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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 문자들의 잔치

김상규, 김경선, 김세훈, 이재민 × 박성태

타이포잔치는 타이포그래피와 관련이 있는 장르를 매회 선정해 주제를 정한다. 지난 2015년은 ‘도시’였다. 도시 속 타이포그래피의 존재는 크고 특히 한국 도시 내의 문자는 욕망의 가장 큰 표현일 것이다. 지역적 특수성이나 문화적 고유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전시를 꾸린 총감독과 책임큐레이터, 디자인전시 기획자와 도시설계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도시 속 문자의 욕망과 자화상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경선 건국대학교와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제일기획과 홍디자인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클럽 진달래 동인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타이포그래피의 탄생』(2010)이 있다.

김상규 (주)퍼시스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한 이래 지금껏 의자를 디자인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는 동안 전시 《Droog Design》, 《한국의 디자인》, 《Laszlo Moholy-Nagy》 등을 기획했으며, 현재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디자인학과 교수로 있다. 『사물의 이력』, 『의자의 재발견』, 『착한디자인』을 썼고, 『사회를 위한 디자인』을 번역했다.

김세훈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과 스튜디오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후 하버드 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재민 그래픽 디자이너.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2006년 스튜디오 fnt를 설립했다. 전시 《Weltformat 15 Plakatfestival Luzern》, 《Korea Now! Craft, Design, Fashion and Graphic Design in Korea》, 《交, 향》, 《타이포잔치 2011》 등에 참여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극단, 서울레코드페어 조직위원회, 정림건축문화재단 등의 클라이언트와 다양한 문화행사와 공연을 위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진행 박성태


도시와 문자의 잔치

박성태 이번 《타이포잔치 2015: 도시와 문자》(이하 ‘타이포잔치 2015’)에 대한 개괄을 먼저 부탁드립니다.

김경선 타이포잔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과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의 주관으로 문자의 예술적 가치와 실험 가능성을 탐색하고 교류하는 세계 유일의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입니다. 문자를 중심으로 언어, 도시, 음악, 영화, 정치, 경제 등 사회와 문화의 여러 측면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2013년 3회에서는 ‘문자와 문학’을 주제로 한 《슈퍼텍스트》(총감독: 최성민)가 치러졌고, 2015년 4회에서는 조직위원회가 총감독으로는 저를, 주제는 ‘문자와 도시’로 선정했습니다.

이번 타이포잔치 준비의 일환으로 2014년에는 ‘도시’를 자유롭게 연구하는 일환으로 <도시문자탐사단>이라는 프리비엔날레를 개최했습니다. ‘도시문자 버스’를 타고 서울을 누비면서, 가로수길의 건축과 도시형성 과정(옵티컬레이스), 상업밀집 지역인 강남의 밤이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SoA), 유진상가와 세운상가라는 옛 서울 내 주상복합의 야망과 로망(고 구본준 기자), 그리고 박해천 연구자가 고안한 개념인 ‘프랜차이즈 패턴 랭귀지’를 통해 명동, 홍대입구 주변의 임대료와 프랜차이즈 입점 분석(박해천 디자인연구자)을 진행했어요. 또한 간헐적이나마 다섯 차례의 신문 형식의 뉴스레터를 발간하며 문자와 도시를 연구하고 홍보했습니다.

2015년에는 네 명의 책임큐레이터와 전시명 《C( )T( )》를 비롯해, 상세 주제와 작가들을 정리했습니다. 책임 큐레이터들은 본전시 작가 선정 외에도 각자 하나의 전시프로젝트를 맡았는데, 이재민 선생은 도시의 가장 오래된 커뮤니케이션 매체인 포스터를 다루는 <( ) on the Walls>를, 이기섭 선생은 서울의 동네 서점을 소개하는 <SEOUL( )SOUL>을, 최문경 선생은 파주출판도시의 특성이 드러나는 <책 벽돌>을, 크리스 로 선생은 매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종로 ( )가> 프로젝트를 준비했어요. 책임 큐레이터 4명 외에도 별도의 큐레이터를 초빙했는데, 영국 RCA의 에이드리언 쇼너시Adrian Shaugnessy는 시각적 해석과 실제적 해석을 좀 다르게 매칭한 <여섯 이미지, 여섯 텍스트, 그리고 리믹스>를, 고토 데츠야는 다양한 아시아 디자이너들과 <아시아 도시 텍스트/처>를 준비했습니다.

