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이미지의 몸 혹은 모험
김현호, 유운성, 임경용 × 이경희
분량13,981자 / 30분
발행일2016년 4월 28일
유형좌담
기술적 이미지의 지지체를 은유적으로 ‘몸’이라 표현하며, 오늘날의 범 시각예술에 대한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운영팀의 아주 사소한 커뮤니케이션 실수는 ‘몸’을 ‘모험’으로 뒤바꾸어 놓았다. 어쩌면, 함께 글을 쓰고, 서로 피드백을 격렬히 주고받고, 그 결과를 출판물로 남기고 알리는 동료를 찾는 모험이 더 시급해서 의도적으로 오독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비평적 글쓰기 모임의 운영자와 글쓰기의 고독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들어본다.
김현호 사진비평가이자 출판 편집자다. 대학에서 철학, 대학원에서 사진학을 전공했다. 격월간 『말과활』과 『사진이론학교』의 기획위원으로 있다.
유운성 영화평론가. 물리학과 영화이론을 공부하고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2004~2012) 및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부장(2012~2014)으로 일했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로 있다.
임경용 영화이론과 프로듀싱을 공부했고 지금 통의동에서 더 북 소사이어티와 미디어버스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진행 이경희
함께 하나의 책을 만들어서 세상에 내보내는 경험
이경희 글쓰기 워크숍 <기술적 이미지의 모험>을 진행 중이신 것으로 압니다.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해볼까요?
유운성 저 또한 영화평론을 쓰면서 틈틈이 강의를 해 왔지만, 특정 감독, 작품 혹은 주제에 대한 강의 형식의 강좌는 많은데, 정작 비평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를 실천으로 옮기도록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미 글을 쓰고 있거나 글쓰기에 관심 있는 이들을 모집해 공동으로 주제를 정해 글을 쓰고, 토론하고, 책의 구조를 짜고, 출판까지 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본 거죠. 마침 더북소사이어티의 임경용 씨가 글쓰기 워크숍 제안을 해 왔고 이후에 사진비평가인 김현호 씨가 합류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기획하게 됐습니다.
임경용 더북소사이어티에서 글쓰기 강좌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재작년에는 장혜령 씨가 수강생들과 함께 글을 쓰는 워크숍을 진행했고, 작년 말에는 박찬경 작가님이 젊은 작가들과 함께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어요. 작가들이 자신이나 타인의 작업에 대해 글을 쓰는 방식으로 워크숍을 진행하셨죠. 두 번 모두 참가자나 강사 모두 만족스러워 했는데 어떤 결과물을 도출해내진 못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함께 반드시 책을 만든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몇 번의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다 보니 좀 더 구체적인 목적이 있어야 과정도 더 좋을 것이라고 기대했죠.
김현호 사실 어떻게 해야 글을 더 잘 쓸 수 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물론 흔히들 하는 이야기가 있지요.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라는 식의 조언 같은 것들.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사실 정작 중요한 건 어떻게 해야 ‘나’라는 인간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게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일일 거예요. 그렇지 않은 조언들은 한낱 근성론으로 빠지기도 쉽고요.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답을 지니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쓰려고 백지를 대면했을 때의 고립감은 꽤 지독합니다.
제가 정확히 기억하는 건 단 하나였어요. 좋은 매체의 지속적인 청탁이죠. 글이 지면에 실리고 특정한 독자를 만나는 상상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읽고 썼던 것 같아요. 사실 백지 앞에서 무력한 건 저희나 참여자들이 마찬가지죠. 하지만 함께 하나의 책을 만들어서 세상에 내보내는 경험을 한다면, 잔소리나 가르침을 주는 것보다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와 유운성 씨는 각각 『말과활』과 『인문예술잡지 F』의 기획위원과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비평 말고도 둘 다 잡지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어서, 그걸 바탕으로 시도할 수 있었던 워크숍이지요.
