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건축사가 필요한 이유
윤승현, 조남호, 한형우, 황두진 × 박성태
분량16,695자 / 30분
발행일2015년 10월 29일
유형좌담
건축사 자격 논란에는 항상 건축사 시험의 높은 문턱이 거론된다. 평균 5,000여 명이 응시하고 그 중 약 10% 정도가 합격한다. 올해도 5,600여 명이 응시했다. 그런 와중에 지난 번에는 시험문제의 오류로 파행을 겪기도 했다. 매년 4~500명으로 합격자를 한정 지을 필요가 있는지,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건축계를 위해 좋은 것인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건축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중견 건축가 네 명이 모여 현재 건축사 제도의 문제점과 향후 건축사 문호를 넓혔을 때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윤승현 현재 (주)건축사사무소 인터커드의 대표이사, 새건축사협의회 부회장, 연세대학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연세대학교 건축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School of Design, University of Pennsylvania / M.Arch를 수료했다.
조남호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도시디자인전공으로 학·석사를 취득했다. 정림건축에서 실무를 익힌 후, 1995년 솔토지빈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여 대표 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현대 목구조 작업을 중심으로 기하학과 구축술을 포섭하며 사회적·환경적 관계를 조정하는 새로운 건축 유형에 관심이 있다.
한형우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고, 정림건축, 한울건축에서 실무를 쌓다가 건축사 취득 후 프랑스 Ecole d’architecture Paris-Belleville에서 CEA, DEA를 졸업했다. 단순한 오브제로서의 건축이 아닌 주변 지형 및 역사적 맥락을 탐구하여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담을 수 있는 건축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호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신인건축상, 서울시건축상,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업으로는 <이진아기념도서관>, <청주시립미술관>, <헤이리 한국근현대사 박물관> 등이 있다.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 강북 사대문을 건축적 고향으로 삼아 작업의 지평을 확대해 왔다. 대표작으로는 <열린 책들 사옥>, <가회헌>, <춘원당>,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 <원앤원 63.5> 등이 있다.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한옥이 돌아왔다』 등의 저서가 있다.
진행: 박성태
박성태 오늘의 좌담을 위해 대한건축사협회에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 (전체 건축사 수, 시험 합격률, 5년제 건축학과 숫자 및 졸업생 수, 설계사무소 취업 비율 등)를 공식 요청했지만, 결국 받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사회적 관심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대신 포털사이트에서 대략적인 정보를 얻었습니다. 예를 들어, 2012년도의 합격률은 상대적으로 높아서 4,000명 응시 중 449명 합격인데, 이는 지난 10년의 통계인 5~10% 합격률과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10%의 합격률이 적정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한형우 그 퍼센트가 애매한 게 옛날처럼 한 번에 다 붙는 게 아닙니다. 2, 3년 연달아 시험을 치러 한 과목씩, 한 과목씩 되는 친구들이 꽤 많아요. 실제로 한 번에 시험 봐서 3과목을 다 통과하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황두진 이면적으로 합격자 통계에는 안 잡히지만 과목별 부분 합격자가 또 있겠죠. 현재 절대평가를 합니까?
한형우 절대평가입니다. 무조건 60점 이상이죠. 국토부에서는 건축사 선발 인원에 대해서는 어떠한 압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매년 나오는 그 숫자가 타당한가에 대한 여부는 아무도 모르는데, 그 숫자를 유지하려 문제 난이도를 조절합니다.
황두진 그게 가능해요?
한형우 제가 출제한 것 중 하나가 비상계단 하나를 증축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60%의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계단을 그냥 그려서 깜짝 놀랬어요. 대한건축사협회에서 임의적으로 합격자 숫자를 컨트롤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조남호 시험 난이도가 건축사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소양을 검증하는 수준인데 10% 이하라는 적은 합격률은 응시자의 수준이 낮다는 결론이 되나요? 대한건축사협회 입장에서는 명분이 있는 거네요. 그렇다면 교육이나 응시자 태도의 문제 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문제 일까요.
한형우 몇 년 전에 채점을 해보니 합격자가 정확하게 500명이 나왔어요. 그래서 좀 이상하다, 했더니 국토교통부 담당자가 무슨 소리냐, 절대 관여하지 말라고 해서 진짜 500명으로 발표했어요. 나중에 인터넷에서 숫자 맞추기 한 것이 틀림없다는 댓글이 달렸죠.
