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스 서울의 작동원리
임동근 × 이경희
분량13,989자 / 30분 / 도판 2장
발행일2015년 10월 29일
유형인터뷰
인구 천만의 거대 도시 서울은 인구밀도의 적정선을 넘어선 지 오래다. 정치지리학자 임동근은 도시 인구 증가는 필연적으로 그 도시를 메트로폴리스로 만드는데, 그 순간을 결정하는 힘들이 무엇인지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국가의 재산과 권력은 과거 영토에서 인구로 그 중심과 중요도가 옮겨졌고, 인구 통치술은 봉건제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모르는 사이 매우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메트로폴리스의 어원을 따라가면 ‘모母도시’라는 뜻이 있는데, 그렇다면 서울의 식민도시는 어디일까? 라는 흥미로운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을 중심으로, 오늘날 서울의 통치술은 바른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임동근 박사께 들어보았다.
임동근 서울대학교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공학석사, 프랑스 파리7대학에서 지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간연구집단 연구원,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했고 현재 맵핑 및 모델링 연구소를 만들어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5년 5월부터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BK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서울에서 유목하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살과 돌: 서구문명에서 육체와 도시』, 『관찰자의 기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간들』 등이 있다.
인터뷰어 이경희 본지 편집자
이경희 팟캐스트에서 가진 열 번의 대담을 정리해 최근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서울의 삶을 만들어낸 권력, 자본, 제도, 그리고 욕망들』을 출간하셨습니다. 서울이 통치를 위해 어떤 장치들을 전략적으로 혹은 우연히 채택했는지를 보고, 당연하다고 여긴 제도들의 뒷이야기까지 알게 되니 매우 흥미롭습니다. 출간 후 반응이 어떤가요?
임동근 기자들에게만 반응이 큰 것 같아요. 도서정가제 이후 확실히 판매는 줄었다고 하더군요.
이경희 이미 같은 내용이 팟캐스트로 공개되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임동근 처음 읽는 사람은 쉽게 읽혀 좋다는 반응도 있고, 방송을 들었던 사람들은 책이 좀 더 자세할 줄 알고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아쉽다고도 얘기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확장한 더 자세한 내용의 전문서도 곧 출간할 예정이니 아쉽다는 의견은 불식될 거라고 봅니다.
이경희 서울대 도시공학과 졸업 후 파리 7대학에서 지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셨는데, 특별히 지리학을 선택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파리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셨고 서울에서 배운 것과는 어떻게 달랐는지도요. 다를 수밖에 없는 여건이 있는지 등도요.
임동근 제가 파리로 간 게 2001년도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도시계획법이 바뀌었는데 그 도시계획법은 프랑스에서 40년 전에 만들었던 것을 모델로 삼은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같은 시기 프랑스에서는 그 법을 폐기하고 다른 법으로 바꾸는데, 우리는 40년이나 지난 법체계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더라는 거죠. 우리가 도입하는 법을 왜 저 나라는 폐기하는 지가 궁금했어요. 크게는 지속가능성과 도시계획 측면이 궁금했고요. 하지만 막상 가 보니 아무래도 학제가 다르고, 도시공학으로 박사과정을 찾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도시계획 개념도 우리나라와 달라서 결국 우여곡절 끝에 지리학과를 갔습니다. 가서도 프랑스적 도시 맥락은 거의 부업이 되었고요, 공부를 새로 시작한 계기가 되어 전통 지리학부터 프랑스 지리학의 발전 등 인식론적으로 공부를 하게 됐어요.
이경희 논문 제목은 무엇인가요?
임동근 ‘서울을 통치하기Gouverner Séoul : Organisation de l’espace urbain et contrôle des populations’입니다.
이경희 지도 교수님이 서울의 상황을 잘 아는 분이셨나요?
