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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에서 마을 없는 공동체로

이진경

공유재의 비극?

‘공유재의 비극’이란 개념은 ‘공유’나 ‘공동체’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아킬레스의 건’ 같은 사례로 즐겨 언급된다. 특히 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개개인의 이기적 본성의 가정 위에서 사유재산과 시장에 의한 조정이 무슨 자연법칙이라도 되는 양 생각한다. 그러나 그 개념은 1968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던 개릿 하딘의 논문 <공유재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1968)에서 연유한 것으로, 하딘은 열렬한 생태학자로서 공유재인 생태계를 지키고 되살리기 위해서는 중앙집권적 정부의 강력한 명령과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유물의 자유로운 이용은 모두에게 파멸을 안겨”주는데, “혼잡한 세상에서 파멸을 피하려면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 밖에 있는 강압적 힘, 다시 말해 토마스 홉스의 표현을 빌자면 ‘리바이어던Leviathan’에 호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가 사적인 재산에 대한 사용권마저 제한했던 박정희 정권의 그린벨트 정책을 알았다면 필경 강하게 지지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하딘이 말하는 공유재의 비극이 정말 공유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가 제안했던 모델은 자신만의 이득을 최대한 추구하는 목동들에게 공유지의 사용을 일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공유지를 파탄내는 것, 그것은 사적인 이득 말고는 생각하지 않는 개인이다. 공유재의 비극이란 그런 개인에 대한 방어벽이 없을 때 발생한다. 그러니 국가를 그 방어벽으로 삼자는 것이다.

반면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엘리노어 오스트롬은 스위스나 일본 등에 존재하는 많은 공동체가 어장이나 목초지, 황야나 관개시설, 길이나 숲 등의 공유재를 훌륭하게 관리하며 오랜 시간 존속해 왔음을 조사 및 발견하고 그 이유를 분석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이들 공동체 구성원은 공유자원에 관한 한 각자의 당면 상황보다는 공유자원의 장기적 보존을 더 중요시해 공동체의 이익을 앞세운다는 것이다. 거기엔 그를 위한 공동의 규칙과 규율이 있었고, 그걸 어길 시 가해지는 처벌 또한 있었다. 그러나 규칙을 어김으로써 개인이 얻을 이익이 크고 기회가 많았음에도 대개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위반으로 인해 감수해야 할 처벌은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비해 매우 낮은 것이었음에도 규칙을 어기는 이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공동체적인 관계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관리가 소홀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공동체도 공유재산을 사적으로 남용하도록 두지 않는다. 대부분 공유재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규칙을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가게 되며, 강력한 윤리적 감정이 그것을 준수하게 하고, 관리가 느슨해지면 다시 추스르며 재정비하게 마련이다.

하딘이 증명한 것은 공동체의 무력함이 아니라, 사적 개인의 끔찍함이었다. 그런 끔찍한 개인의 이기적 태도가 마치 ‘본성’처럼 있음에도 공유재가 사라지지 않고 오랜 기간 존속하는 것은 공동체 때문이다. 공동체는 사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선 삶을 함께 만들어가는 방법인 것이다.

공동체와 영토성

잘 알다시피 자본주의 이전에 인간들이 사는 곳에는 어디나 공동체가 존재했다. 농사를 짓는 곳엔 농업공동체가, 중세 서양의 자치도시엔 길드공동체가 있었다. ‘마을’이란 말은 그 자체로 생산과 생활을 함께하는 지역단위 공동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계나 향약 같은 다양한 부조제도가 있었지만, 그것은 눈에 잘 보이는 제도적인 흔적일 뿐이다.

공동체는 종종 개인적인 ‘손해’나 부담마저 기꺼이 감수한다. 심청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어미를 잃고 생활능력 없는 봉사인 부친 품에 자랐지만,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동냥’ 때문이었다. 어려선 젖을, 커선 밥을 매일 동냥으로 얻어먹으며 자랐다. 그러나 이 동냥이란 말처럼 오인되는 개념도 없다. 동냥은 구걸이 아니다. 구걸이 가끔씩 외부에서 오는 걸인에게 주는 것이라면, 동냥이란 매일의 삶을 함께하는, 노동능력이 없는 공동체 내부의 누군가를 공동체가 먹여 살리는 방법이었다.

심청에게 일상적인 식사를 제공하면서, 차후에 얻을 어떤 이득을 계산한 이들은 없었다. 계산 없이 주었다. 자신이 주는 것보다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주었다. 돌아올 이득을 생각하지 않고 무언가를 주는 이런 행위를 ‘증여’라고 한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태평양의 군도들에서 발견되는 이른바 ‘원시사회’란 바로 이런 증여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사회라고 파악한다. 그러나 단지 그런 사회만은 아니다. 심청이 살던 시절, 조선조의 농촌마을 또한 그랬다. 지금 존재하는 모든 공동체가 또한 그러하다. 공동체는 모두 증여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관계를 지칭한다.

