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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강사가 들려주는 인생사용법

양효실

소수자로서의 차이에 대한 강박

누구나 직업적, 전문가적, 오타쿠적 강박을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나의 강박은 비슷한 것들에서도 차이를 찾으려는 것이고, 개념을 교란하는 감각의 산란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칸트의 용어로 말한다면 유사성을 찾고 범주화하고 원리나 개념을 끌어내는 규정적 판단이 아닌, 반성적 판단, 오직 하나의 경험에 풍덩 빠지는 훈련을 오랜 시간 해와서 일 것이다. 미학자로서, 미적인 것the aesthetic에서 윤리적, 정치적 가능성을 찾는 동시대 담론들의 맥락 안에서, 극단적 차이로서의 작품을 보호하고 작가의 생존법을 세속의 평균적 감수성에 전달한다. 예술은 번역불가능한 지방어vernacular에 대한 것이고, 표준어와의 환원불가능한 거리로 존재근거를 정당화한다. 너무 일찍 태어난 저주받은 작가에서 살아생전 명성과 부를 쌓는 작가에 이르기까지, 진저리나는 가난에서 무욕한 방탕에 이르기까지, 무병장수에서 자살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무늬는 넓고 가지각색이다. 미학자로서 특히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그녀가 자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대와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유를 쟁취하고 시대를 확장시켰는가에 있다. 따라서 내게 작가는 사회의 맹점이고, 사회의 미래이다. 그렇지 않은 작가들, 이미 충분한 해석을 거친 작가들마저도 그런 상태로 되돌리려고 애쓴다. 무엇보다 내가 즐기는 것이고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미학과가 희귀한 국내 대학의 정황상 문화와 예술 관련 교양 강의가 20여 년 내 강의 이력에 대부분을 차지한다. 예술에 전혀 문외한인 학생들과 미래의 예술가들이 한자리에서 내 번역을 수신한다. 한국어이지만 사실은 외국어인, 이물감이 진득한 소화불량의 언어들이 빅토르 위고가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아직 주둥이가 노란 미숙아들’에게 충격을 준다. ‘코스모폴리탄’ (모든 곳을 고향으로 간주하는)을 거쳐 ‘이방인’ (모든 곳을 타향으로 간주할)까지 도착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숨겨놓고, 자의식, 패러디, 아이러니, 기표, 성찰성과 같은 전문어를 입속의 혀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지적 호기심이건 감각적 매혹이건 낯선 언어가 펼치는 향연을 즐길 수 있는 이는 당연히 소수이다. 내가 미처 찾지 못한 감수성의 회로를 선물해주는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나는 제자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동학同學이고, 동포同胞이고 나도 계속 성장한다. 주는 것은 받는 것이고, 받은 자 없는 주는 자는 아무것도 안 한 자인 것도 당연하고.

비판적 성찰을 위한 강요 혹은 욕망

강의 초기에는 사회와의 불화가 곧 사회적 정체성인 작가들을 통해 근대, 근대성의 문제나 한계를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근대를 추동시켰던 이데올로기들은 포스트근대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심지어 그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더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자신의 문제를 거대한 구조의 문제로 치환함으로써 비판적 성찰성이 이끌 자유와 성장을 쟁취하기를 바랐다. 그것이 내가 공부를 하면서 변화해온 모습이고, 강의라는 나눔에 내가 부여한 ‘의미’이다. 지식인이나 성찰적 지성의 일환으로 예술작품과 미학이론을 예시했다. 상식의 타자로서, 불행함의 자의식을 계속 살아야 할 권리로 떠안으면서, 모든 ‘우리’를 억압적 동일성주의로 내려치면서, 자신이 속한 시대의 음화陰畫이길 자처한 고결한 소수가 왜 비겁하고 딱딱하고 고독한 우리를 위로하는가에 대해 일종의 사명감으로 통역했다. 그러나 스스로의 평범에 너그러운, 왜 ‘고향의 달콤함’이 문제인지 잘 납득하지 못한, 극단적 반례들에 동의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감성적 ‘인식’의 활동으로서의 예술론은 지루하고, 어렵고, 부담스럽고, 너무 먼 이야기였을 것이다. 결국 감정이입이나 동일시가 불가능한, 좋은 언어이지만 배울 수는 없는 외국어의 한 종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해 자체를 거부한 예술가들이 대체로 이해받지 못한 채로 학기가 끝날 때는, 지식인-엘리트로서 예술가들 곁에 있으려는 내 욕망에 볼모가 된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 교양강의를 전공강의처럼 했다는 반성, 탁월한 소수를 발견한 데 따른 만족감이 남았다. 예술을 고급한 취향이나 난해함에 대한 지적 유희로 수용하는 데 극심한 거부감을 가진 나였지만, 결국 나의 수업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그렇게 비쳤다.

