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북돋워주는 새로운 삶의 태도
사카구치 교헤 × 박성태
분량4,272자 / 10분 / 도판 1장
발행일2015년 10월 29일
유형인터뷰
사카구치 교헤는 <제로 리:퍼플릭> 작업을 광주 아시아예술극장 개막작으로 내놓았다. 아시아문화전당 주변의 빈집들을 무상으로 빌려 벌인 제로센터, 제로호텔, 제로스퀘어 등의 공간은 모두 임대료 0원이다. 물론 이용료도 없다. 이런 선의 관계는 지역 방문자들과 보다 진지한 관계맺음을 유도하고, 공공재를 경험한 이들은 각자의 삶에 새로운 태도를 갖는다. 국경을 넘어 작은 공동체를 꿈꾸는 그를 광주에서 만났다.
사카구치 교헤 일본 와세다대학 이공학부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대규모 건축물을 설계하는 현대 건축가의 존재에 의문을 갖고 무명의 건축물과 정원에 관심이 있으며, ‘짓지 않는 건축가’를 자임한다. 실제로 도쿄도 다마多摩 지역 강변에서 거리생활을 체험하기도 한 그는 스미다 강변에 사는 ‘도시 생활의 달인’을 그린 『도쿄 0엔 하우스, 0엔 생활』과 소설 『스미다 천의 에디슨』, 『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 등을 출간했다. 3·11 대지진 직후 고향인 구마모토 현으로 이주하여 ‘제로 센터’를 만들고, 그간의 사고와 활동을 근간으로 신정부를 수립, 초대 수상으로 취임했다.
인터뷰어 박성태 본지 편집인
박성태 광주란 도시에 대해 그전부터 알고 있었나?
사카구치 교헤 전혀 몰랐다. 서울과 부산 밖에는 몰랐다. 이전에 베를린에서 모바일 공간을 만든 것을 보고 아시아예술극장 기획자가 컨택해왔다. 제안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처음에 제안을 받았을 때 전체 구성에서 부족한 부분을 내가 채워야한다는 것 정도였다.
박성태 동네 빈집을 빌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 지역이 새롭게 문을 연 문화공간보다 어떤 점에서 매력적이었나?
사카구치 교헤 공항에 내려 도심으로 오는 길에 본 시내는 황량했다. 이곳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까, 생각했다. 막상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곳은 말도 안 되는 거대한 공간이었다. 땅의 색깔이 달랐다. 예술극장 기획자는 전당 내에서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나는 회의를 마치면 밖에 나가 떠돌았다. 시장이나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전당 내에서 처음에 본 것과 다르게 (다행히) 시간이 잘 축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큰 영감을 받았다. 그래서 전당의 야외공간이 아닌 시민들과 얽힐 수 있는 곳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했다.
박성태 제로센터에서는 공연이, 그리고 제로스퀘어에선 포럼이 열린다. 속칭 ‘어머니표 지짐이와 주먹밥’이 간식으로 나온다고 하던데.
사카구치 교헤 처음 대인시장에 갔을 때, 어느 어머니를 만났다. 그녀가 결혼한지 1년만에 5·18이 일어났고, 당시 그녀는 시민군에게 나눠줄 주먹밥을 만들었다고 한다. 근데 며칠 후 시체 더미에 주먹밥을 나누며 만난 사람들이 있었고, 그때의 슬픔이 아직 생생하다고 했다. 문화전당 땅 밑에 깔려있는 슬픔과 어머니의 슬픔이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단절되어 있었다. 이를 두고 단순히 비극이라 할 수는 없다. 아시아문화전당을 짓는 것은 흥미로운 시도다. 대인시장의 어머니도 슬픔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살아남아 있다. 이 둘을 연결시켜야 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표 지짐이와 주먹밥’은 아직 유효하다. 그분들과 만나면서 내가 이 도시에서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분들을 통해 이곳이 근대 이전에 갖고 있던 땅의 냄새라던지 사람의 냄새가 여전히 남아있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박성태 광주 작가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들의 영혼spirit에 대해 언급했다. 이곳 작가들의 영혼이 다른 지역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언가?
사카구치 교헤 광주에서 만난 작가 중 하나가 탁현 씨다. (김탁현은 대인시장 레지던스 기획자다) 그는 말하자면 문지기 같은 사람으로, ‘대인시장의 프린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탁현 씨는 어머니들의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또한 선배 작가에게는 유능한 ‘오른팔 후배’라고 한다. 그도 제로센터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갖고 있고, 내가 광주에 왔을 때 밖으로 나가자고 나를 끌어낸 장본인이다. 그가 소개해 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 줬다. 그와 함께 밥을 먹고 술을 같이 마시는 사이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사람을 만나고 교역이 넓어지는 것처럼 일시적인 공동체를 경험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광주가 과연 어떤 도시일까란 호기심이 생겼다.
