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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학교

최태윤

천 개의 언어 2016.8.13

‹불확실한 학교› 참가자들은 고유의 감각과 언어를 가졌다. 이들과의 본격적인 워크숍 시작에 앞서 우리는 스태프, 협력작가, 그리고 참가자 가족을 초대해 참가자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기획 의도와 언러닝unlearning을 설명하고 워크숍 내용을 함께 리허설했다.

“일반적으로 언러닝은 ‘기억이나 지식을 의도적으로 없애기, 그 영향을 되돌리기, 습관을 버리기’ 등을 뜻합니다. 저는 보다 구체적인 의미에서 언러닝이 우리가 도전해야 할 권력 구조를 ‘탈학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러닝은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배움은 그 실을 가지고 직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워크숍 내용과 장애에 대한 토론 후 각자의 언어로 장애를 정의했다.

  • 장애는 몸의 형식이 다른 것
  • 장애는 없어져도 될 단어
  • 장애는 무궁무진한 발전을 지닌 것
  • 나에게 일어나기 전에는 나와 다른 세계라고 알던 것
  • 장애는 다양성
  • 장애는 생리적 숙명과 같은 것

신뢰와 공존 2016.8.28

‹상호의존›은 두 사람이 짝이 되어 걷는 퍼포먼스이다. 한 사람은 눈을 감고 손바닥이 위를 보도록 내밀고, 다른 한 사람은 눈을 뜨고 손을 내밀어 눈을 감은 사람의 손 위에 포갠다. 눈을 뜬 사람은 자신의 앞이 보이지 않는 짝을 안전하게 인도한다. 이때 두 사람은 언어나 소리는 사용하지 않고, 손의 떨림과 움직임으로만 소통해야 한다. 눈을 감은 사람은 언제든지 손을 뒤집어 눈을 뜰 수 있다. 그러면 눈을 뜨고 있던 사람은 눈을 감아 둘의 역할이 바뀐 채로 상대를 따라 걷는다.
‹상호의존›을 수행하면 비록 처음 만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긴밀한 소통을 할 수 있다.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에는 장애 유형에 상관없이 공존과 신뢰를 견고하게 하고 쌓아가는 연습이 된다.

벽이 사라진 도시 2016.9.3

사라 헨드렌Sara Hendren, 앨리스 셰퍼드Alice Sheppard, 노들야학과 함께 ‹램프와 접근성 매핑› 워크숍을 진행했다. 작가와 참가자 모두는 북서울미술관 근방을 행진하며 주거 지역과 상업 지역에 일시적으로 개입함으로써, 휠체어 사용자가 직접 느낀 도시의 공간 접근성을 지도로 제작함으로써 시각화하는 작업이었다.

도시에는 물리적인 벽이 많다. 휠체어 사용자와 지체장애인이 통행할 수 없는 횡단보도 진입부가 그러하다. 하지만 물리적인 벽만이 문제일까. 사람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도 많다. 휠체어 사용자와 지체장애인을 대하는 편견, 수동 공격적 태도, 마이크로어그레션과 같은 것 말이다. 이러한 보이는/보이지 않는 벽은 불확실한 것들을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매우 단순한 기준으로 경계 나누고 불확실성이 지닌 아직 발견하지 못한 무한한 가능성을 처음부터 소거해버린다. 벽이 사라진 도시를 상상해본다.

새의 시선으로 보는 서울 2016.9.17

‹불확실한 학교› 워크숍이 열리는 북서울미술관은 노원구에 있다. 미술관 내 커뮤니티갤러리는 장애인의 접근성이 좋고 참가자들이 워크숍에 집중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참가자 중에는 두 시간이 넘게 걸려 오는 이들도 있다. 전체 15회의 워크숍, 세미나, 전시를 위한 미팅 등을 위해 먼 길을 와준 참가자와 협력작가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이었다.

친구가 서울시 교통정보과 SNS 계정을 알려줬다. ‘새’의 시선에서 서울을 관찰할 수 있다. 서울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보수공사, 추돌사고, 집회와 거리 행사 등의 사건이 일어난다.