유운성 책을 낸다는 건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검증된 필자를 물색하거나, 도중에 수정도 해 가면서 위험을 줄여나가려 하는 거죠. 그동안 저는 대학이나 사설 아카데미에서 영상제작 워크숍을 몇 차례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실험적인 다큐멘터리 연출자인 안건형 감독과 함께 했습니다. 영상 소스를 직접 활용해서 비평작업을 하는 오디오비주얼필름크리틱 워크숍이었는데요. 이런 워크숍의 경우 학기말이나 강좌가 끝날 무렵에 시사 및 총평회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항상 기관이나 영화제와 협력을 해서 참여자들의 작품이 공식적으로 상영될 기회를 만들고자 했어요. 워크숍에 참여한 이들끼리만 보고 총평을 하게 될 작품을 만드는 것과 어떤 방식으로든 불특정 다수에게 내보일 것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것은 꽤 다른 결과를 냅니다. 작업에 임하는 태도, 작품의 성격, 참여자들이 투입하는 에너지까지 완전히 달라져요. 그래서 글쓰기 워크숍도 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해보자고 제안 했습니다. 이건 모험이죠. 검증된 필자가 거의 혹은 전혀 없는 책을 내는 일이니까요.
김현호 글과 책에는 어떤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요. 글과는 달리 책은 하나의 물건이자 상품이지요. 이 말은, 글이 책이 될 때 특정한 변화를 견뎌내야 한다는 걸 의미해요. 예를 들어 글은 쓰는 이 자신이 일차 소비자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독립출판이건 학술서이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자에 맞추어서 자신을 깎고 다듬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목차에 따라 각각의 글이 바뀔 것을 요구받기도 하고요. 이건 근본적인 차이일 수도 있어요. 글은 자기가 원하고 관심 있는 것을 쓰지만, 책은 어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결과물로서의 물건이니까요. 책의 요소에 맞게 글 각각이 상호보정을 해야 하니 참여자들은 각각 기획자의 역할도 가져야 하죠. 이건 일반적인 글쓰기 교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거친 경험일 수 있어요.
이경희 그러면 ‘기술적 이미지의 모험’이라는 주제에 대한 워크숍 참여자들의 글을 출판하는 것인가요?
임경용 두 분이 처음에는 ‘기술적 이미지의 몸’이라고 정한 것이었는데, 제가 ‘몸’을 ‘모험’으로 잘못 들은 거였어요. (웃음)
김현호 주제를 정해줄 수는 없지요. 화두 자체가 무엇인가도 그리 중요하지 않은 걸지도 몰라요. 단지 특정한 화두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각 글의 주제가 더 정교해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는 그런 정교함을 도울 수는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특정 영역에서 비평을 하려고 하면 기본적인 텍스트에 대한 독서는 필요하거든요. 물론 글쓰기가 읽기의 부산물은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로 쓰기가 읽기를 강제하기도 하죠. 하지만 최소한, 아주 동시대에 벗어나지 않으려는 글을 쓰려면 기본적인 독서는 필요하거든요. 어떻게 글을 잘 쓰게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너무 벗어나는 글은 피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비평을 예로 들면, 사진의 본질을 탐구한다거나, 찍는 이의 진정성을 상찬하는 등의 이야기는 안 하게 하는 역할은 가능할 것 같아요.
비평가와 비평 영역의 재발굴
이경희 아트씬만 보아도 월간지에서는 비평가 간에 논쟁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비평담론의 부재를 이야기 하면서도, 정작 단단한 플랫폼은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 진행 중이신 글쓰기 워크숍이 젊은 비평가를 발굴하고 견인하고자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유운성 한국에서 비평이 존재했던 영역이 어디였나를 생각해보면, 문학과 미술에는 (한때는) 분명 있었다고 봐요. 비평이란 작품론이나 작가론, 당대의 경향을 진단하는 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작가나 작품에 대해 말하면서 ‘지금, 이곳’에서 왜 그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자칫 선동이 됩니다. 그러한 당대성에 입각해 보편적인 사상으로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면 비평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봐요. 그런데 이런 의미에서의 영화비평은 한국에서 거의 존재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취향의 속물주의를 영화를 매개로 풀어놓은 것이 태반이었지요.
예전에 《교수신문》에 한동안 한국에는 크게 두 가지의 영화비평이 있었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교사의 비평’이죠. ‘시네마 리터러시’라는 강령에 입각해 영화는 읽혀져야 하고 그 읽는 법을 제시해 주겠다는 식이죠. 다른 한편에는 ‘교도관의 비평’이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이러이러한 작가나 작품을 주목하는데 우리는 아직 모른다, 라고 하는 것이 그런 비평에 속합니다. ‘너희들은 감옥에 갇혀 있어 잘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고 이런 일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겠다’는 식이죠.