박성태 광주는 한국에서 소외된 지역이라고 말한다. 노숙자, 대인시장의 어머니들, 제로센터가 들어선 빈집도 거절된 장소다. 공동체로부터 거절된 사람과 장소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생겼나?
사카구치 교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관점에서 보면 광주는 개발이 안된 도시다. 이곳의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광주는 그 규정 바깥의 무엇이다. 그 밖에서 보면, 근대화의 바깥, 예술의 바깥 등등이다. 일반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이런 점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어떤 바에 갔었는데, 사장님이 나도 처음들어보는 일본인 재즈 뮤지션 음반을 들려줬다. 그 일이 벌어지기 까지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서 왔냐고, 본적이 어디냐고 물었다. 우리 가족은 큐슈 지역 바닷가 출신이다. 무라마치 시대 일반인과의 무역을 담당하던 곳이다. 당시엔 그들을 해적이라고 불렸다. 한국과 중국과도 무역을 하던 곳이다. 바의 사장님도 바닷가 출신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피가 통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16세기 이전부터 이어져온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인 사이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해 본적이 없다. 나는 갈릴길에서 선택을 할 때, 한 쪽은 깨끗하고 한 쪽이 더렵다면,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언제나 혼란을 택했다. 거절된 사람과 공간은 복잡하고, 이 복잡함이 나를 이끈다.
박성태 이번 <제로 리:퍼블릭> 프로젝트는 이야기해온 ‘태도의 경제’에 대한 실현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간 측면이 있다. 지역 공동체 속에서 태도의 경제를 구체적으로 구현한 듯 보인다.
사카구치 교헤 스스로도 성장해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성장한 이유는 글을 쓰고 리서치를 하는 등 예술 작업을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도 실현을 위한 시도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도의 경제를 말하고 있지만, 모호했다. 지금도 무엇인지 정의를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정의하지 않고 끝까지 가보고 싶다.
박성태 끝까지 가보는 것을 통해 무엇을 만들려고 하나?
사카구치 교헤 마흔 다섯 쯤에 국가가 아닌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 지금 서른 일곱이니 8년 정도 남았다.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숙성시켜 나가고 싶다. 썩으면 썩는대로. 발효가 될 것이다. 나는 어떤 작은 목소리도 놓치지 않도록 내 자신을 공동화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박성태 <제로 리:퍼블릭>은 인간적인 경제를 구현해내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사카구치 교헤 돈을 내는 순간, 경계를 느껴버린다. 그래서 한시적이어도 초원같은 느낌을 느껴야 한다. 집도 역시 초원 같아야 한다. 나의 작업의 모티베이션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과 감정에 나눌 수 있을까다. 종교적인 것과는 다르다. 그럴려면 초원같은 느낌이 중요하다. 좀 다른 얘기지만 현재 제로 라이프 스페이스라는 생명의 전화를 운영 중이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감정을 나눈다. 일본에서 내 전화번화는 어느 곳에나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의 반응은 “진짜 전화를 받네”가 많다. 지금은 경제 시스템에서 사는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주의 주장 경제 등 모든 것을 떠나 사람의 감정과 만나는 순간이다. 전화가 연결되는 순간, “감사합니다” 라며 끝는 경우도 있다.
박성태 구마모토 후쿠시마 원전 피해자를 위한 피난처를 만들었다.
사카구치 교헤 순수한 감정으로 시작했다. 체르노빌의 사례를 봤을 때, 어린이가 이주해서 살 수 없으면, 잠시라도 그 피해지역을 벗어나는 것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주변 사람들과 뜻을 모아 후쿠시마의 어린이들이 한 달씩 구마모토로 와서 쉴수 있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 번에 20명씩 온다. 120만 엔이 필요했는데, 하루만에 모금이 됐다. 그리고 이 어린이들에게 프로그램이 있어야 했는데, 구마모토의 시민단체 다섯 곳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지금까지 아홉 번을 했다. 곧 열 번째가 열린다. 운영자나 후원자나 서로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지금의 관심은 치매노인 자폐증 어린이에 대한 것이다. 내년에는 『마사지 천국』이라는 책을 낼 예정인데 구마모토가 대상지다. 구마모토가 마사지 천국을 만드는 제안이다. 돈을 더 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것을 잘 사용하는 방법을 소설로 쓰고 있다.
박성태 마사지란 이야기를 들으니, 치유가 생각난다.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공간인 ‘이웃’에 매주 멀리 떨어진 마산에서 안산까지 와 마사지 봉사를 1년 넘게 오는 분이 계시다고 한다.
사카구치 교헤 나에겐 이런 일이 나를 치유한다. 누군가는 내 작업이 재미있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치유의 과정이다. 이렇게 큰 도시에서 내 생각이 실현이 되면 좀 더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처가 나고 모자란 부분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타자가 있어야 일어난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가 있어야 프로젝트도 현실로 이어진다.
서로를 북돋워주는 새로운 삶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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