임동근 내용을 이해하는 데만 4, 5년이 걸렸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언어가 부족하고 맥락도 프랑스적으로 잡아야 했으니까요. 그 기간이 지나서 주제를 이해하시자마자 제일 먼저 이야기하신 게 미셸 푸코를 반영하라는 것이었어요. 그제서야 저도 제대로 전달되었구나 싶었고, 5, 6년 정도 지나니까 프랑스나 넓게는 국제적 맥락으로 봐도 이해가 되는 논문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푸코의 문제설정을 응용한 지리학 박사논문은 사실 많지 않아요. 약간은 도전적인 논문이었죠.
이경희 푸코의 문제설정에 대한 보충설명을 좀 더 해주실 수 있을까요?
임동근 인구의 탄생과 자본의 계보학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어떻게 사람을 하나의 통치 대상이자 에너지원으로 삼는가, 하는 겁니다. 예전에는 영토가 넓으면, 국보가 많으면, 재산이 많으면 큰 국가였어요. 그런데 근대에 들어와서는 사람이 많은가 그렇지 않은가가 국가의 부를 결정합니다. 이러한 근대 국가 시스템이 어떻게 자본이랑 연결되서 만들어지는가, 사람이 자원이 되는 인적 자원의 패러다임 구축을 경제·정치적으로 알아보고 서울에 적용해 본 거죠.
이경희 그와 관련한 푸코의 글이 국내에도 소개되었나요?
임동근 『안전, 영토, 인구』,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이야기하는 ‘생명관리정치biopolitique’가 바로 그 내용입니다. 생명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게 사람의 삶에 대한 미시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거시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살아있는 것에서 에너지원을 추출하는 정치체제가 완성되는가,를 보는 겁니다.
이경희 과거에는 지상에 있는 부동의 것을 자산으로 보았다면, 이제는 유동하는 인간을 재산으로 본다는 것이지요?
임동근 네, 그래서 국토 중심이 아니라 인구 중심으로 바뀌는, 영토국가에서 국민국가(인구국가)로 바뀌는 큰 흐름으로 눈을 돌린 겁니다. 서구에서도 푸코의 논의를 정치경제학적으로 해석하는 게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통치성 학파’라고 하는데 영미권에 90년대부터 나왔던 학파들은 그중의 아주 일부를 받았고요. 역사적으로 거시적 흐름에서 아날로그식으로 맥락 지은 것은 최근 10년입니다. 논문을 쓰면서 계속 그쪽 분위기의 발전을 보기도 했어요.
이경희 그렇다면 서울로 다시 오신 건 언제지요? 논문에서 분석하신 체계가 실제 서울에도 적용이 잘 되던가요?
임동근 논문 통과는 2008년, 논문을 다 쓴 것은 2013년이어서 2008년부터 한국을 오가며 양쪽을 관찰했습니다. 한국에 푸코의 도시통치술을 적용할 때 처음에는 역사적 맥락 말고 이론적인 것만을 추적했는데, 실제로 어떻게 집행되는지를 보니 서울이 좀 독특한 케이스이긴 했어요. 대표적인 게 복지국가면서 자유주의 통치성이 공존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아주 고도의 선진 자본주의에만 있을 법한 자유주의 통치성과 복지국가의 규율정치가 행하는 사람을 구속하는 통치체계가 어떻게 공존하는지, 또 공존해야만 비로소 작동하는 방식들을 보는 게 서울이라는 도시를 보는 데 매우 중요했죠. 대표적으로 주민등록번호와 그린벨트를 자유주의 통치술로 활용하는 것을 들 수 있는데, 그전에는 거꾸로 생각했어요. 둘 다 억압하고 강제적인 것이라고 보았는데, 자유주의 통치술 입장에서는 하나의 기계 부속으로서 작동하게 됐다는 게 서울이 독특하게 보여주었고, 그리고 오히려 메트로폴리스라는 자유주의 통치술에서 성공적인 억압장치로 발전하는가를 보여주는 거죠. 굳이 따지자면 카이로나 부에노스아이레스처럼 역사적으로 전통적인 통치술이 있던 도시들은 비교 연구로서 서울의 작동방식을 보여주는 데에는 꽤 의의가 있었죠.
