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네모시네의 집
정다영
분량7,441자 / 16분 / 도판 17장
발행일2019년 3월 28일
유형해설
전시의 설정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 (1931 – 1986)이 2대 사장으로 몸담았던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의 흔적을 찾는 것에서 출발했다. 김수근은 1966년에 창간된 한국 최초의 문화예술지 『공간』을 만든 건축사무소 공간의 대표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기공 재임시절(1965 – 1969)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가 공간 소속의 건축가 중심으로 꾸린 도시계획부는 기공 안에서도 몹시 예외적인 조직이었다. 기공은 ‘한국종합기술’이라는 이름으로 현존하지만 현재의 기공에 당시 기록은 전무하다. 특히 건축 사업은 기공 역사에서 매우 주변적인 프로젝트이기도 했거니와, 이제는 한국의 원로 건축가가 된 당시 도시계획부 소속 건축가들 역시 오늘날의 기공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다.

전시 자료를 모으기 위해 기공에 연락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우리가 전시에서 다루려는 자사의 과거 작업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마침내 사장실 비서와 통화가 됐지만, 그녀는 “우리 회사는 건축회사가 아니고 김수근이 누군지 모른다”고 답했다. 대신 그녀는 『기공30년사』 발행에 관여한 총무부 부장을 연결해주었다. 『기공30년사』는 창립 50년이 넘은 이 회사의 역사가 가장 잘 정리된 기록물이다. 1993년 발간된 이 책에는 생전 김수근과 각별한 관계였던 전 국무총리 김종필의 격려사와 2대 사장이었던 30대 청년 김수근의 흑백사진이 담겨 있다. 총무부장은 우리에게 책에 쓰인 김수근의 빛바랜 사진 원본과 그가 야유회를 즐기고 있는 몇 개의 다른 사진을 건네주었다. 직원들과 도시락을 즐기며 환히 웃고 있는 김수근과 검은 양복을 입은 한 무리의 단체 사진 속 근엄한 표정의 김수근은 서로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그 밖에 정확한 연도와 출처를 알 수 없는 몇 장의 사진이 더 있었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1960년대 말 건축 작업들의 보고서나 도면 같은 실물 자료들은 볼 수 없었다.
이 전시는 이렇듯 기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부재한 기공의 기록 위에서 구성됐다. 제도적으로 기록되지 못하고 저장되지 못한 자료들로 인한 공백은 인터뷰나 2차 문헌 조사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기공 설립에 관여한 인물 대다수는 1930년대 이전 출생자였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한정적이었다. 다행히 몇 분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공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당시 작업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또 다른 누구의 목소리를 통해 이 이야기들을 더 구체화할 수 있을지 물어볼 수 있었다.1 그들의 증언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들은 엇갈리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는 그들의 말을 통해 이 전시의 밑그림을 흐릿하게나마 그릴 수 있었다. 물론 충실한 아카이브 연구를 통해 한국 현대건축의 특수한 체제적 기원으로서 ‘국가 아방가르드’를 서술하겠다는 초기 기획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온전한 아카이브를 구성할 수 없기에 대안적인 아카이브를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아카이브의 그 빈자리를 오히려 드러내기로 했다. 공백 자체를 ‘유령’이라는 상징으로 삼고 그것을 둘러싼 맥락들을 1960년대 기공 건축가들만이 아닌 동시대 작가들의 개입과 작업을 통해 살펴보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 방향은 전시장의 중심을 잡고 있는 두 개의 아카이브로부터 출발한다.