윤승현 대한건축사협회에 계신 분이 여기에 앉아도 전혀 엉뚱한 말씀을 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대한건축사협회에서 기득권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을 때 그 보호본능이라는 것이 생길만 한데, 지금 건축사라는 자격증에 보호본능이 생길만한 거리가 뭐가 남았는지 생각해보면 거의 없거든요. 박탈감만 남은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대한건축사협회가 건축사들의 대표 직능단체로서 비전을 전혀 제시 못 하는 게 심각한 문제이죠. 그게 안타깝습니다.
박성태 또 하나, 우리나라에서 건축사 자격증 소지 비율을 해외와 비교해 봤을 때, 예로 일본의 데이터가 있어요. 절대 숫자가 우리보다 약 15배 정도 많죠.
황두진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대략 1만 5천 명의 건축사가 있다라고 했을 때, 일본은 30만 명이라는 거네요. 일본이 적어도 우리의 한 5, 6배 된다는 것인데, 이는 어지간하면 다 라이센스가 있다는 것으로 들립니다. 어떤 종류의 라이센스든 말이지요. 최소한 ‘당신이 건축가나 건축사냐’ 이런 시비는 안 붙는다는 거잖아요. ‘목조 전문 건축사인데 왜 콘크리트를 했어?’ 이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윤승현 90년도 후반에는 1,000명씩 뽑은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한 3,000여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배출이 되었는데, 그 전까지 건축사가 5,000~6,000명이 있었거든요. 3년 만에 3,000명이 양산된 겁니다. 약 1.6배가 확 늘은 거 아니예요. 그러면 시장 교란이 일어나 건축시장이 완전히 뒤흔들려야 되는데, 뒤흔들린 건 딱 하나만 있었습니다. 건축사 대여가 없어졌어요. 오히려 건강해졌죠. 지금 주력 멤버가 40~50대라고 본다면, 3,000명의 건축사가 그 안에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볼 때는 건축사를 늘린다고 자질이 문제가 되는 일은 전혀 없을 거라고 봅니다.
황두진 자격증이라는 것이 혜택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혜택을 받는 사람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계 안에서 이것의 혜택을 받는 사람을 늘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자질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어떤 특정 분야 전문가들의 자질을 자격증이 담보해주는 시대는 갔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자격증이 그것을 담보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 자체가 허구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전문 지식이라는 것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어요. 약 20년 전에 제가 건축사 시험 공부했을 때 봤던 내용만으로 지금 일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어떤 전문 분야 종사자들의 분야 적합성 내지는 경쟁력을 결정해 주는 것은 결국 시장의 기능으로 넘어간 지 오래됐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이 시험의 합격자 수를 늘렸다고 해서 이 분야 사람들의 자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하는 것은 적어도 이 시대에 맞는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남호 저에게 건축사라는 자격증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 문제에 대해 부분적으로나마 답이 될 것 같아요. 1995년 1월에 사무실을 열었을 때만 해도 호황이어서 라이센스를 가지고 사무실을 연 것만으로도 수주가 가능했습니다. 물론 이제 지나간 영화입니다만 (웃음). 그리고 97년에 처음 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려면 석박사 학위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학부 졸업하고, 실무하고 바로 사무실을 열었고, 석박사 학위가 없었지만 라이센스가 있어 강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공공기관 자문도 학위나 건축사, 기술사 같은 자격증을 소유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죠. 그러니까 라이센스라는 것이 특별한 경험이나 스펙이 없었던 저에게는 일종의 중요한 기반이었습니다.
황두진 라이센스가 갖고 있는 나름대로의 국제적인 의미가 있어요. 세계적인 틀 안에서 되는 것이니까요. 꼭 다른 나라에 가서 독립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젊은 나이에 여기서 라이센스를 받고 동남아시아나 환태평양에서 일을 해보는 경험도 좋다고 봐요. 라이센스가 있으면 그런 것이 훨씬 더 쉬워집니다.
한형우 우리나라에서 라이센스를 받았으면, 유럽에 가도 (저도 프랑스에서 그랬는데) 대학원에 바로 들어갈 수가 있어요.