이경희 서울이란 도시가 과거 일제와 독재정권을 경험했기 때문에 기형적으로 성장한 요소들이 많은데, 적용이 어려운 부분이 많아도 한편으로는 다른 개발도상국에는 선례로서 유용하진 않은지요.
임동근 선례라기 보다는 경로의 독특함이 큰 거죠. 장치분석을 하면서 거대하게 바뀌는 흐름이 있는데, 과거 서울 발생변화를 요인별로 설명을 했어요. 그런데 장치분석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그런 문제설정을 바꾸어서, 서울이 지금까지 오게 된, 지금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결정적인 사건은 무엇이고, 어떤 사건들이 서로 어떻게 결합했는지를이야기합니다. 서울이 이렇게 크게 된 이유는 정확히 말하기 어렵지만, 그 가운데 중요한 사건은 무엇무엇무엇이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요. 원인결과로 들어가면 너무 단순해져요.
사건이 어떻게 결합하고 나아가고 연속했느냐를 계열과 집합으로 설명하는 거죠. 설명의 방법론 자체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는 메트로폴리스로서의 서울을 결정짓게 된 각 사건이 어떻게 결합됐나. 가령 주민등록증은 전자통행증에서 시작해서 박정희 쿠데타와 연결되어 주민등록부, 주민등록등본 등으로 과정을 하나씩 겪고, 그 결과 아주 강력한 통치수단이 없어도 주민등록번호만으로도 사람을 징집하고 취합하고 활용하는 데이터베이스가 완성이 되는 거죠. 그러면 역설적으로 사람들을 더욱 자유롭게 통치할 수 있어요. 증만 있으면 되거든요. 예전 같으면 강한 경찰력이 필요한 것도 이제는 느슨한 경찰력이 들어가도 가능해진 겁니다. 이런 사건들 하나하나가 어떻게 연속되는지를 보는 거죠.
이경희 외국의 아이디카드는 우리의 주민등록증과 어떤 게 가장 크게 다른가요?
임동근 신분증은 크게 두 개로 나뉩니다. 호적 중심과 통행증 중심(패스포트)인데 주민등록증은 철저히 이동과 관련한 통행중심 신분증이에요. 호적이 따로 있었지만 주민등록증이 워낙 강력해지니 둘이 통합된 건데, 전쟁을 별로 겪지 않은 나라는 강한 호적 중심으로 가고, 그러다보니 이동을 파악하지 못해요. 반면 이동을 잘 잡으면 호적 중심이 무의미해지죠. 그 둘 간의 긴장이 있는데, 우리는 통행증 중심으로 간 거죠.
이경희 그렇다면 이 책의 목차는 그러한 현상들, 사건들 위주인 거죠?
임동근 그렇죠. 다른 곳에서 발표한 내용 중 ‘서울을 이해하기 위한 10가지 사건들’ 이런 식이었어요. 이러한 흐름이 구체화된 게 박사논문이고, 그보다 더 쉽게 설명하려고 한 게 이 책이죠. 방송용으로 가공을 한 건데, 7장부터는 박사논문에는 없는 겁니다. 박사논문이 2008년에 나왔으니, 이후의 흐름을 추가하였죠.
정치지리학과 지리정치학
이경희 정치지리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를 비롯해 아직도 지리정치학과 헷갈려 하는 사람도 많고, 생소하기도 합니다.
임동근 ‘지정학’이란 용어는 익숙하잖아요? (웃음) 지리정치학의 줄임말인데 지정학은 땅이 만들어놓는 정치적 효과를 의미합니다. 정치지리학은 그 거꾸로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정치가 만드는 지리적 변화를 보는 게 정치지리학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정치학은 땅을 생각하지 않지만, 정치지리학은 권력이 땅에 어떤 식으로 영향 미치는지 땅을 어떻게 매개화 하는지를 좀 더 예민하게 보는 거죠. 권력이 미치는 효과들의 공간적 모습을 보는 것이에요. 권력이 있는 곳엔 정치지리학이 다 있어서 집도 정치지리학의 한 대상으로 봅니다. 가장의 권력이 있는 곳도 정치지리학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국가도 지자체도 국제도 마찬가지죠.
