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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장에서 난장으로: 공유지를 지키는 시민행동

이영범

공유지의 사적 소유에 대한 실험과 대책 _ 공유지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개발논리에 공공마저 가세하면서 사적 소유지만이 증가한다. 경의선 폐선 부지도 대자본이 과도하게 들어오며 삶의 다양성과 지속성이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작은 삶터인 ‘늘장’이 퇴거명령을 받자 시민들이 나서서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을 출범시켰다. 공유지 독점에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땅을 둘러싼 자본놀음과 사회적 배제

사회가 시간 속에 축적해 온 공동체적 삶의 가치는 전통적으로 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땅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억압과 착취의 중심에 있었다. 지주와 소작인의 억압과 착취구조가 땅의 소유 유무에서 비롯된 것이고, 용산 철거민 사태나 이태원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젠트리피케이션 이슈 역시 소유로 땅의 가치를 높이려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본의 독점적 지배로 인한 사회적 배제를 야기한다. 땅을 둘러싼 사회적 배제는 민간의 자본놀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최근 공덕역 인근의 경의선 폐선부지에 자리한 ‘늘장’의 사용 계약기간이 만료되었다고 내린 마포구청의 일방적인 폐쇄결정은 행정력이 시민사회를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일방적인 권력놀음이며 행정력의 과잉으로 보인다.

개인이나 사회현상은 그것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참모습이 파악될 수 있다. 대상을 그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매우 중요하다. ‘늘장’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그렇다. ‘늘장’ 현상의 본질은, 단순히 유보지의 개발에 의해 특정 주체들의 행위가 지속적으로 보장되지 않음에 대한 갈등의 노출이 아니라 공유지에 대한 성숙되지 않은 사회적 인식과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합의의 비민주적인 절차가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데 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구조적인 불합리와 모순에 저항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가 오히려 일반 시민들에 의해 야유와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점이다. 최근 언론 보도가 나간 후 인터넷 상에서의 댓글을 보면 시민에 의한 시민사회의 배제가 매우 심각한 지경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현재의 ‘늘장’은 시민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자 위기의 한 단면으로 보인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으로 분한 로빈 윌리엄스는 학생들을 모두 책상 위로 올라가게 한다.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세상도 달리 보인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늘장’을 비난하는 댓글을 단 시민들이 ‘늘장’이란 책상 위에서 한번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다. ‘늘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그저 개인이 아니다. 시민사회, 혹은 시민공동체의 열망이 개인화된 주체이다. 그들이 ‘늘장’을 열었던 것은 그 열망을 개인화하고자 함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와 함께 키우고 나눌 수 있는 희망의 공유지를 확보하여 자본의 땅이 아닌 모두를 위한 땅으로 지켜내고자 함이다.

자본의 물신숭배와 가치의 사물화

자본주의 물신숭배fetishism로 인해 인간과 사회의 관계가 사물화 된다. ‘늘장’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공동체를 위한 공유지로서의 가치가 자본이 개입될 여지가 생기면서 일순간 사물화된 것이다. 자본은 사물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라고 이야기한 마르크스에 빗대어 보면 늘장의 폐쇄와 민간자본에 의한 개발행위는 마포구청, 그리고 철도시설공단과 대자본 사이의 배타적 사회적 관계로 규정할 수 있다. 시민사회나 지역공동체가 그 배타적 사회적 관계망에 개입하여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은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최근 늘장을 둘러싼 문제가 언론에 의해 부각되면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시를 받은 서울시는 늘장의 대체부지를 한강 고수부지 인근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알려졌다. 대체부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늘장은 늘장이 있는 그 자리에 있어야 의미가 있다. 장소의 대체가 의미와 가치보다 우선하진 않는다. 그저 던져진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시민 공유지인가? 서울시가 소유하지 않은 땅이기에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유한 땅에 대한 서울시의 작금의 태도로 미루어 볼 때 소유하지 않음은 단지 현 상황에 대한 책임회피의 명분 거리일 뿐이다.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의 베벨 광장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매우 특별한 게 있다. 가로·세로 1m 정도의 유리바닥 밑의 지하공간에 조성된 ‘유대문학 분서기념관’이 그 주인공이다. 유리 바닥 속을 들여다보면 지하의 어둠에 에워싸인 흰색 책장들이 보인다. 하지만 수천 권의 책이 들어갈 책장들에는 단 한 권의 책도 꽂혀 있지 않다. 1933년 나치정권의 선전 장관이었던 괴벨스에 의해 자행된 ‘베를린 분서’를 기억하고자 함이다. 유대계 작가들과 나치정권에 비판적인 작가들의 책이 불온서적으로 낙인 찍혀 바로 이 광장에서 불 태워진 역사를 상징화한 도서관이다. 이 텅 빈 ‘도서관’에는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책을 불태우는 것은 서곡에 불과하다. 책을 불태우는 자는 언젠가는 인간도 불태우게 된다.” 공유지도 마찬가지다. 유보지로 남은 땅을 자꾸만 팔다 보면 마지막에는 도시에서 최소한 보장되어야만 하는 인간의 존엄마저도 내다 팔게 될 것이다. 시민의 공유지로 남아야 하는 땅마저도 자본화한다면 역사는 훗날 오늘을 야만의 세월로 기억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권력의 불균등

