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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글쓰기 워크숍: 건축 용어 해설집 만들기

이진

모르는 말이 많을 때, 우리는 그 글을 그림처럼 바라본다. 그리고 말의 뉘앙스 혹은 전체적인 느낌으로 의미를 추측하거나, 때때로 아예 모르는 것으로 남겨 두기도 한다. 아마 해외여행 중에 외국어로 적힌 입간판을 보았던 경험에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곤 했을 것이다. 비록 스마트폰으로 번역을 하고, 검색을 한다고 해도 그 갈증은 완전히 해소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면 미술관에서의 상황은 어떠할까? 미술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작품 감상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충분한 이해를 위해 수집하게 되는 갖가지 정보들이 오히려 벽을 만들어, 작품에 가까이 접근하기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미술관에 오는 관람객들이 전시장의 글을 어렵다고 느낄 때, 결국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계단을 만들어 주는 역할 또한 글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어떤 글인지, 무슨 내용을 담을지, 누구를 위한 글인지가 차이를 만들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022년부터 미술관 접근성 향상을 위해 ‘쉬운 글(Easy Read)’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현대미술의 이해와 감상을 위해 명확하고 쉬운 정보를 제공하고, 더 많은 이들과의 공유를 위한 미술관의 실천이었다. 지적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관람객을 위해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쉬운 글로 된 작품 해설의 필요성을 공론화하였고, 《시적 소장품》(2022) 전시에서 해설의 첫 모델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후에는 여러 전시에서 쉬운 글 해설을 함께 제공하거나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그중 관람객의 참여를 통해 쉬운 글 해설을 만들었던 《춤추는 낱말》(2022), 《키키 스미스 – 자유낙하》(2022~2023)의 워크숍에 이어, 이번 <쉬운 글쓰기 워크숍: 건축 용어 해설집 만들기>는 ‘건축’을 대상으로 또 한 번 관객과 함께 ‘쉬운 글’을 다룬다.

어쩌면 건축은 가장 친숙한 예술일지도 모른다. 우리 삶을 둘러싸고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조금만 깊이 있게 들어가도 우리는 금세 까막눈이 돼버리고 만다. 바닥, 천장, 기둥, 벽, 지붕 등 아주 간단한 용어 외에 우리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건축 용어는 많지 않다.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파트너스》 전시에서는 건축 모형, 스터디 모형, 드로잉, 영상, 아카이브 등 300여 점을 포함해 총 50건의 주요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건축 모형들이 각자의 색을 갖고 놓여있다는 점이다. 당신은 그 색을 발견하였는가 아니면 모두 하얀 건축 모형이라고 보았는가? 분명 당시의 상황들을 고려한 노먼 포스터의 건축 철학이 고스란히 베어 건축물에 적용되었을 텐데, 그 색을 찾기란 쉽지 않다. 건축물에서 이유 없이 구성되는 부분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에는 건축가의 예리한 분석과 판단, 연구에 근간을 둔 철학이 녹아있다. 하지만 그 철학이 어떤 것인지, 또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모른다면 그 건축물의 색을 찾을 수 없다.

이번 건축 용어 해설집을 만드는 일은 바로 이 색을 찾을 수 있는 힘을 기르고자 시작되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시에 한 걸음 더 다가가, 그 건축물의 색을 살필 수 있도록 전시에 등장하는 글 혹은 여러 프로젝트의 이해를 위한 자료에서 건축 용어들을 찾아보았고, 발견된 80여 개 중 해설이 필요한 59개의 용어를 선정하였다. 그리고 ‘일반 건축 용어’와 노먼 포스터의 철학과 관계가 깊은 ‘노먼 포스터 건축 용어’로 나누었고, 이를 다시 쉬운 용어와 어려운 용어로 구분하였다. 특히, 노먼 포스터 건축 용어 중 일부 어려운 용어는 몇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는 ‘고정되지 않은 말’로 분류하여, 워크숍에 참여한 여러 목소리를 담은 부록으로 다루었다.

<쉬운 글쓰기 워크숍: 건축용어 해설집 만들기>, 서울시립미술관 현장 풍경

현장 워크숍은 총 4회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참여자들은 진행되는 내내 건축 용어를 둘러싼 여러 자료들을 스스로 찾고 수없이 문장을 고쳤다. 또 전체 워크숍 인원은 건축 전공자 70%와 비전공자 30%로 구성되었는데, 조별 인원을 분산 배치하여 전공자들이 너무 자신의 우물 안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나에게 당연한 것도, 누군가에게는 전혀 들어보지 않은 말이 된다는 사실을 참여자가 직접 느껴볼 수 있게 구성한 것이다.

지름길을 두고 멀리 돌아가는 듯한 워크숍이지만, 매년 프로그램에 참여한 관객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여럿이 만드는 미래, 모두가 연결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우리는 누구나 생산자가 되고, 매개자가 되며, 수용자가 된다. 느리지만 이와 같은 시도 끝에 점차 많은 이들이 미술관에 더 익숙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쉬운’ 말은 굉장히 날쌘 물고기 같아서, 잡으려고 해도 유유히 빠져나가 버리곤 한다.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두고 모두 함께 손잡고 그물을 쳐 물고기를 잡을 시간이 왔다. 끝으로, 이번 건축 용어 해설집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시로 향하는 낮은 계단이 되길 바란다. 나아가 이번 프로젝트가 건축을 이해하기 위한 미술관의 새로운 시도로, 미래를 향한 확장된 연결을 만들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이진

동시대 예술과 미디어, 인간 사이의 관계에 주목하며 관람성, 감각 등 예술 수용자의 태도와 지각 과정에 관심을 갖고있다. 예술학을 전공했으며,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한국 비디오아트 아카이브 ‘더스트림’, 코리아나미술관,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예술 매개의 실험적 방식에 대해 고민하며 관객참여형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고 있고, 동시대 시각예술 큐레토리얼 콜렉티브 마그넷(CC. Magnet) 디렉터, 미디어문화연구모임 ‘부업(VuuP)’ 공동운영자,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다.

쉬운 글쓰기 워크숍: 건축 용어 해설집 만들기

분량2,740자 / 6분

발행일2024년 7월 9일

유형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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