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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싶은 동네책방

주일우

1. 사라진 동네책방 

어릴 적 동네 골목을 한참 내려가면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이 정류장 앞에 작은 서점과 구둣방은 잊지 못할 놀이터였다. 친절한 구둣방 아저씨와는 쉽게 친해졌다. 상표가 모호한 구두들을 팔기도 하고 고단한 구두 뒤축도 갈아주던 아저씨는 손재주가 좋았다. 쓰다 남은 가죽과 고무줄, 철사로 만들어 주셨던 새총을 뒷주머니에 넣고 뽐내면서 돌아다녔다. 동네에서 가장 미끈한 이 새총에 정성껏 주워 모은 자갈 탄을 장전하고 참새를 잡겠다고 뛰어다녔다. 훌륭한 사냥꾼은 못되었지만, 도구는 멋있었다. 

구둣방 옆 서점에도 늘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서점 아저씨는 조금 무서웠다. 뭘 실제로 살 일이 없으면서 문을 밀고 들어가긴 어려웠다. 하지만 살 돈은 없어도 서점 창에 걸린 새로 나온 잡지나 신간을 보고 싶었던 나는 용기를 내서 문을 열었다. 유명하지 않은 출판사를 하나 고르고, 세상에 없는 책 제목으로 제목을 하나 지어서 아저씨에게 있느냐고 물었다. 그냥 들어가기 어려워 지어낸 이야기였는데, 지금처럼 검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아저씨는 없다고 할 수밖에. 실망한 척하며 새로 나온 책들을 훑어보고 나왔다.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아저씨가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저씨가 왜 맨날 없는 책만 찾느냐고 타박하지 않은 탓에 서점에 가는 횟수는 늘어만 갔다. 집에 있던 ‘딱따구리 그레이트북스’가 지겨울 때면 이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찾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통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요즘 아이들이 예전의 나처럼 동네를 배회할 시간도 없겠지만, 시간이 나도 피시방 말고는 문을 밀고 들어갈 곳이 없다. 아무런 프로그램도 없었지만 눈총을 받아가면서 책을 들춰보던 그 공간이 나는 그립다. 동네책방이 없어진 것은, 있다고 해도 어쩌다 참고서를 사는 것 말고는 갈 일이 없어진 것은 책방 장사해서 먹고 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책 사는 사람이 줄어들고, 살 일이 있어도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해서 받는다. 설령, 서점에 가더라도 부러 지하철을 타고, 차를 몰고 대형 서점을 찾는다. 동네책방에서 책을 사는 일이 드물다. 휴대전화와 각종 최신 미디어를 비롯한 콘텐츠를 담는 경쟁자들이 많이 생긴 탓도 있고 인터넷 서점의 가격이나 대형 서점의 분위기에 밀린 탓도 있다. 동네책방 벌이로 먹고 살 일이 요원하니 하나둘씩 문을 닫고 말았다.

2. 다시 찾고픈 동네책방 

문을 닫은 동네책방 이야기는 너무 흔해서 화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화제가 되는 것은 동네에 작은 책방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 동네책방이 되살아나 날만큼 무언가 상황이 바뀐 것인가? 소문에 따르면 분명히 작은 서점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는 모양이긴 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 이들을 동네서점이라 부르기엔 미흡해 보인다. 소문 속의 서점들은 대부분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곳들에 포진해 있다. 이 서점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마실 나온 사람들보다는 부러, 애써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많다. 외딴곳의 서점으로 고객들이 제법 찾는 곳들도 없진 않지만, 그곳들도 동네의 서점이라기보다는 사연을 가진, 다른 곳의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서점이다. 평범한 동네 서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 서점은 학생들의 참고서를 파는 기능 이외엔 의미를 찾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다. 내가 그리워하는, 진짜 동네서점은, 과문寡聞한 탓인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엄밀히 따져보면, 동네책방의 진짜 문제는 ‘책방’보다 ‘동네’에 있다. 책방의 경쟁력이 떨어져서 소비자에게 외면당한 것을 동네책방이 사라진 이유로 꼽지 않을 수 없지만, 더 큰 문제는 동네의 붕괴에 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아파트에 ‘잠’ 자리만 가득한 동네를 ‘동네’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통팔달로 뻗은 도로 위로 확장된 동선을 따라 동네도 끝없이 확장되었다. 작은 동네책방을 필요로 하는 자족적인 동네는 어디에도 없다. 큰 서점에 걸맞은 도시가 있을 뿐이다. 버스정류장 앞 작은 서점을 기웃거릴 꼬마들이 없다. 집에 모여 잠만 자고 제각각 다른 동네로 흩어져 학교나 일자리로 가는 가족들에게 급한 물건이나 땜질 삼아 구할 편의점 이외에 집 주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동네가 없는데 동네를 대상으로 장사할 서점이 있을 수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동네가 확장된 도시가 있고, 거기에 알맞은 형태의 대형 서점이, 부족하지만, 존재하는 상황. 굳이 별달리 필요해 보이지 않는, 어쩌면 생존조차 어려워 보이는 동네책방을 상상해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복고풍 노래와 대중문화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상황과 맞물려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즈음의 복고 향수는 경제개발의 틈바구니에서 잊혀진, 사람 사는 냄새에 대한 동경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네책방을 꿈꾸는 이들의 마음도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지는 않을까? 심정적으로 동조는 되지만 현실 속에 동네책방을 되살리는 것은 녹록한 일이 아니다. 