행정과 자본이 결탁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공감과 결단이 요구된다. 늘 시민과 함께 하는 행정이라고 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행정력의 실천과정에서 시민사회가 납득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댄다. 시민을 위한 가치는 그저 전면에 내세운 허울 좋은 명분이 되고, 그 아래 도사린 행정 편의주의가 아마도 더 중요한 잣대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시민들로 하여금 “우리는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혹은 우리는 진짜 한솥밥을 먹는 식구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늘장’의 땅 소유권을 갖고 있는 한국철도관리공단의 책무가 과연 그들이 말 한대로 자신들이 소유한 국유지를 잘 관리하여 가장 후한 값을 처 주는 사람을 골라 임대하거나 처분하여 다시 철도에 투자하는 것일까?

행정이 소유한 공공자산은 엄밀히 말하면 시민의 자산이다. 공공자산을 공공, 즉 행정의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어떻게 시정할 것인가? 그 주체가 한국철도시설공단이든, 서울시든, 마포구청이든 다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의 근본가치를 공유해야 할 행정력과 시민사회의 사이가 오히려 갈수록 권력의 불균등으로 치닫고 있다. 시민사회가 권력화 되어서 생긴 불균등이 아니기에 행정의 환골탈퇴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래서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행정 시스템의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 공유자산의 사용과 처분에 관한 의사결정권을 독점하려는 행정력과, 공유지에 대한 권리 주장과 자율적 운영을 확보하려는 시민사회와의 대립을 궁극적으로는 도시 인권의 신장을 통해 해결해야만 한다. 공유지에 대한 시민사회의 자율성 확보는 공간이 인권일 수 있고 복지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맞닿아 있다. 공유지의 자율성 확보는 도시에서 인권을 확장해 나가기 위한 기본권에 해당한다. 개발의 대한 저항이나 반대 프레임에 갇히면 담론을 만들어 갈 수 없다. 시민사회의 공유자산에 대한 자율적 운영을 통한 공유지 확보는 한 순간에, 아니면 늘장만으로 확보할 순 없을 것이다. 시민사회의 자율성의 영역을 제도화된 행정력의 틀 안에서 스스로 확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시민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인식하고 행정력과의 대응과정에서 시민공동체의 가치가 우선할 수 있는 의사소통의 자유를 얻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늘장에서 난장으로, 그리고 대안으로서의 시민자산화를 꿈꾸며

시민행동모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문화연대의 이원재 문화정책연구센터장은 늘장의 사태를 통해 도시재생이라는 옷을 입었지만 낡고 변함없는 개발동맹(정부+공기업+대자본)의 사회적 폭력은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현재 도처에서 진행되는 도시재생사업에 내재된 대상화된 공공성의 가치와 실현방식의 폭력성의 끝이 어디일지, 그리고 그 일방적인 질주를 누가 제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명확한 것은 시민의 행동만이 대안이라는 점이다. 죽은 공간에 숨결을 불어넣으며 시민공동체의 힘으로 꾸려온 대안경제 장터 ‘늘장’이 도시의 빈 땅을 허락하지 않는 자본의 개발 욕망에 의해 일순간에 사라질 위기와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들과 함께 힘을 합쳤다. 2016년 2월 19일 늘장의 현재를 통해 미래의 도시 공유지를 고민하는 다양한 단체와 사람들이 모여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을 결성하였다. 이를 계기로 ‘늘장’이 개발압력에 저항하는 난장으로 전환되었다. 여럿이 함께 하면 길은 뒤에 생긴다는 신념이 힘이 되어 움직인다.

