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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토피아가 점령한 세계에서

심소미

서브토피아의 예언가, 이안 네언

서브토피아(subtopia). 경기도에서 이십 년을 넘게 살아온 내가 이곳의 경계를 넘나들 때마다 읊조리는 말이다. 누군가는 서브토피아에 합류하기 위해 꿈꾸고, 누군가는 서브토피아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분투한다. 교외(suburb)와 유토피아(utopia)를 합성한 이 단어는 대도시 주변의 교외 확장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본격화된 인구 분산 정책으로, 영국에서는 50년 전부터 한 건축 평론가에 의해 일찍이 거론된 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전쟁의 폭격으로부터 도시를 재건하고, 새로운 삶의 환경을 구축하는데 분주했다. 1950년대 중반 영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던 전원도시 건설로부터 무분별한 확장을 감지한 이는 건축 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이안 네언(Ian Nairn)이다. 그는 교외에서의 도시 재건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린 시대의 이단아였다. 무엇보다도 그가 염려한 것은 전쟁의 폐허 이후 고의로 방치된 교외 지역이다. 밀집된 도시와 텅 빈 시골, 그 사이를 조율하고자 시도된 새로운 전원도시에서 서브토피아의 세계를 본 것이다.

영국의 운명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서브토피아’로 축소되었다. 서브토피아는 마을도 국가도 아닌 중간 지대, 심지어 옛 비행장, 가짜 시골풍, 철조망, 차량 로터리, 쓸모없는 게시판, 주차장, 들판에 방치된 사물들에 의해 퍼져 나간다.1

네언은 시골도 도시도 아닌 현대식 전원도시로부터 서브토피아의 광풍을 감지한다. 그는 이를 거론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직접 서브토피아를 가능케 하는 장소들, 일종의 ‘중간지대’로 들어가 도시 현장을 비평했다. 교외에 퍼진 파괴적 도시개발의 실체를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아키텍처럴 리뷰』로 시작해, 여러 잡지와 신문에 글을 기고하고 BBC 프로그램까지 진행한다. 영국의 고속도로를 승용차로 가로지른 영국 지방 도시 여행, 과거 석탄을 나르던 운하를 따라 북부 산업지대를 여행한 투어 프로그램은 오락과 유희가 목적이던 당시 상업 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른 성향이었다.

런던에서 136km 떨어진 코벤트리, 이곳은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폭격에 의해 폐허가 된 도시다. 그전까지는 영국 도시 중에서도 명성 깊은 중세도시로, 특히 웅장한 대성당 건축으로 유명한 곳이다. BBC 프로그램에서 네언은 완전히 폐허가 된 이 도시를 방문한다. 그리고는 폭격을 맞은 과거의 대성당을 찾는다. 처참한 폐허의 건축을 설명하는 네언의 격앙된 목소리가 밝히고자 한 것은 전쟁의 참상도 인류의 폭력도 아니다. 그의 관심은 폐허 이후의 진행 상태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폐허로서의 장소,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은 장소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되는 현대 건축이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지로 향한다. 도시의 폐부, 오명, 상흔을 그대로 둔 채 장소를 새로운 건축으로 덮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거론한 것이다. 이것은 현대 건축이 점령하는 도시 환경의 표준화와 규격화에 대한 비판의 시작이었다. 새로운 건축과 과거의 건축 사이에서 네언의 시선이 마냥 과거를 향한 것만은 아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역사적 건축, 과거의 영광과 의미가 아닌, 새로움에 들뜬 사회의 무관심으로부터 가속화되는 폐허, 더더욱 비참해져 가며 의미와 역할을 잃어버린 장소들이다. 요즘 유행하는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과도 유사한 형식에서 시청자가 마주하는 것은 환각몽으로부터 방치된 교외 도시의 폐허들이다. 도시 투어를 가장한 그의 TV 프로그램은 사실 지방 도시의 무차별적 계획에 대한 고발이었던 셈이다. 전쟁의 폭격보다도 그가 우려한 것은 차이보다는 동일성을 추구하는 도시환경, 현대인의 표준화된 삶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새로운 도시환경과 꿈에 환호할 때 네언은 표준화된 도시 형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상이한 장소를 균일한 형태로 점유해나가는 현대의 도시 계획과 건축이 불러일으키는 삶의 환각적 상태에 가려진 도시 참상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서브토피아 – 키드: 서울로 움직이는 가족