황두진 현재 대한민국에서 어떤 사람이 건축가가 될 수 있느냐 하면, 일단 고등학교 때 자기 진로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행 고등학교 교육이라는 것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자기 직업을 선택하는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주고 있느냐? 그게 아니고, 상당한 우연 내지는 무지에 의해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 시기뿐 아니라, 대학교를 졸업하고, 혹은 그 이후에라도 본인이 뜻이 있고, 본인이 거기에 대해서 일정 부분의 노력을 한다고 했을 때 이 분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가 보기에,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현실적으로 단일화된 경로는 특정 유형의 사람들만 건축사가 될 확률이 높아져요. 사회가 갈수록 다원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건축사가 되어 이 분야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형우 원칙적으로 인증시스템을 계속 가지고 간다면, 그게 학교 교육의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못하는 사람들을 올리는 역할을 해요. 평균을 올려줘요. 소위 말해 일정 자격을 갖춰야 된다라는 면은 어느 정도 포인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그 방향으로 간다면, 과연 건축사 자격시험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비근한 예로, 로스쿨 문제랑 비슷한 것 같은데, 꼭 5년제를 나와야지만 건축사가 될 수 있느냐. 앞으로 변해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의 시스템과 다르게 그 과정을 겪지 못한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경로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나이 들어서 건축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조남호 개방적인 환경이 바람직하다라고 할 때 핵심과제는 건축사 수 확대라고 봅니다. 다른 분야의 사람이 건축 영역에서 라이센스 없이 일을 했을 때, 소수의 폐쇄적인 환경 때문에 건축사 자격 여부가 논란이 되는 겁니다. 오히려 건축사 수가 많아지면, 라이센스 없는 사람이 허가 단계에서 건축사의 도움을 받아 일을 하는 것이 그다지 문제가 않 될 겁니다. 수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되 그 영역을 명확하게 건축학 인증제도와 연관해 적확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문대학원을 가든 아니면 심지어는 전공을 하지 않더라도 그만의 특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작업을 한다면 건축의 외연을 넓히는 일이 될 겁니다. 어차피 세상이 혹독한 역량 검증을 할테니까요.
황두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그걸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왜냐하면 자격증 소지자가 아예 건축 프로세스에 개입이 안 되어 있으면 어차피 건축허가를 못 받으니까요. 그러면 이 세상에 어떤 법률을 가지고, 어떠한 물리적인 제어수단을 가지고, 어떤 창의적인 사람이 라이센스가 있는 건축가랑 협업을 해서, 자기가 뭔가 구상한 것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자신의 저작물로 주장하는 것을 막냐는 거예요. 이런 경우는 외국에도 많아요. 제임스 터렐이 몇 년 전에 이제부터 자기는 건축작업도 할 거라고 선언했고, 영국에서도 디자이너인 헤드윅이 건축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하고 있어요. 분명 누군가가 라이센스가 있는 사람이 참여를 해줬으니 가능하겠죠. 단적인 예로 국내에서도, 조수용씨가 스스로 건축가라고 자처했을 때,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냐는 거죠. 없어요.
조남호 저는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다른 분야에서의 유입이 포용 되고 허용되는 것이 훨씬 건축 분야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사가 독점적이고 소수의 폐쇄적인 영역에 머문다면, 글로벌화 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큽니다. 폐쇄성 때문에 고시처럼 어렵게 건축사가 되어도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합니다. 독점적 지위로 인한 경제적 혜택을 누리는 것도 아니고요. 건축가냐 건축사냐 하는 논란에서 마치 건축사가 하위인 것처럼 이야기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신춘규 선생은 어떤 글에서 “건축사란 건축가 중에서 라이센스가 있는 사람”이라고 썼는데 저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도달해야 할 최종의 목표는 아니고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계획 능력이나 기술만이 최소한이 아니고 사회적 윤리를 포함한 최소한입니다. 이 기반 위에 다양한 영역과 교류하고 협업할 때 건축이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윤승현 최소한의 필터링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우리나라에 적정 건축사 수가 어느 정도이냐, 그걸 논의한다는 것 자체는 시장을 국가가 제어하겠다는 얘기랑 다름 없거든요. 제어하겠다는 얘기는 적정한 시장 규모에 맞춰서 건축사를 제어해 시장이 교란되지 않도록 해주는 거잖아요. 