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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는 봄

박성태

올봄은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화사한 햇살도 노란 개나리도 멈칫거리며 뒷걸음칠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황폐한 사막이거나 짙푸른 바닷속 같은 세상에 과연 봄다운 봄이 찾아올 수 있을까? 가늠하기 어려웠다. 진실과 정의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이곳에서, 절절한 애원마저도 매몰차게 내처 버리는 차갑고 시린 이곳에서 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새순이 돋고 따뜻한 바람이 분다. 우리는 소풍을 준비하고 친구들과 도시락을 까먹을 생각에 들뜬다. 벚꽃이 만개한 도시엔 꽃보다사람이 많은 진풍경이 펼쳐진다. 그런데 그 모습이 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봄을 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 잊자”는 “잊지 않겠다”에게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거는 꼴이니, 힘겨울 수밖에 없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놈의 저질 망언과 경제 타령이 넘칠 때부터 봄마다 몸이 부대낀다.

이번 호 이슈로 난민을 다뤘다. 세계 곳곳에서 난민이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매년 수천만 명이 비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난다. 정치·사회적 갈등이 주요 이유다. 시리아는 인구 절반이 난민이나 유민이 되어버렸다. 최악의 비인도적 참사인 시리아 내전이 이유다. 그 내전은 독재정권과 시리아의 복잡한 민족과 종교 분파에 기인하지만, 이 아수라장에서 가장 큰 피해는 아이들과 여성들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떠돌이가 될 수밖에 없다. 난민 문제는 지금 세계가 짊어진 가장 무거운 짐이자 아픈 상처다.

한국은 국제적인 난민 문제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다. 2015년까지 누적 난민 신청자는 1만 5천여 명이지만, 난민 자격을 인정을 받은 숫자는 576명으로 4%에도 미치지 못한다. 난민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은 없고 서둘러 테러방지법을 처리했다. 평화를 위한 노력보다 피아彼我 구별짓기만이 난무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속했던 공동체를 떠나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들을 품는 데 인색하다. 그들을 나의 몫을 채가는 사람들로, 해를 끼치는 사람들로만 여긴다.

이 가운데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청년 세대들은 자신들을 ‘난민’으로 부르며 고향을 등지는 꿈을 꾼다. 세대 정체성을 잃어버린 그들은 절망적이고 무기력하며 빈곤하다. 우리 사회는 다른 세대, 다른 계층의 이웃을 점점 더 심각한 불안정 속으로 몰아놓고 있는데, 특히 청년세대가 코너에 몰렸다. 일자리는 부족하고, 그나마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빚’을 가지고 성인이 된 첫 세대다. 학자금 대출을 빼고도 생활비로만 은행에서 빌린 돈이 지난해에만 1조 원이 넘었다. 그들은 아직 난민이 아니지만, 삶은 이미 충분히 난민적이다.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은 “타인을 억압하는 사람은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돌을 던진다. 이웃과 함께 살자는 공동체의 가치는 희미해졌다. 반면 패거리 문화는 르네상스를 구가하고 있다. 꿈을 갖기 어려운 나라에서 우울과 절망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청년들은 난민을 자처한다. 봄이 왔지만, 구조 신호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성태 건축신문 편집인

아직 오지 않는 봄

분량1,508자 / 3분

발행일2016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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