도시 공간에 대한 나의 관심은 대도시로 이주해 온 유년기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초 서울이 88 올림픽을 준비하며 미래 도약과 글로벌 시티를 꿈꿀 때, 우리 가족 또한 당시 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꿈에 부풀어 서울을 향해 움직였다. 복지, 교육, 범죄 안전지대, 여가 및 문화생활 등을 좇아 많은 사람이 대도시로 이주하던 시기다. 하지만 서울의 과밀한 인구와 폭등하는 주택가격 때문에 타지방 이주민이 서울 한가운데 정주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더군다나 강남 아파트값 폭등이라는 문제가 수도권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주거, 거주의 문제,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은 서울에서 멀어져 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을 포함한 대다수 가족이 정착한 곳은 경기도다. 이 서브토피아는 우리 가족의 터를, 내 삶의 장소들을 결정해 왔다. 서브토피아는 단순히 도시 형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욕망이 움직이는 기제, 개개인의 삶이 작동함으로써 발현된 삶의 기제다. 주변으로 내밀리지 않기 위해 중심을 향해 발버둥 치는 삶이 주변을 참담하게 제거하고 변형한다. 네언이 찾아간 폐허의 교외 도시는 우리 가족이 떠나온 마을이자 많은 사람이 내버린 활력 없는 소도시들과도 같다.

땅끝에서 서울까지 거듭한 이주로 인해 나는 꼬맹이 시절을 보낸 마을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무수한 이사들 사이에서도 기억에 남은 것은, 동네 아이들과 산딸기를 따먹으러 뒷산에 오르고, 소문만 들은 뱀을 잡으러 나무 막대기를 들고 덤불 속을 뒤진 것, 시골장에서 길을 잃어 울다가 딸기 장수 옆에서 달콤한 딸기를 먹으며 천천히 엄마를 기다리던 순간이다. 소소한 시골에서의 기억을 다 말하려면 이 지면이 그 얘기로 넘쳐나고 말 것이다. 기억만 무성한 유년기 경험들 속에서 이상하게도 나는 어떤 지명도 기억하지 못한다. 잦은 이주 사이에서 장소의 이름들은 일이 년 후면 사라지는 것 중 하나다. 내 기억에서 흐릿한 이름만큼 지도에서도 흐릿해진 소도시들, 그 일부는 이제 도시도 시골도 아닌 서브토피아가 침투한 지역이기도 하고, 네언이 한탄하던 코벤트리처럼 폐허가 된 곳이기도 하다. 코벤트리와 내가 살던 도시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기념비적으로 불멸하는 장소가 된 반면, 후자는 30년 전의 흔적을 조금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의 경험이 여전히 생생한 것은 오늘날 도시에서는 그 시간의 흔적조차도 복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산딸기는 유기농 마켓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뱀은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에서 운이 좋다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시장에서 길을 잃는다면 핸드폰 번호로 가족을 찾을 수 있다. 슈퍼마켓에서 사는 규격화된 형태의 산딸기의 맛과 유년기에 길가에서 따먹던 산딸기의 맛 사이에는 거대한 장소의 격차가 존재한다. 그 격차를 모두 지우고 오늘날 우리에게 제공된 산딸기의 비슷비슷한 맛은 네언이 염려했던 획일적 도시의 삶이 바탕이 된다.

서브토피아 – 키드: 성남 – 부천 – 중동 – 탄현

1980년대 초 엄청난 인구가 미래의 삶과 꿈을 따라 서울로 질주했듯이 우리 가족은 한반도 끝에서 1번 국도를 타고 여러 번의 이사 끝에 성남에 도달했다.