만약에 그렇지 못하면 국가가 제어할 필요가 없고, 시장이 열어줘야 한다는 거죠. 적절한 인증을 받은 학교를 졸업하고, 그 다음에 설계사무소에서 일정한 기간 수련했다고 하면, 대부분의, 약간의 정말 안 되는 사람들의 필터링은 있어야 되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동일한 출발선상에 놓고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조남호 저도 윤 소장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사법고시와는 달리 건축사는 인증제도와 관련이 있죠. 인증을 받는 건축학 5년 제도를 만들고, 자격이 있는 설계사무소에서 3년간의 실무를 거쳐야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부여 하는 어려운 과정을 통과했을 때 주어지는 혜택은 무엇일까요. 건축학 전공자들 중 설계를 하겠다는 사람이 합격률이 10% 미만이라는 것은 50명의 학생이라고 가정하면 두 명 정도가 된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인증제도가 무의미 해지는 것 아닙니까. 이러 상황을 방치하는 건 정상적인 교육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한 분야가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수련의 과정을 만들어 놓고 그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높은 수준의 사회적 윤리의식 요구와 함께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만한 자격을 부여 한다면 긍정적인 일들이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거친 황무지로 떠나는 후배들에게 미래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다양한 위험에 대처할 도구를 쥐어 보내는 것이 분야가 가져야할 최소한의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사 자격증 걸림돌
윤승현 그럼에도 우리 사무실에 매년 9월만 되면 시험 보러들 가는데, ‘일단 무조건 좀 되라, 도망가든 어떻든 좋으니, 제발 좀 되라’고 해요. 제가 봐도 똘똘한 친구들이거든요. 그런데 안 돼요. 저는 이해를 잘 못 하겠어요. 예전과 같이 6시간 내에 설계도를 다 그려야 되는 시험은 아닌 것 같아서 이상하다 했는데, 어쨌든 그 친구들의 푸념은 웬만큼 했는데도 안 되더라는 거죠. 누구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건축가도 무려 8번을 봤는데 계속 떨어지기도 했고요. 그걸 보면 시험 제도 자체에도 문제가 많이 있는 것 같다는 거죠.
조남호 아마도 좋은 건축가의 길을 가는 데 제일 큰 걸림돌이 그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도 삼수 만에 됐거든요. 대형사무소에서 실무를 했는데 시험 때만 임박하면 3개월 간의 현상설계팀에 투입되곤 했습니다. (웃음)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지만 책을 매개로 생각이 성장하고 의지도 생겨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험을 보기 시작하면서 봄만 되면 시험에 대한 부담으로 책을 편하게 읽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 생활을 3년하고 나니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 시기는 회사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할 때고 결혼해 아이도 있고 사회적으로 가장 번잡하고 힘든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가 5년 이상 지속된다면 좋은 멘탈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시험에 약한 사람이라면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차라리 시험을 포기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에 좋은 건축가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건축사시험이라고 봅니다.
한형우 바로 그 문제입니다. 만약 그분이 일찍 따셨다면 지금 그 시간을 자신의 계발을 위해서 여러 가지, 관심사가 달라지니까요. 설계에 관심이 많았던 분이니까 정말 더 많은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노력을 하셨을 텐데, 시험 때문에 매년 그렇게 보낸 거예요.
황두진 저도 문제의 핵심이 개별적 스토리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근 15년간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제가 아끼는 직원들이 이 때문에 고통받고 결국 이 분야를 떠나는 모습을 봤어요. 물론 사무실에도 엄청난 부담을 줍니다. 결국 이것은 분야의 고통입니다.
윤승현 그런데 유럽의 경우에는 (나라별로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만) 학교를 졸업하기만 해도 자격증을 갖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시험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학교에서 4년 동안 배웠던 것을 건축사 시험을 준비하며 최소 한 번은 책을 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당시의 1차 시험이 필기였으니까, 시공에서부터 법규, 구조 등을 쭉 훑어보며, ‘아, 내가 4년 동안 한 게 이거였구나!’ 하고 정리하게 됩니다. 문제는 합격률이 10%밖에 안 된다는 것인데, 일종의 문제은행이나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처럼 하면 좋은 것 같습니다.
