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마을 입주기
조남호
분량4,397자 / 10분 / 도판 6장
발행일2015년 2월 10일
유형작업설명
시나리오: 조남호
“수직마을에 입주를 축하합니다!”
오늘은 선수촌 입촌식을 방불케 하는 수직마을의 다섯 번째 입주식이 있는 날이다. 김이안 씨(35)는 아침부터 서둘러 차에 올라 FM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따라 흥얼거린다. 그러다 문득 지난 일들이 떠오른다. 모두 100세대가 있는 이 마을 만들기 프로그램에 그가 회원으로 참가한 것은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온라인에서 회원을 모집하고 3개월 만에 830명이 회원으로 가입하자 오프라인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입주 시기와 입지를 고려해 1차 100세대를 짓기로 했다. 위원회는 마을 건립을 위한 신사업계획서를 발표했는데 토지 비용과 설계감리비와 공사비만으로 구성된 간결한 것이었다. 지출 항목에는 개발운영비와 금융비용, 개발이익이 제외되어 주변 시세의 60% 정도의 금액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계획서다. 법률과 금융, 건축 등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일하는 회원들 간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실무를 마치고 건축가로서 독립을 준비하던 이곳 회원 김이안 씨도 총괄 건축가의 요청에 따라 개별 주택 개발에 참여했다. 총괄 건축가는 ‘Skeleton & Infill System’을 제안했다. 설비가 인입되어 있는 골조체계가 세워지면, 다음으로 패널라이징과 인테리어 수준의 작업만으로도 개별 주택이 완성되는 시스템이다. 경제적이면서 자유로운 형태의 개별 주택들이 가능한 것이다.
입주 후 김이안 씨는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 사무실을 열자니 임대료가 부담되고, 사무실이 없으면 기회를 만들기 어렵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던 중, 수직마을에서 기회를 찾았다. 이곳에는 30평 규모의 집들이 1/3을 공유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 공간을 개방해 마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건축 관련 일들을 봉사로 하고 적은 비용의 인테리어 작업을 하면서 본격적인 건축설계 기회를 찾고 있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장인화 씨는 취미인 퀼트를 주민들과 공유 공간에서 함께 작업하며 창업의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


인터뷰
전시 주제인 ‘협력적 주거 공동체’를 어떻게 해석했나?
공동체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집단이 소유하는 공동의 감각을 의미합니다. 사회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도 중요합니다. 오랫동안 주택의 공급은 거의 건설 회사가 주도해 왔다고 할 수 있는데요. 수요층의 욕망을 자극해 몰개성적이고 폐쇄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왔습니다. 사실상 거의 상품에 가까운 것들이었습니다. 민간은 차치하더라도 공공에서조차 도대체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야 하고 어떠한 도시 형태를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인 고민이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하려는 것은 주민들이 직접, 마치 단독주택을 짓는 것처럼 300인을 위한 자족적인 100세대 공동체 아파트를 짓는 일에 직접 나서는 일입니다. 집을 짓고 삶을 영위하는 것은 노동력을 제공하면 누군가가 해결해 주는 게 아니고, 스스로 만들 나가는 것이고,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장소가 진정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이번 제안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한국은 이제 고도 성장기를 지나 저성장 시대에 돌입했습니다. 80년대 말 11%대의 성장률을 정점으로 점차 하락하기 시작해 3%대가 지속되고 있죠. 글로벌 상위기업들의 꾸준한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통계는 소득이 낮은 계층의 경제상황은 더 나빠지는, 극심한 양극화를 보여줍니다.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양극화 현상도 지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복지를 늘리는 문제를 두고 줄다리기가 벌어지지만 이를 통한 해결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고, ‘88만원 세대’로 상징되는 청년세대를 위한 대안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오랜 불황에도 불구하고 거주 비용은 낮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건축가 위니 마스(Winy Mass)가 이야기했듯 동아시아에서는 거대한 타워들과 블록화된 건물들이 지난 수 세기 동안 성장해 온 마을공동체들을 휩쓸어 멸종 상태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문제들에 공동으로 대응할 기반인 커뮤니티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력과 함께 장기화될 저성장 시대에 대응할 저비용의 주거 문제 해결과 커뮤니티의 회복이라는 새로운 주거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입니다.