이경희 우리나라 사람들이 땅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이쪽 분야의 연구는 활발한가요?
임동근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외국엔 많이 있어요. 『정치지리학Political Geography』이라는 저널도 있어요. 거기 보면 페미니즘부터 시작해서 온간 스케일의 종류들이 논의됩니다. 정치체제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긴 하죠.
이경희 서울 통치술의 변화를 추적하고 정리하셨는데, 국내 석박사학위나 학술 논문에서도 이야기가 되고 있는지, 그 연구 현황이 실무에 적용이 잘 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임동근 여러 분야에서 슬슬 진행이 되고는 있어요. 제가 다 파악하지 못한 것이니 ‘발견’이란 표현이 맞겠습니다. 가령 과학기술사 쪽에서는 국토계획에서 엔지니어들이 어떻게 국토를 바꾸고 있는지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더라고요. 출간 후 연구자 몇 분을 만나 뵙고 나서 흐름들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재미있어요. 학생들이 이런 연구를 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우리나라에도 발생을 했고 확대되는 걸 보니까 조만간 연구자들이 기획을 잘하면 충격적인 혹은 토대가 될 만한 이야기들이 쌓이겠구나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소소하지만 네트워크는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마스터 대신 코디네이터
이경희 서울시의 지난 시정들을 보면 다른 나라를 의식한 보여주기식 건축 이벤트라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은 결이 조금 달라 시민에게 결정권을 주는 시민 대상 공모전이 부쩍 늘었습니다. 잠실, 세운상가, 노들섬, 서울역고가, 세종대로역사문화공간 등, 귀를 기울이는 신중한 태도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책임을 시민에게 전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정책이 서울의 권력 집중에 효율적이긴 한가요? 도심재창조 프로젝트는 청계천처럼 신자유주의적 도심개발로 볼 수 있는지, 시민의 적극적인 개입이라고 봐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임동근 ‘시민에게 문호를 개방했다’는 표현이 있는데, 정말 그랬는지는 아직 모르겠고요. 지금까지의 정책들은 비판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제가 비판하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절차적인 측면입니다. 단적인 예로, 대도시 정책을 평가할 때 제가 기준으로 삼는 것은 3, 4년 전에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인가, 혹은 논의된 적이 있던 정책이었던 것인가, 하는 겁니다. 3, 4년 전에 발견할 수 없는 논의라면 그것은 졸속입니다. 대도시 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계획가가 선을 긋고 자기의 공간적 이상을 구현하려 하는 것인데, 이들은 예상하듯 돈이 많이 들거나, 비효율적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논의 기간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야 하는 것은 물론, 그러면서 다양한 주체들이 경제적·사회적 모두에서 예측 가능하게끔 반응해줘야지만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면서 굴러가는 것이죠. 만약 이명박 시정의 청계천, 오세훈 시정의 한강르네상스, 박원순 시정의 각종 프로젝트가 시장 임기 때마다 전멸하기 시작한다면 서울은 망합니다. 각 정책을 이니셔티브로 볼 수는 있지만 조급하게 실행한다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거죠.
또 하나 문제가 되는 제도는 마스터아키텍트(MA), 마스터플래너(MP)입니다. MP, MA는 전형적인 개발주의 개념입니다. ‘마스터’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공간을 조정해주는 코디네이터 개념으로 바꿔주어야 합니다. 마스터가 필요한 게 아니라 코디네이터가 필요한 거거든요. 건축과 도시의 차이 중 가장 큰 것은, 건축이 자꾸 작품을 만드려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작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잘 기능하는 장치가 필요한 겁니다. 도시는 결코 작품이 먹여살리지 않습니다. 작품은 (나쁘게 말하면) 공공의 돈으로 몇 명의 이상을 실현하는 겁니다. 큰 건물에 사람 이름이 붙은 작품을 위해 시민의 돈을 그렇게 많이 써야하는 명분을 얻는 사회화 과정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회화 과정이 있으면 그나마 좀 나아요. 그런데 그런 것 없이 시장의 선호나 몇몇 MA의 취향이 결합되어 과두제처럼 공간적 형상이 결정되는데, 여기엔 그 반대의 시민사회 집단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저는 현 시정의 공간구조와 도시 건축 흐름에 굉장히 우려를 표합니다. 제가 간혹 박원순 시정을 많이 비판하곤 하는데, 엄밀히는 비판보다 아쉬움이 크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흐름과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 전임 시장과 비교해 최악이다 아니다의 의미가 아닙니다.