이경희 그러면 사진비평은 어떠한가요?
김현호 사진은 양상이 조금 다른데요. 사진비평을 문학비평이나 미술비평에 비교하기는 어려워요. 범주가 훨씬 넓은 거죠. 사진에 대응하는 개념은 ‘문학’이라기보다는 ‘이야기’ 정도겠지요. 미술관이나 갤러리 밖에서도 훨씬 많은 사진이 생산되고, 문제는 다양한 사진들, 즉 건축사진이나 항공사진이나 의학사진, 상업사진 등의 사진들이 특정한 시점에 기회를 잡으면 미술관 안으로 마구 밀고 들어오려 한다는 거예요. 예술로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대단히 강하죠. 성공하는 이들도 많고요.
실제로 미술비평에 있어서도 신미술사나 시각문화연구가 준 시사점이 대단했지만, 사진에 준 충격만큼 강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사진비평을 하기 위해서는 예술 제도에서 유통되는 사진만을 아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요. 사진 이미지가 세상에서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고 유통되는지를 이해해야 하는 거죠. 그들이 언제 갑자기 갤러리로 쳐들어올지 모르니까.
그런 맥락에서 이영준, 최봉림 선생 같은 분들이 한국 사진에서는 최초로 어떤 당대성을 지녔던 비평가가 아니었나 싶어요. 두 분은 특히 자신의 비평이나 이론을 전시기획으로도 구현할 수 있었던 분이고요. 하지만 ‘사진은 사진이어야 한다’는 식의 어떤 근본주의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요. 찍는 이의 휴머니즘에 대한 신뢰도 아직 강한 편이고요. 어떤 교착 상태에 놓여있는 것 같아요.
유운성 평단의 양상이 영화의 경우 확실히 다르긴 해요. 문학, 미술, 사진의 경우 평론가의 상당 수가 연구자나 교수 등인데, 영화 쪽에는 저널리스트가 많죠. 학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들 내부의 담론으로만 유통될 뿐 영화 평단에 거의 유입되지 않아요. 그게 영화와 영화평론이 지닌 대중성 때문이라고만 단정짓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데요. 대단히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를 둘러싼 담론 영역에서도 저널리즘과 학계의 교차는 거의 생기지 않고 있거든요.
김현호 사진은 분야의 특성상 탁월한 분들이 자꾸 다른 곳으로 가요. 이영준 선생님은 기계비평, 이경민 선생님은 아카이브로. 즉 사진과 연관된 다른 자극적인 지식의 영역으로 떠나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임경용 수요가 별로 없어서 그런 걸까요?
김현호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대중 매체라는 사진 생태계의 특성상, 평론이 없어도 잘 살아가기도 하고요. 실제로 사진이 다른 영역과 교합되어 만들어내는 지식의 풍경은 대단히 거대하고 아름다워요.
하지만 저는 사진 자체에 관심이 있어요. 우리는 경이로운 시대를 살고 있거든요. 인간은 최초로 모든 개체가 매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찍는 종이 되었어요. 디지털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지지체를 만난 사진은 예전과는 전혀 다르게 변하고요.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고 위험성에 대해 같이 공부하고 경고하고 싶기도 한데, 선배들은 도망가고 후배들은 안 나타나네요.(웃음)
글쓰기의 고립과 고독
임경용 두 분이 워크숍을 진행하지만, 어떤 텍스트가 되었든 간에 미디어버스에서 출판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사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면 워크숍 결과물로 책을 만드는 것이니까 책의 퀄리티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고 일종의 모험이죠. 저도 같이 워크숍에 참여하는데, 글을 쓰는 것이 친숙하신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는데 서로의 글에 코멘트도 하면서 공동으로 글을 쓴다는 인상을 줘요. 그러한 과정이 글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금은 예측할 수 없지만, 저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시작부터 ‘출판을 해야 한다’는 것이 주는 책임감이나 무게가 있다고 생각해요. 계속 지금 쓰고 있는 글이 교보문고나 알라딘 같은 일반 서점에서도 판매될 것이라고 계속 이야기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계원예술대학과 국민대학교에서 디자인 전공 학생들과 디자인 글쓰기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디자인이나 시각예술학과 학생들과 진행한 글쓰기 수업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책 만들기 수업이었어요. 과거와 다르게 이제 독립서점이나 ‘언리미티드에디션’과 같은 페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업을 유통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그러한 사실이 수업 중에 진행하는 작은 프로젝트라도 큰 동기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발행인으로서 이렇게 쓴 글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공적인 무대에서 유통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그러한 감각을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참여하고 있어요.