자본의 시대, 불균등한 사회에서 개인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공유지가 바로 그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공유지가 조성되면 그 주변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른다. 공유지의 비극이 아닌 공유지의 역습이다. 최근의 연남동이 그렇다. 경의선이 폐선화 된 후 공원 조성이 결정되고 난 후부터 오르기 시작한 땅값이 지금은 공원에 바로 면한 위치 좋은 곳이 평당 8천만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공유지로 인한 반사이익이 특정한 개인에게만 집중되는 공유지의 사유화가 발생한 셈이다. 경의선 공원의 연남동 구간처럼 선한 가치의 공유지가 누군가에만 배타적인 이익을 안겨주고 결과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사회적 배제를 야기한다고 공유지를 탓할 문제는 아니다. 공유지의 역습이라 할 수 있는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은 ‘공유지 따로, 지역 따로’의 소위 따로 국밥형 지역재생의 태생적 한계에 기인한다. 사후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처하는 수동적 접근이 아니라 공유지 조성과 같은 공공적 행위의 개입이 가져올 지역의 문제를 사전에 예측하고 부정적 결과를 최소화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이는 경직된 제도화된 시스템이 아닌, 공간에 개입된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하여 스스로의 문제를 조정하고 결정하는 자율적인 시스템이어야 한다. 그 시스템이 껴안아야하는 문제의 핵심은 행정이 주도하는 공유지 조성에 뒤따라가며 급속하게 지역을 상업화하는 자본의 힘과, 그 힘으로 인해 거침없이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기뻐하며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내 주는 지역주민의 문제를 어떻게 동시에 제어할 것인가이다.

늘장과 경의선 공원 전경. 자료제공: 이영범.

해답은 시민자산화에 있다. 공유지를 지역과 묶어 시민자산화로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자산이란 통합된 틀 안에서 공유지 조성과 지역재생을 함께 해 나가자는 것이다. 지역공동체 개발을 위해 공유지 조성과 지역재생을 시민자산화전략으로 통합하고, 참여주체로서의 행정과 주민, 그리고 이해관계가 있는 개발자본이 전략 안에서 상호이익을 적정화하는 조정과 타협의 협력적 계획을 진행한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시민자산화를 단순히 건물이나 땅의 하드웨어가 아니라 공간, 주체, 프로그램이 통합된 플랫폼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유휴국공유지의 사용권을 시민사회가 양도받는 좁은 의미가 아니라, 행정으로부터 시민사회로의 공유지에 대한 자치적 권력의 이양이란 가치와 철학의 차원에서 시민자산화를 이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숲을 만드는 지혜

더불어 숲을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본으로 인해 사람과 공간 사이에 박힌 불신이 사라지고 개발압력에 의해 억압된 공간에 갇힌 시민의 역량이 해방될 때 희망의 공간은 우리에게 온다. ‘늘장’의 시민행동이 꿈꾸듯 공유지로서의 ‘늘장’ 역시 더불어 숲을 이루는 희망의 공간이어야 한다. ‘늘장’에 담긴 다양한 시민주체들의 소중한 시간이 우리 모두를 위한 공유지, 더 나아가 시민자산이란 공간으로 전환되길 희망한다.


이영범

경기대 대학원 건축학과 교수/도시연대 이사. 경기대 대학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커뮤니티디자인랩(CDL)의 대표이다. 도시연대 커뮤니티디자인센터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공간공유를 통해 사회혁신을 추구하는 시민자산화은행 쉐어SHARE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늘장에서 난장으로: 공유지를 지키는 시민행동

분량5,835자 / 20분 / 도판 1장

발행일2016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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