황두진 미국 시험이 문제은행식이거든요. 미국에서는 농담처럼, ‘어떤 식으로든 간에 조셉 팩스톤Joseph Paxton의 <수정궁>은 꼭 나온다’ 고 그래요. 실제로도 제가 아는 범위에서 매년 나왔고요. ‘당신이 이 분야 안에서 평생 일을 하려면 적어도 이런 것 정도는 짚어보자’는 정도의 의미이지, 이 시험을 통해 모든 걸 다 배운다고 하는 것은 완전히 어불성설이거든요.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5년제 마치고 설계사무소로 들어오면 그 순간부터는 마치 소방 호스로 물을 마시는 것처럼 희한한 상황으로 3년 살다가, 이 시험을 준비하면서 학교 다닐 때 좀 소홀히 했던 것들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어 좋죠. 우리가 갖고 있는 공통의 경험과 지식, 데이터베이스의 최소한은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정도로 가고, 사람을 많이 뽑으면 현재 우리가 얘기하는 문제들의 상당 부분은 해소되는 것 아닌가 해요. 아이러니는, 이것이 건축문화의 기초를 구성하고 있는 극히 여러 가지 문제 중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점입니다. 이 문제가 해소됐다고 해서 나머지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것이 나머지 것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합니다.
조남호 주어진 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 한 사람들에게, 적어도 응시자의 60% 이상에게는 합격증을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6년 과정인 의대 출신 의사시험 합격률이 90%가 넘는 걸 볼 때, 건축학 5년 과정을 한참 양보해서 생각해본 수치입니다. 물론 과도기적으로 타협의 여지는 있지요.
황두진 경험적으로 얘기하자면 저도 60% 이상에 한 표입니다.
건축 – 건축교육 – 건축사 자격증 간의 상관관계
박성태 건축과의 5년제 졸업 이후 건축으로 진로를 택한 비율이 약 35%라고 합니다. 100 명 중 35명이 건축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중의 다시 10%라는 거잖아요. 전체로 보면 3~4% 정도가 건축사 자격을 갖고 실무를 합니다.
조남호 건축교육이 비유하자면 마치 탤런트를 길러내는 학원하고 똑같아요. 탤런트 교육을 100명 시켜서 겨우 1~2명 방송에 출연시키는 학원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학원의 존재 이유가 탤런트를 길러내는 것인지, 학원비로 학원을 운영하는 것이 목적은 아닌지 의심 받을 수 있지요. 인증 과정을 거쳐 졸업한 학생수의 3% 만 건축사가 된다면 인증 과정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물론 건축학 교육 과정의 목적이 건축사는 아니지만 그렇게 피해갈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덧붙여서, 건축학이 1년을 더한 5년의 과정이 된 의미를 생각해 보자면 흔히 4년의 전공 과정이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일이라면 일 년을 더하는 의미는 외부적으로는 전문분야의 편협함을 넘어서 사회와의 관계에서 통합되고 균형잡힌 시선을 갖는 것입니다. 내적으로는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분야와 융합해 능동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학 과정은 이러한 내용을 포함해야 합니다.
황두진 논의를 좀 더 확대해, 예를 들어 옛날에 변호사라고 하면 우리는 항상 법정에 가는 것만 생각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변호사들이 법정만 갑니까. 멀쩡한 변호사지만 법정 한 번 안 가는 사람도 많고, 법정에 가는 변호사는 그 안에서도 또 다른 부류에요. 변호사들이 일반 기업에도 많이 가고, 정부에도 많이 가고 한단 말이죠. 그렇다면 건축사도 그러면 되지 않을까요. 건설회사에도 있고, 자재회사에도 있고, 공무원도 되고, 심지어는 군 경력도 가능하고요. 그러니 직업군인으로서 건축사가 있을 수 있는 거죠. 5년제가 됐지만 어차피 졸업생 중의 태반이 소위 독립 건축가의 길은 안 간다고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제도권 밖으로 밀어낼 것이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죠.
한형우 맞습니다. 이 사람들이 라이센스가 있다면 큰 차원에서 보면 건축이 점점 강해지는 길이잖아요. 우리나라에서 건축학 5년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가 90개 정도인데 현재까지 인증 프로그램을 통과한, 인증 자격을 받은 학교가 48개 정도라고 합니다. 작년 기준으로 절반 정도밖에 안 돼요. 편의를 위해 만약 전체가 45개 학교이고, 한해 약 40명이 졸업을 한다면, 대략 1,600명이 한 해 졸업을 한다는 거겠죠. 그 가운데 절반이 실무를 한다면 800명이에요. 그 800명 중 대부분에게는 건축사 자격증을 줘야한다고 생각해요.
