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한 질문들
박성태
분량2,004자 / 5분
발행일2016년 1월 26일
유형서문
소위 ‘마감’이라는 걸 할 때면 생각이 많아진다. 이번엔 꽤 진지한 편이다. 그동안 무엇을 공들여 일구고 가꾸었는지를 생각했으니 말이다. 이웃과의 진정한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세운다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한국 건축의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삶의 기쁨과 고통에 당당하게 대면했는지 등을 자문해 보았다. 2011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으니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 거다. 잘한 일보다 못한 일을 주로 생각하는 편이라,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 없 당장 닥친 일을 겨우겨우 해내며 살아온 듯하다. 앞으로의 5년 동안에는 어떤 공통 이슈를 만들어내야 할까, 고민이 앞선다.
그동안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각기 다른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다. 통의동 ‘라운드어바웃’에선 지난 1년 동안 다양한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세월호 참사, 건축비평의 임무, 젠트리피케이션, 공동체, 개인과 공공, 도래한 재난 등 현실적인 주제가 대부분이다. 건축가와 소설가, 기자가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선생과 학생이 같이 발제자로 나서기도 했다. 각기 다른 시선으로 하나의 사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청중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겠다고 의도적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더 잡곤 했는데, 보통 40~50명이 모여 서로의 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발제자나 청중이나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냈던 것 같다.
그 가운데 ‘청년세대의 절망’이라는 말이 유독 마음에 남는다. 점점 좁아지는 통로에 갇혀 꿈마저 잃은 이들을 만나면서 “더 노력해라”란 말의 허망함을 절감했다. “왜 싸우지 않느냐”는 부추김도 있지만, 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요 쟁점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있으며, 그 고민 끝에도 “별 비전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말에 많은 청년들이 동의하는 것을 보았다. 대입을 위해, 취업을 위해, 결혼을 위해 살인적으로 일하는 것이 평생을 “기다려라”란 말 속에 사는 것과 같다고, 그러니 당장 취업을 하든 하지 못하든 인간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고, 숨이 턱까지 찬 상태로 살아야 하니 삶의 비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문제들은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까지도 잘 알고 있었다.
올해도 ‘라운드어바웃’에서는 <하나의 프로젝트(프로젝트 1)>, <재난포럼> 등 주제가 있는 토론장을 마련하는 동시에 큰 주제를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기획하고 있다.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자신이 만든 것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과 장소를 기획하고 있다. 좀 더 작은 규모로 서로를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맺음을 만들어보려 한다. 이런 기회를 통해 개인이 모든 삶의 문제를 각자 해결해야 하는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고, 함께 고민해서 문제를 풀어내는 팀, 좀 다른 말로 ‘우정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통의동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 ‘라운드어바웃’과 같은 공유공간 플랫폼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준비 중이다. 비관적 전망에 동의하는 청년들이 작은 규모라도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장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는 독립출판과 동네 소규모 서점을 주요 이슈로 다룬다. 동네서점이 소규모 광장의 역할을 되살리고 있다. 몇몇 소규모 동네서점은 단순히 책 판매를 넘어 지역 커뮤니티 센터로, 다양한 실험의 공간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아직 시작이지만 작은 학교, 작은 언론, 작은 미술관, 작은 싱크탱크 등으로 변모를 모색하는 것이 눈에 띈다. 물론 상황은 어렵다. 그래도 ‘사무실 서점’, ‘출판사 서점’, ‘갤러리 서점’, ‘협동조합 서점’ 등 이색적인 동네서점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소규모 서점이 책을 파는 공간에서 아이디어를 그리고 삶의 지혜들을 주고받는 그래서 작은 변화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새해에는 작은 동네서점 하나가 동네 아이들의 공부방이 되고, 엄마들의 모임장소가 되고, 사회 주요 이슈를 다루는 토론의 장이 되는 꿈을 꿔본다.
박성태 건축신문 편집인
난감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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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2016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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