이경희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시정 중 그래도 긍정적인 역할과 결과를 낸 때는 언제였나요?
임동근 기존 시장들이 모두 잘못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도시 기능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흐름은 계속 있어왔고, 도시 구조를 재편하면서 더욱 효율적인 도시로 만들려는 흐름은 있었습니다. 오세훈 시정부터는 신자유주의도시계획으로 운영하면서 도시를 스펙터클로 만들려다 보니 문제가 훨씬 커졌죠. 그중 제일 아쉬웠던 것은 서울역 고가도로예요. 스펙터클 외에는 추진하는 다른 이유를 생각하기 힘들어요. 그런 식의 접근 방법은 도움이 될 부분도 있지만 스케일을 잘못 잡았죠. 뉴욕의 하이라인파크는 철저히 로컬에서 들어갔지 센터에서 들어간 게 아니거든요. 공간을 조금씩 바꾸어 움직이는 것은 아주 로컬한 부분에서 출발해 장기간을 내다보고 해야지, 천만 명이 사는 메트로폴리스에서 하달 식으로 진행된 거잖아요. 그런 진행은 악수죠.
다시 강조하자면, 공간환경을 바꾸는 메트로폴리스 정책은 기간이 한참 걸리기 때문에 긴 호흡으로 가야 해요. 빨리 가려는 것도 의도적으로 늦춰야 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지가가 교란되고, 적응하지 못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약자이기 때문에, 얼마나 도시개발을 천천히 하고 동시에 순기능을 하도록 만드느냐, 그리고 그 천천히 가는 속도 안에서 예측 가능성을 부여하는가, 이게 핵심입니다.
이경희 그 늦추는 방법에는 어떤 게 있나요? 시민들의 자발적인 혹은 예민한 시정 감시를 기대해야 하나요?
임동근 조바심만 내지 않으면 돼요. 논의의 장을 넓히고 진단도 하고 장기간에 걸친 평가와 심층면접 등도 해야죠. 일례로, 환경영향 평가를 얼마나 졸속으로 하냐면, 풀, 동물, 물길에 대한 평가라면 당연히 사계절을 담아야 하는데, 생태계에 교란을 주지 않았는지 살피는 영향 평가를 6개월 안에 끝내고 진단보고서를 낸다는 것은 과대한 욕심이죠. 훨씬 길게 해야지만 그로 인해 다치는 사람이 최소화할 수 있는 거죠. 그런 고민이 너무 부족합니다.

지식을 통치하기
이경희 마을만들기와 협동조합을 거쳐 최근 서울에서는 청년주거나 청년복지로 눈을 돌린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책에서도 우리나라에서 IMF 이후에 폭동이 일어나지 않은 게 매우 특이한 일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 걸 의식한 것은 아닌지…. 사실 청년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환경 개선 처우가 더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임동근 마을만들기와 유사한 도시정책이 서구에도 많았습니다. 공통적으로 정리해야 하는 원칙이 있는데, 바로 사회적이든 물리적이든 낙후지역에 대한 재개발입니다. 낙후지역도 공간인지 사람인지 포인트를 확실히 잡아야 해요. 지금 우리나라의 마을만들기에 대한 가장 큰 의구심은, 마을에 사는 ‘사람’을 위한 것이냐, 마을의 공간적 ‘환경’을 위한 것이냐, 하는 거예요. 지금 박원순 시정에서는 공간 개선보다는 아무래도 사람 쪽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한다면, 마을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망가졌는지에 대한 보고서가 먼저 진행되고, 그다음에 그 삶을 개선할 방법이 무엇인지, 하다못해 후속 세대에서 더 열악해진다고 하면 최우선으로 젊은이를 교육하고 직업훈련에 집중해야 할 거고, 어르신들의 경제력 활동이 힘들면 과감하게 복지 차원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흐름은 보이지 않고 현상은 공간으로서의 마을만들기라고 던졌기 때문에 엇박자가 나는 거죠. 이게 복지 차원인지, 청년 문제인지 다 하려고 하거든요. 전략 없이 마을에 들어갔을 때 우려했던 문제들이 생겨나는 겁니다.