두 개의 아카이브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는 자르디니(Giardini)의 마지막 국가관인 한국관은 기공 도시계획부의 일원이었던 건축가 김석철(1943 – 2016)과 이탈리아 건축가 프랑코 만쿠조(Franco Mancuso)가 설계했다. 가정집을 닮은 한국관의 평면에 이번 전시를 위한 그리드 체계를 만들고 그 위에 두 개의 아카이브 공간과 초청 작가들의 신작들을 놓았다. 한국관은 건물 규모도 그렇고 “전시관이라기 보다 집(a house)에 가까운 공간”이다. 예전부터 내부에 남아 있는 벽돌의 사각 공간, 계단식 원통 공간, 가벼운 철제 프레임의 입구 등 한국관은 다양한 집의 기능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2
한국관 건축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공간인 벽돌방은 전시의 출발이 되는 장소다. 침실처럼 한국관 구석에 숨은 듯 자리한 벽돌방을, 우리는 조작할 수 있는 아카이브이자 내밀한 기억 장치로 설정했다. 기공 도시계획부의 작업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자료들로 꾸린 이 방은 신작들의 불완전한 참조점이자 색인이다. ‘부재하는 아카이브’로 명명된 이 공간은 세운상가, 구로 무역박람회, 여의도 마스터플랜, 엑스포70 한국관 등 역설적으로 온전하게 역사화되지 못한 기공의 작업에 대한 증언이다. 건축가들의 이상은 세상의 이목을 끌었지만 일부는 국가로부터 선택되지 못해 수정되거나 폐기됐다.
계획과는 조금씩 어긋났던 작업 결과는 오히려 국가기록원과 같은 제도적 기록보관소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실현되지 못한 기공 도시계획부 건축가들의 제안은 현존하는 해당 장소들을 완전히 대변하지 못하고 현실과 이상의 간극과 갈등을 반영한다. 이 공간은 역설적으로 그렇게 실패한 이상을 수집하는 장소다. ‘부재하는 아카이브’에서는 제도적으로 기록되지 못한 것, 한낱 보고서의 그림으로만 남은 건축가들의 실패한 이상의 위상을 재배치한다. 발간 초기에 김종필과 석정선 등 정치인들의 후원을 받았다고 알려진 『공간』은 이러한 건축가들의 이상을 대중에 알리기 위한 매체였다. ‘부재하는 아카이브’에서는 국가 아방가르드의 현현이기도 한 『공간』을 이러한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반면 집의 “거실”(living room)에 위치하는 ‘도래하는 아카이브’는 어떤 상황이자 분위기로 존재하는 모호한 영역이다. ‘어두운 침실’에서 ‘밝은 거실’로 이동하는 동선 위에 전시 작품들이 놓여 있다. 개방된 천창과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판 위에 ‘아카이브’로 명명한, 경계가 모호한 구역을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작품과 텍스트 그리고 관람자의 행위가 겹치면서 환영처럼 어른거린다. 집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지만, 한국에서 거실은 종종 공적 위상을 가진 공간으로 묘사된다. 김수근도 1972년 『서울신문』에서 “시민을 위한 리빙룸(거실)”으로서 서울의 미래 공간을 묘사한 바 있다. ‘도래하는 아카이브’ 또한 자료의 저장소가 아니라 거실처럼 공론장으로 사용되는 살롱 같은 공간이다.