타이포잔치 2015 《C( )T( )》

박성태 기획팀 밖의 김상규 교수님이나 김세훈 교수님의 ‘타이포잔치 2015’ 관람 후기를 들어보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떨까요?

도시의 현재성을 읽는 매개로서의 문자

김세훈 역사적으로 ‘문자’, 더 일반적으로 ‘언어’는 건축가나 도시설계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앞서 ‘프랜차이즈 패턴 랭귀지’를 연구한 박해천 교수를 언급하셨는데, ‘패턴 랭귀지’라는 용어는 미국의 건축가이자 도시 이론가인 크리스토퍼 알렉산더Christopher Alexander가 쓴 『패턴 랭귀지』(1977)의 출판을 전후로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이 책에서 사람들이 만든 도시공간에 필요한 언어를 규범론적으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다양한 문화적 맥락 속에서 도시개발이 일어나더라도 원초적인 생명력을 잃지 않는 도시를 위한 언어를 만들고 공유하고자 했죠. 사실 우리가 쓰는 언어나 문자는 문화적 고유성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도시공간을 구성하는 언어에 있어, 지역적 특수성이나 문화적 고유성을 더욱 부각하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하버드 대학의 조안 부스케츠Joan Busquets 교수는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격자 형태를 연구하면서 보편성보다는 특정 도시의 맥락과 이로 인해 비슷해 보이는 도시형태도 어떻게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전시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면,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우측에 있는 7개의 포스터들을 보며 맥락을 모르고 도시명과 각 포스터를 비교해 봤습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쉽지 않았지만, 기획 의도처럼 도시에 대한 선입견이나 개인적인 기억을 소거한 상태에서 작가들에게 각 도시의 구글이미지만 보여준 다음 즉각적인 반응을 표현하도록 유도한 측면이 흥미로웠습니다. 결국 선험적인 도시 내러티브를 재현하기보다는 무작위로 던져진 도시의 실제 이미지를 포스터와 문자로 재해석 한다는, 일종의 느슨한 예술의 목적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밖에도 도시의 소비문화와 관련된 작품들이 흥미로웠습니다. 상업가에 뿌려진 찌라시, 명함, 비닐봉투에 박힌 상업용 문구, 아파트 열쇠 손잡이에 새겨진 브랜드명 등을 보며 매우 한국적이기도 했고, 동시대 우리의 가로街路 문화를 잘 반영함과 동시에 문자가 한 도시의 질주하는 현재성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아시아 도시 텍스트/처>도 사람들이 벽에 무언가를 쓰거나 지운 자국을 기록하는 것은 굉장히 원초적인 방식이란 점에서 타이포 아티스트들이 도시의 리얼리티를 발견해가는 과정이 매우 재미 있었습니다.

김상규 저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본 다음에 타이포잔치를 봤어요. 광주는 감독 선임이 늦어서인지 짧은 기간에 빠른 속도로 몰아붙인 인상이 있어서 타이포잔치를 볼 때는 그것과 비교하면서 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오랫동안 준비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의 큰 기획전 같은 느낌도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각각의 목소리가 있으면서 너무 백화점처럼 보이지 않으려 하는 느슨한 연대감이 있었거든요. 이는 큐레이터의 역량 문제를 뛰어넘어 우호적인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카리스마를 가지고 지휘했다기보다는 여러 길의 가능성을 가지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연대한 기분 좋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기획자 입장에서 이런 전시에는 항상 딜레마가 있습니다. 창작자 중 자신의 작업을 과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디자이너나 건축가가 미술관에 들어오면 특히 그런 것 같아요. 일반인에게는 그게 좋을 수 있지만 제 입장에서는 왜 자꾸 아트씬의 정형화된 것을 흉내 내나 싶어 거부감도 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지나침이 없는 게 매력이었습니다. 쇼너시가 쓴 <그래픽 디자인 사용 설명서> 첫 머리에도 이런 얘기가 나오죠. 디자이너들은 자기 기술에만 집중한 결과 객관성을 잃어 그래픽 디자이너 증후군을 갖는다고요. 그런데 이번 경우는 그 디자이너가 도시를 객관적으로 보는 게 흥미로운 지점인 것 같습니다. 작년 <도시문자탐사단>의 버스투어도 디자이너가 자신의 창작을 보여주려는 열의보다, 오히려 대상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도시 풍경을 디자인의 입장에서 덤덤한 표정으로 관찰하고 개입하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이러한 관찰자의 시각을 잘 보여준 것은 크리스 로가 큐레이팅한 <종로 ( )가>였고요. 친숙한 사물이 낯설게 느껴질 때 오는 묘한 감동, 혹은 뒤통수를 맞은 듯한 다른 방식의 해석을 얻어갈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약간은 불균질하면서 서로 우호적인 관계인 방들의 구조가 매우 재미있어서 개별 작품보다는 전체가 한 덩이로 정겹게 다가왔습니다.

