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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멘트

QJK(김경란·이진오·김수영)

시나리오: QJK

우리는 ‘주거 공간=사적 공간’이라는 절대적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다. 부부와 자녀가 동거하는 4인 가족 기준의 해체와 1인 가구의 증가, 동호인 주택과 셰어하우스와 같은 다양한 주거 형식에 대한 관심은 사적 공간을 절대화하는 관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생활의 바탕을 이루는 오랜 습관은 삶의 반복되는 형식을 통해 공간의 문법을 만들고 사회적 제도와 법규로 정착된다. 반대로 제도와 법규가 바뀜으로써 오랜 삶의 형식과 습관이 바뀌기도 한다. 사적 공간 형식인 서양의 ‘룸’(room)과는 달리, 한국의 ‘방’은 사적, 공적 프로그램을 모두 수용한다. 우리의 작업은 주택법 개정을 통해 아파트 세대 간의 구획 방식이 완화되고 세대 내부에 공동시설을 설치, 운영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출발한다. LH공사 84㎡ 아파트 표준평면을 최소한만 변형하여 기존의 획일적인 공동체의 삶을 다원화하고, 오히려 아파트 구조이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유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달빛마당, 확장현관, 운동실, 목욕실, 당구방, 시가바, 낚시방, 게스트룸, 캠핑마당, 텃밭, 공유주방, 빨래방, 공동창고, 공동책방, 유아방, 공부방, 음악학원, 의원, 명상실, 집필실, 드론택배센터, 하늘사용스테이션 등의 공유 프로그램이 사적 영역에서 공유되거나, 상업시설로 운영되기도 하면서 아파트 단지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기를 기대한다. 

자료: QJK(김경란·이진오·김수영)

스파5056

― 505호와 506호 문간방을 개조한 19평 규모의 스파는 예약제로 운영됩니다. 아침 6시에 시작해 새벽 3시까지, 한 번에 3, 4시간씩 모두 5개의 스케줄이 있고 시간대마다 느낌이 다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 상주 직원은 없고, 자치회에 고용된 505호 할머니가 청소와 환기를 담당하며, 밤과 새벽 시간에는 102호 사는 취업준비생이 담당합니다.

― 격무에 시달리는 건축가인 큰언니와 고3 딸의 엄마이며 음악가인 둘째, 중학교 선생님인 막내 이렇게 40대 세 자매가 모처럼 시간을 맞추어 대낮 데이트를 즐깁니다.

― 이 스파는 한 달에 900만 원 정도의 매출이 있고 혼자 사는 505호 노총각은 한 달에 270만 원의 수입이 생겨 대출금을 척척 갚아가고 있습니다.

― 세 자매는 예약한 4시간 동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인터폰으로 이웃세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요거트와 커피를 주문합니다.

― 창가에 나무를 심기 위해 들어 올려진 바닥은 목재로 마감되어 있고 널찍한 풀에 걸터앉기 좋은 구조입니다. 친구가 태국에서 사다 준 신비한 향의 입욕제에 몸을 맡기니 마음의 무게 역시 완전하게 내려놓게 됩니다.

― 남편 뒷담화, 점점 아이 같아지는 부모님 걱정, 남동생 장가보내기 작전 등등 수다를 꽃피우며 꿀 같은 휴식을 마친 세 자매는 고소한 엄마표 밥을 기대하며 한 층 위에 있는 605호 친정으로 총총걸음을 옮깁니다. 

안집/바깥집

― 우리 집에는 안집과 바깥집 두 개의 집이 있다. 현관과 문간방을 확장하여 앞쪽 발코니와 더불어 마당처럼 사용하는데 여기가 바깥집이다. 공구를 좋아하는 나는 시끄러운 작업이 가능한 방음작업실을 바깥집 한가운데 두고 맞통풍이 잘되는 작업실을 창문 주위로 길게 하나 더 마련했다.

―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모과 향이 진동하는 마당에 흙더미가 몽글몽글 붙어 있는 총각무가 얼추 다섯 단은 되어 보인다. 요리대왕 우리 엄마는 오후 내내 딱딱한 모과와 씨름하셨을 텐데 내일은 또 총각김치인가보다. 앞집 부부는 아직 퇴근 전인가… 바짝 마른빨래에도 모과 향이 가득 배어 있겠다.

― 우리 남편은 늘 혼자만의 동굴에 대해 강조한다. 내 생각에 남편의 방은 기껏해야 아이패드와 손톱깎이세트와 베개용 책 한 권만 놓을 수 있으면 충분하고, 거기에 마음껏 더럽혀도 되는 휴지통 재질의 바닥재이기만 하면 완성일 듯하다.

