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se1-cover/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쉬워지는 만큼 가까워질 수 있다

주명희

건축 디자인은 우리의 일상과 아주 가까운 듯하면서도 한편 누군가에게는 미지의 영역이다. 어떤 건축물은 설명이 불필요하게 우리를 압도해 버린다. 또 분명 이전과 다른 경험을 주는 공간이라 느끼지만 그게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매일같이 드나들면서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공간의 디테일을 한참 뒤에 발견할 수도 있다. 실생활에 아주 가까이 닿아있는 이 건축에 대해 우리가 정말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렇게 물음표가 있다.

물론 건축에 대해 잘 이해해야만 그 건축물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비전문가가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 용어를 쉽게 설명하는 시도는 왜 필요할까? 건축물이 완성되는 과정, 건축가의 생각, 건축 재료의 특성 등을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생각하는 건축물의 가치는 전혀 다를 것이다. 건축물에 대한 이해가 기반된다면 건축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훨씬 능동적으로 변할 수 있고, 보다 주도적으로 공간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사용자의 경험을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건축물에 대한 이해는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건축물의 가치를 알아보고 원하는 경험을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

이번 쉬운 글쓰기 워크숍은 ‘쉬운 정보’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졌다. 쉬운 정보는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정보 약자의 알 권리와 정보 접근성 보장을 위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진 정보를 말한다. 영어로는 Easy Read, Accessible Information 등으로 쓰인다. 쉬운 표현의 글을 기반으로 글의 이해를 돕는 이미지, 가독성을 고려한 디자인, 보기 편한 제작 형태까지 모든 요소를 고려해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 접근 지원 방식이다. 주로 다음과 같은 가이드라인 안에서 제작되며, 본 워크숍을 통해 완성된 용어해설집의 원고 역시 이러한 바탕 안에서 작성되었다.

<소소한소통의 쉬운 정보 제작 지침 중 일부>

[정보 범위 설정 및 구성]

– 전달하고 싶은 정보가 무엇인지 결정한다.
–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거나, 생략하지 않는다.
– 중요한 정보를 앞에 배치한다.
– 내용의 이해를 돕거나 정보의 활용에 도움이 되는 정보는 추가로 제공한다.

[문장 작성]
–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만 담는다.
– 필요 없는 수식을 덜어내고 단순한 문장으로 작성한다.
– 독자에게 직접 말하듯이 작성한다.
– 서술형의 문장으로 작성한다.
– 능동태로 작성한다.
– 은유, 비유, 추상적 표현은 지양한다.

[어휘 사용]
– 일상의 언어를 사용한다.
– 특정 집단에게만 통용되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 전문용어, 한자어, 외래어 등은 지양한다.
– 어렵지만 알아두어야 할 표현은 그대로 사용하고 설명을 덧붙인다.
– 명사화된 어휘 선택은 지양한다.
– 같은 의미의 단어가 반복될 경우 같은 표현으로 통일해서 사용한다.

ⓒ 소소한소통

이번 워크숍의 참여자 대부분이 건축을 전공하거나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에 쉬운 글을 쓰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부분들이 있었고, 이런 부분은 아마도 전문가가 비전문가를 위한 정보를 제공할 때 한 번쯤 고민해 볼 만한 지점들이라 생각한다.

우선 우리가 쓰는 언어, 글이 얼마큼 쉬워져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이 정도의 표현은 이해 가능하지 않을까? 이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을까? 혹은 이렇게 쓴다고 해서 이해가 될까? 등이다. 물론 수학 공식처럼 정답이 있을 수는 없는 문제다. 다만 제공자, 전문가 입장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내용들이 사용자, 비전문가 입장에서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것이라고 넘겨짚기보다는 비전문가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을 궁금해하고 필요로 하는지를 중심으로, 읽는 이가 가진 문해 수준, 경험, 배경지식 등을 고려해야 한다. 독자에게 실제로 글을 보이거나 직접 물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적어도 우리 주변의 어린이, 청소년, 어르신, 발달장애인, 건축에 관심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을 페르소나로 정하고 그에게 설명하듯이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 것도 방법이다. 독자의 범위를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포괄적으로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너무 빈번하고 자연스럽게 일상이나 현장에서 사용되는 한자어, 일본식 외래어 등은 새로운 눈으로 뜯어볼 필요가 있다.

한편, 이해가 쉬운 글에는 우선 정확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쉬운 글의 궁극적 목적은 표현이 쉬워지는 데에 있지 않고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있다. 이에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뾰족하게 다듬는 과정은 쉬운 글쓰기에 있어 필수적이다. 같은 의미라도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거나 너무 포괄적인 의미를 담아서 모호해지지는 않았는지, 작성 과정에서 핵심적인 의미에서 비껴가지 않았는지 점검해야 한다. 건축 용어는 그 특성상 적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쉬운 표현으로 대체 가능한 범위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었다. 이런 부분들은 더 긴 시간을 두고 여러 가지 관점에서 논의와 검토를 통해 정리되어야 가능한 일이라 1개월 여의 짧은 워크숍 기간 안에서 해결되기 어려웠다는 점은 아쉽다.

무지와 무관심 속에서는 어떤 것도 의미 있게 경험할 수 없다. 다양한 사람을 포괄적으로 고려한 정보 제공은 보다 많은 이들을 새로운 경험으로 연결하고, 이는 한 사람의 취향, 삶으로 자리 잡는다. 권위나 위계를 탈피한 사용자 중심의 정보제공은 더 많은 사람들을 건축과 좀 더 가깝게 만들어줄 것이다.


주명희

‘쉬운 정보(Easy Read)’ 를 제작하는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에서 총괄본부장으로 일하며 다수의 기획 및 제작에 책임PM으로 참여해왔다. 주요 작업으로 서울시립미술관 《시적 소장품》, 《키키스미스》 쉬운 해설(2022)과 국립중앙박물관 <쉬운 전시 정보 만들기> 프로젝트(2023) 등이 있다. 「쉬운 정보 만드는 건 왜 안 쉽죠?」(소소한소통), 「모두를 위한 전시 정보 제작가이드」(소소한소통) 저자로 참여했고, 정보 접근성, 쉬운 정보 기반 콘텐츠 제작 실무 강의를 하고 있다.

쉬워지는 만큼 가까워질 수 있다

분량2,676자 / 5분

발행일2024년 7월 9일

유형서문

태그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