다른 하나로 (책에도 나왔지만) 특정 마을을 채택해 그곳에 예산을 집어넣는 것은 넌센스예요. 사람의 몸에 비유하면 어떤 특정 부위가 아플 땐 그 이유가 몸 전체 밸런스가 깨졌거나 다른 곳도 아프기 때문에 뾰루지가 튀어나온 건데 아무리 그 부분만 연고를 바른들 해결은커녕 나아질 리가 없잖아요. 이처럼 문제 징후의 스케일과 문제 원인의 스케일을 구별해서 치료하겠다는 차원으로 들어가는 건지, 덮겠다는 건지에 따라 전략이 달라져야 하는데 그게 부족한 거죠. 도시에 낙후지역이 생긴다, 갈수록 심각해진다, 하는 데엔 분명히 이유가 있는데 증상과 징후에만 대처를 하고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도시가 굴러가는 동력과 메커니즘, 공간적 양상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진행되고, 그 진행에 따라 해당 지역의 마을정책이 무엇인지 상상해야 하는데 뒤바뀐 거죠. 성미산 마을공동체가 어떠하다, 어느 어느 동네가 어떻다, 하는 것처럼 성공 사례 몇을 가지고 서울 전체 마을만들기나 도시재생 프레임으로 간다면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2, 3년 세팅할 때부터 예견되었던 거예요. 마을만들기를 시도해서 성공한 사례는 아주 특수한 경우 한두 개를 빼곤 거의 다 실패했습니다. 돈은 어마어마하게 썼는데도요. 이 또한 거대한 정책 실패 중 하나가 될 겁니다.
이경희 너무 절망적인데요.
임동근 결국 메트로폴리스는 지식통치예요. 지식이 없으면 통치가 안 됩니다. 그런데 자꾸 그걸 까먹어요.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지식이 있어야지만 통치 가능한지를 알고 그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이벤트, 증상, 임기 단위로 통치하려 한다면 어느 순간 망가질 수밖에 없어요.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의 임기응변과 없는 상태에서의 임기응변은 결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최악은 최고정책결정권자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것으로, 그렇게 무리수를 두기 시작하면 권력의 마이너스 경제학이 가속화되는 거죠.
이경희 서울시의 도시계획과나 서울연구원과 같은 조직 혹은 기관에서도 연구가 꽤 많이 되었을 텐데요.
임동근 몇십 년 동안 축적해 놓은 자료들이 있을 겁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렵진 않습니다.
서울 통치술의 현 좌표
이경희 이 책은 한국의 메트로폴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바꾸어 말하면 ‘서울의 과거와 오늘의 이야기’인 셈이죠. 그런데 서울에는 인구가 너무 과밀해서, 앞서 비유하신 사람의 몸을 두고 보면 어느 한 곳이 비대해 건강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통치나 국력을 위해 메트로폴리스는 전략상 필요한 것인지, 그렇다면 그 메트로폴리스의 모습과 통치 상황은 방향을 잘 잡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지역의 볼멘소리나 부작용도 있을 것 같은데요.
임동근 이해관계는 서울, 대한민국, 지방, 수도권 입장이 각각 모두 다릅니다. 서울을 하나의 수도권으로 놓고 본다면, 수도권이 기능을 잘하고 있는가, 하는 측면을 볼 수 있겠고요. 순수하게 행정 구역만을 놓고 봤을 때 서울을 들여다볼 수도 있죠. 갈수록 서울만 놓고 보는 입장은 극히 드뭅니다.