이 공간에 사진가 김경태와 미디어아티스트 서현석의 작업이 있다. 김경태는 세운상가, 구로, 여의도, 오사카 엑스포공원에서 촬영하고 시각화한 사진 작업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50여 년의 세월에도 사라지지 않고 그곳을 지켰을 것으로 예상되는 내구성 있는 사물(돌)을 기록하여 시간을 압인한다. 서현석은 서울이라는 도시에 아른거리는 어긋나버린 도시의 옛 비전들을 영상으로 선보인다. 이런 작업들을 담는 장소로서 ‘도래하는 아카이브’는 “통제를 벗어난 아카이브”이자 “검색 도구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대안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3 이렇게 대응하는 두 개의 아카이브는 한국 현대건축을 둘러싼 국가, 아방가르드 그리고 건축을 다시 환기하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도무스와 아르케이온 사이에서
이번 전시에서 한국관은 단순히 집의 형식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집’은 바닥과 벽면을 하얗게 단장하고 화이트 큐브가 되고자 몸짓한다. 마감 재료가 다양하고, 창이 많고, 틈이 많은 한국관은 ‘전시’를 실행하기에는 매우 까다로운 장소다. 우리는 이 조건을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집’에 화이트 큐브를 은유적으로 삽입하는 전략을 취했다.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의 〈므네모시네 아틀라스〉의 검정 스크린처럼 이번 전시의 백색 무대는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오는 시간의 공백과 그 사이에서 출몰하는 이미지를 시연하는 장소가 되길 의도했다. 그럼으로써 과거의 파편적인 사건들을 전시라는 형식에 담아 예술의 제도적 흐름 위에 올려놓고자 했다. 이것은 사적 장소인 집(the domus)을 관저(the official residence)인 아르케이온(the arkheion)으로 구축해보려는 시도이다.4 “서술이 아니라 목록의 형식”(a matter not of narratives but of lists)이 될 때, 과거는 단순히 반복 · 복기하는 것이 아닌 미래를 위한 준거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5
백색 무대 위에 오늘날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최춘웅, 바래, 설계회사, 김성우)의 작업이 있다. 이들은 불완전한 기공의 아카이브에 기반하여 기공의 네 군데 건축 · 장소를 재사유한다. 1960년대 말 기공의 건축 작업은 현대건축에 대한 담론과 물질적 조건이 부족했던 시절 나타난 매우 특별한 사건이었다. 그런 한국 사회의 한계 속에서 기공 건축가들은 국가적 요청과 유토피아적 상상을 통해 건축을 자율적인 분과의 반열에 올려놓고자 했다. 우리는 비엔날레 그리고 국가관이라는 제도의 힘을 빌려 참여 건축가들에게 다시 건축을 그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요청했다. 도시적 규모의 마스터플랜(여의도 · 구로)부터 건물(세운상가), 설치작업(엑스포70 한국관)까지 기공이 수행한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는 한국 개발 체제의 명암을 상징하는 비저너리(visionary)였다. 우리는 그 비전이 지금도 유효한지 검토하고, 과거의 유산이 미래를 비추는 빛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되물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나온 질문들을 참여 건축가들의 작업으로 대응해보고자 했다.
한편으로 참여 건축가들은 각자의 작업을 단편적인 조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응축된 시각 언어가 작동하는 이미지 혹은 이미지 환경을 만들어냈다. 일반적인 건축 전시들이 이미 완성된 건물의 재현물로 구성하거나, 리서치 자료들을 열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 작업들은 ‘시각적 아카이브’(visual archive)의 고유한 힘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전시는 기공의 젊은 건축가들과는 다른 처지에 놓인 오늘날 건축가들이 수행하는 건축 실천의 다양한 갈래를 선보인다. 세운상가를 설계한 35세의 김수근과 이 전시에 참여한 젊은 건축가들이 처한 조건과 환경은 매우 다르다. 저성장 시대의 건축에 도래한 사회적 요청은 거대 건축이 사라지고 난 후 건축이 모색해야 할 여러 틈새를 비춘다.6 시각적 아카이브를 잘 구축해 건축 담론에 기여하는 것7 또한 이 틈새에 대응하는 하나의 사례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건축가들은 건축의 사고와 생산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어떻게 확장되는지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설치, 조각, 영상, 사운드, 만화 등 예술의 여러 실천적 행위가 건축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지 탐구한 셈이다.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공적인 자유공간으로
한편으로 이 전시는 기공의 두 건축가를 떠올리게 한다. 상징적이고 조각적인 건축으로 유명한 한국관 설계자 김석철은 기공 도시계획부 안에서도 독특한 존재였다. 윤승중, 김원, 유걸 등 동료 건축가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늘 경계를 넘어서는 야심과 이상을 발현했던 사람이었다. 기공 보고서 안에서 그가 작성한 글과 그림에는 몽상가적 기질이 다분하다. 그의 이러한 성정 및 이후 대표작들과 달리 한국관은 온건함과 포용력이 느껴지는 건물이다. 자르디니의 다른 국가관들과 비교해서도 마치 “주말 주택”처럼 가벼운 모습이다.8
반면 그와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건축가 윤승중(1937 – )은 엑스포70 한국관에서 그가 이제까지 설계한 단정한 오피스 빌딩들과는 다른 태도를 보여주었다. 기공 도시계획부의 마지막 작업이었던 엑스포70 한국관은 비건축적 상황을 연출하려는, 건축을 최대한 확장시켜 해프닝의 맥락에 놓고자 한 제스처였다. 이에 맞춰 베니스 전시의 시노그래피(scenography)는 엑스포70 한국관에서 선보인 반사, 증폭과 같은 요소들을 적용해 형태를 만들기보다 상황을 연출하고자 했던 기공 건축가들의 의도를 차용했다.