― 살림꽝여왕 우리 엄마가 용단을 내리셨다. 자전거, 냉장고, 구두약솔상자, 수납박스 16종 세트, 악어가죽롱부츠, 요구르트기계, 2인용 나무벤치, 재봉틀, 주물화장대, 반신욕기… 바깥집에 5년 넘게 방치해두었던 물건들을 단돈 만 원씩에 벼룩시장을 열겠다고 하신다.

― 가부장적인 우리 아버지는 바깥집을 조선시대의 서원으로 생각하시는 듯하다. 남자들의 방이라며 아침부터 동네어른들을 불러 모으시는데, 퇴근하고 돌아오면 기원에 왔나 싶기도 하고 어떤 날은 홀로 성경을 읽고 계시는 모습에 숙연한 마음으로 살금살금 안집에 들어간다.

― 반상회 논의 결과 바깥집에서는 저녁 9시까지 마음껏 뛰어도 된다고 합의했다 한다. 47세 아저씨인 나는 오늘 씨스타를 틀어놓고 괜스레 몸을 움직여본다.

― 나는 학교에 다녀오면 안집에 들어가는 것이 별로 좋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하는 우리 집 개 복실이가 안집 출입금지이기 때문이다.

― 이웃과 바깥집을 터서 사용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 앞집 맞벌이 부부는 늦게 귀가할 때가 많아, 낮에 혼자 운동할 수 있는 이 공간에서는 내가 사장님이 된 듯하다. 나는 취업준비생이다.

사진: QJK(김경란·이진오·김수영)

달빛 공유

― 101호 맞벌이 젊은 부부: 새집을 장만한 101호 부부의 결혼기념일입니다. 해가 뜨면 서로 출근하기 무서운 이 맞벌이 부부가 유일하게 공유하는 시간은 밤입니다. 바쁜 스케쥴 때문에 미리 준비한 선물도 없고 근사한 레스토랑도 이미 문을 닫을 시간이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 부부에게는 달빛이 내려주는 특별한 무대가 있으니까요. 오늘은 대출금 걱정, 육아 계획 따위는 잊고 그 무대에서 춤을 춥니다.

― 102호 철벽녀 A양: 독신주의자 A양은 옆집 부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계발과 피부 관리, 운동, 비즈니스. 쉴 틈도 없는데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괴로울 게 뻔합니다. 회사에서, 학원에서, 헬스클럽에서 종일 타인과 함께해야 하는 그녀는 집에 돌아와 혼자 있는 이 밤 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동물을 길러볼까 싶기도 했지만, 막상 기르려니 불쌍한 마음도 들고 귀찮은 마음도 듭니다. 종종 외로운 마음이 들면 그저 테라스 깊숙이 놓인 그늘진 그녀의 고급 티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시며 마당에 있는 나무에 아무도 모르는 그녀의 마음을 말합니다. 아, 외롭다 외로워!

사진: 김용관

인터뷰

전시 주제인 ‘협력적 주거 공동체’를 어떻게 해석했나?

이진오: 저는 공유 프로그램을 외부에서 추가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아파트 내부 기능을 확장하고 그것들이 조금 느슨해지는 방향을 생각해봤습니다. 그래서 방, 거실, 부엌 모두가 기능을 확장하면 모두의 방, 모두의 거실, 모두의 부엌이 가능한 것이죠.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방은 게스트하우스로, 거실은 공부방이나 어른들이 모이는 장소 혹은 살롱, 부엌은 요리 교실이나 레스토랑으로 쓰일 수 있는 거에요.

김수영: 저희는 아파트를 기본으로 하고 출발했어요. 그래서 공유 방식이라기 보다는 공유가 가져올 수 있는 효과 혹은 관계의 방향 설정이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아파트는 여러 층이 겹쳐 있고 여러 세대가 살기 때문에 저는 공유를 위한 어떤 프로그램을 넣기보다, 이미 있는 것의 부분들을 비워내어 ‘달빛을 공유’한다는 얘기로 주제를 잡고, 거기에 맞춰 건축적인 표현을 했습니다. 그래서 단면적으로 공간을 비워내고 그곳에 달빛이 공유됐을 때 이 집과 저 집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조금씩 다를 거라는 가정하에서 작업했고요. 

이번 제안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이진오: 지금 대부분의 아파트 평면은 4인 가족 기준으로 방 3개에 거실과 부엌이 있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4인 가족은 50%도 안 된다고 해요. 결국은 쓰지 않는 방이 있는 아파트가 많다는 건데, 그렇다면 그 남는 방들을 어떤 방식으로 공유할 수 있을까요? 삶의 방식이나 태도를 바꾸는 것이 선행되어야지 공간 구조가 바뀐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물리적인 공간 형식을 유지한 상태에서 프로그램으로 접근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이 ‘협력적 주거 공동체’를 가능하게 할까?