일단 수도권의 특징은 여러 개의 권력체가 공간을 나누어 갖게 하는 겁니다. 경기도 안에서도 부천, 수원이 다 다르고, 인천과 서울 같은 큰 광역시와 특별시가 있습니다. 공간이 분점 된 상태에서 기능적으로 집행하는 것은 조금씩 힘들어지는 상황이죠. 여기서 고려해야 할 것은 이미 수도권에는 기반시설이 수십 년에 걸쳐 엄청나게 깔려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망가지지는 않을 거라는 겁니다. 이 기능을 계속 유지보수만 해도 좋은 인프라스트럭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쉽게 이러한 단계로 올라온 것은 아니라는 거죠. 지금의 수도, 통신 등이 갖춰지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들어갔기 때문에 서울의 메트로폴리스로서의 잠재력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좋은 환경이라는 것은 맞습니다. 예를 들어, 통일 후 평양에도 서울과 같은 인프라스트럭처를 갖추겠다고 하면 엄청난 돈이 들어갈 겁니다. 서울은 더더군다나 사람과 물자의 이동에 맞게 계속 변하고 진화해 왔기 때문에 사회주의권의 계획도시가 갖지 않은 엄청난 장점들이 있습니다.
이경희 수도권이 자리를 잘 잡았다고 한다면, 혁신도시로의 분권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건가요?
임동근 지방분권이나 혁신도시 추진의 일환으로 공공기관 이전이 많아지고 있는데, 특정 기관들은 국토가 워낙 작다 보니 이전을 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나오는 비효율을 극복할 수 있는 여러 장치를 마련했을 겁니다. 대학도 온라인으로 강의하는데 업무나 의사결정을 온라인으로 못할 것은 없겠죠. 물론 적응하는 데 시간은 걸리겠지만, 국토가 워낙 작아 시차가 있는 것도 아니니 무리는 없을 겁니다.
단, ‘도시’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몇몇 공공기관들이 혁신도시로 이전해 그 도시가 크기를 바라는 것에는 무리가 있죠. 도시는 메트로폴리스로 집중하는 성향이 있으니, 지극히 외딴 도시로 행정기관을 분산시키는 모습으로 가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도시가 성장할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경희 메트로폴리스를 이야기하면서 한국의 아파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텐데요. 주거 양식으로서의 효율성과 토목·건설사업의 미래, 그리고 정권과의 관계까지 정리해 놓으셨습니다. 사실 요즘에는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를 떠나 자기만의 주거양식에 대한 요구들이 이전과 비교해 더욱 다양해지지 않나 하는데요. 실제로는 아파트의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커뮤니티가 양적으로 줄어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될까요?
임동근 그게 가장 싸기 때문이에요. 지금 같은 아파트단지가 가장 싸고 채광이나 통풍 등 일상생활에 최적화되려고 팔릴만한 것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매우 많이 진화했어요. 판상형 아파트가 못생겼음에도 장기적으로 가는 이유는 편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고층으로 된 타워형은 결국 문제가 되기도 했고 유행도 지났죠.
이경희 한국의 주택을 연구해오신 서울시립대 박철수 교수님에 의하면,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면서 길들여지다보니 구청에 넣어야 할 민원도 관리인에게 전가하고 갈수록 단지 밖에 무심해지져 결국 아파트 생활이 민주주의의 퇴화를 가져온다고 하셨거든요. 시간이 축적되다 보면 이 또한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서울의 효율적인 통치 입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합니다.