무수히 많은 다원주의적 태도의 출현

그러나/그러니 변화는 필연적이었다. 이유는 여럿이었다. 우선 예술 규범, 예술 제도에서 변화가 있었다. 작품을 형식이나 유파로 범주화하고, 난해한 예술작품에 내재된 ‘의미’를 전달해왔던 비평과 이론이 위험해졌다. 작품의 의미와 본질을 찾고, 미적 규범을 제시하는 데 충실했던 모더니즘을 뒤로하고, 이질적이고 다양한 차이들을 수평으로 나열하는 데 더 충실하려는 새로운 태도, 다원주의적 태도가 출현했다. 동시대 작가들을 통일하거나 집단화할 수 있는 의미나 본질은 불가능해졌다. 대신에 젠더, 인종, 성, 세대, 계급처럼 일상적 경험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정체성의 범주들이 미적 형식보다 더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더불어 같은 여성, 동성애자, 유색인 작가일지라도 자신의 정체성이나 문제를 이야기하는 방식의 차이(복수성)로 인해, 그들을 묶어줄 ‘정체성 정치’나 본질주의적 범주화는 예술의 맥락에서는 거의 불가능했다. 오직 무수히 많은 작가들, 작업들을 그것이 놓인 맥락에서, 그것을 요청했던 상황에서 경험하는 것 외에, 말하자면 여성- 되기, 동성애자-되기, 청년-되기를 제외한다면, 객관적이거나 보편적인 ‘시선’은 시대착오적인, 폭력적인 태도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비평 혹은 이론으로서의 모더니즘에서 근대 예술가들을 벗겨내고, 그들의 작품을 문화사적 아카이브로 재구성하는 분위기가 압도했다. 이론의 일관성과 형식적 완성을 위한 내재적 분석이 민속지학적이고 사회사적인 아카이브 연구로 대체되었다. 걸작, 천재, 형식과 같은 예술작품의 신화화에 동원된 이념들은 무가치해졌고, 작가의 개인적 욕망과 집단 정치의 관계나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관계가 우선시되게 되었다. 정상성의 규범을 장악한 가부장제·이성애·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 동성애자, 유색인, 청년 등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폭력에 노출된다는 것이고, 유한한 몸의 취약성을 더 자주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시대 예술가들은 가장 사적이고 개인적인 자신의 문제를 미적 형식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로, 어떤 형식으로도 진압되지 않는 자신의 물리적이고 역사적인 고통을 ‘현시’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따라서 동시대 작가들에 대한 번역은 작가 개인의 구체적 맥락, 그/그녀의 일인칭 목소리와 그의 일상을 관통하는 억압과 폭력에 다가가는 만남일 수밖에 없다. 또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승리자가 되길 거부한 채 폭력에 노출된 몸을 기록하는 작가들은 결국 슬픔에서 사랑으로 이행할 수밖에 없기에 언제나 동시대 윤리적 맥락 안에 있다. 차이를 존중한다는 것은 동의와 합의와 소통에서 제외된 어떤 한 사람, 반례, 잔여를 찾아낼 때까지 ‘우리’를 보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탈한 사람, 남겨진 사람, 버림받은 사람을 내가 무조건 사랑해야 할 사람으로 껴안는 것이다.