이 두 건축가가 수행한 작업 개념은 각각 전시의 형식으로 서로 긴장하며 양립한다. 이것은 사적인 집이 공적인 자유공간으로 변화하는 충돌과 포섭의 과정일 수 있다. 우리는 집의 형식을 닮은 건축의 내부에 집의 형식을 파괴하고자 하는 전시의 운동을 담고자 했다. 많은 구석과 방이 있는 자르디니의 한국관이 경계를 지우고 투명하게 변모하는 것을 상상했다. 그런 운동력의 자장 속에 작품들이 놓여 있는 셈이다. 한국관의 많은 창을 통해 떨어지는 자연광은 전시장 곳곳을 비추고 거울과 스테인리스 판을 거쳐 반사된다.
이 빛은 이번 전시의 마지막 참여 작가인 소설가 정지돈의 단편소설 「빛은 어디서나 온다」의 화자로 1968년에 오사카를 방문하기로 결심한 정태순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정태순을 만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소설 속 상상의 인물이지만, 현실의 기공 건축가들이 엑스포70 계획을 마치고 촬영한 한 장의 기념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인물이다. 건축가 민현식이 소장한, 본인 또한 그 이미지 속 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오래된 흑백사진에 보이는 유일한 여성. 신원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이 여성은 마치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알 수 없는 기공과 그 시대의 기억들을 말해줄 수 있는 메신저로 생각됐다. 작가의 소설에서처럼 그녀는 지금 우리를 대신하여 “미래에 대한 매혹과 그것의 불가능성”을 꿈꾸는 존재로 보였다.

집 안에 머물고 싶은 욕망과 집을 지우고픈 욕망이 공존하는 이 전시의 내부에 두 개의 목소리가 있다.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은 한국 건축계의 신화로 분명히 실재했으나 그 존재를 기억할 수 없다고 말하는 2018년의 한 여성과 이 전시를 위해 작품으로 호출된 1968년의 여성의 목소리를 교차시키고자 했다. 우리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와 그녀의 딸인 예술의 신 뮤즈를 함께 응시하고자 했다. 이 전시는 그 불완전한 시간에 대한 열망을 기억하고 담기 위해 만들어졌다.
정다영
건축과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공간』에서 기자와 편집자로 일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며 건축 부문 전시 기획과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겸임교수로 디자인문화 연구에 대한 강의를 맡고 있다. 아카이브와 도큐멘테이션을 매개로 건축과 시각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큐레이터로, 건축의 다양한 확장과 그것을 이론화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기획한 주요 전시로 〈아트폴리 큐브릭〉(2012),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2013),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2014), 〈아키토피아의 실험〉(2015), 〈보이드〉(2016),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 – 1997〉(2017), 〈김중업 다이얼로그〉(2018) 등이 있다.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2015)를 비롯해 여러 책을 다른 연구자와 공저했다.
므네모시네의 집
분량7,441자 / 16분 / 도판 17장
발행일2019년 3월 28일
유형해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