임동근 서울의 아파트단지를 연구한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준자치체’라고 이야기 했죠. 준자치공간을 만든 거죠. 문제를 시에게까지 가지 않고 알아서 해결하는 것. 심지어 청소도 돈으로 하는 거죠. 그래서 아파트가 한참 지어질 땐 통치 비용이 엄청나게 낮게 나왔어요. 아파트가 쭉 깔리면 동사무소나 구청과 파출소의 업무가 확 줍니다. 메트로폴리스의 통치 효율성 입장에서는 한 때 아파트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죠. 한때는. 하지만 지금은 아파트가 단체별로 이익단체가 되면서 거버넌스가 더 마이너스가 되고 있어요. 땅값이나 교육환경을 매개로 해서 아파트단지가 자체적 이익이 생기고, 단지별 갈등이 생기고, 이해관계가 충돌하죠. 장기적으로는 깨져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통치기구가 어떻게 조정하느냐도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되겠죠.

이경희 이번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과 출간 예정인 전문서는 지금까지 서울의 탄생 과정에 집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나올 책에서는 서울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면 될까요? 혹은 더욱 중요하게 집중하시는 이슈는 무엇인가요?
임동근 갈수록 도시 연구가 미래도시 연구로 바뀌어요. 여기서 미래도시라고 하면 꿈꾸는 도시가 아니라, 지금의 모습, 지금까지 굴러온 여러 가지 장치와 기계들이 계속 간다면 도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를 예측하는 겁니다. 미래학과도 비슷하긴 한데 예전의 학문과는 좀 다릅니다.
예전에는 지금 이 모습에 오기까지의 이유들에 집착을 했어요, 그러다가 그게 어느 정도 정리도 되고 카테고리화 되면서 이들을 미래로 투사합니다. 과거를 잘 알아야 미래를 잘 알아요. 과거에 어떤 식으로 진행했고 그 모토는 유효하게 돌고 있는 건지 보는 거죠. 일례로 최근 자산기반형 개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기계가 앞으로도 계속 굴러갈 것인가, 전세란 시스템은 지금도 작동하는가, 멈추고 있는가, 앞으로 어떻게 돌릴 것인가, 와 같이 각각을 장치로 놓고 이들이 배치되면서 어떻게 군무를 추며 도시가 바뀌어 나가는지를 예측하는 연구가 매우 필요합니다. 특히 대도시 연구에서는 중요합니다. 그런 연구로 가다 보면 결국 시나리오를 잡게 되죠. 메트로폴리탄 시나리오가 조건 1, 2, 3일 때 각각이 악조건으로 가지 않으려면 어떤 개입이 필요하고, 흐름이 나타나고, 사건이 벌어지는지를 주로 연구하고 있죠.
이들 연구의 특징은 집단연구여야 합니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어요. 이들이 어떻게 코워킹과 네트워킹을 하느냐가 메트로폴리스 연구의 중요한 화두입니다. 저도 그런 데 관심이 있어서 저 혼자가 아니라 교통공학, 환경공학, 사회학, 역사학, 경제학 등을 연구하는 이들이 대도시를 매개로 어떤 협력연구를 진행할 것인지를 주요한 포인트로 놓고 지켜보고 만나고 있습니다.
이경희 전 세계 수많은 메트로폴리스 중 서울이 정책이나 실행에서 눈여겨볼 수 있는 나라는 어디인가요?
임동근 대도시라면 어느 나라나 충분히 연구는 축적되어 있습니다. 다만 학문을 횡단하면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는 역량, 위기 시의 컨트롤 능력은 다르긴 하죠. 다 하나같이 힘들어합니다. 다만 몇몇 스타일은 있어서 다른 점은 있습니다. 가령 파리는 굉장히 강한 국가권력을 가졌고, 런던은 많은 부분 외주화합니다. 외주화 내용 중 하나가 스마트시티입니다. 도시를 민간회사에 맡기면 훨씬 저렴하게 통치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도시 경영을 민간에 맡기는 거죠. 그중의 가장 끝이 로보캅과 같은 경찰력을 외주화하는 겁니다. 반면 협동조합이나 국가와 같은 공적 영역을 통해 메트로폴리스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큰 두 개의 흐름 중 서울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마 영미권으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그동안 그쪽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까요.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작동원리
분량13,989자 / 30분 / 도판 2장
발행일2015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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