이재민 어깨동무하면서 연대한 느낌”이라는 말씀을 들으니, 2015년 초 김경선 감독님이 농담 삼아 하셨던 얘기가 생각납니다. 큐레이터들을 선정하면서 “혹시 이번 타이포잔치가 폭삭 망하더라도 나중에 서로 얼굴 붉히지 않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팀을 구상했다”고 하셨거든요. (웃음)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일을 진행하다 보면 매우 예민해지기 쉬운데, 그럼에도 비교적 순탄하고 기분 좋게 전시를 준비해 왔던 것 같습니다. 뒤에 더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말씀해주신 내용은 이번 ‘타이포잔치 2015’의 ‘프로젝트 네이버후드’라는 개념과도 맞닿은 것 같습니다.

문화역서울284의 공간을 기획하는 과정에서도 저희는 곳곳에서 개별적인 특징이 살아있는, 하지만 느슨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소도시처럼 만들고자 했습니다. 가령 전체 공간을 제로랩과 함께 디자인했는데, 메인홀은 도시의 ‘광장’을, <( ) on the Walls>가 있는 방은 빌보드 사인이 마구 설치된 ‘상가’를, 2층 조규형 작가의 그림문자가 걸려있는 공간은 강을 건너는 ‘다리’를 머릿속에 상상하며 공간을 채워갔습니다.

박성태 이재민 디자이너께서는 이번 전시가 다른 전시와 비교해 특별히 이슈 거리로 짚어볼 만한 지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재민 저도 반응이 궁금해 지인들을 찔러 물어보면, 아무래도 지난 3회 《슈퍼텍스트》와 많이들 비교합니다. 3회가 더 좁고 깊은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좋게 표현하자면 다양하고 넓게 풀어냈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좀 얕은 느낌이었다고들 해요. 지난 3회의 주제는 ‘문학’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관람을 위해서는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뿐 아니라 문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했고, 큐레이팅의 완결성과 일관성도 상당했습니다. 그에 비해 이번 ‘타이포잔치 2015’는 좀 더 시끌벅적한 페어 같고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이 한 눈에 캐치하기 쉬운 볼거리 많은 작업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작가들의 태도도 시니컬한 위트, 서글픈 시선, 도시의 에너지와 생명력 등 그 기준과 접근이 매우 다양했는데, 그런 가운데 비엔날레로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준비한 입장에서는 전시 장소인 문화역서울284가 전시 공간으로서 난이도가 높은 공간을 해결하는 게 큰 숙제였습니다. 근대문화유산이기 때문에 벽을 조금도 훼손해선 안 되고 작품 방염처리도 까다로웠고요. 그간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렸던 많은 전시의 공간디자인을 보니, 원래의 건물이 가진 공간의 특징을 지우고 평면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가벽을 세우는 데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데, 우리는 그렇게까지 많은 돈을 쓰고 싶지도 않았고 쓸 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간디자인을 한 제로랩과 서울역284 내 여러 공간들이 가진 특징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어요. 가령, <( ) on the Walls>가 준비된 1,2등 대합실 중앙에 있는 큰 기둥의 경우, 이전에 기둥을 지운 가벽으로 방을 둘로 나누던 것에 비해 제로랩은 기둥을 살려 작품과 어우러지게 했습니다. 그러한 요소들을 최대한 살려 관람객들이 공간 이곳저곳을 유영하며 디테일한 재미를 발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놀공’이 기획한 <C( ) T( ) 가이드>도 큰 반응을 이끌어냈는데, 일종의 심리테스트처럼 내가 도시를 바라보는 입장, 가령 도시를 추억하는지 혹은 욕망하는지 등을 분석해 보여주었는데, 전시장 곳곳에 적힌 여러 단어들을 찾아 휴대폰에 입력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전시장 곳곳에 더 세심한 시선이 닿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세훈 전시장을 일종의 도시로 구성했다는 말씀에 공감이 됩니다. 저는 문화역서울 284가 첫 방문이어서 전시실의 구성과 작품 감상의 순서가 익숙하지 않았는데, 길 잃은 관람객들이 자꾸 저한테 출구가 어디냐고 묻는 거예요. (웃음) 공간의 복잡성, 경험의 우발성과 예측불가한 측면이 전시를 기획하는 입장에서는 난이도가 있지만, 관람객으로선 ‘도시 속 도시’ 경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김상규 전반적으로 굉장히 입체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착하게 가서 소위 말하는 ‘딱’ 치고 나오는 것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아마 그런 몇 개가 치고 나왔다면 전체 구도가 확 흐뜨러졌을 것 같습니다. 아쉬운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역서울284가 가진 조건 안에서는 적정한 타협선을 잘 맞추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도시가 된 전시 공간

