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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도시

서현석

상처 도시: 〈환상 도시〉를 만들면서

자생적으로 근대국가를 구축할 기회를 만들지 못한 한국인에게 ‘모더니즘’이란 결코 단순한 단어가 아니다. 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전시 준비를 시작할 무렵은 세월호의 트라우마가 ‘국가’에 대한 재고를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을 때였고, 1960년으로부터 소환하는 위태롭고도 화려한 총체적 에너지는 오늘에 대한 거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1세대 ‘모더니스트’ 건축가들을 이끈 원동력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었다. 건축가 김원은 당시를 회상하며 ‘스폰지’라는 표현을 쓴다. 대학을 갓 졸업한 나이, 김중업이나 김수근이 누렸던 해외 유학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젊은 건축학도에게 새로운 지평은 주로 잡지나 책 속에서 펼쳐졌다. 잡지를 통해 ‘스폰지’에 흡수되는 유럽과 일본으로부터의 ‘새로운 지식’은 ‘근대국가’의 청사진이 됐다.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의 젊은 건축가들에 있어서 그것은 신바람 나는 시작이었다. 아방가르드와 독재정치의 기묘한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개발에 눈을 뜨는 도시행정과 모더니즘의 건축적 비전이 합작하면서 도시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작동했다. 미래상의 혈맥이 새로이 상상됐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과 충돌시켜보게 되는 과거의 이상은 실패의 운명을 앞두고 있다. 아방가르드의 이상이 꽃씨처럼 흩뿌려질 때만해도 서울이 그토록 자본에 휘둘릴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아방가르드 서울’은 일장춘몽이었다고 한 문장으로 단언한다면 역사의 세세한 결을 무시하는 꼴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서울은 아방가르드의 설익은 비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베니스비엔날레 전시에서 다뤄진 네 개의 프로젝트 중 오늘날 형태가 남아 있는 세운상가와 여의도를 묶는 키워드는 ‘야망’과 ‘실패’다. 도심을 횡단하는 메가스트럭처 세운상가는 그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이상의 현현이었지만 그 이상의 생명은 5년을 넘지 못했고, 젊은 건축가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환상적인 꿈의 프로젝트 ‘여의도 마스터플랜’은 건축가 최춘웅이 말하듯 “택지만 남겨놓고” 송두리째 증발해버렸다. 이 두 가지 실패는 곧 서울의 변화를 함축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모던’ 도시 서울. 그 탄생은 ‘모더니즘’의 합리적 이상이 아닌 다른 역사의 모티프들에 의해 일궈졌다. 독재, 불도저, 유신, 개발, 관료주의, 전시행정, 강남, 자본…. 아방가르드가 그것들을 극복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의 용어를 빌리자면, 건축의 비전이 “코끼리의 시간”으로 그려지는 동안 개발은 “토끼의 시간”으로 진행됐다.

건축가 유걸은 반세기 전의 “애송이” 건축가에게 말을 걸면서 “아무것도 몰랐다”고 회상한다. 모더니즘 건축의 원래 의미는 스타일이 아니라 도시문제에 대한 일련의 응답과 해결책이다. 하지만 한국의 모더니즘 건축은 사회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돌아보고 그로부터 실용적인 해법을 만들기보다 서구가 개발한 대안의 껍데기만 베껴오는 식으로 진행됐다. 생각과 고민과 관점을 가져오는 게 아니었기에 국내 현실에 대한 고민은 자연히 배제됐다. 유걸은 뼈아픈 말 한 방을 던진다.

“당시 한국이 필요로 했던 건축은 사실 ‘쉘터’(shelter, 보호소)였다.”

그가 회상하는 한국의 모더니즘은 허울들의 조합이었다. 허울뿐인 밑그림은 토끼의 시간으로 그를 옥죄는 역사의 거대 흐름을 바꿀 수 없었다.

1960년대 말 한국기술개발공사의 야망과 실패는 오늘날 어떤 의미일까. 50년 전의 혼란과 결핍의 서사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새로운 비전의 디딤돌로 삼을 수 있을까.