윤승현 건축사를 1년에 한 2~3,000명씩 3년 정도 뽑으면 그다음부터는 아주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요. 그러면 이 논의 자체가 의미 없을 수도 있어요.
황두진 합격률이 높아야 하는 또 다른 당위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과대학은 합격률이 굉장히 높은 이유는, 우선 의과대학이 기본적으로 6년이고 (앞으로 의전으로 간다 만다, 그러고는 있지만) 인증과 제도와 2년이라는 추가적 기간에 대한 하나의 사회적인 합의로서 정상적으로 이수한 사람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기본적으로 의사를 할 수 있는 소양을 갖고 있다고 보는 거예요. 그럼 사법고시는 왜 합격률이 낮은가, 사법고시는 그 시험을 보기 위한 선행조건pre-requisite이 없죠. 심지어는 학력제한도 없고, 누구나 다 볼 수 있어요. 그러니 시험을 어렵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고요. 이중 건축은 어디에 해당하느냐면, 의사고시에 해당하는 거죠. 남들보다 1년 더 다녀야 하는데, 지금 의과대학을 제외하고서는 학부를 5년 다니는 건 우리밖에 없어요. 그런데 사법고시 수준도 안 되는 합격률을 갖고 있다? 이것은 말이 안 돼요.
조남호 이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곳은 건축학회가 아닌가 합니다. 어떤 교육을 시킬 것인가 하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학생들이 진출하는 사회환경이 어떠해야 하는가도 중요합니다. 학생들에게 학교는 어려운 의무만 주지 혜택에는 인색한 것 같아요. 대한건축사협회든 한국건축가협회든 현업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좋은 합의점에 이르기 어렵다고 봅니다. 학회가 교육 과정과 연계해 균형 잡힌 의견을 내놓아야 하고, 그것이 학생과 지원자에 대한 도리일 겁니다.
윤승현 제가 알기로 5년제 프로그램을 이수 해야하만 한다는 조건은 없거든요. 5년제만이 아니라 전문대학원을 들어가도 이수할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그런다고 본인에게 미래가 열리는 게 아니기 때문에 대학원 3년까지 갈 의미가 뭐가 있겠나, 하는 갈등이 들 거란 생각이 듭니다.
시장에서 자격증의 의미
윤승현 법정 집행은 원래 국가가 하는 게 맞죠. 그런데 그것을 위탁해서 건축사한테 허가행위를 맡기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것을 국가가 하겠다고 하면 가장 좋은 건데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못하는 거죠. 인허가 받는 과정에서 필터링은 다 될 거고요. 그 다음에 공사 진행 과정에서 준공 검사를 받을 때 모든 것들이 확인되기 때문에 구태여 건축사 라이센스를 구분할 필요가 없겠죠.
황두진 보통 이런 자격증에 관한 논의는 건축계, 건축가 커뮤니티 안에서 하지만, 조금 더 흥미로운 논의가 있어요. 시장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저 자신도 궁금해서 저희 건축주들에게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저의 자격증 소지 여부가 우리 회사와 일을 할 때 고려 대상이었는지, 일정 부분 판단의 근거가 됐는지 물어봤어요. 물론 모집단이 크지는 않아요. 한 2, 3명 정도한테 물어봤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것 때문에 맡겼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고려는 했다는 거예요. 물론 대전제는 아무리 자격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어느 건축가와 일을 해야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그간의 작업을 보고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즉 자격증 제도 밖의 가치가 근거라는 것은 맞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조금 더 굳히는 데는 도움이 되는 정도의 요소라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자격증은 없지만 워낙 해온 일들이 훌륭하다고 했을 때는 ‘와이 낫Why not?’, 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윤승현 건축사 자격증 논란 중 젊은 건축가들이 갖는 태도 중 ‘그 시험 치사해서 못 보겠네’, 이런 게 있거든요. 저는 그게 무책임한 태도라고 봅니다. 말씀하신 대로, 내가 그렇게 휘둘려가면서까지 동의할 수 없는 제도에 동참할 이유가 뭐가 있나, 그냥 살지, 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라이센스가 없을 때 좋은 것 중 하나가 책임을 안 져도 되는 겁니다. 책임은 라이센스 가진 건축사가 지고, 나는 권한과 영예만 누리면 된다, 하는 태도가 저는 개인적으로는 못마땅했습니다. 건축사 시험 보고 취득할 수 있는 인허가 쪽이 조금이라도 열리면 그런 핑곗거리도 없어지겠죠. 그러면 본인이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그것을 취득하고, 거기에 대해 책임질 각오를 하고 시작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건축계 사람이 아니어도 이미 소문을 들어서, ‘어휴 건축사 따는 게 그렇게 힘들다면서요?’라고 해요. 하지만 건축사라는 자격증이 훌륭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자의 전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박성태 대한건축사협회는 건축사에 대한 명칭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윤승현 대한건축사협회가 건축사 호칭을 고수하는 것은, 우리나라 대표 직능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도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러한 사실을 협회도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차별화를 하려면 기존에 써 왔던 호칭이 아닌 새로운 호칭을 쓰고 싶은데, 공교롭게도 그들이 공식적인 직능 단체인 이유가 건축사를 관리하는 법정 단체라는 거죠. 당연히 건축사 이야기를 할 수밖에요. 실제 지방에 가면 건축사라는 호칭을 많이 씁니다. 결국 효과를 발휘하는 거죠.
