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의 공간 혹은 여정
박성태
분량1,905자 / 5분
발행일2015년 7월 2일
유형서문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점에서 석 달 동안 지낸 적이 있다. 4년 전 봄과 여름 사이의 일이다. 카페 2층의 삼 분의 일 정도에 천막을 이용해 노마드오피스를 꾸몄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상업공간이나 공공공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새로운 형태의 사회공간을 만들려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이질적인 공간이 어느 일상의 공간에 침투했을 때 새로운 문화적 삶의 지형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창작자를 인터뷰하는 곳이자 사무실이자 누구나 반기는 환대의 공간이 콘셉트였다. 카페 손님들도 함께 앉을 수 있고 서로 섞여 이야기 나눠도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절반은 닫혀있고, 절반은 열려있어 쉽게 경계를 넘을 수 있고 일단 들어오면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동형 사무실은 좋은 점이 많다. 일시성과 장소성의 결합은 보고 싶은 사람과 격이 없이 만날 수 있고, 그를 통해 원래 하려 했던 솔직하고, 자연스럽고, 감성이 통하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한다. 당시 꽤 많은 이들이 방문했다. 한번 오면 서너 시간 이상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앉아있곤 했고, 그러다 보니 인터뷰이도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모이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약속 없이 찾아오는 지인까지 테이블에 둘러앉아 늦은 저녁까지 시끌벅적한 파티로 이어질 때도 종종 있었다. 나에겐 카페 열쇠가 있었고, 밤새 있어도 괜찮았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5년 전에 문을 열었으니, 옮겨야 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한남동과 이태원은 몇 년 사이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곳이 됐고, 앞으로도 이런 흐름은 계속될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기존 가게들의 대다수는 쫓겨났고, 그 자리를 대기업 프렌차이즈가 들어왔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있는 건물도 그사이 건물주가 서너 번 바뀌고 건물가도 서너 배 이상 올랐다.
현재 상황은 복잡하다. 지역이 매력적으로 변화하는 데 공헌한 주체에 대해, 그리고 그 공공성에 대해 사회적 가치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리고 단순히 부동산 가격이나 경제적 숫자만 보고 들어온 사람들에게 이 지역 사회와 이웃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고 노력해 달라는 말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지역에 닫혀 있는 사적private 공간만 늘어날 때 생기는 문제에 대한 필터가 필요하다. 특히 두세 배씩 임대료를 올리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소비 공간만 늘어난다면, 그래서 그 동네와 골목을 만든 사람들이 쫓겨나고 독특한 문화는 사라져 결국 특색 없는 지역으로 변하게 된다면 이는 자본의 폭력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지역은 오래전부터 문화 창작자들의 주요 활동 대상지였다. 다양한 문화와 공간과 활동이 만나는 경계이며 고급 주거지와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드는 멜팅팟이자, 이슬람 사원과 게이힐이 이웃하는 문화적 관용성 또한 높은 동네다. 이런 장소성은 이곳을 오고 간 사람들이 긴 시간 반복적으로 참여하고 경험하는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 지역의 변화 주체들의 지속적인 활동과 지역의 특성이 상호 작용하여 특유의 장소성이 발아되고, 이곳을 드나드는 방문객들에 의해 더 풍성해졌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남는다. 매력적인 지역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과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은 저지할 수 없는 대세인가? 상업 자본에 의해 하나둘 사라지는 이웃과 개성 넘치는 공간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로 인해 이 지역이 모노톤의 ‘과장 광고 지역’으로 변하는 것도 당연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한 저항은 불필요한 것일까? 등등.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점에서 ‘환대의 공간 그리고 여정’이라는 포럼을 기획했다. 그리고 《건축신문》에서는 이 고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했다. 우리의 매력적인 장소가 삶과 문화가 텅빈 놀이동산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래서 작은 목소리를 모아서라도 저항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박성태 본지 편집인
환대의 공간 혹은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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