유걸의 회상이 뼈아픈 이유는 그러한 한계가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를 밀봉한 채 미래의 비전을 그릴 수 없는 것은 과거의 그림자가 ‘오늘’의 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세기 전의 비전과 야망을 소환하면서 체감하는 오늘의 현실은 결코 나아진 것이 없다. 부실한 기반 위에 지어진 모던의 뒤틀린 궤적들을 따라오다 보면 ‘현재’는 위태롭게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혼란과 결핍 위에 지어진 도시는 곳곳에서 또 다른 혼란과 결핍을 끊임없이 파생시켜왔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연장된다. ‘허울’은 증폭되고 ‘비전’은 신자유주의의 미끼로 전락했다. 더 나쁜 소식이 있다면 이제는 ‘시작’할 터전이 없다는 것. 비전과 야망의 여지 또한 더 이상 없다는 것.

영상을 준비하면서 만난 세운상가와 그 주변의 사업자 · 세입자들은 ‘도시재생’의 민낯을 토로했다. 구름다리를 복원하는 통에 주변 상권은 2년 넘게 마비됐고, 복원이 끝난 후에도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상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작동했던 거대한 기계는 멈춰버렸다. 파생적으로 생겨난 상권일지언정, 그것은 한국 근대화의 참모습이자 기반이었다. 그것을 부정하는 오늘의 도시행정은 자본과 개발이라는 근대의 뒤틀린 논리에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취해 있다. ‘도시재생’의 ‘허울’ 아래, 도시는 죽어갔다. 보행데크의 자유공간들은 단속과 규율의 대상이 됐고, 데크 아래 덧붙인 중층은 바닥 밑으로 비가 샐 정도로 허술하게 지어졌다. (놀랍게도 이에 대한 해결책은 구조를 보강하는 게 아니라 빗물을 막는 판을 다리 아래에 매다는 것이었고, 그 무게는 빗물로 약해진 구조 자체에 부담이 될 지경이 되었다.) 가장 뼈아픈 ‘실패’의 원인은 소통이 없었다는 것이다. 도시재생을 어떻게 해야 하고, 그 잘못된 단추를 어떻게 바로 채울지,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무시됐다. 대한민국 근대화의 상징인 ‘불도저’식 밀어붙이기가 ‘도시재생’에서조차 똑같이 작동한 것이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세운상가 주변의 재개발 계획이 실체를 드러냈고, 도시재생 계획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면 취소됐다. 서울시는 도시재생을 앞세우던 바로 그 시기에 뒤에서 건물주, 건설사들과의 재개발 협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니스 전시가 끝날 무렵 세입자인 공장주들은 삶의 터전을 떠났고, 곧이어 진짜 불도저가 밀어닥쳤다. ‘투쟁하겠다’는 의지는 빈 건물의 현수막으로만 남았다. 1960년대 독재정권의 ‘불도저 시장’도 밀어버리지 못했던 지역은 이제 모래시계 위에서 운명의 불도저만을 기다린다. 독재보다도 강력한 어떤 행정논리가 이를 가능케 하는가. 불도저, 개발, 관료주의, 전시행정, 강남, 자본 ….

대한민국 모더니즘의 도래는 단절의 역사였다. 식민지로부터 ‘근대국가’로의 변신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쇼크컷’(shock cut)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의 궤적을 설명하는 것은 여전히 ‘단절’이다. 초기 모더니즘으로터, 그 야망과 실패로부터,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서울은 그 실패의 거대한 상흔이 돼간다. 자생적으로 근대국가를 구축할 기회를 만들지 못한 한국인에게 ‘모더니즘’은 거대한 트라우마가 돼버렸다.


서현석

근대성의 맥락에서 공간과 연극성의 관계를 다루는 작품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헤테로토피아〉(서울, 2010 – 2011), 〈영혼매춘〉(서울, 2011), 〈매정하게도 가을바람〉(도쿄, 2013), 〈From the Sea〉(도쿄, 2014) 등의 ‘장소특정 퍼포먼스’, 그리고 〈Derivation〉(2012), 〈잃어버린 항해〉(2012), 〈하나의 꿈〉(2014), 〈Zoom out / Zone out〉(2013 – 2014) 등의 영상 작품을 만들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영상예술학을 강의하고 있다.

환상 도시

분량3,628자 / 7분 / 도판 16장

발행일2019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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