가장 중요한 이슈는 시민들이 대체로 이루어가는 자족적인 주거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이루는 집적체계는 더욱 고도화되어 소수만이 새로운 환경에서 낙오되지 않습니다. 양극화가 가속화되는데, 결과적으로 복지나 분배가 대안으로 제안되지만, 수동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직마을은 시장 경제에 대응해 자족적인 측면을 강조한 제안입니다. 시장경제를 대체한다기보다는 일 방향적인 성격에 대해 대안적인 방법입니다. 시민들이 주체적이고 자족적인 공동체 마을 만들기는 시장경제체계의 변화를 유도하는 데 있어서 미약하지만 거의 유일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무엇이 이번 시나리오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일까?
정치적 상황이나 시장을 대체하는 시민의 주체적인 역할일 겁니다. 실시간으로 사람들을 엮어주는 SNS의 확산은 이러한 현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주민들이 아파트를 직접 짓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파트를 짓는 데 있어 개발사업운영비와 금융비용, 개발이익을 제외하고 공법의 연구를 더 한다면, 전체 40% 정도의 비용 절감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1,000만 원~1,500만 원대의 평가분양가가 가능해집니다. 이러한 성과는 경제적인 이익만을 전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민의 자치적인 협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기회이기 때문에 공동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매우 필요한 조건입니다. 협력에 의한 성취의 경험은 시민 공동체를 이루는 하나의 모멘텀이 될 것입니다.
경제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과거의 두레나 향약처럼 공동체는 단순 교류를 통한 행복 추구 차원 이전에 생존 또는 경제적 성과를 높이기 위한 협력의 일환이기도 했습니다. 현대에서도 이러한 측면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서울에서 가계소득대비 주택가격배율(PIR지수)는 점점 높아지고, 평당 분양가는 3,000만 원이 넘습니다. 월급을 모아 집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고 있어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한 젊은 세대들의 무력감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자족적인 마을 구조 안에서 마을화폐 등을 통해 더욱 미시적인 경제 단위를 만들고 마을은 때로 창업 인큐베이터 구실을 합니다.
‘협력적 주거’에 대한 생각이 전시를 기점으로 달라졌나?
정의로운 돈이 가진 논리의 중요성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문화의 논리를 이야기하지만, 문화의 논리는 쉽게 경제 논리에 잠식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마을 만들기 지역에 십 년 후 임대료의 상승이 두 배를 넘지 않는다는 원칙을 상위개념으로 설정한다면 개발의 내용이나 속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공동체를 구현할 때 어떻게 커뮤니티를 구축하는가, 혹은 건축적으로 어떻게 만들어가는가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나리오 제안을 통해 소위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해서는 돈의 논리를 정확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전시에서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상세한 사업계획서를 포함해 사업 전반을 균형감 있고 실현 가능한 것으로 구성하려 했습니다.
앞으로의 ‘협력적 주거 공동체’를 어떻게 예상하고 있는가?
최근 도시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유형의 협력적 주거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고무적이나, 낙후된 지역에서 시도되고 있는 마을 만들기 등의 사업은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작용이 많이 나타날 것입니다. 초기에는 방문객도 늘고 경제적인 효과가 생겨나지만 섣부른 지역 개발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임대료와 집값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저소득층은 오래된 지역에서 밀려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입니다. 누가 주체인가와 속도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잘못된 도시개발을 경험했습니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조남호
솔토지빈건축의 대표 건축가이며 서울시공공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목구조를 중심으로 현대건축의 보편적 구법과 전통으로부터 수용한 구법을 새로운 건축 유형에 융합하는 작업에 관심이 있다. 2007년 독일건축박물관(DAM), 한국현대건축전 《Megacity Network》에 참여건축가이자 코디네이터로 활동했다. 『아파트와 바꾼 집』(2011)에 소개된 <살구나무집>을 설계하면서 건축주인 두 명의 건축학자와 ‘보편적 집짓기’를 실험했다. ‘보편성’과 ‘실험’은 의미상 모순된 결합이지만, 우리 주거 문화에 여전히 보편성이 존재하지 않음을 전제로 한 조합이다. 최근에는 은평구에 서울시가 실험적으로 추진하는 ‘미래도시주거 신모델 조성사업’의 아파트 설계에 참여해 공동주택에서 공유 경제와 커뮤니티, 지역과의 관계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한국건축문화대상 대상(2000)을 비롯해 ARCASIA(The Architects Regional Council Asia) 어워드, 한국건축가협회상, 교보생명 환경문화상, 서울시건축상 등에서 다수의 상을 받았다.
수직마을 입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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