김현호 저는 기본적으로 출판 편집자라서 한편으로 매우 조심스러워요. 아무리 책을 많이 낸 석학이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타인의 한두 마디에 잘 흔들리는지 알거든요. 선배 비평가들이 고립감 때문에 이상해지는 모습도 많이 봤고요. 어떤 선생님은 (글쓰기가) ‘우물에 돌을 던지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끊임없이 써도 반응이 없었다는 말씀이시죠. 비평에 대한 메타비평도 술자리에서 많이 이뤄지기만 하고요. 그런 건 상처가 돼요.
특히 저는 결정론을 이야기하며 횡행하는 글들을 볼 때 가장 상처를 받아요. 예를 들어 특정 장르의 예술적 기능은 끝났다거나,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거나 하는 묵시록적 선언을 강하게 내지르는 글들이죠. 하지만 이런 건 비평가의 태도는 아니에요. 공부를 하다 보면 종말을 선언하고 싶은 욕망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우리는 세상이 어떤 몇 가지의 요소로 모델링을 허락하는 결정론적 대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요. 역사는 단절적이며 불연속적이죠. 그러므로 중요한 건 결정론에 굴복하지 않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어쩌면 저렇게 강하게 이야기하는 건 외로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참여자들이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는 게 이런 워크숍을 하는 중요한 계기에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유운성 저 또한 비평적 글쓰기는 자신이 당대의 독자들과 관계하고 있다는 자의식이 없으면 성립이 안 된다고 봐요. 하지만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분명 당대의 독자들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로부터의 응답을 꼭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저는 그런 피드백을 기대하는 순간 글쓰기가 이상해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말을 거는 대상을 상정하고 쓰는 것과 응답을 기대하며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거든요. ‘나는 이들을 대상으로 글을 쓴다, 하지만 내가 쓰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읽힐 지는 모른다, 심지어 전혀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점을 자각하면서, 철저한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검증해가며, 상상의 독자들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글을 쓰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고독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결코 좋은 글을 쓸 수 없을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 인터넷의 장단점이 있어요. 글을 발표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해진 것은 좋은 일인데, 글쓰기에 요구되는 고립과 고독의 감각을 상실하게 하는 거죠.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비평적 글쓰기에 필수적인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런 감각 만으로 글쓰기가 지탱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글을 발표하자마자 온라인 상에서 이런저런 반응들을 받는 것이 필자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반응이 없이 하루만 지나도 조급해지죠. 조급해지다 보면 글에 자극적인 혹은 강한 무언가를 자꾸 넣게 되고, 이런 평론가는 일종의 ‘유사 잠언’을 던지는 사람이 됩니다.
특정 영역에서는 인기도 끌 수 있겠죠. 이런 데 익숙해지다 보면 코멘트나 주장만 던지고 근거를 대는 일은 점점 번거롭게 여겨지겠죠. 비평가에겐 자신의 글이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독자에게 말을 거는 일이 필요합니다. 오해가 있을까 해서 덧붙이자면, 일단 이런 과정을 거쳐 쓰여진 글에 많은 이들이 접근 가능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인터넷은 이 점에서 유용하지요. 피드백에 대한 불안만 떨쳐낸다면요.
이경희 글쓰기와 피드백에 대한 임경용, 김현호 두 분의 생각도 말씀 들어보죠.
김현호 읽히지 않는 글을 쓴다는 건 한편으로 대단히 용감한 일이예요. 하지만 저는 비평의 외연이 넓다고 생각하고, 저는 유운성 씨보다 훨씬 더 잡스러운 영역에 있고 싶어요.