김세훈 사람들이 도시를 선호하는 경향은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아주 오래된 유럽의 작은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일관성, 통일성, 정돈된 감각이 있겠고, 그에 반해 철저하게 일관성이 없는 가운데 느껴지는 예측불허의 감각, 뭐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다양성이 녹아 있는 도시환경, 그래서 서로 다른 것들이 패치워크처럼 얽혀 있는 상황 말이죠. 전시 공간을 큐레이팅 하실 때부터 위의 두 방식을 가지고 고민하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김경선 김상규 선생님이 전시를 많이 하셨으니 이번 비엔날레를 ‘어깨동무’, ‘느슨한 연대감’이라고 좋게 표현해주셨는데, 2013년 처음 이 전시장을 돌아보면서 그럴 수밖에 없는 공간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매우 불균질하고 예측불허한 해프닝이 생길 것이고, 이걸 운영하는 조직도 상당히 불안할 것 같았습니다. 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 상황들이, 마치 우리 도시에 사는 이주민들이 봉착한 교육 문제, 주거 문제들을 연상케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으로서 막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 필요한가, 혹은 어깨동무를 할 좋은 동료들을 잘 꾸리는 게 필요한가를 생각해야 했는데, 저는 후자를 택했고 이 작은 도시도 큰 잡음 없이 그럭저럭 굴러가 주길 바랐던 것이죠. 물론 아주 세밀하게 도시를 구성한 것은 아니지만, 큐레이터들이 각각 맡은 공간들을 자주 방문하여 그곳의 공간적 특징, 또 주변과 어울린 여러 상황들을 익숙하게 받아들여 주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패턴 랭귀지’라는 것을 어떤 규범이나 모범으로 제안하기보다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서 가능한 일인가를 질문해보고 싶었습니다. 한국성을 로컬리티나 버내큘러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게 상황마다 다르고 심지어 실무에서 마주치는 행정 단위에 따라서도 다 다릅니다. 건축양식만 보아도 일본 근대와 고대 중국이 닮았거나 이것저것이 모두 섞여, 표피만 비슷할 뿐 그 안의 운영시스템이 다르기도 하고요. 한마디로 서울, 광주, 대구가 각자 다르니 ‘이것이 한국적인 도시이다!’라고 강력하게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거죠. 그래서 제 생각에 전시에는 강력한 어젠다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너무 강력한 인상을 남기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구글에서 ‘도시’, ‘city’, ‘urban’을 이미지로 검색해보면 대부분 스카이라인이 있는 마천루가 나옵니다. 이는 행정가나 도시자본가가 욕망하고, 그리워하고, 만들고자 했던 이미지들이죠. 실제 도시 이야기는 그 안이나 밑에 담겨있는 것들이고, 상당 부분이 문자와 기호와 시각이미지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김상규 데얀 수딕Deyan Sudjic의 『거대건축이라는 욕망』을 보면 도시 이미지를 절묘하게 표현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권력의 풍경’인데, 앞서 말씀처럼 마천루가 도시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의도였다는 거죠. 아이콘을 만들려 한 욕망은 히틀러 때부터였고 지금도 다르지 않은데, 책 말미에 보면 건축가들이 자신의 의지로 건축을 한 것 같지만, 결국은 거대 자본을 끌어들인 발주자와 권력자의 의지가 반영된 것일 뿐, 건축가는 자본과 권력의 하녀라며 끝을 맺습니다. 그렇다면 타이포그래피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래픽이 생산자, 즉 창작자의 자기 의지가 강해야 한다고 쇼너시도 주장하지만, 현실에서는 클라이언트에 의해 기회가 주어지고, 이것이 거리와 도시로 넘어와 (간판을 예로 들어보면) 권력의 풍경이라기보다 영업의 풍경이 되더라는 거죠. 돈을 벌기 위한 영업도 있지만 공공기관도 자신의 사업을 알려야 하는 점에서 다르지 않아요. 글자가 말을 거는 게 아니고 ‘이거에 동의 안 할 거야?’라고 윽박지르기도 하면서 협박과 다를 바 없는 텍스트들이 계속 쏟아져요. 욕망, 권력, 영업 등이 한 데 몰려 흘러가는 인상인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리얼리티라는 생각이 들고요.