성남 – 부천 – 중동 – 탄현, 이후 30년간 살아온 도시들의 경로다. 모두 수도권이라 불리는 서울 주변 도시들로 경기도에 속한다. 우리 가족을 끊임없이 이동하게 한 추동력은 전국에서 사람들을 서울 가까이 불러 모았던 서브토피아다. 표준어라는 말처럼 표준화된 도시 환경에서 살아가고자 하던 사람들의 욕망이 한국의 도시 지형도에 투영된다. 장소에 대한 나의 기억은 성남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성남에 도달한 우리 가족은 중심 도시의 반경 20km 내에 살게 돼 무척이나 안도했다. 그때까지의 이주들 사이에서 정주는 길어야 일 년 남짓했기 때문이다. 매번 이사할 때마다 다음 짐은 언제 싸는지가 궁금한 나였다. 성남은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마음 놓고 짐을 풀어헤친 곳이다. 지금은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선 그곳은 당시 개천을 앞에 두고 형성된 언덕 위 주택가였다. 일 년, 이 년, 삼 년이 되던 해, 이 정주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분당 신도시 계획으로 인해 동네가 철거되면서 우리는 또다시 이사해야만 했다. 다니던 초등학교가 문을 닫았고, 학교 담벼락에는 재개발을 반대하는 붉은색 글씨가 어지러이 쓰였다. 분당이라는 대규모 신도시 계획으로 밀려난 우리 가족이 도달한 곳이 서울 서쪽의 부천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성남에서 살던 동네와 비슷한 언덕 위 다세대 주택으로 이주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우리는 또다시 짐을 쌌다. 이번에는 다른 상황이었다. 신도시 개발로 인해 다른 도시로 밀려난 우리가 개발이 완료된 신도시로 이주한 것이다. 1993년 부천에 중동 신도시가 생겼을 때였고, 우리는 처음으로 아파트로 이사했다. 같은 시기에 생겨난 신도시가 분당, 일산, 평촌, 산본이다. 경기도에 생긴 첫 번째 대단지 신도시로 수도권 1기 신도시라 불리는 곳들이다. 각각 서울로부터 남동쪽, 북서쪽, 남쪽, 남서쪽으로 20km 내의 거리를 두고 있다.2 중동은 서쪽으로 20km이다. 드디어 서울의 20km 반경 내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다세대 주택에서 아파트로 옮기면서, 우리 가족의 잦은 이주는 정주 상태로 바뀌게 되었다. 수도권에 건설된 다량의 주택은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당시에 많은 가족에게 안정된 주거 환경을 제공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 수도권 1기 신도시로의 전입자 중 70%가량은 서울에서 이주한 인구이기도 했다. 서울의 주택난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브토피아는 주변에서 중심을 향하지만은 않는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향할 때 서브토피아의 세계는 중심과 주변을 관통하며 퍼져나간다. 이를 더욱이 활발히 작동시키는 것은 사람들의 욕망이다.

중학교 지리 시간, 서울 주변의 위성도시에 대해 배운 내용이 또렷이 떠오른다. 지리 교과서에도 1기 신도시의 베드시티(bed city, 침낭도시)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수도권에 존재하던 서브토피아의 풍경이 30년이 지난 오늘날 서울의 한가운데에서 전개된다. 은평뉴타운, 공덕뉴타운, 아현뉴타운, 영등포뉴타운 등 높은 담벼락에 둘러싸인 아파트는 이제 서울에서도 흔한 풍경이 되었다. 이곳에서 밀려난 집, 서울에서 살아온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2000년대에 들어서자 수도권 2기 신도시가 더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화성, 동탄, 판교, 운정, 세교, 위례, 검단, 광교, 김포, 평택 등이다.3 최근에는 신혼부부나 아이를 둔 젊은 부부가 정착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2기의 광역권은 1기보다 30km 정도 더 멀어진다. 2기 신도시가 들어서자 부모님은 20년 넘게 산 중동을 나와 일산 끝자락이자 파주 진입로의 새 아파트로 이주했다. 그곳이 아직 다 채워지지도 않았는데, 파주 북서쪽을 따라 끝없이 신도시가 건설 중이다. 서울을 둘러싼 서브토피아는 1990년대에 반경 20km를, 2020년에는 50km를 향해 나간다.

영등포의 한 거리를 걷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른다. 고개를 돌려 보니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단짝 친구 혜정이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혜정이와 나는 고등학교 때 두 해 연속 같은 반에서 있었다. 둘 다 이과였고, 키도 비슷하고 성적도 비슷해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당시 막역하게 지내던 친구는 혜정이 말고도 네 명이 더 있다. 우리 다섯 명은 함께 몰려다니며 독서실에서 서로 졸음을 깨워주기도 하고, 서울 나들이도 함께 하며 청소년기의 희로애락을 공유했다. 모두 부천에서 살았기 때문에 대학을 뿔뿔이 흩어져 다닐 때도 몇 개월마다 항상 부천역 앞에서 만나 수다를 떨며 각자의 대학 생활과 장래 고민을 공유했다. 그러던 다섯 친구가 서로 연락이 뜸해진 것은 직장을 갖고, 하나둘 결혼하고, 아이까지 갖게 되면서다. 오래간만에 만난 혜정이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연락책이었기에 모두의 소식을 잘 알고 있다. 우리 중에는 부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들도 있었는데, 이젠 아무도 부천에서 살지 않는다. 몇 친구들의 부모님만 여전히 1기 신도시에 살고 있을 뿐이다. 1990년 중반에 지어진 1기 신도시는 우리가 떠난 중동처럼 이제 더 이상 신도시라 불리지도 않는다. 당시에 생겨난 아파트 단지들은 최근에 지어진 뉴타운으로 인해 집값이 내려갔고, 재개발을 추진 중이지만 여러 번 실패했다. 경기도에서도 특히 인구가 많았던 그 도시, 교육열도 높고 범죄율로 높았으며, 수도권 출퇴근 지하철 이용자 1위를 선점하던 그 빽빽한 도시로부터 우리는 모두 탈출하고 싶었던 것일까? 다섯 명의 여고생은 20년이 지난 지금, 서브토피아의 굴레로부터 탈출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영등포의 비좁은 방에서 나는 창밖으로 들리는 공사장 소음을 들으며, 1번 국도와 외곽순환도로를 거쳐온 삶의 경로를 되짚어 본다. 서브토피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수도권의 도시 지형도 – 도시 리서치 프로젝트 〈서브토피아〉