그런데 공동체의 증여는 공동체 내부로 한정된다. 아무에게나 증여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범위 안에 있는 이들에게 증여하며, 아무나 먹여 살리는 게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성원을 먹여 살린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는 대부분 경계를 가진다. 그 경계로 구획되는 영토성을 가진다. ‘마을’이란 말은 공동체와 영토성을 표시하는 말이 하나로 밀착되어 있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영토성이 공동체보다 앞서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영토성은 증여가 행해지는 범위를 뜻하며, 이해관계의 계산 없이 어떤 행동이 행해지는 범위를 표시한다. 이는 공동체의 내부와 외부가 구분되는 경계다.

공동체가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확고하게 하려는 경우, 다시 말해 자신의 영토성을 분명히 하려는 경우, 밖에서 오는 것, 내부에 이질적인 것을 끌어들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며, 그것들로부터 자기 내부의 동질성과 순수성을 지키려 한다. 혹은 동질적인 집단을 만들어 외부와 구별되는 자기만의 영토를 확보하려 한다. 흔히 말하는 ‘공동체주의’란 바로 이런 것이다. 가령 지금은 재개발되고 있는 악명 높은 흑인거주지구 할렘은 원래 백인들의 거주지였다. 일종의 지역공동체를 형성한 그들은, 자신들의 거주지역에 흑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암묵적인 규칙을 만들었고, 이는 한동안 할렘지역을 편안하고 동질적인 ‘마을’로 유지해주었다. 자기와 다른 피부의 외부자를 배제하는 강력한 배타적 영토성을 가동했던 것이다. 비버리 힐즈 같은 부자들의 거주지는 이런 영토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담과 문을 설치한다. 빗장 지른 공동체gated community라는 개념이 이 때문에 출현했음은 잘 알려진 바이다.

그러나 이런 미국식 ‘공동체주의자’들만이 자기들의 영토를 만들고 지키려는 폐쇄적 태도를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단순하고 안이한 것이다. 오래된 농촌공동체 역시 외부자들에 대해 닫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도 귀농하는 이들이 제일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이미 있는 마을공동체의 성원으로 인정받고 그 안에 자리 잡는 것이다. 흔히 ‘나와바리’라고 명명되는 영토성은 단지 조폭들만의 특징은 아닌 것이다. 영토성을 갖는 것은 모두 경계를 유지하고 경계 내부의 정체성과 동질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을 갖는다. 이는 친숙함과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우리의 일상적 태도와 강력하게 잇닿아 있는 성향이다. 가족 공동체의 내부자에 대해선 모든 것을 줄 것처럼 대하지만, 그 외부자에 대해선 많은 경우 어떤 걸 나누려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 양자가 잇닿은 연결지점이다.

수많은 공동체가 성공하는 동시에 좌초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성공한 가족이 그 성공을 남들로부터 지키려 하듯이, 성공한 공동체는 그 성공으로 얻은 것은 유지하고 보호하려 한다. 배타적까지는 안 가는 경우에조차, 자신의 성공을, 그 성공과 결부된 정체성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방어적인 태도가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기’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도가 어떠하든 이미 외부에 대해 문을 닫는 것이다.

이 문 닫힌 공동체들 앞에서, 성공에 찰싹 달라붙어 오는 실패 앞에서 공동체에 걸었던 기대를 접는 이들도 있다. 혹은 실제적인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 대신에 ‘공동으로- 존재함’을 철학적으로 천착하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외부에 열린 공동체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묻는 우리에겐, 차라리 지역을 넘어선 ‘마을’을 꿈꾸고 영토를 넘어선 공동체를 꿈꾸었던 다니가와 간谷川雁의 시도가 더 강한 흡인력을 갖는다. 큐슈에서 광부의 공동체를 만들어 활동했고, 노동자 문학서클을 만들어 지도하던 시인 다니가와 간은, 그 문학서클들을 하나로 묶어 소통하게 해줄 또 하나의 공동체를 꿈꾼다. 그리고 이를 위해 그는 『서클마을』이라는 잡지를 만든다.

『서클마을』이 전국의 수많은 문학서클들을 하나로 묶어줄 것으로 그는 기대했다. 따라서 그 공동체를 표시하는 ‘마을’이 큐슈는 물론 혼슈보다도 크다고 말한다. 이 경우 ‘마을’이 혼슈보다 크다는 것은 단지 크기의 비교만은 아니다. 그것은 큐슈나 혼슈란 말에 포함된 지역성을, ‘마을’이란 말에 포함된 영토성을 뛰어넘어 ‘도래할’공동체를 뜻한다. 영토를 벗어난 마을, 영토성을 벗어난 공동체를. ‘마을만들기’가 여기저기서 한참 뜨고 있는 지금, 우리는 서울보다 큰 마을, 남한보다 큰 마을을 만들 꿈을 꾼 적이 있는가? 그걸 꿈꾸지 못했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영토성에 갇힌 것이 아닌지 질문해보아야 한다.