김경선 이와 관련해 김상규 선생님이 현대미술을 흉내 낸 아트씬의 현상이 덜 보였다고 하셨는데, 방금 말씀하신 것들을 표현하려면 어느 정도 현대미술의 언어를 취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가 창작자의 태도를 가지고 자극을 주어야 매출로 이어지는, 그래서 기업들도 현대미술의 언어를 차용하는 것 같고, 디자인에서도 그런 현상이 커집니다. 어떤 기획자가 “디자이너는 전시를 하면 현대미술보다 더 어려운 전시를 하더라”고 하는 걸 들었어요. 건축가는 특히 더 그렇고요.

그런 맥락에서 제가 이번 전시에서 힘을 주고자 했던 것은 <도시문자 르포르타주> 였습니다. 2층 벽에 설치한 이 작업은 조금 지연되기도 해서 결과물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문자로 도시를 브랜딩 하려는 시도Legible City (가령 서울시의 ‘서울서체’)라고 해서 도시 아이덴티티를 결정짓는 타입페이스들 (독일의 DIN Deutsche Industrie Norm), 영국의 로드사인시스템 등 도시에 속해 있거나 연결되어 있지만 도시를 위해 기능하는 것들을 모았습니다. 즉 마니페스토를 하려던 것은 아닌데 각 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글자들입니다. 이 작업이 다소 평면적으로 전시되어서 아쉽지만, 나중에 출판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박성태 도시의 타이포그래피는 명령어로 기능하죠. 서구에서 도시 속 타이포그래피는 매우 명확하고 선명하게 전달되고 명령어가 되는 데 반해, 서울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 도시들은 아무리 명령어를 써도 전달이 잘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울에서도 그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도시를 알리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도시 내 어떤 맥락과 연결이 되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오히려 공공과 산업, 그래픽과 언어가 혼재된 불명확한 상태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김상규 그것이 낫다, 라기보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거죠. 가령 홍콩처럼 손으로 쓴 글씨들이 많이 누적된 곳들이라면 괜찮은데, 오늘날 도시에서 전달되는 정보들은 뭐랄까, 위에서 내려찍으면서 바꾸어버려요.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가치체계가 마구 바뀌는 겁니다. 예를 들어, 버스노선도, 주소체계도, 우편번호도 하루아침에 바뀌잖아요. 이것은 굉장히 치명적이거든요. 노하우로 축적이 되지 않아요. 또 언제 바뀔지 모르니 거부감만 축적됩니다.

이재민 우리나라는 어느 시점 이후로 문화적 유전자에 미싱링크missing link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가족이나 사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전해지고 습득한 것이 아니라, 모든 걸 필요하고 좋아보인다는 판단 하에 억지로 받아들이는. 그러다보니 뭘 해도 자연스럽지 못하고, 공공디자인이라는 영역 안에서는 그 현상이 유독 도드라집니다.

김경선 조금 엉뚱하지만 재미난 비유로, 이번 타이포잔치의 로고타입은 ‘CITY’라는 단어에서 모음 I와 Y를 삭제한 ‘C( )T( )’인데요. 모음을 뺀 채로도 여전히 기능합니다. 그렇게 빈칸인 ‘( )’를 여지로 두고 ‘C’와 ‘T’로 시작되는 여러 키워드들, 가령 ‘Culture & Technology’, ‘City & Typography’ 등을 상상해 나갔습니다. 예전에 승효상 선생님이 서울시 총괄건축가 취임사에서 메트로폴리탄을 설명하면서, 메트로폴리스는 어원상 ‘엄마metro’ 도시를 의미하고 이는 주변의 자식과도 같은 소도시들을 돌보는 기능을 했다는 것이죠. 그런 맥락에서 저는 이번 ‘타이포잔치 2015’의 아이덴티티인 ‘C( )T( )’를 “모음이 떠나버린 도시”라고 표현했습니다. 엄마가 떠나버린, 모성애가 사라진 도시인 거죠. 맞벌이 부부 사이의 자녀 중에서 영향 불균형으로 비만아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통계처럼, 자식 도시들은 주변을 무분별하게 포식하고 비대해져서 대형도시들만 살아남게 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 전시에 대한 어떤 대학생의 리뷰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한 마디로 일상의 재정의였다”라고 했어요. 더 인용하면, “긍정적이건, 혹은 그렇지 않건, 우리의 도시는 변모하고, 그곳에서 숨 쉬는 우리도 달라지고 있다. 글자는 그 변화에 발을 맞추며 자박자박 우리의 행동을 기록했고, 지금도 기록하고 있고, 후에도 그럴 것이다. 전시와 작품은 각각 모두 도시와 나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라고 이야기하면서, ‘C( )T( )’의 괄호를 기둥 혹은 빈 공간의 개념으로 보더군요. 그래서 비어버린 도시의 공간을 채워보자고요.