오늘날 교외 도시는 ‘서브토피아’의 괴물인가?

발현될 유토피아인가?

작년에 기획한 도시리서치 프로젝트 〈서브토피아〉4는 경기도 공간 지형도에 대한 관심사를 용인이라는 특정 도시로부터 접근한 전시다. 용인을 리서치하면 할수록 도시 공간의 특수함보다는 보편적인 얼굴을 마주했다. 이로부터 전시 주제를 ‘서브토피아’로 두고, 용인이라는 도시를 경유하여 중심 도시의 “주변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간 재배치”의 파편을 추적해 보고자 했다. 일곱 명의 참여 작가의 작업은 도시 공간의 확장 속에서 중심과 주변의 틈새와 기형적인 현상, 배제된 장소에 주목했다. 도시 중심 밖으로 밀려났으나 기형적으로 확산된 교외 지형도를 다뤘다. 주변으로 내몰린 것들이 자본에 의해 다시 중심과 가까워지고, 그리하여 새로운 주변이 확장되는 공간적 현상을 파고들고자 했다.

용인은 경기도 도시 중에서도 특히 가파르게 성장해온 곳이다. 1970년대 만해도 10만 명이 살던 한적한 소도시는 40년 만에 인구 100만의 밀리언 시티가 되었다. 인터넷에서 발견되는 각종 수식어는 용인에 접근하는 단서로 작동하기도 하지만 아무 근거 없이 장소를 규정해버리기도 한다. 용인을 규정하는 흔한 단어들을 태그 형식으로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00만명 #밀리언시티 #채무제로 #빚없는_도시

#중단된_교각 #경전철 #난개발 #신성장축 #도로공사

#택지개발 #중심지 #교통난 #2035_도시계획

#도시불균형 #개발축 #골프장 #첨단산업도시

#태교도시 #웰빙라이프 #분양 #투자 #경제자족도시

#백남준아트센터 #에버랜드 #한국민속촌

인터넷에서 검색한 단어와 지인에게서 들은 단어, 그리고 기억 속 사적인 경험의 조각들을 맞춰 보려 할수록 단어와 단어는 멀리 떨어져 나간다. 도무지 개연성을 찾을 수 없는 단어들은 각각 흩어진 채로 서로를 마주한다. 난개발과 신성장, 교통난과 개발 축, 채무 제로와 중단된 교각 등 양립 불가능한 말들이 쌍이 되어 거울처럼 서로를 바라본다. 하나의 도시에 난개발이라는 오명과 100만 ‘채무 제로 도시’는 어떻게 서로 공존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의문으로부터 기획하게 된 〈서브토피아〉는 “도시와 공공 사이의 간극”을 도시에 파편적으로 존재하는 장소로부터 더듬어 나가는 작가들의 도시 리서치였다. 일곱 작가의 작업은 유토피아를 향한 유예된 욕망이 어떻게 교외 도시로 수렴, 확산되어 왔는지를 다뤘다. 주변부였던 교외 도시가 새로운 도시 모델로 등극한 시대에 작가들이 리서치한 도시 공간의 모습은 어떠한가? 아래 태그들은 작가들의 용인 리서치 과정에서 도출한 단어들이다.