김수영: 협력이란 단어 속에는 이미 ‘힘을 합한다’의 의미가 들어있죠. 즉 힘을 모아야 가능한 것이죠. 협력적 주거가 좋으냐 나쁘냐는 또 다른 문제일 것 같고, 아마도 그 힘이라는 것에 공통 ‘가치’가 더해져야 할 것 같아요. 공통의 가치가 공유되지 않으면 협력이라는 형태는 와해할 수밖에 없어요.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가치 공유는 일어나지 않겠죠. 또한,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도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공통의 가치에 더하여 서로에 대한 유연함도 필요할 것 같네요. 저희가 아파트를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다수가 거주하는 가장 익숙한 주거의 형태이지만 그들 사이의 어떠한 협력도, 가치의 공유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한 것입니다. 건축가로서 이 부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고요. 저희의 제안들이 구조적인 변화에 대한 내용보다 공유를 통해 일어날 수 있는 삶의 형태에 대해 상상해 본 것도 이런 맥락에 따른 것입니다.

오늘날 주거 문제는 무엇이고, 새로운 가능성은 무엇일까?

김경란: 지난 5년, 10년 사이에 다양한 삶의 방식에 따른 다양한 가치관과 이슈들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은 모두가 체감하잖아요? 그동안 꽤 견고했던 아파트에서의 삶 역시 달라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선 물리적으로는 지금 재개발된 아파트들이 또 재개발되진 않을 것 같고, 분명히 길게는 20년 혹은 30년, 짧게는 10년 이상 유지되는 구조가 많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가까운 미래, 아파트 단지의 환경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도시와 자연에 이어지는 공간적 재미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다른 방식들이 탐구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단독주택에서는 누릴 수 없는 초고층아파트의 공간적인 스케일을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의 하늘 공간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진보된 테크놀로지나 건축적 해결책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진오: 아파트가 기능적이고 편리한 것은 분명한데 그 안의 삶은 대단히 지루하거든요. 그 이유가 공간의 형식도 있지만, 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태도가 개별적인 삶을 지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개별적인 삶을 지향하지 않는 사람이 전제된다면 기존 아파트의 형식보다는 프로그램의 작은 변화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개인적으로도 연남동에 ‘어쩌다집’이라는 이름의 공동주거를 계획하고 있는데 거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거든요. 제가 계획한 공간 형식이 약간의 도움은 줄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입주하는 사람들이 어떤 공통의 가치를 지향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건축이 삶을 바꾼다? 저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아요.

‘협력적 주거’에 대한 생각이 전시 전과 후,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김경란: 우리는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뭐가 될 것인지 등에 대해 본인이 본인을 분류하거나 바라보는 데에는 시간을 거의 쓰지 않는 것 같아요. 마찬가지 맥락에서 협력적 주거가 어려웠던 이유도 내가 과연 어떠한 거주 형식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집에서 살고 어떤 일을 하면서 누구랑 어떻게 협력해서 주거 공간이나 그 외의 가치를 나눌 것인지를 저 스스로도 정리하지 않았고 무언가 준비된 상태가 아닌 거예요. 그래서 모두에게 각각 다를 수 있는, 주거에서의 협력이나 공유 등의 개념에 대해서 본인의 것을 잘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집이 30평인 경우 10평을 내놓고 무조건 남과 공유하는 개념이 아니라, 개인의 공간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열거나, 혹은 공동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구성원이 독립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하고 제안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자료: QJK(김경란·이진오·김수영)
자료: QJK(김경란·이진오·김수영)
자료: QJK(김경란·이진오·김수영)

QJK

1995년 등나무 밑에서 만나 술과 담소로 사적 친분을 쌓아오다가 2013년부터 공동주거에 대한 공부와 작업을 목적으로 하는 공적 모임의 성격을 갖게 된 프로젝트 그룹이다.

김경란

1968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99년부터 참여한 ‘헤이리 마스터플랜 프로젝트’를 통해 대지의 본질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연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감각을 최대한 끌어내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4년 kkr+kdk(크크르크득)을 설립했고, 땅으로부터 얻어지는 그림을 기틀로, 건축작업에서 요구되는 스케일과 디테일에 맞는 묘사를 더해 실재하는 것을 책임 있게 구현하려 한다.

이진오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벽돌공장이 이웃한 강북의 변두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김성준, 박인영, 임태병과 함께 SAAI의 공동대표로서 <양구백자박물관>, <이천 SKMS연구소>, <봉천동 음악가의 집>, <연남동 어쩌다집> 등 좋은 물건으로서의 건축작업과 이를 통한 가치 있는 담론의 생산을 실천하고 있다.

김수영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에 숨비를 설립했고, 건축물이 지어지는 과정을 숨을 참으며 즐기고 있다. 건축적 행위들은 구축적 원칙과 합리성에서 기인하며, 그것을 토대로 건축물에서 공간과 빛을 연출해 내려 애를 쓰는 직능이 건축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2014년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다.

아파트멘트

분량6,276자 / 10분 / 도판 6장

발행일2015년 2월 10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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