어쩌면, 동네서점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그것을 통해서 동네를 다시 살리자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동네서점 정도로는 살아남기가 어려운 현재의 상황. 서점이 동네를 활발하게 움직여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문화적 소비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소비까지 일어나서 재생산이 가능한 구조가 되어야 한다. 물론, 서점이라면 책을 팔아서 수지를 맞추는 것이 정상이니, 가능하면 책을 팔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책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니 가능하면 책을 동네서점에 들러 사도록 유도하고 일없어도 서점에 들르도록 만들어 눈에 띄는 책을 사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면 책과 함께 팔 수 있는 것들을 갖춰서 함께 팔아 수지를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3. 내가 그리는 동네, 그리고 동네서점 

내가 사는 아파트촌에 살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아파트 한 동이 옛 동네만큼 거대하고 한 단지 정도면 어림잡아 읍이나 면 단위는 되지 않을까? 생계를 잇는 방법이나 출신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산다. 씨족, 부족과 같은 관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들이 같은 곳에 모여 잠을 잔다는 이유 말고는 동네를 이루어야 할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 지역별로 표를 모아야 하는 정치인들의 구호를 넘어선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 년 전에 존재하던 동네와 그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자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순진한 생각은 아닐까?

하지만 모든 조건이 옛날보다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이버 공간과 현실 공간에서 잘 뻗은 도로망과 촘촘한 대중교통, 그리고 꼼꼼하게 정리된 지도는 취향이 같은 사람, 혹은 이해관계나 지향점이 같은 사람들을 이전의 어떤 시대보다 손쉽게 찾을 수 있게 해 준다. 옆집엔 없지만 멀지 않은 곳에, 나와 같은 탐정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손쉽게 사이버상에서 모임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늘, 실제로 만나지 않는 관계로만 지속하는 모임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속력도 낮다. 만약 탐정 소설 클럽이 모일 수 있는 탐정 소설 서점이 지하철 몇 정거장 안에 있다면 같이 모일 수 있을 텐데. 새로 나온 책은 없을지 무척 궁금하기도 하고. 

현재의 동네서점이 기대야 하고, 기댈 수 있는 동네는 지리적인, 혹은 물리적인 동네가 아니라, 취향, 관심, 목표, 이상 등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동네가 아닐까? 이 동네는 상상의 공동체이면서 실재하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것이 음악이든, 문학이든, 혹은 과학이든 분야별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찾고 그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잘 갖추고 있는 서점이 있다면, 재생산 구조를 가지면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분류는 굳이 전통적인 학문 분류 같은 것을 따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동차나 드론과 같이 땜질하고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을 수도 있을 것이고 거기에 그들이 좋아하는 도구를 같이 팔 수도 있지 않을까? 여행 책과 여행 상담을 함께 판매하는 것은 일본의 츠타야 서점 같은 곳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장면이다. 이런 형태의 결합이 존재하는 공간을 서점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동네를 만들고 동네에 기대어 장사하지 않고는, 무어라 부르든 작은 서점이 생존할 방법은 별로 없다. 

취향의 공동체를 대상으로, 그들에게 팔 수 있는 것을 잘 모아서 파는 모델이 너무 상업적인가? 나는 오히려 취향의 공동체를 뒷배로 삼으려면 이 서점 공간이 동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더 많이, 잔뜩 갖추어 놓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상품뿐만 아니라 강연과 교육, 그리고 공간의 규모와 손님들의 취향에 맞는 공연이나 낭독 등이 적절히 배치되어 마음 편히 이 공간에 찾아오고 머물고 소통하고 소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소통과 소비의 순환이 계속되면서 살아 숨 쉬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유럽의 오래된 작은 마을이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다. 고풍스러운 교회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들어선 작은 가게들에 눈이 간다. 동네살이에 필수적인 가게들. 어쩌면 동네서점은 펍이면서 우체국이고, 문방구면서 채소가게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동네의 아이들부터 할머니까지 하루에 한 번은 기웃거릴 수 있는 매력적이면서 꼭 필요한 공간. 동네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그런 공간이 생긴다면 틈나는 대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리라.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이사. 문학, 시각예술, 공연예술, 그리고 자연과학 등 여러 분야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기획과 제작을 하고 있다. 『인문예술잡지 에프』의 발행인이다.

갖고 싶은 동네책방

분량4,618자 / 10분

발행일2016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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