황두진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저를 ‘건축사님’ 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현저히 늘어나긴 했습니다. 지금 매년 건축사 합격자 수가 4~500명 수준이잖아요. 만약 1년에 지금의 몇 배를 뽑는다면 앞으로 10년 뒤에는 대한건축사협회가 훨씬 큰 사회적 입지를 갖지 않을까요?
윤승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협회 가입비가 300만 원인데, 얘기를 들어보면 일리가 있어요. 이유인즉슨, 여태껏 회원들 설계비의 일부를 적립을 시켜놨었어요, 일종의 조합처럼. 그러니깐 새로 들어온 회원은 이 조합 재산을 n분의 1로 나눠서, 이걸 내고 들어와서 똑같은 혜택을 누리라는 거예요. 제가 면허를 땄을 때 서울은 제가 알기로 300만 원이었어요. 가입비가 거의 1억에 달하는 곳도 있어요. 물론 지금은 구청에 등록만 하면 사무실을 낼 수가 있어요. 만약 합격자 수가 3,000여 명이 된다면 협회에 누가 가입을 할까요? 저는 오히려 대한건축사협회보다 더 큰 또 다른 세력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황두진 세상이 굉장히 빨리 변하고, 그런 환경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 내에서 정보나 의견 교환을 더 조직화하여 제공하는, 일종의 서포트 시스템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다들 하실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말씀드린 거예요. 지금 숫자가 너무 적어요. 이 숫자 다 모여 서명을 해봐야 국회에서 꿈쩍도 안 하죠. 향후 한 10년 지나 건축사가 그야말로 전국적으로 수 만 명이 되면, 그건 분야를 위해서 굉장히 좋은 일이라는 거죠. 물론 사협회가 회원들을 위해서 프로모션도 잘하고, 마땅히 해야 할 만한 일을 잘 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됐을 때 사협회의 사회적 위상도 지금에 비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 꼭 설계사무소를 연 사람들만 가입할 필요도 없어요. 일단 건축이라는 큰 틀 안에서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 분야별로 많아지는 것은 분야를 위해서 좋고, 거기서 정보교환을 한다든지, 뭔가 서로간에 조직적인 도움을 주는 데도 훨씬 이롭지 않겠어요. 그리고 어떤 법령의 개편이 있거나 할 때 건축사들이 건축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기에도 좋고요. 지금은 완전히 쫙 찢어져서 가니까, 저만 해도 회비를 어디다 내야 하나 고민스러워요.
윤승현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누구든 회비를 낼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는 소속감이죠. 내가 거기에 낄 필요가 있느냐에 대해, 있다고 하면 거기에 가입을 하고 회비를 내겠죠. 또 다른 조건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회비인가, 했을 때 문턱이 낮은 회비라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대한건축사협회에 가입을 했을 겁니다.
황두진 개별적으로 겪는, 예를 들어, 법과 제도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스토리들이 있는데 현재는 각자도생입니다. 그런 것을 협회 차원에서 모니터해서 내부 전문가들, 고문 변호사 등을 통해 대응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할 수 있고, 이러한 일들은 얼마든 있습니다. 무슨 협회 이름으로 전시회 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요. 저는 그래서 대한건축사협회가 조금 더 솔직하고 정직하게 직능을 위한 권익단체가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윤승현 아마도 제가 볼 때 대한건축사협회 외에는 하기 어려울 겁니다. 전국적 조직망을 갖추고 있어야 서비스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황두진 미국의 AIA에는 여러 표준 서류가 있어요. 제가 알기로 그 파일에 있는 서류를 개별적으로 실무에 사용하려면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써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표준계약서를 무료로 쓰는데, 만약 사협회가 신중하게 온갖 경우를 다 대비해서 전문가들이 법률적으로 검토한 표준계약서를 공급하고 사협회 회원만 사용가능하다, 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제는 뭐든지 콘텐츠의 질로 승부해야 합니다.