엉킨 실을 느끼는 존재 2016.9.21

‹불확실한 학교› 참가자들이 자신의 작업을 직접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이들 참가자들과 협력작가들이 너무 좋다. 오늘 읽은 이민희 작가의 시가 인상 깊어 일부를 발췌한다.

너와 나의 실타래
어둠을 뚫고 엉켜있는 붉은 실
나의 몸은 무명으로 엉켜 있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실
붉은 실은 슬픔으로 엉켜있는 실
나는 꿈속에 들어있는 것 같아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는
그런 존재 같지만
내 피부에 맞닿아 있는
너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어
손으로 감추고 온몸으로 감추어도
느낄 수 있는 존재

단단하고 질감이 있는 언어 2016.9.28.–11.20

전시 «상호의존»에서는 ‹불확실한 학교› 참가자들의 작품과 그간 학교에서 가졌던 프로그램의 과정을 소개했다.

우리는 주류의 소통방식을 질문하며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대화를 시도했다. 참가자마다 필요한 고유의 상황을 인식·공유하고, 해설보다는 통역에 집중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글은 질감을 띄고, 단단한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언어가 되었다. 우리가 발견한 이 대화의 방식은 공동체 안의 다양성을 발현시키고 개인의 존엄성을 지탱해주는 구조다. 이와 같은 대화가 예외적인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삶의 당연한 조건이 될 때, 우리는 각자가 가진 편견을 탈학습하고 타인에게 사려 깊은 손을 내밀 수 있게 될 것이다.

«상호의존»은 우리의 불완전한 고유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포용하는 가능성에 관한 전시이다. 또한, ‹불확실한 학교›의 강사와 참가자, 협력작가들이 서로에게 보여준 ‘급진적 호혜’를 관람객과 나누는 자리였다. ‘상호의존’의 잠재력은 각자가 혼자일 때는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공동의 역량으로 가능해지는 데에 있다.


불확실한 학교

확실한 세계의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는 잠재력을 탐구하는 학교이다. 수업 내용은 예술, 기술, 장애의 관계를 다루며,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학습해 온 배타적인 가치관과 차별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한다. ‹불확실한 학교›에서는 장애의 유무에 상관없이 지역 사회에서 활동하는 작가, 활동가, 학생들을 핵심 참가자로 초청하였고, 참가자의 다양한 장애유형을 고려하여 수화 통역, 문자 통역과 속기 등을 제공하고, 지체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에서 교육을 진행했다. ‹불확실한 학교›는 독립적인 창작 활동을 장려하고 상호의존적인 배움의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형식적인 평등을 넘어 공정성에 바탕을 둔 진실한 가치 체계를 형성하고자 했다.

‹불확실한 학교›에서 작가 최태윤이 진행하는 워크숍에서는 참가자의 창작 활동에 도움이 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온라인 출판, 전시 방법 등을 소개한다. 공개 세미나에서는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에 참여하는 국내외 작가를 강사로 섭외해서 그들의 작품 세계와 현대 미술에서의 기술, 환경, 신체의 담론에 관한 대화를 진행했으며, 북서울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을 제작하여 단체전을 선보였다.

본 저널은 2016년 8월과 10월 사이에 진행한 ‹불확실한 학교› 과정에서 쓴 일기를 모아 구성한 것이다. ‹불확실한 학교›는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의 커미션으로 진행되었다

최태윤

작가이자 교육자로 퍼포먼스, 전자장치, 드로잉과 스토리텔링을 수반하는 작업을 하며, 공공 공간 개입을 시도하기도 한다. 동료 작가, 활동가, 그리고 다른 분야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사회 참여적 프로젝트와 대안적인 교육 활동도 선보여 왔다. 아이빔 아트앤테크놀로지센터와 로어맨해튼 문화위원회에서 레지던스 작가로 활동했다. 도시화에 관한 책을 자가 출판하였으며, 컴퓨테이션에 관한 드로잉 책을 준비하고 있다. 2013년 시적연산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를 공동 설립하여 운영과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근래에는 장애와 정상의 벽을 ‘탈학습’하고 예술과 기술의 접근성과 다양성을 향상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드로잉 최태윤

불확실한 학교

분량3,568자 / 10분 / 도판 4장

발행일2016년 11월 14일

유형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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