저는 출판편집자 출신이라서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읽기 어려운 글을 쓰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실제로 주위 사람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사진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요. 하지만 요즘의 사진은 세상을 채울 정도로 많이 생산되고, 자신의 벡터를 지니고 움직이며 증식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글을 많이 읽히고 싶어하는 편이에요. 그걸 위해서는 기꺼이 많은 걸 포기하고요. 유운성 씨의 밀도 높은 글을 저는 정말 좋아하지만, 저와 목표가 다를 수는 있는 것 같아요.
유운성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고요. 제 말은 어디까지나 비평적 글쓰기에 대한 것입니다. 비평적 글의 경우 즉각적으로 전적인 공감을 끌어내는 글이 존재한다는 게 저는 납득이 안 되거든요. 그것은 사실 크리티컬한critical 글이 아닐 가능성이 크죠.
김현호 출판 편집자들이 베스트셀러와 비베스트셀러 작가를 구분할 때 하는 말이 있어요. 전자는 대중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아는 사람이라는 거에요. 예를 들어 뇌과학자 정재승 선생 같은 경우죠. 그런데 대중은 자신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잘 모르지요. 누군가 선제적으로 자신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찾아서 해주면 좋아하고 공감하는 거에요. 사실 이것은 어떤 급진성을 차단하는 일이기도 해요. 독자들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용감하게 하는 단호한 비평은 멋지죠. 아까의 제 말과는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글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데 동의해요.
임경용 지금 참여하시는 분들은 20대 중후반~30대 초반의 젊은 층이 많아요. 물론 40대도 몇 분 계시지만.
어쨌든 젊은 세대를 보면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로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받는 것에 익숙한 것 같아요. 그러한 상황이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많죠. 즉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표현에 집중하고 그러한 방식으로만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부분은 똑똑한 냉소 같은 것인데 그게 작은 회로 안에서 반복되면서 그 안에 참여한 사람들을 교육시킨다는 인상을 줘요. 하지만 우리가 목표로 하는 글에 도달하려면 SNS에서 반응해주는 글과는 분명 거리가 있죠. 그리고 그러한 회로에 익숙한 필자들은 그 바깥을 어려워하거나 거리를 두죠. 그리고 텍스트가 아닌 시각적 언어로 작업하는 디자인과나 예술 전공 학생들도 비슷한 것 같아요. 자신이 즐겨 찾는 서점이나 즐겨보는 레퍼런스의 클리쉐들을 무의식적으로 답습하는 것 같아요. 그건 당연한 것이고 긍정적인 부분도 있죠. 하지만 그 바깥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견해를 내놓거나 비평적인 태도를 가질 수 없을 때 일종의 지적인 것에 대한 혐오로 변질되는 것 같아요. ‘취향의 공동체’라는 말을 저도 사용한 적은 있는데, 그 취향이 작은 회로에서 끝나버릴 때 사고를 좀 더 밀고갈 수 있는 체력이나 지적인 능력이 점차 퇴보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경희 실제 참여하시는 분들의 지원방식이 글을 제출하는 거였잖아요. 참여가 기대하신 것보다 많았나요? 글쓰기와 본인 글에 대한 피드백을 향한 갈증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유운성 많았어요 실제로 선발한 최종 인원보다 두 배나 많은 분들이 신청했으니까요.
김현호 선정 기준은 쓰기에 대한 욕망이 강하고, 이미 꾸준히 해온 사람들이 우선이었어요.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을 때도 글쓰기가 즐겁다는 것을 아는 분들을 대상으로 하고자 했어요.
유운성 앞으로도 글을 쓰거나 쓸 것 같은 사람인지도 고려했고요.
김현호 현업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의 글이 일정 수준 이상인 경우가 많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현업에서 활동하는 사진가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어쩌면 이것이 한국 독립출판이 디자이너 위주로 동력을 얻었던 이유였을지도 모르겠어요. 누군가의 심사를 받거나 클라이언트에게 자신을 소명할 필요 없이 책을 만들어서 팔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임경용 유운성 씨도 디자이너 글이 신선해서 더 좋게 보였을 수도 있어요. 이론 전공자들이 쓰는 글과는 또 다르니까요.
