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집 다큐멘터리
PaTI, 장영철
분량5,361자 / 10분 / 도판 8장
발행일2015년 2월 10일
유형작업설명
시나리오: PaTI·장영철
2014.06.14 날씨: 맑음, 아직 약간 쌀쌀함.
어제는 양재천 근처의 포이동 재건마을 화재 3주기 행사에 들렀어. 주민들은 여전히 같이 음식을 만들고, 주변 공터에 은박 돗자리를 깔고 모여 서울시와 강남구에 대해 성토하고, 협동조합형 공동주거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토의하고,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을 즐기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같이 관람했지. 3년 전 ‘모바일 원두막’ 프로젝트로 나를 기억해주는 주민분도 계셨고, 아이들은 훌쩍 컸고, 어쩐지 시골스러운 분위기도 여전하더군.
오늘은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의 <피타집> ‘집나기’(집들이의 반대말) 행사에 참여했어. <피타집> 프로젝트는 내가 PaTI에서 함께한 수업의 하나였는데, 배우미들과 실제로 집을 짓고, 설계자인 이상익과 이산하가 한 달간 살아보고, 그것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프로젝트였어. 말이 집이지 각목과 플라베니아로 만든 판잣집이었는데, 재미있게 지낸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으로 전해 듣던 터였지. 오늘 집나기 행사에서 성휘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느꼈는지를 보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
포이동과 파주의 두 행사에서 공통으로 느낀 게 있었는데, 바로 함께 하는 삶과 풍요로움이랄까. 사람답게 사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다들 흔히 말하는 공동체적 삶의 의미를 마음으로 전해 받았던 거야. 그것은 좋은 느낌이었고, 뭔가 뿌듯한 감정이었고, 어떤 안도감이었어. (그러고 보니 인도 가서도 비슷한 느낌을…)
<피타집 다큐멘터리>의 은정이가 한 말들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어. 은정이 말로는, 어른들이 젊은 친구들을 가리켜, SNS에만 빠져 있고 거기서 형성되는 관계가 나약하기 짝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은정이 또래에겐 우리들만의 장소가 없기 때문이라는 거지. 실제로 만나야 무언가 시작할 수 있는데, 카페 한구석을 차지하는 것도 돈이 있어야 하고, 땅과 건물이 워낙 비싸니 장소를 꿈도 꾸지 못한다고. 그런데 <피타집>을 직접 만들고 생활하면서 ‘우리’의 공간에서 함께하는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비록 싸구려 각목과 플라베니아로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건축가들이 원하는 공동체적인 삶이 어제의 포이동 재건마을과 오늘의 <피타집> 현장에 분명 있었지. 그런데 재건마을에는 화재와 몇 차례의 강제집행 후에 샌드위치 패널로 어렵게 지은 집들이 모여 동네의 모습을 이루고 있었거든. 근사한 풍경과는 거리가 멀지. <피타집>도 건축가가 기획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공동체적 삶이라는 것이 항상 선은 아닐 것이고 당연히 절대 가치도 될 수 없겠지. 더욱이 요새처럼 개인주의가 극대화된 때에는 시대착오적인 가치일지도 모르겠어. 그럼에도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한다고 했을 때 건축이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건축으로 공동체적인 삶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허구가 아닐까. 근사한 공간, 멋진 외관, 희한한 재료의 사용. 건축가들이 말로 포장하던 것들은 그들이 성취하고 싶은 결과물이고 이러한 건축가의 에고(ego)는 정확하게 건축주의 욕망에 부합한단 말이지. 나쁘다는 말이 아니야.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인걸. 특히 탐욕이 원동력이 되는 자본주의 안에서 어쩌겠어. 우리가 이미 이 구조 안에 들어와 있는데. 그리고 이러한 건축가들의 작업이 모여 있다면? 당연히 경쟁하기 시작하겠지. 그 결과로 도시는 멋진 자태와 공간을 뽐내는 건물들로 채워지겠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건축주들은 치솟는 임대료에 넋이 나가서 내년에 임차인 내보내고 어떻게 임대료를 더 올릴지 골몰하겠지. 여기에 무슨 공동체적인 삶이 있을 수 있겠어. 건축이 삶을 담는 그릇인데, 그런 그릇들이 서로 뽐내고 있는데. 그런 그릇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사실 나도 예쁜 그릇 만들기에 골몰하는 사람인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건축가의 작업이 공동체적인 삶에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들이 원하는 것은 편안하고 평범한 장소, 지치고 힘든 마음 한구석을 누일 수 있는. 그리고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그들이 지불할 수 있는 비용 안에서 가능한. (이거 밑줄 쫙!)