조남호 다른 분야에 가 있다 하더라도 건축사 자격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무 교육도 받아야 하잖아요. 라이센스도 관리하지 않으며 소멸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유용하다고 생각한다면 약간의 비용을 내고 그걸 유지해야 하겠죠. 사협회는 당연히 그 서비스가 상품이 되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이익단체로서 지속적인 힘을 갖게 될 테죠.
황두진 전문 분야라고 해서 국가가 다 자격증 제도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에는 상당히 전문 분야인데도 자격증이 없는 분야가 많아요. 예를 들어, 옷을 만드는 것도 매우 전문적인 일이지만 자격증이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건축은 분야 자체가 갖고 있는 규모나 그 중요도 때문에 이미 옛날에 정부가 자격증 제도를 만들어 놓은 분야니까, 다원화된 사회의 발전에 발맞춰서 좀 더 다양화하고, 동시에 하나로 묶어주는 큰 틀로서 자격증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이 분야나 사회를 위해서 훨씬 더 좋은 길이 아니냐는 겁니다.
박성태 지금과 같은 상황보다는 그게 훨씬 더 좋은 상황이라고 여겨집니다. 지금처럼 자격증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측면에서 보면 외면당하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황두진 어차피 시장은 빠져나가는 방법을 다 알고 있는데 자격증 소지자가 오히려 예외적인 존재이다 보니까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고요. 오죽하면 자조적으로 건축사 시험 합격하면, 요즘도 그런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지만, 폼나는 건축가에서 구질구질한 건축사로 신분이 하강했다고, 그런 말도 있잖아요. (웃음)
조남호 얼마 전 대학에서 강의할 때 제 스튜디오에 있던 학생이 설계를 할지 말지 고민이라며 찾아 왔어요. 그 친구의 설계 성과가 A학점 수준이었어요. 다른 길에 대해 지속적으로 생각한 분야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하더라고요. 오래 생각하고 준비한 길도 확신이 없는데 새로운 분야에서는 불확실성이 더 커지는 건 아닌가, 하고 반문했습니다. 3년 후에는 반드시 나온다는 전제로 설계사무소로 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그 이후 독립을 하든 새로운 길을 가든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한다면 충분할 거라고요. 그러면서도 안타까운 것은 그 3년 후에 자연스럽게 라이센스가 주어진다면 다른 길을 가더라도 아까운 시간만은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황두진 그 기간이 길다는 거죠? 그것은 오늘 논의하고는 또 다른 얘기지만,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결국은 모든 분야가 인재 확보 전쟁을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서는 결국 건축가가 많이 필요하죠. 이 분야가 잘 되어야 결국은 시민사회로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고. 그랬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하든 좋은 인재를 많이 확보해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청소년기에 결정한 사람들만 위주로 이 분야가 형성되는 것이 안타깝고, 그런 차원에서 자격증을 확대하자고 하는 겁니다. 그래야 이미 이 분야에 들어와서 활동하기로 했던 사람들이 좀 더 안정된 기반 위에서 활동할 수 있을 테니까요.
넓게 보면 우리 분야가 어떻게 인재들을 잘 받아들이고, 그들이 사회를 위해 잘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줄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입시와 학교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보는 거죠. 지금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4+3은 활성화가 잘 안 되어 있어요. 저희도 미대 출신 직원이 하나 있었는데, 오랫동안 알아보다가 결국 유학을 갔어요.
조남호 국내에서 유일한 건국대 건축전문 대학원의 경우 한 학년 수가 30명 정도인데 과거에는 3년 비전공 과정이 10명 이내 였다면, 최근에는 20명에 이른다는군요. 점차 4+2 전공 과정의 학생보다 비전공 학생들의 역량이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더 많은 건축사가 필요한 이유
분량16,695자 / 30분
발행일2015년 10월 29일
유형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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