김현호 그런 면에서 첫 시간에 논문 글쓰기에 대해 한참 지적을 했어요. 물론 저는 학술서를 만드는 편집자로서 논문이 얼마나 대단한 지식의 형식인지 잘 알죠. 상호 호환되는 프로토콜을 지닌 부품들이 모여서 하나의 군집을 이루죠. 하지만 논문의 세계는 어딘가 초현실적이예요. 대부분 공통적인 배경지식을 지닌 이들이 있고, 딱히 부탁하고 설득하지 않아도 글을 읽어 주죠. 하지만 책은 누군가 자신의 시간을 팔아서 번 노동을 통해서 구입해야 하는 거예요. 그건 독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의미해요. 논문의 공간에 글을 쓰는 습관이 저자거리로 나왔을 때는 꽤 무력할 수 있어요.
이경희 프로그램 이야기 한 김에, 참가자들이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유운성 저희에게 본인이 글 잘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요. (웃음) 이미 출간 경험이 있는 분도 있는데 글을 쓰면서 적어도 한 번은 누군가 솔직하게 짚어주는 경험을 기대한 것도 같고요. 코멘트를 받았을 때 위축되거나 상처 받지 않을 정도로 강한 분들이 모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런 분들이 모였다고 믿고 싶습니다.
김현호 분명 기억나는 것은, 참여하신 분 중 몇 분이 ‘바뀌고 싶다’고 말했던 거였어요. 기존에 쓰던 방식에서 달라지고 싶다고요. 저는 이 워크숍에서 ‘크리틱’이라는 말도 안 쓰려고 해요. 하지만 학술출판 수준의 편집을 받는 경험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자기가 하는 퇴고와 남이 해주는 편집은 전혀 다르거든요.
유운성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확실히 해요. 저희에게도 이런 기회는 별로 없었거든요.
김현호 이런 일이 드물긴 할 거에요.
집단적 글쓰기의 가능성과 방향
임경용 이게 가능했던 것은 구글도큐먼트라는 테크놀로지 덕이 크죠. 심지어 자신이 글을 편집하는 중간에 누군가가 로그인을 해서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해 코멘트를 하고 편집을 하는 상황은 기술적으로만 이야기하자면 소위 ‘집단적 글쓰기’의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이건 정말 고독할 수 없는 글쓰기일 텐데 앞으로는 더 빈번하게 나타날 글쓰기 방법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기 강사 두 분은 집단적 글쓰기와는 먼 글을 쓰고 지향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어요. 워크숍 중간에도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시고요.
‘구글도큐멘트’를 통해 글을 쓰고 서로 코멘트하는 지금 워크숍 방식이 비평적 글쓰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두 분께 질문 드리고 싶네요.
유운성 열 두어 명이 10여 주 동안 정기적으로 모여 이야기하고 글을 쓴다고 해서 고독과 거리가 먼 작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분명 집단적으로 움직이고는 있지만 각자가 쓴 글을 읽을 독자가 누구이며 어떠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는 자의식은 지녔으면 좋겠어요.
임경용 글쓰기 기회는 어느 형태든 더 많아질 텐데, 이 수업의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김현호 제가 기대하는 가능성은 글쓰기의 향상보다는 함께 책을 만들어 보는 경험에 있어요. 예를 들어 한 편의 글을 같이 쓰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요. 하지만 책 한 권을 함께 만들어볼 수는 있어요. 이 워크숍을 들은 분들이 자기 나름의 동지를 모아서 책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관심사가 다르고 글을 쓰는 방식이 다르더라도, 함께 공부하고 세미나를 하고 책을 만들 수는 있죠. 그리고 그 책을 밖으로 내보내는 거예요.
유운성 저 또한 집단적 글쓰기에 대해선 회의적인데, 한편으론 여럿이 함께 해서 가능한 흥미로운 책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1997년 미국 평론가 조너선 로젠봄 -최근 국내에 그의 영화평론집 『에센셜 시네마: 영화 정전을 위하여』가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은 여러 국가적, 언어적 경계를 가로질러 특정 세대에게 나타나는 시네필적 취향의 공유와 무의식적 연대의 일반 조건은 무엇일까, 궁금해 하며 1960년 전후에 태어난, 자신과 열다섯 정도 어린 미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호주의 영화평론가 후배들에게 편지 교환을 제안해요. 이들은 심지어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임에도 대단히 유사한 영화 취향을 공유하고 있다고 봤고, 그 취향은 자신의 것과는 좀 다른 것이어서 궁금했다고 해요.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는 프랑스 영화잡지 『트라픽Trafic』에 수록되었고, 이 서신교환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다른 비평작업들, 대담들, 편지들과 묶여 2003년에 『무비 뮤테이션즈 Movie Mutations』라는 책으로 발간됩니다.
