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속 예술가의 실천
정영두 × 배지운
분량7,764자 / 15분 / 도판 2장
발행일2016년 1월 26일
유형인터뷰
검열 융성의 시대유감 _ 검열의 당사자가 된 예술가들의 명단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연극, 시각예술, 영화, 문학에 이르기까지 검열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공공지원 통제를 통한 정치적 표현을 억압하려는 시도가 목격되고 있다. 표현물 자체에 대한 검열에서 창작자의 작업과 삶에 대한 통제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점점 일상화되고 있는 예술검열이 오히려 예술의 사회성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정영두 1992년 배우활동을 시작으로 몸과 움직임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춤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창작과에서 안무를 전공했다. 2003년 두 댄스 씨어터를 창단하고 <내려오지 않기>(2003), <불편한 하나>(2003), <텅 빈 흰 몸>(2006), <제7의 인간>(2010), <푸가>(2015) 등을 통해 몸과 움직임의 여러 가능성을 탐구하고 안무의 구조와 형식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인터뷰어 배지운 건축 및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며, 문화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제7의 인간>, <먼저 생각하는 자 – 프로메테우스의 불> 등으로 이주노동자,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강렬한 메시지가 담긴 공연을 선보였던 안무가 정영두가 바흐의 <푸가>를 테마이자 타이틀로 내걸고 국내에 복귀했다. 푸가에 담긴 균형과 질서를 시각적으로 구축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두었다며 “메시지가 없는 것이 메시지”라는 이번 공연에서 정영두에게 한국을 떠나 일본에 머물렀던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상과 조금 격리된 자기만의 방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무용수의 몸을 빌려 음악을 시각적으로 그려낸 것 같았던 무대는, 복잡한 서사의 터널을 빠져나와 은유와 서정으로 채워가는 듯했는데, 그의 언어가 더 아름답고 풍요로워진 느낌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실제 그는 이번 공연을 통해 발레와 현대무용의 접목을 시도함으로써 현대무용의 가능성을 확장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렇게 춤의 언어를 넓혀가며 현대무용이라는 세계와 내적 고민을 일치시켜 가는 듯 보였던 정영두는 <푸가> 공연이 막을 내린 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예술검열반대’ 시위 피켓을 들고 우리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무대 위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다른 동반자도 없이 혼자였다. ‘실천하는 무용가’라 불릴 만큼 현실 참여에 주저하지 않았던 이력을 돌아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그가 온전히 몰두하던 <푸가>가 막을 내린 직후, 본인이 검열을 직접 당한 일도 아니었음을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거리로 나서야 했는지 묻고 싶어진다.1
배지운 1년 가까이 준비해 온 공연 <푸가>가 얼마 전 막을 내렸다. 정영두에게는 3년 만의 국내 복귀작이었고 공연장에는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관객의 기다림도 컸던 무대였다. 간단히 소개를 부탁한다.
정영두 지난 10월에 선보인 <푸가>는 클래식 음악으로 작품을 만들어보자고 LG아트센터와 상의하던 과정에서 바흐의 푸가로 해보지 않겠느냐는 아트센터 측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무용공연은 긴 준비 기간에 비해 늘 단발성의 공연으로 끝나버린다. 그래서 함께할 수 있는 극장을 찾다가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 제안을 하게 되었고, 흔쾌히 수락해줘서 공동제작으로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 음악을 소재로 한 공연이었기 때문에 리듬감과 박자감이 좋고 발레와 현대무용을 모두 잘 소화할 수 있는 무용수들을 섭외하는 것이 중요한 작품이었다. 팀을 꾸리고 본격적으로 공연을 준비하면서는 음악이 잘 드러나는 움직임과 푸가라는 음악의 구조를 무대화하는 작업에 가장 힘을 쏟았다.
배지운 발레와 현대무용의 무용수를 같은 무대에 세우고 그들의 고유한 움직임을 변주해 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한 시도는 푸가의 구조를 더욱 잘 드러내는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었나.
정영두 안무를 할 때 반드시 특정한 움직임으로 풀어내어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 <푸가>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발레와 현대무용의 접목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백지상태일 때부터 몸과 움직임 자체가 중심이 되는 현대발레 (경계가 없으니 현대무용의 범주로 해석이 되기도 한다) 같은 안무의 형식을 구상했고, 음악을 푸가로 정하면서 그것을 시각화 할 수 있는 구조를 더 많이 생각했다. 움직임의 요소보다는 그 움직임을 어떤 구조에 담아내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편인데 공연을 잘 구성해 낼 구조를 고민하며 음악적인 면에서 발레의 장점과 움직임에서는 현대무용의 장점이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푸가라는 음악이 중심을 잡고 있는 공연이었기에 늘 클래식과 함께 생활하는 발레 무용수들이 자연스레 떠올랐고, 그들이 고전발레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새로운 움직임을 빚어내는 장면을 그려보며 관객에게도 신선한 경험이 되리라 생각했다. 반대로 현대무용수들은 음악을 완전히 흡수하려는 노력을 통해 익숙한 움직임과 다른 것들이 표출되리라 기대했다. 이번 공연에서 발레를 전공한 무용수가 3명, 현대무용을 전공한 무용수가 4명이다. 무용수의 구성에 따른 균형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움직임들을 섞어가며 만들게 되었던 것 같다. 움직임은 흘러가는 물과 같고 무용수의 몸은 그 물이 흘러가는 강의 형상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푸가>는 전공이 서로 다른 무용수들이 똑같은 안무를 자신들의 몸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호흡이나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배지운 “메시지가 없는 것이 메시지” 라는 공연 소개글에서 사회참여적인 목소리를 담았던 전작과는 다른 변화가 느껴진다.
