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간 여행사 – 종로 편
분량3,698자 / 5분 / 도판 1장
발행일2015년 10월 29일
유형에세이
아래의 각 에피소드가 종로의 어디에서 있었을지 짐작하여 위의 지도에 표시된 알파벳과 맞춰보시오. 정답은 하단에.

①” so so ooso”를 반복해서 소리 내던 여인은 휠체어를 탄 채 뒤통수를 보이며 다가오고, 거리의 사람들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다가온다. 뒤를 돌아보니 여인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여전히 “so so ooso”
② 이 골목에는 왕벌이 계신다. 영업시간을 넘기면서 저녁 9시 이후에 얼떨결에 찾아오는 젊은이들에게 여러 차례 밤을 내어주시는 왕벌 말이다. 벽에는 야시꾸리한 포스터가 붙어있다.
③ 세운전자상가를 골목대장 마냥 짓궂은 미소를 띠고 비집고 다니시는 윤 교수님의 잡화가 여기에 있다. 그에겐 자주색 국화꽃 한 다발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윤 교수님은 늘 탐험에 바쁘시기에 잡화는 제대로 열려있는 날이 없다.
④ 세운상가에서 세시간 여행사가 세력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을 주셨던 일명 ‘바늘 사장님’이 중고차 사기를 당해 거래계약서를 보여주며 하소연하시던 곳.
⑤ 첫날에는 그저 수군대기만 했고, 두 번째 날에는 뒷걸음치고 모여서 술렁였다. 프랑켄슈타인은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고 웃겨야 했으며 옥상으로 쫓겨나기까지 했는데, 결국 목소리를 잃고 복도에 내팽개쳐진다.
⑥ 세시간 여행사 가이드의 조화가 여행객들을 이끌고 탑골공원으로 왔지만 문이 굳게 잠겨있어 그 앞을 서성거리고 있다. 공원 문지기 같은 독도수비대 형님이 모자 아래로 두 눈을 번뜩이며 여행사 일행들에게 말한다. “저 안에 어떻게 들어가는 줄 알어?…날아서 들어가야 해.”
⑦ 2005년 베를린 시장 클라우스 보베라이트는 베를린 장벽 일부와 독일 전통 가로등을 서울시에 기증하였고, 이곳에는 작은 베를린 광장이 만들어졌다. 밤이 되면 어렴풋이 유럽풍의 광장 벤치 위에는 노숙자와 취객들이 평화를 꿈꾸며 잠이 든다.
⑧ 네 명의 여인이 종로를 배회하던 밤에도, 6월, 7월에도 광장의 남자는 비둘기 주술사가 춤을 추고 있을 때 자주 소리를 지르거나 상의를 탈의한 채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그자가 5억이나 빚을 졌고, 20대 후반의 딸을 둔 가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⑨ 광장시장 30년 전통의 이불가게 주인 여사님은 우유를 마시는 아들 이야기, 오미자 주스로 여름을 나던 옛 추억을 나누고 싶어 했고, 귀금속 가게 사장 딸내미를 소개해주었다.
⑩ 광장시장에서 한탕 때린 아가씨 네 명이 집으로 가는 길을 헤매다 이곳 공중화장실을 목격한다. 슬프지만 문이 잠겨 있다. 비가 올까 말까 했던 그 날, 온종일 펼쳐보지 못한 우산을 둥글게 펴고 수풀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종로인간이 다 되었음을 증명한다.
⑪ 꼬리곰탕을 맛있게 먹고 있다. 테이블 반대편에서 같은 행위를 취하고 있는 친구의 허벅지에 시커먼 엄지 사이즈의 바퀴벌레를 목격했다고? 평소 말 못한 감정까지 실어서 아까 받은 전단을 둥글게 말아 후려친다. ‘나에게 고마워해야 해’라는 표정으로 “나중에 말해주겠다” 한다. 빨리 꼬리곰탕을 해치워라.
⑫ 딸랑- 바의 문이 열리고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사장님이 등을 돌리며 입장하려는 두 소녀를 맞이한다. 어떻게 찾아왔느냐는 둥 둘이 무슨 사이냐는 둥 이상한 질문이 쏟아진다.
“여기 이반 카페인데?” 소녀들은 간판사업 이야기를 하며 쿠바리브레와 캄파리토닉 한 잔씩을 마시고 떠난다.
⑬ 두 번이나 여기서 족발을 먹으려 했지만, 족발이 다 팔리고 가게가 닫아 모두 실패했다. 역시 3이라는 숫자가 마법인지, 세 번째 방문에 드디어 족발을 먹을 수 있었다. 새우젓이 유난히 시뻘겋고 고기가 부드러운 이 족발집은 어디일까? 옆 테이블 아저씨들의 탈모 고민을 자세히 엿들을 수 있었다. – ㄱㅇ 족발
⑭ 관수교 주변으로 샤프 고시텔이 보이는 청계천로에는 나무로 된 작은 보물 상자가 숨겨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여러 차례 상자 속 보물은 도난당했고 마지막엔 상자마저 자취를 감추었다.
