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쉬운 말로 이야기될 때
배윤경
분량1,723자 / 4분
발행일2024년 7월 9일
유형서문
건축도 예술의 한 분야이다. 생활 반경에는 언제나 건축이 있고,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공간 속에서 보낸다. 건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방송, 유튜브 채널과 전시의 수도 꾸준히 늘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런데 음악이나 미술에 비해 여전히 건축은 만만하게 언급하는 대상은 아니다. 개인의 호오를 드러내는 일에도 다들 무척 조심스러운 편이다. 공부해야만 알 수 있는 전문 분야라는 인식 탓일까? 이쯤 되니 건축이라는 글자의 생김새나 발음조차 딱딱하게 느껴진다.
‘건축(建築)’은 우리 말이 아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영조(營造)’라 불렀다. 그리스 시대의 ‘아르키텍토니케(architectonice)‘가 ‘아키텍쳐(architecture)’가 되고, 이를 일본에서 번역한 말이 그대로 들어왔다. 아키텍쳐를 더 뜯어보면, ‘아르케(arche)’와 ‘테크네(techne)’로 나뉜다. 아르케는 시작, 원리를 나타내며, 테크네는 제작, 기술의 의미다.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건축의 뜻을 풀어보면 근본을 다루는 기술 혹은 최고의 기술이라는 핵심에 다가간다. 김광현 교수는 이를 “근원을 아는 자의 기술”이라 했으며, 이종건 교수에 따르면 “으뜸 짓기”와 마찬가지다. 이러한 함의를 이해한다면 각자 잣대를 세워 좋은 건축을 판단하는 일까지 확대될 수 있다.
건축이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로는 무척이나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오직 개인을 위한 소유물일 수 없고, 각 문화권이 다져온 사회적 합의를 철저히 따른다. 괴테는 건축을 얼어붙은 음악이라 했지만, 한편으로는 물질로 구현된 제도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건축은 시청각을 통한 본능적 감상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규칙을 숙지해야 하는 야구 경기에 가깝다. (공모전보다는 설계 경기라는 표현이 더 익숙했던 때가 있다) 바탕에 깔린 건축의 룰을 이해했을 때, 건축은 우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미술관을 설계하랬더니 주유소를 만들었다며 반응이 시원찮았던 미스 반 데 로에의 철골 건축이나, 하수구 덮개를 닮았다며 삽화로 조롱한 아돌프 로스의 단조로운 입면 구성에 건축가들은 찬사를 보내는 까닭이다. 가장 먼저 와닿는 외형 너머 조금 더 깊이까지 알려면 건축에 대한 사전 이해가 전제된다.
하지만, 여기에 또 하나의 함정이 놓여있다. 바로 용어 자체의 난이도다. 이것은 모든 전문 분야의 공동 운명이라 건축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제품에 딸려 오는 사용 설명서에 일러스트를 넣어서 설명의 설명이 필요한 까닭이기도 하다. 비문이 아니더라도 문장을 짓기 위한 재료가 낯설다면, 말하는 바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 전시와 같이 다수의 사람과 소통하려 할 때 용어 해설집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진행 중인 《미래긍정: 노먼포스터, 포스터+파트너스》의 전시를 용어 해설집의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도 그러하다. 참가자들과 워크숍을 진행하기 전, 진행자들은 전시에 등장하는 용어를 모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단순히 사전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용어와 그렇지 않은 쪽으로 말이다. 또한, 노먼 포스터의 창작 세계에서 의미가 깊어지는 용어들로 한 번 더 세분화했다. 전시 관람객과 세마 코랄, 건축신문 웹사이트 방문자에게 소개하는 해설집은 이러한 위계를 갖는다.
이번 쉬운 해설 프로그램이 업계의 자극이 되길 바란다. 베란다-테라스-발코니를 구분하는 것처럼 건축이 대수롭지 않은 일상의 언어로 자리 잡는 날을 기대해 본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건축을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다.
배윤경
연세대학교와 네덜란드의 베를라헤 인스티튜트를 졸업했다. 대학에서 건축 설계와 이론을 강의하며,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쓰고 있다. 건축적 재현과 원근법에 관한 담론을 중심으로 공간의 생성과 수용 방식을 이해하고자 한다. 저서로는 『암스테르담 건축 기행」 (2011), 『어린이를 위한 유쾌한 세계 건축 여행』 (2012)이 있으며, 공저로는 아모레퍼시픽 본사의 건설 과정을 기록한 「New Beauty Space」(2021), 현대카드가 지난 20년간 펼쳤던 공간 프로젝트의 과정과 의도를 담은 『The Way We Build』(2021)가 있다.
건축이 쉬운 말로 이야기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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