정영두 메시지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의 몫이라기보다 메시지를 읽어내는 사람의 몫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춤은 기본적으로 추상예술에 속한다. 서로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개인의 감정과 상황을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움직임은 몸의 형태가 시간을 타고 변화해가는 것이다. 이러한 몸의 형태는 한 문화 안에서 약속처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움직임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 이유는 몸은 다른 누군가에 속해 있지 않고 오직 나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푸가>에서는 움직임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움직임 그 자체에 집중하고자 했다. 예를 들면 <제 7의 인간>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상황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움직임으로 만들어서 표현했다. 그것이 메시지였다. 하지만 <푸가>는 음악이 주는 영감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주장하는 메시지가 없어야만 얻어지는 메시지가 있다고 믿는다. 말하지 않아도 메시지는 수많은 사물들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무용공연은 결국 무용수들의 색깔이 작품의 색깔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배지운 <푸가>를 준비하며 “자기검열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정영두 음악을 잘 표현 할 수 있는 움직임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검열하지 않고 사용해보고 싶었다. 움직임을 만든다기 보다 움직임을 기다려 얻고 싶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안무를 하다 보면, 작품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전에 몸이 먼저 기계적으로 익숙한 움직임을 만들어 낼 때가 있다. 즉흥적인 움직임을 찾으려 할 때는 그런 식의 접근이 효과적일 때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푸가는 음악이 소재이고, 새로운 움직임 그 자체로 무대를 꾸리고 싶었기에 음악을 충분히 체화한 상태에서 나오는 움직임들로 안무를 구상하려고 했다. 그런 면에서 과거와 다르게 얻어진 안무들이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것들이 무대 위에서 온전하게 표현되었다고 느끼는 몇몇 순간이 있다. 스스로 흐믓해지는 장면들이다. (웃음)
배지운 음악에 체화된 움직임을 기다렸다는 말을 들으니 이번 작업에 몰입의 정도가 느껴진다. 그러나 본인이 직접 무대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안무가의 역할이라 그 공감도를 충분히 전달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도 같다.
정영두 <푸가>는 7명의 무용수들 중에 5명이 처음 작업하는 무용수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짧지 않은 기간을 준비했음에도 서로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관계였기에, 작업 자체보다 인간적인 면을 배려하느라 더 치열하고 과감하게 밀고 나가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안무도 중요하지만, 작품의 완성은 결국 무용수를 통해서 가능하다. 무용수들은 나를 대신해 나의 생각을 표현해주는 존재이고, 무대 위에서 직접 춤을 추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힘은 절대적이다. 결정적인 순간, 공연 때가 되면 안무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떤 식으로든 그들을 믿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무용수들을 궁극의 지점까지 끌고 가기 위해 안무가의 역할을 다할 뿐이다. 처음 작업하는 무용수가 많았던 이번 작업을 통해 평소의 원칙과 자유로이 맡길 부분에 대한 기준을 다시 점검해 보게 되었다.
배지운 오래 준비하고 몰두했던 만큼 <푸가>의 여운이 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곧바로 예술검열에 반대 1인시위 중이라는 기사를 접했다. 갑작스럽게 시위를 시작하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정영두 지난 11월 6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금요공감에서 <소월산천>이라는 제목으로 앙상블 시나위, 기타리스트 정재일, 박근형 연출의 연극이 협업하는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개막을 2주 앞두고 국립국악원은 박근형의 연극을 빼고 앙상블 시나위와 정재일의 연주만으로 공연을 해달라고 요청해왔다. 표면적인 이유는 풍류사랑방에 연극이 어울리지 않고 작품의 완성도에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었다. 풍류사랑방은 국악과 다양한 장르간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국악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을 취지로 한다고 공공연히 밝혀왔고, 이미 연극적인 요소가 담긴 공연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국립국악원의 갑작스런 처사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실질적 이유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박근형 연출이 2013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풍자를 담은 연극 <개구리>를 선보인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발생하게 될지도 모르는 껄끄러운 일들을 미리 예방하고자 국립국악원이 알아서 자체 검열을 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혹은 상부기관에서 지침이 내려왔을 수도 있다. 결국 앙상블 시나위와 정재일은 박근형 연출과 함께 원래 계획대로 할 수 없다면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며 공연 자체를 취소했다. 나는 그보다 한 주 앞선 10월 30일 공연 예정이었는데, 이미 선배 예술가가 검열로 인해 쫓겨난 무대에서 공연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술작업과 예술가를 향한 정부와 국가기관의 검열에 항의하고 해명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게 되었다.