⑮ 여기서 수많은 배지와 메달들을 기웃거리다 보면, 행운이 당신을 찾는다면, “★멋있게 싸우고 값있게 죽자★”라는 문구를 찾을 수도.
⑯ 낙원동 수표로를 걷던 6월의 밤. 세시간 여행사 무리보다 한 걸음 앞에 걸어가며, 지피지기 크로스백을 메고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긴 생머리의 형님이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자 바로 뒤따라간 무리. 골목 한가운데 45도 아래를 내려다보고 서 있던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어 골반으로 가져간 뒤, 소리를 지르며 기를 모은다. “아————–악!”
⑰ 37.5705N, 126.9882E.
정체불명의 종로 방랑자 aka. 탑골 큐레이터.
6월 26일: 빨간 펜 + 저울 + 헤라의 꽁무니 + 검은색 신사 양말 1짝 + 하얀 플라스틱 괴물체
7월 10일: 검은색 상의 + 핀이 부러져버린
압정머리 2개 + 분홍색 큐빅 눈의 부엉이 한 쌍이 나뭇가지 위에 or 브로치
⑱ 플라스틱 테이블에 둘러앉아 누구는 냉면을, 누구는 반계탕을, 누구는 소주를 먹고 있다. 옆 테이블에는 만취가 된 아저씨께서 아양을 부리기 시작한다. 이 골목 취객 처리는 식당 아주머님의 몫. 그녀는 공격적이면서도 침착한 목소리로 아저씨들을 귀가시킨다. “아유 이 양반, 술은 더 못 줘. 험한 꼴 보이지 말고 어여 집에 가. 밤이 벌써 11개여…”
⑲ 윤 교수님이 근처에 소문난 순댓국집으로 우리를 안내하신다. 요리조리 빠른 걸음으로 그를 놓치지 않고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상가를 퇴장하여 길을 건너 골목 속으로 후비고 들어가 어떤 허름한 상점 안으로 들어선다. 순댓국집 안에는 이미 배부르게 식사 중인 근방 상가 사람들로 들썩인다. 우리에게 대접 된 순댓국은 녹색이었고, 정말 맛있었다.
⑳ 김 군이 세운상가 근처를 탐방하다 발견한 옥상이 있다길래 따라나섰다. 수상한 건물 계단을 오르면, 3층에 당구장이 있는데 당구장 입구는 반 옥상이었다. 한층 더 오르면 빈 개집이 있고 인기척이 없는 헛간 같은 작은 구조물이 있다. 여기서는 종묘의 나무들과 종각역 쪽 높은 건물들까지 한 풍경으로 보인다.
㉑ “자… 인자 사주를 보면요, 용띠가 워뜨케 날라꼬…
이래서 이제, 배우는 것도 평생 배워야 되구요. 그리고 뭐, 점 빼고 이런 건 상관없어요. 남자다워. 어, 그리고 인자… 그 성격이 있어요. 귀를 보니께 돈 관리하는 거가 심들어요. 올해가… 나쁜 거 뭐든지 고쳐서 준비하는 해에요. 금년이. 그래서… 뭐, 30살까지 쭉 가면 되지 뭐. 올해는 외로운 해에요.”
㉒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여행이 마무리되어갈 때면 여기서 여행객들을 위한 ‘도나츠’를 산다. 매번 10~15개의 ‘도나츠’를 사가니 사장님께서 알아보기 시작하신다. 그렇다고 서비스는 없다. 한 개에 1,000원.
㉓ “그 갈치가 그 갈치야” – “노하우를 아르켜줘” – “사람들 눈치를 잘 봐야 해” – “(접시의 노가리를 구부리며) 찌를 이렇게 껴야 한다고 이렇게.” 만선에 앉아 아저씨들의 음주 담화를 듣고 있으면 서울부터 저 멀리 제주까지, 대중적인 것부터 가장 은밀한 사실까지 알아버린다.
㉔ 청계천 삼일교의 구명 ‘도-나쓰’에는 김기영 감독의 <화녀> 이야기가 쓰인 노란 편지가 숨겨져 있었다.
㉕ 종로 신중년들 사이에 인기가 뜨거운 콜라텍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으로 올라가면 60대의 할매, 할배들이 열심히 춤을 추며 새로운 만남을 가진다. 탑골공원의 노인들과는 사뭇 다르다. 나이가 드는 것도 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㉖ “잠 좀 자자 이것들아!”
2015년 6월 4일, 낙원상가 4층 야외 공연 앙코르를 잠잠하게 한 7층 주민 아주머니의 외침.
정답
①Q ②Y ③N ④X ⑤P ⑧W ⑨L ⑩T ⑪H ⑫J ⑬C ⑭I ⑮D ⑯A ⑰E ⑱V ⑲M ⑳K ㉑G ㉒O ㉓Z ㉔F ㉕U ㉖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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