과잉 사회화에 소외된 이들

대형강의에서는 수업이 끝날 때 쪽지를 받기 시작했다. 수업의 어려움이나 미흡함을 보강하고자 하는 의도와 공개적으로 말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의 말을 듣고 싶은 욕망이 선택한 형식이었다. 발표와 토론에 유능하다는 것은 과잉 사회화의 반증일 수 있기에, 나는 느리고 고요하고 작게 말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쪽에 더 애정을 갖게 되었다. 익명의 쪽지는 충격이었고 아팠고 침묵하게 만들었다. 거기엔 차마 남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어서 잊었거나 묻어두었거나 억압했던 이야기들이 적혔다. 이기고 승리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상처 입는 이들은 느리고 여리고 약한 존재들이다. 부모, 선생, 남자 어른들, 친구에게서 받은, 받고 있는 학대가 마치 ‘불행자랑 페스티벌’인 듯 더 잔인하고 더 아프고 더 충격적으로 적혀서 내게 왔다. 친밀한 공간 -동네, 학교, 집- 은 폭력이 되풀이되고 대물림되는 장소였고, 그것은 동시대 작가들이 작품에 반영한 사회적 사실이거나 물리적 삶이었다.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구조가 비슷하기에 사적이면서 집단적이었고, 나는 그 모든 이야기를 서열화하고 평가하는 대신에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마치 처음 들은 이야기처럼 반응해야 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그 사랑의 방법의 매뉴얼도 제시하는 새로운 억압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이 개성이 없거나 꿈이 없거나 강하지 못한 것에 고통을 받는다. 나는 개성도, 꿈도, 강함도 없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일은 불행과 상처와 고통을 다시 읽는 것, 다시 쓰는 것과 직결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대받은 자가 약자에게 자신이 받은 학대를 되갚는 이 폭력의 악순환뿐인 사회에서, 성공한 자는 잔인한 자라는 것을 감춘 이 사회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게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어루만지고 거기에서 죽어가는 삶/몸에 대한 사랑이라는 유일무이한 긍정법을 찾아내고, 그러므로 우리 모두의 유한성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감수성의 회로를 따르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참 힘들다. 따라서 절망과 냉소여도 충분할 이 냉혹하고 잔인한 사회에서 엘리트 지식인으로서의 예술가가 아니라 감수성-동물로서의 예술가들이 소수자인 것은 당연하다. 동시대 예술가들의 생존법에서 용기를 얻고, ‘고향의 달콤함’의 환상을 의심하면서 자신의 ‘불구’를 치유되어야 할 병이 아니라 견지해야 할 힘으로 재전유할 수 있는 용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영 자기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끼는 예민한 이들은 그렇게 한다. 그렇게 다시 쓰기를 시작하고 자신의 서사에서 ‘노래’를 찾은 이들, 이 세상에 사랑을 ‘선물’한 이들이 나의 동포이고, 나를 살린다.


양효실

서울대 미학과에서 『보들레르의 모더티니 개념에 대한 연구』로 학위를 받고 현재는 서울대, 단국대, 그 외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한다. 또 『아트인컬처』 등에 비정기로 전시리뷰를 게재하면서 다양한 장르와 영역을 넘나들며 글쓰기를 진행하고 있다. 말단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주변부적 시선을 일찍부터 체득했고, 거의 모든 인간을 편견 없이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을 덤으로 갖게 되었다. 주디스 버틀러의 『불확실한 삶』, 『윤리적 폭력 비판』을 번역했고, 같은 저자의 『갈림길들: 유대성과 시오니즘Parting Ways: Jewishness and the Critique of Zionism』(2012)을 번역 중에 있다. 이번에 실린 글에서 마지막에 언급한 ‘선물’을 길잡이로 한 책을 쓰고 있기도 하다.

비정규직 강사가 들려주는 인생사용법

분량5,243자 / 10분

발행일2015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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