타이포그래피의 욕망과 탈주

이재민 그 폭식증과 관련해 첨언해볼까 해요. 여기 오기 전에 서촌의 카페에 앉아 오늘 나눌 이야기들을 잠시 생각하다 거리 풍경을 봤는데, 그나마 서촌은 간판과 외관이 정비가 많이 되고 결과를 떠나 적어도 신경을 쓴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럼에도 타이포그래피가 굉장히 혼잡한데, 서촌다운, 더 크게는 서울성, 한국성으로 수렴하려 노력하기에 우리 삶이 이미 너무 가버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타이포들이 규제를 버리고 통일된 성격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어서 이것을 수렴하겠다는 노력은 역부족이란 생각이 듭니다.

김경선 맞아요. 한국의 아파트상가를 보면 삶과 죽음이 다 있습니다. 병원부터 교회까지, 먹는 곳과 회개하는 곳이 공존해요. 저는 이를 열병으로 인한 ‘여드름’이라고 봤습니다.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욕망 때문에 모든 것이 제어가 안 되요. ‘최소한의 것을 가지면 좋겠다’가 아니라, ‘좀 더 좋은 것을 누리고 싶다’의 욕망이예요.

제가 영국에 있을 때 RCA 교수였던 에드워드 라이트Edward Wright, 조크 키네어Jock Kinneir, 마거릿 칼버트Margaret Calvert가 연구한 레터링을 공부했어요. 특히 라이트 교수는 ‘아키텍처 레터링’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는데, 유럽에서 이러한 학문이 성립될 수 있는 이유는 ‘파사드가 지금까지 이러했으니 앞으로 어떠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30년만 되면 부수고 다시 지어 올리는 가변적인 상황이 많아 연구를 지속할 틈이 없어요. 건축가들은 건물을 만들어놓으면 그 시각적 완결성이 사인물로 인해 다 망가진다고 하고요. 이에 대한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세훈 저는 도시에 기록된 시간성과 문화적 고유성originality이 어떻게 공간적으로 표현되고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는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 학교에서 도시설계를 가르치고 있으니 서울의 역사나 근현대 세계 여러 도시의 형성 과정, 그리고 도시의 정체성과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고요. 얼마 전 베트남 후에 시市에 갔다가 근본적인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도시는 응유엔이라고 불리는 베트남 최초의 전국 통일 왕조이자 마지막 봉건 왕조(1802~1945)의 수도였습니다. 그동안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음에도 시대의 정체성이 -물론 매우 순수하거나 미학적 아름다움이 완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황궁과 황성, 황릉과 제단 등 17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마을의 도시형태와 목조건물이 지금까지도 남아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조선 중기의 도시블록과 주택, 시장 등이 서울 한복판에 남아있는 셈이죠. 김경선 감독님이 지적하셨듯 몇십, 몇백 년을 바라보고 도시를 만들어가기 위한 디자인 연구가 필수적이며 누군가는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상규 <송곳>이라는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오더군요. 똑같은 회사인데 프랑스에서는 법을 지키면서 왜 우리나라에서는 지키지 않느냐고 따지자, “한국에서는 안 지켜도 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저도 규제에 반감이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기본 규제는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규제라는 게 매우 지속적이고 일정해야 하는데, 일종의 이벤트로서 재원과 함께 이상한 가이드와 일방적으로 떨어지니까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도시 미관을 위해 큰 간판에서 작은 간판으로 교체하다보니 원래 간판의 오래된 흔적이 남아서 그걸 가리려고 다시 크게 제작해 붙여요. 애매한 정책으로 규제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영업의 풍경’에는 돈을 벌기 위한 영업의 장소로 몸만 빌려주기 때문에 간판을 붙일 수밖에 없어요. 10년, 20년 그 건물을 잘 아끼겠다는 생각이 없다 보니 도시 전체가 오랫동안 그것을 허용한 것 같아요. 결국 서울이 디즈니랜드화 된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어떤 구역이라도 지키는 것이 지금은 중요한 것 같아요. 원래 논밭이었던 곳이 공업용지로 바뀌면 지가도 바뀌기 때문에 더는 벼를 심을 수 없어요. 간판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각 환경도 적정 수준의 지속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세훈 덧붙여, 아까 언급된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시간을 초월하는 좋은 공간언어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건축가는 기본적으로 모두 세컨드맨second man이라고요. 건축가는 원래 도시가 만들어졌을 때 기여한 퍼스트맨이 한 것에 새로운 도시환경의 조각을 덧붙이는 역할을 했다는 거죠. 그래서 도시를 만드는 언어를 연장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받아들이고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해요. 그렇다면 타이포에도 이런 류의 어떤 성장이 가능할까요? 현재의 공공디자인을 근사한 세컨드맨, 다음으로 써드맨이 나와서 기존의 좋은 컨셉은 유지하고, 더 발전시키면서 시간에 따라 현대성과 전통이 함께 쌓일 수 있게끔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인지, 지금처럼 기존 것은 무조건 다 없애는 것이 아니고요.