#보류 #실패 #한계 #진행중인_풍경 #웅덩이

#노출된_땅 #임시적_폐허 #불분명한_터

#보류중인_장소 #녹색사막 #도시_변두리 #골프장

#30만평 #광채 #욕망 #일시적_풍경 #사유화된_영토

#골프 #계급_특권 #분리된_영역 #허구적_상호작용

#도상학 #주변부의_주변부 #당신의_배경

#광주_무갑리 #그린벨트 #개발의_속도 #거리

#버려진_잃어버린_사물들 #화목한_가정 #미래의_도덕

#멸균도시 #이기심과_걱정 #한때의_신도시

#다시_지을_수_없는_아파트 #가난방조제

작가들의 리서치에서는 도시로부터 방치된 영역, 욕망과 실체 사이의 간극과 단절, 공유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탐구가 담겼다. 수도권, 더 넓게는 중심 도시의 주변부에서 기형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교외 도시의 형성 과정에 대한 관찰과 기록, 여전히 ‘진행 중인 도시’, ‘끝나지 않을 도시’에 대한 탐구다. 서브토피아는 한국 도시의 변형 과정에서 활발히 진행 중인 기제로, 서울 주변부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작가들의 리서치에도 담겼듯 비워진 땅은 빈 땅이 아닌, 미래의 개발을 위해 ‘유예된 땅’이자, ‘보류된 땅’, ‘대기 중인 땅’이다. 과거의 개발과 현재의 개발, 그리고 미래의 개발 사이에서 유예된 땅덩어리는 그래서 현재의 시간으로부터 흉물스럽게 방치된다.

정주할 수 없는 땅에 들어선 것은 도시로부터 내몰린 것들이다. 매립지, 재활용 수거지, 폐기물 저장고, 중고차 판매처, 물류 컨테이너, 공사가 중단된 땅, 나대지, 건설에 필요한 포크레인, 지게차, 덤프트럭 등 온갖 중장비들이 땅에 나열된 풍경이 펼쳐진다. 도시와 도시 사이의 땅은 마치 건설을 위한 창고 같다. 서울 외곽으로 나가는 버스나 전철을 타면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이다. 가설적이고 건설적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지만 분명하게 도시로부터 배출되었거나 도시를 향해 대기 중인 것들. 우리 삶도 이 중장비와 폐기물처럼 언젠가 밀려나지 않을까? 노후 지역에 대한 혐오감은 방치된 풍경 때문에 거세진다. 서브토피아가 강하게 작동하는 것은 바로 이 구역이다. 서브토피아는 중심에서 내몰린 욕망의 발현으로만 볼 수 없다. 이는 주변에 방치되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 인간의 필사적인 정주 의지이기도 하다. 네언이 런던에서 교외 도시로 출발하며 한 말은 한국의 전원도시, 주변 도시, 신도시의 풍경과도 겹쳐진다.

사우샘프턴의 끝은 카라일의 시작처럼 보일 것이다. 두 도시 사이의 구역은 카라일의 끝이나 사우샘프턴의 시작과 비슷할 것이다.5

1972년 네언이 지방 도시로의 투어 프로그램을 계획하며 내뱉은 첫 문장이다. 도시가 획일화, 규격화되던 시기, 그가 우려한 것은 이로부터 제거되어가는 여러 시간대와 상이한 도시풍경, 누적된 삶의 양식과 차이들이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와 서울을 둘러싼 수도권 풍경에 투사해 본다. “용인의 끝은 광교의 시작처럼 보일 것이다. 두 도시 사이의 구역은 광교의 끝이나 용인의 시작과 비슷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수도권 풍경을 너무나도 절묘하게 묘사해 보인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시작하여 또 다른 신도시 대단지로 마무리되는 경기도는 마치 아파트를 시작으로 하여 아파트로 끝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아파트와 아파트, 건설과 철거 사이에는 방치된 땅들이 쉼 없이 등장한다. 한편, 오늘날 서울의 한 중앙에서도 주변부에서 확장되었던 대단지가 펼쳐진다. 더 폐쇄적이고 규범화된 형식으로 중심을 점유해 나간다. 다시 한 번 네언의 문장을 차용해 본다. “서울의 끝은 경기도의 시작처럼 보일 것이다. 경기도의 끝은 서울의 시작과 비슷할 것이다.” 서브토피아는 이제 중심으로부터 주변이 아닌, 주변으로부터 중심을 재변형해 나간다. 서울로부터 나아가던 반경 20km, 50km의 서브토피아는 돌림노래처럼 서울 내부로 퍼져 나간다.


심소미

독립큐레이터로 현대미술과 도시연구의 접점에서 전시기획과 비평을 해오고 있다.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학사,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에서 석사를 졸업했다. 기획전으로 〈건축의 반하여〉 (2018), 〈오더/디스오더〉(2017), 〈마이크로시티랩〉(2016), 〈신지도제작자〉(2015), 〈모바일홈 프로젝트〉(2014) 등이 있으며, 현재는 〈2018 공공하는 예술: 환상벨트〉의 총감독으로 수도권 공간지형도와 예술 실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서브토피아가 점령한 세계에서

분량9,640자 / 19분

발행일2018년 7월 27일

유형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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