이와 유사한 다른 예들도 많은데요. 공동으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평론이 어떻게 대화를 통해 담론을 생성할 수 있는지 시험한 유의미한 작업이었다고 봐요. 그런 걸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임경용 씨와 공동으로 발행하고 있는 잡지 『오큘로(O-K-U-L-O)』 2호부터 서신교환의 결과물들을 수록할 예정이기도 하고요. 지금 진행 중인 글씨기·퍼블리싱 클래스는 꼭 이런 포맷을 따라가는 건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주기적으로 만나 서로 대화하면서 ‘기술적 이미지’라는 화두 아래 책을 만들어 보려는 것입니다.
집단 글쓰기를 넘은, 출판 미디어의 경험
이경희 집단, 즉 공동으로 긴밀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글만 쓰는 게 아니라, 함께 기획부터 출판까지 경험한다는 지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출판과 유통은 출판사에게 넘기고 설득하면 되는데, 왜 개인들이 이것들을 직접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나요?
김현호 미디어를 강하게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책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대상으로 한 상품이예요. 그 독자, 혹은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내용과 구성도 달라질 수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한편으로 출판의 특징 중 하나는 대량생산이라는 거예요. 모든 생산 프로세스가 모듈화되어 있어요. 유통도 단순한 편이고요. 실제로 잡지를 만들어서 세상에 내보내고 싶은데, 그 단순한 기술적인 것들을 몰라서 머뭇거리지 않기를 바랬어요. 글쓰기에는 고립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강한 쾌감이 있지요. 동료들을 모아서 함께 책을 만들고, 책을 통해 계속 친구를 얻어가기를 바라고 있어요.
유운성 대부분의 필자들은 일단 글을 편집자에게 보내고 나면 교정 원고를 검토하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출판 프로세스에 관여할 일이 별로 없어요. 아예 모르기도 하고요. 그런데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일할 때 출판 편집자들의 작업을 가끔 지켜보면서 이러한 출판 프로세스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출판 문화에서는 글쓴이 외의 사람들은 모두 그를 지원하는 역할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편집자나 디자이너의 작업을 어느 정도 알고 이해하는 사람의 경우 이들의 제안과 지적을 감안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의 작업을 고려해가며 글을 쓰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가 무척 흥미로웠어요. 에디터십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에 기반해 ‘나는 어떤 글을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무척 유용한 경험이라는 거죠.
임경용 두 분과 비슷한 이야기인데, 저는 독립출판의 큰 성과라면 사람들이 매체로서 책의 성격을 이해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책 매체나 내용, 형식에 대해 모두 자기 반영적인 작업들이 계속 나온다는 점이에요.
김현호 글을 쓴다는 건 세상에 상처를 입히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글이 글 자체로 있을 때는 큰 상처가 되지 않아요. 세상을 때리려면 출판이 되어 자신의 글이 돌아다니게 만들어야 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벤야민과 브레히트도 잡지를 만들려 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비평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매체를 가지고 세계를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출판은 비평의 적극적인 한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유운성 최종 결과물로 나오는 책에 비평만이 아니라 에세이도 있고 가능하면 인터뷰도 있으면 좋겠어요. 기술적 이미지라는 화두에서 출발해 이에 접근할 수 있는 글쓰기의 여러 양식들을 보여주는 것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워크숍을 함께 했던 분들과 워크숍이 끝난 이후에도 무언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하고요.
사실 저희는 학생을 가르친다기보다는 동료를 만든다는 기분으로 이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어요. 동료라고 생각하니까 코멘트도 더 강하게 할 수 있고요.
기술적 이미지의 몸 혹은 모험
분량13,981자 / 30분
발행일2016년 4월 28일
유형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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