이재민 쉽지 않은 문제인 게,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고 기존 것을 보완하는 좋은 세컨드맨, 써드맨이 필요하다는 말씀도 해주셨는데, 저는 이들 모두 좋은 맥락이 이미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미싱링크를 잠시 얘기 했습니다만, 저는 보존해야할 것들의 기준을 잘 모르겠어요. 한국의 역사가 불우한 면도 있죠. 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좋은 건축이나 도시설계에 어울리게 만들면 되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후기 정도를 참고해야할 텐데 일제가 금방 치고 들어왔으니, 쇄국에다 강제개방까지 덮쳤으니 맥락 없이 우겨넣어진 상태 같아요. 자연스럽게 쌓인 게 아니라 급작스럽게 와장창 쏟아지고 붙여진. 여기에 잘 되는 것을 무분별하게 따라하고 보는 한국 사람들의 성향까지 맞물렸고요.

김경선 장기적으로는 교육을 통해 이루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사촌 형이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얘기를 들어보니, 지도교수가 장 누벨은 보지도 못하게 하고 리노베이션에 대한 공부를 상당히 많이 시켰다고 해요. 물론 프랑스의 여건이 신축을 하기에 어렵기도 하지만요. 우리도 지금의 환경을 계속해서 체험하도록 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봐요. 최근 국민대 시각디자인과의 졸업전시를 동진시장에서 준비한 것이 좋은 예이고요. 현재의 삶을 조금 불편하더라도 체험하고 곱씹어보게 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미래에는 더 나은 것이 준비될 수 있도록 조금씩 훈련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김세훈 말씀하신 것을 건축이나 도시에 적용해 과거의 연속 선상에서 미래를 끌고 가야 한다면, 누군가는 원래의 노선대로, 누군가는 새로운 노선을 개발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당대 최고의 기술과 디자인 감각을 모아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타이포든 건축, 도시이든 과거의 것과 병렬적으로 동시 진행된다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도시공간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어휘를 풍부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표현인 ‘노잼’, ‘쩐다’ 같은 말을 들어보면 아주 복합적인 개념이나 대상을 매우 단순화시키고 있고, 도시공간을 표현할 때도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이러한 단순화와 어휘력 결핍의 세태가 우려됩니다. 타이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냥 하나의 타이포가 다른 것보다 더 ‘세련됐다’에 그치지 말고, 그 세련됨을 다른 표현으로 풍부하게 풀어보는 문화가 널리 퍼지고, 시간에 따라 더 발전해야 합니다.

김상규 교육자로서 좋은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겠지만 공간의 다양한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조건의 기준은 부동산의 가치로만 짓는 게 아니어야 하겠죠. 최근 도시에 정보가 굉장히 많아졌는데, 그 이유가 시스템이 많이 바뀌었고, 홍보 현수막도 크게 늘고, 외환위기 이후 자영업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을 요인으로 들 수 있습니다. 간판도 달고 홍보를 해야 하니까요.

문화생산자들의 잔치

박성태 마지막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정리해주시죠. 열린 질문, 문제제기도 괜찮고요.

