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수기엔 위험하고, 버리기엔 불가능한
박진영
분량1,964자 / 5분 / 도판 8장
발행일2015년 10월 29일
유형포토에세이

며칠간 지속된 원인 모를 두통이 멎고 나서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35도를 웃도는 더위가 지배하는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태풍 13호는 꽤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늘은 벼락으로 땅을 윽박질렀고, 두툼한 빗줄기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일주일이었다. TV에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일본 동북 지진 발생 6개월을 즈음하여 여러 채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하지만 TV 프로그램의 특성상 지진 이후 일상생활의 변화나 애써 희망과 감동을 보여주기 위한 억지 설정들로 전파를 낭비하는 것 같았다. 내년 3월 11일이 되면 좀 더 나은 프로그램을 볼 수 있을까?
카네코**(아빠)와 카네코 마리(딸. 생존해 있다면 60세 전후)의 인생을 한 조각이라도 유추해보기 위한 단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몇만 명이 죽고 사라진 곳에서, 피도 섞이지 않은 사람이 앨범 하나 들고 한 명의 인생을 역추적하는 것이란 만만한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앨범을 발견한 그날 이후 개인 작업을 위한 지진 지역의 촬영보다는 이 앨범의 주인공에 대한 정보와 호기심이 샘솟아 한 달에 한 번 미야기현 북부와 이와테현 남부를 찾게 되었다. 동북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어쩔 수 없이 후쿠시마를 지나게 되는데, 후쿠시마에 위치한 휴게소에는 다른 곳에 비해 사람이 훨씬 적게 보인다. 최근 누구도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방사능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의 여유마저 흉흉하게 만드는 듯하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지리적 특성상 미세한 지진은 많이 겪었지만 이번에 겪은 지진은 차원이 다른 공포심과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지진 몇 시간 후 동북 지역을 강타한 거대한 쓰나미는 자연 그 자체의 경외감 내지는 인간이란 존재의 나약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경험이었다.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더 충격적이고 상상을 뛰어넘는 장면을 거실 TV에서 실시간으로 본다는 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대학원 시절 CNN을 통해 본 9·11 테러를 뛰어 넘는 충격이었다.

사흘 후 나는 촬영을 위해 막심한 정체와 통제된 도로를 지나 쓰나미 현장 지바 북부에서 이바라키를 찾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멈춘 풍경과 현실적인 애로사항으로 인해 눈으로만 보고 촬영 현장을 입력을 한 채 동경으로 되돌아 왔다. 그날 답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곳곳의 땅바닥에 흩어져 있거나 바람에 날리는 주인 없는 사진들이었다. 그 사진들은 잔해 더미와 진흙에 묻혀 찢어지고 훼손되었고, 심한 악취와 함께 버려져 있었다. 순간 나는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재난의 현장 속에서 처참한 환경의 감상이나 그에 따른 인간적인 번뇌를 느끼기보다는, 우리의 삶속에서 사진이라는 의미를 되짚고 고민하게 되었다. 손톱만한 칩의 데이터만 있으면 수천 장의 사진을 몇 분 만에 뽑을 수 있는 이런 편리한 시대에 한 장의 훼손된 사진을 쓰다듬으며 입김을 불어 닦고 있는 모습은 가희 놀라운 장면이었다. 더욱이 이곳은 화려한 디지털사진 기술의 진화를 선도하는 일본 아니었던가. 생사를 알 수 없이 사라진 가족들, 떠내려간 집과 자동차,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예물시계… 그런 것들을 제쳐두고 지금 현재 가장 찾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족 앨범’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가족 사진. 그 누구도 그 어떠한 것으로도 다시 돌이켜 가질 수 없는 물건. 그것이 바로 사진인 것이다. – ‘사진의 길’ 시리즈 작업노트 중 부분, 2011.
우리는 만들고 부수고 버리며 역사를 만들어왔다.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이것은 만들기엔 꺼림칙하고, 부수기엔 위험하고, 버리기엔 불가능한 것이었다.
– 후쿠시마 작업노트, 2013.

<미나미산리쿠 - 건물 01>, ‘사진의 길’ 시리즈 중, light jet print, 2011 / ©Area Park 
<미나미산리쿠 - 건물 02>, ‘사진의 길’ 시리즈 중, light jet print, 2011 / ©Area Park

<동북전력>, ‘후쿠시마 오후 2시’ 시리즈 중, 185 x 230cm, C-print, 2014 / ©Area Park 
<쉘>, ‘후쿠시마 오후 2시’ 시리즈 중, 185 x 230cm, C-print, 2014 / ©Area Park

<나토리시 - 카메라들>, ‘사진의 길’ 시리즈 중, light jet print, 2011 / ©Area Park 
<나토리시 - 사진액자>, ‘사진의 길’ 시리즈 중, light jet print, 2011 / ©Area Park
박진영
대학과 대학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했다. 내용이나 형식에서 새로운 다큐멘터리 사진의 지평을 연 사진가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우리가 알던 도시》전을 개최 중이다. (2015. 5. 19 ~ 10. 11) 관찰과 수집을 즐기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부수기엔 위험하고, 버리기엔 불가능한
분량1,964자 / 5분 / 도판 8장
발행일2015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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