배지운 자신이 직접 검열을 당한 것이 아닌데 혼자 전면에 나섰다. 어떤 이유인가.
정영두 나는 이것이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근형 연출이 검열을 당했을 때 나도 함께 검열을 당한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고 치밀한 검열이 지금 행해지고 있고, 이는 곧 예술가가 스스로의 상상력과 표현을 억압하고 통제하게 만들 것이다. 더 심해지면 예술가로 살아남기 위해 사회가 원하는 자기 검열을 거친 작업들만 양산하게 될지도 모른다. 예술을 떠나 표현의 자유는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조건이다. 억압에 의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조건을 빼앗긴 것이다. 그러니 결국 검열은 ‘인간 모두의 문제’이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배지운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본인의 춤과 안무를 통해 전달해 오다가 직접 거리로 나섰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예술가의 실천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정영두 예술이 가진 힘이 있다면,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향해 돌진하는 무모함에 있는 것 같다. 현실 사회 안에서 예술이나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작아지고 위협받고 있어서 예술적 상실감과 위기감이 크지만, 자신의 선택을 믿고 지치지 않고 정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절박한 환경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생명력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나기도 하고, 진짜와 가짜가 구분되기도 하니까 의미 없는 시기만은 아니라고 본다. 예술가의 사회적 실천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어떤 예술가들은 돌진의 방법으로 현실참여를 얘기하고 누군가는 현실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우리나라처럼 정치, 사회적으로 이슈와 분쟁이 많은 나라에서는 예술가가 자신의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몰입해야 하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지금 당장 현실참여를 요구하는 경향이 많은데, 예술가와 사회운동가는 다르다. 지금 당장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동굴 안에 들어가 있는 예술가들을 기다릴 수도 있어야 하고 그 동굴에서 영원히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선택을 존중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기술, 그 기술을 완성하기 위한 노력 없이는 절대 예술가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와 동떨어진 예술은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라도 반드시 사회적 의미로 환원된다. 현실과 거리를 두고 예술 그 자체를 지향하더라도 현실과 완벽한 결별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 참여와 순수, 둘 중에 어떤 것을 우선 순위에 둘 것인가로 고민할 수는 있고, 선택에 따라 비판이나 호응을 얻을 수 있지만, 어떤 것이 더 예술적인 행위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고 본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예술가 자신의 몫인 것 같다. 어느 길을 선택하더라도 그 길을 완성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술, 예술가의 실천 행위로 귀결되리라고 믿는다.
배지운 검열반대를 주도하는 일련의 상황들이 정영두의 다음 작품 준비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푸가>를 보며 내면의 질문들에 집중하는 시기로 다시 회귀하나 생각했다.
정영두 나도 나에게만 집중하며 춤추고 싶다. 옆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개인적인 바람만을 위해서, 간절하게. (웃음)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가 되기보다는 그냥, 움직임으로 남고 싶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내가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을 안다. 긴 시간을 두고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면, 지금은 다리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져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것과 같다. 당장 뼈를 맞추고 살을 꿰매서 지혈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위급한 상황이라고 느낀다. 표현의 자유라는 인간으로서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결국 예술가로서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것과도 마찬가지이다. 검열로 인해 자유로운 표현이 억압되는 상황에서 정당한 예술활동을 할 수 없다. 모든 예술가들의 꿈은 모든 금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상태일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메시지가 있느냐 없느냐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그것이 자유로움을 기반으로 창작되길 바란다.
배지운 마지막으로 정영두에게 춤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정영두 하루하루를 어떻게 사느냐가 몸을 만들고 그 몸이 춤을 결정하는 것 같다.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도, 그리고 그 마음을 드러내는 것도 결국 몸이어서 생각과 표현이 분리될 수 없는 것이 춤이다. 몸은 늘 시간과 공간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춤은 지금, 여기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서울을 떠나 일본에 머무는 지난 3년간 한국 사회에 무관심 했던 것은 아니지만 내 안의 질문들과 춤 그 자체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얼마간은 더 일본에 머물겠지만, 더 강력한 외부 자극이나 질문들이 있다면 아마 난 그것에 몰두할 것이고, 춤으로 표현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성취는 내 안의 질문들에 얼마나 충실히 춤으로 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을 답하는 과정에서 움직임의 변화나 다양함이 생겨날 수 있지만, 변화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점점 춤을 추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춤을 통해 감히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깨달아가는 것을 느낀다. 춤은 어떤 의미에서 나에게는 완성의 길에 이르게 하는 종교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단 한번도 춤이 지겹거나 지루했던 적이 없다. 춤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사회 속 예술가의 실천
분량7,764자 / 15분 / 도판 2장
발행일2016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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