김경선 지금까지 이야기한 고민을 포함하여, 많은 즐길 거리들을 잔칫상에 풀어놓은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타이포잔치 2015’의 목적이 오늘 이야기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관람객이 이 전시를 통해 내가 사는 도시공간에 스스로 만족하는지, 그렇지 않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 다른 도시공간과 차별화 할 방법은 없는지 등을 적극적으로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전시 내내 건축, 도시, 디자인 관계자에게 묻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도시를 벗어나게 하고 싶어하는 요인 중 하나가 아파트와 같은 구조일 텐데, 그럼에도 평생 그런 공간에 살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사람이 삶을 더 많이 경험하고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상규 두 가지 생각을 했는데 하나는 타이포잔치, 다른 하나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첫 번째는 어떤 행사를 이렇게 주기적으로 하는 것은 그게 좋든 나쁘든 지속한다면 좋은 자극을 준다고 생각해요. 특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도, 문제제기로 끝나더라도 우리를 긴장시킬 수 있거든요. 굉장히 바쁜 순간 중 하나의 지점을 확인해보게 하는 거죠.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가,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관람객의 반응도 굉장히 불안정하므로 예산도 크게 늘진 않을 테니 오히려 세계적인 것에 방점을 찍으면 망가지기 쉽습니다. 한 10년 쌓인 뒤 정당한 평가를 하고 향후의 고민을 해야 한다고 봐요.

다음으로, 최근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도시성이라는 것은 정부나 자본의 어떤 힘의 논리에서 도시가 왜곡되는 과정을 어떻게 문화적으로 방어하고 더 적극적으로는 싸워나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거든요. 이를 전시로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비엔날레든 기획전이든 얘기를 해나가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도시가 당신들이 자본과 권력으로 호락호락하게 할 수가 없는, 그리고 아직도 뭔가가 남아 있다, 어떤 작은 움직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것은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끊임없이 의견을 개진하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얘기해 주는 것이 이 도시를 위해 문화생산자들이 할 역할인 것 같습니다.

김세훈 말씀 들어보니 잔치라는 개념이 예측불허한 이벤트로서는 좋을 수도 있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 잔치라 불리는 것들은 대체로 정체성이 없는 무책임한 지점에서 멈추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제가 ‘문자와 도시’라는 것을 가지고 처음 기대했던 것은, 예를 들면 도시의 특성별로, 시기별로 그 도시에서 문자가 어떤 식으로 진화했다라든지, 혹은 중세도시부터 현대도시에 이르기까지 문자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등을 상상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전시를 보며 정말 어떤 ‘잔치’를 보는 것 같았고, 이런 잔치들이 계속 벌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재민 말씀하셨던 맥락을 다루어주는 포인트가, 이번 전시에서는 어쩌면 <도시문자 르포르타주>와 같은 프로젝트였는데요. 이 부분을 좀 더 만들고 또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만, 여러 여건 상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타이포잔치는 이번에 4회를 맞이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2회라고 생각합니다. 타이포잔치는 3회에 이르러 비로소 ‘문자와 문학’, ‘문자와 도시’ 등과 같이 ‘문자와 그 어떤 것’이 서로 교류하는 포맷으로 자리를 잡았어요. 앞으로도 ‘문자와 음악’, ‘문자와 정치’ 등 다양한 주제가 정해질 수 있겠죠. 다시 말해, 타이포잔치는 아직 나이가 어린 행사입니다. 말씀하신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많은 발전과 개선이 따라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잔치 이야기를 하셨지만, 잔치에는 손님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여기서 말하는 손님이란 곧 타이포잔치를 통해 문자와 교류해 왔고 또 앞으로 교류하게 될 문학, 도시, 음악, 정치 등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후의 타이포잔치가 디자인이나 타이포그래피 이외에도 다른 분야의 손님들과 교류하는 구체적인 부분과 분량이 더 많아진다면 좋겠습니다. 좋은 것을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 좋은 체력을 가진 타이포잔치로 자라나길 기대합니다. 오늘 이와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 나누고 공유하는 것 또한 타이포잔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이겠지요.

박성태 통상 디자인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너무 밝다는 겁니다. 콘텐츠도, 전시장도 모두 너무 밝아요. 희망찬 미래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 삶은 그렇지 않잖아요. 낮과 밤이 있고, 기쁨과 우울이 있는데, 서울만 봐도 그 밝음이 사람을 긴장하게 해요. 건축과 디자인 전시가 유독 낮이 많은 것 같고요. 밤에도 주목을 한다면 더 인사이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도시 속 문자들의 잔치

분량16,740자 / 35분

발행일2016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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