집에 종일 머무르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집 안에서의 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단지 조성이 잘 되어있고, 아파트 자체 커뮤니티도 발달한 덕에 집 안에서 모든 생활이 이루어진다. 동네보다는 집이라고 생각하는 권역 내에서 활동이 집중된다. 배달 문화가 발달한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일본의 집은 폐쇄적이다. 면적 자체가 작고, 창의 크기를 봐도 밖으로부터의 시선에 엄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로 집을 빌려서 사는 도쿄 도심 이야기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통 전철역에서 내려서 집까지 15분 정도를 걷고 그사이 여러 가게를 지난다. 대문까지 도달하는 시퀀스로 인해 개인의 생활 반경이 제법 넓은 편이다.

그래서 주변에 대한 태도가 다른 것 같다. 어떤 형식의 공간에서 사는지도 중요하지만, 해당 주거가 마을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거나, 어떤 네트워크를 맺는다거나, 어떤 산업에 이웃한다거나 하는 여부가 중요하다. 주변을 그린다는 것도 물건, 사람의 행위, 옆집, 주변 환경, 나아가서는 네트워크와도 연관이 있다. 주변을 그리는 게 목적이자 결과다.

배윤경 일본 건축가의 드로잉이 젊은 세대들에게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생각한다. 2001년에 출간된 『Made in Tokyo』를  보면 입면 오블리크 시점과 동일한 두께의 선들을 사용해서 평면성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건물이 미니어처 같고 디테일은 무의미하다. 그런데도 간판에 상호를 써넣고, 자동차와 가로등을 그려 넣었다. 아틀리에 바우와우가 『Graphic Anatomy』에서 구현한 디테일을 보면 건축 도면으로서도 완벽한데, 건축 안에서의 사람들의 생활까지도 구체적으로 상정한 시도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헤제 건축 『Made in Tokyo』는 일본에서도 그랬고, 최근까지 우리 연구에도 영향을 많이 미쳤다. 아틀리에 바우와우의 모모요 카이지마는 버블이 최고조로 달한 시기에 집값이 지나치게 올라 오히려 건축의 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진 시기를 겪은 세대다.  또한 『건축가 없는 건축』, 『라스베이거스의 교훈』과 같은 책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이런 연장선에서 도쿄만이 만들어낸 건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우고 찾아 나선 결과물이다. 산업화 이후 도시가 빠르게 바뀐 후 여태까지 소중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사라지는 데 대한 무력함이 표출되기도 한다. 민속학자나 언어학자처럼 기존 것들을 채집하고 기록하는 시도들도 있었다. 버블이 붕괴하던 격변기에 대학을 다니고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으리라 본다.

우리 세대에게는 3.11 동일본 대지진이 그렇다. 거대한 사건은 다시금 건축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한다. 우리가 건축을 둘러싼 환경을 세세하게 그리는 까닭은 시간에 대한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면 좋겠다. 건물을 설계하는 기간과 계획이 실현되고 유지되는 기간을 따져보면 두 시간대 사이의 격차가 매우 크다. 설계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드로잉들은 건축이 탄생하는 전후의 시차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미래를 그리는 것이기에 미래를 상상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요소를 그리게 된다.

배윤경 일본에서는 드로잉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이 있나?  교육 과정 중 가이드가 있다거나, 이런 스타일로 그려보라던가.

오헤제 건축 왜 이런 식으로 표현했는지 스스로 대답하게 한다. 표현 의도는 건축의 내용과 일치해야 하며, 표현 방식에서는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야 한다. 이런 형식적 통일이 설계 교육에 포함된다. 일본 건축학과는 와세다 대학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대나 미대에 속하다 보니 공학 베이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그리고 테크닉보다는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고, 경향이나 유행을 좇지 않는다. 일본에서 받은 가장 큰 영향이라면 본인의 색깔을 진솔하게 꺼내는 훈련이다.

우리가 건축에서 추구하는 바는 건축과 생활이 위화감 없이 잘 얽혀있는 상태다. 우리 드로잉은 새로운 환경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주변 환경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확인하는 일종의 테스트라 할 수 있다. 그려보면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 디테일도 그렇다. 사무실에서 1/10, 1/5 스케일의 상세 도면을 제법 그리는 편인데, 단지 시공사에 지침을 주려는 목적만이라면 그렇게까지 많이 그릴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드로잉은 결과물을 잘 보여주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변화하는 과정을 담는 것이기도 하다.

배윤경 좋아하는 일본 그림이나 작가가 있나? 나는 에도 시대 도시 풍경을 그린 판화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일본 그림이 그렇듯 정황 묘사가 세밀하고, 일점 투시의 초점을 강조해서 극적인 긴장감을 연출하곤 한다. 액소노메트릭이나 오블리크 시점에서 그리더라도 구름으로 배경을 숨기면서 원근감을 가질 수 없는 평행투상도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식도 재밌다.

오헤제 건축 나카야마 히데유키 교수의 드로잉을 좋아한다. 『스케칭』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아이가 그린 듯 간단해 보이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다. 재학 시절 알게 된 SANAA의 더 쿤스트리니에(De Kunstlinie)1(네덜란드 도시 알메이르에 위치한 문화시설. OMA가 마스터플랜을 수행했으며 2006년에 완공했다.) 프로젝트는 충격적이었다. 세지마 가즈요의 드로잉은 여타 건축가들과 스타일이 확연히 달랐다. 두께 없는 벽을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얇게 구현해서 놀랐다. 일본은 아니지만, 렘 콜하스의 「엑소더스」2(1972년 OMA의 창립 멤버인 렘 콜하스, 마델론 브리센도르프, 엘리아 젱겔리스, 조 젱겔리스가 런던 AA스쿨에서 발표한 논문. 원제는 「Exodus, or the Voluntary Prisoners of Architecture」다.)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드로잉이나 콜라주에 많은 것을 내포했다. 건축이 단지 건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도시나 환경을 집적해 놓은 상태라는 생각을 보여줬다. 다루는 규모도 크고, 거기에 속한 사람도 많다. 건축은 일종의 세계 또는 환경이라는 태도가 매력적이다.


배윤경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베를라헤 인스티튜트에서 Advanced Master of Architecture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건축설계와 이론을 강의하며, 여러 미디어에 건축 관련 칼럼을 기고한다. 저서로는 『어린이를 위한 유쾌한 세계 건축 여행』, 『암스테르담 건축기행』, 『DDP 환유의 풍경』(공저), 『가까스로 반짝이는』 등이 있다.

건축가는 무엇을 그리는가

분량9,505자 / 19분

발행일2019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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