재난과 공동체

그런데 어쩌면 가장 놀라운 공동체, 내부와 외부의 구별이 없으며, 관계의 지속성마저 보장되지 않기에 되돌아올 대가의 가능성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증여가 행해지는 공동체가 있다. 재난의 공동체가 그것이다. 세월호 침몰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재난의 현장에 활동으로, 물자로, 돈으로 지원하겠다며 몰려든 수많은 이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재난을 당한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공감으로, 직접적인 어떤 관계도 없는 이들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물자와 활동을 증여하러 모여든다.

이런 공동체는 재난이 발생한 곳이면 그게 어디든 어김없이 ‘찾아온다.’ 2004년 12월 26일 인도양 일대를 덮쳤던 쓰나미津波는 역사상 기록된 지진 중 가장 오래 지속되었고 강도로는 두 번째인 지진과 더불어 30미터 높이의 파고로 덮쳐왔다.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타이 등에서 25만 명이 사망했고, 25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런데 쓰나미가 덮치자마자 전 세계로부터 유례없는 규모의 구호와 지원이 몰려들었다. “유럽의 어린 학생들은 제빵판매와 공병수집 행사를 열고, 음악가들은 스타가 대거 출현한 콘서트를 조직했다. 종교단체들은 옷과 담요와 돈을 보았다. 시민들은 각자의 정부에 공식 원조로 관대함을 보이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6개월 만에 130억 달러가 모금되었다. 세계적인 기록이었다.” 이 쓰나미로 스리랑카에선 내전은 중지되고 종족갈등마저 소멸해버렸다. “이슬람교도는 시체를 묻기 위해 타밀족 지역으로 달려갔지요. 타밀족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기 위해 이슬람교도 쪽으로 달려갔고요. 하류층 가정에서는 매일 점심도시락 두 개를 보냈는데, 가난한 그들로서는 대단한 일이었죠…단지 내 이웃을 도와야지…라는 마음이었죠.” 몇 년 전 후쿠시마를 덮친 쓰나미와 그로 인해 발생한 원전사고 때에도 우리는 유사한 방식으로 거대한 재난의 공동체가 출현하는 것을 간접적이나마 목격한 바 있다.

모든 재난은 공동체를 불러낸다. 이처럼 재난 시 출현하는 공동체는 재난이 발생한 지역으로 찾아가지만, 그 지역 바깥의 모든 방향에서 모여들며, 어떤 영토성도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을 없는 공동체’다. 어떤 지역에서 발생한 재난이, 장소를 특정할 수 없는 어딘가에 있는 공동체를, 재난이 발생한 마을에 불러내는 것이다. 이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마을이나 지역, 혹은 혈연 등 모든 ‘관계’를 넘어서, 그런 관계의 부재 속에서 출현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더욱더 감동적이다. 어떤 연고도 없이 찾아오는 공동체이기에.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는 흔히 만들려는 공동체에 대해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왜 공동체를 마을이나 지역 단위로 만들고자 하는가? 그걸 넘어선 공동체야말로 공동체의 본질에 진정 부합하는 거 아닌가? 혹은 이렇게 말하려는 것 같다. 공동체를 만들려는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토성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지역을 넘어서고 혈연을,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따라서 여기저기서 진행되는 ‘마을만들기’나 마을공동체 운동에 대해서 이렇게 제안하는 것 같다.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마을을 넘어선 공동체, 마을 없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이진경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서구의 근대적 주거공간에 관한 공간사회학적 연구」라는 논문으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nomadist.org)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박태호라는 이름으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전태일의 유령, 광주시민의 유령과 더불어 공부하고 전투하며 1980년대를 보내던 중 이진경이란 필명으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을 썼고 그 책이 허명을 얻은 덕분에 본명은 잃어버렸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시작해 그 첫 결과물로 『철학과 굴뚝청소부』를 발표했다. 이후 자본주의와 근대성에 대한 이중의 혁명을 꿈꾸며 쓴 책들이 『맑스주의와 근대성』,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수학의 몽상』, 『철학의 모험』, 『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 『필로시네마, 혹은 탈주의 철학에 대한 10편의 영화』 등이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새로운 혁명의 꿈속에서 맑스, 푸코, 들뢰즈·가타리 등과 함께 사유하며 『노마디즘』, 『철학의 외부』, 『자본을 넘어선 자본』, 『미-래의 맑스주의』, 『외부, 사유의 정치학』, 『역사의 공간』 등을 썼다. 『코뮨주의』,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 『만국의 프레카리아트여, 공모하라!』(공편), 『삶을 위한 철학수업』 등을 쓰면서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바닥없는 심연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다.

마을공동체에서 마을 없는 공동체로

분량6,746자 / 15분

발행일2015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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