은정이가 그러더군. 공동체적인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선한 임무’라는 거야. 무슨 말이냐면 <피타집> 프로젝트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을 짓고 한 달간 살아야 한다는 임무가 있었고, 서로 돕고 함께 한다는 선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거래. 과연 그렇지? 정말 통찰력이 있는 친구야.
그저께는 통의동의 정림건축문화재단에 갔어. ‘독존주의’(김홍중, 2014.이후 ‘생존적 개인주의’로 변경—편집자)에 대한 세미나를 들으러. 독존주의란 고도의 자본주의가 빚어낸 생존을 위한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의미한다고 해. 나는 ‘구조(고도의 자본주의)에 사회학(독존주의)은 종속이 되느냐? 구조의 프레임을 사회학의 어젠다로 깰 수 있다고 보느냐?’고 질문했는데, 김홍중 교수는 사회학이 구조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하지만 그 구조 안에서 만들어진 공간의 애틋함을 표현하는 것이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나는 오늘 <피타집> 집나기에서 반대로 사회적 어젠다가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꿈을 꾸기 시작했어. 꿈을 꾸기 시작했으니,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 기분이 좋더라고.

인터뷰
<피타집>에 대해 먼저 소개해 달라.
PaTI 이상익: <피타집>은 장영철 소장님의 ‘입체와 공간’ 수업에서 진행되었어요. 처음에 건축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셨고, 20명이 함께 디자인하고 직접 지었어요. 그리고 그중 두 명이 한 달 동안 그곳에서 사는 작업이었습니다.
‘협력적 주거 공간’을 직접 만들고 살면서 어떤 것을 느꼈나?
PaTI 이상익: 일단 최소한의 것들만 가지고 살다 보니 환경적으로 매우 힘들었어요. 너무 춥다거나, 너무 덥다거나, 비가 오면 물이 샌다거나, 벌레가 많다거나 하는 것들이요. 그런데 좋았던 점은 저희만의 공간을 갖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저희가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고, 그 공간에서 소통이 일어났다는 거예요. 집들이도 했고, 끝날 때는 집나기 행사도 하면서 <피타집> 생활을 종료했어요. 처음 집들이 때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필요한 물품을 많이 받았고, 생활하는 동안에도 친구들이 아침에 도시락이나 과일을 놓고 가기도 해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는 게 무언지도 느끼고 실제 생활에서도 수혜를 입었어요. 그러고 나서 집나기 때 저희가 그동안 사용한 물품이나 남은 음식들을 친구들에게 돌려주거나 나누었는데, 이렇게 서로 돕고 주고받았던 행위들이 인상 깊게 남았어요.
경험을 통해 얻은 협력적 주거에서의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PaTI 이산하: 저희 학년이 원래도 협력을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작할 때도 각각의 역할에 따라 협력이 잘 이루어져서 집이 생각보다 빠르게 지어졌고요. 그런 것을 보면서 협력적 주거 공간이 단순히 사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 계획하고 만들어가면서, 그 안에 어떤 시스템이 만들어지느냐까지도 포함한다고 생각했어요. 집에 대한 경험을 마지막에 공간 안에 사는 것만이 아니라, 집을 만드는 과정 전반을 다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또 중요한 것 같아요.
PaTI 이상익: <피타집>에서 게스트하우스와 음식점을 시도했어요. 실제로 요리를 만들어 2,000원씩 받고 밥을 팔기도 했거든요. 이러한 시스템을 직접 해보니까 마을공동체라는 게 단순히 함께 있다고 해서 공동체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공유할 것이 생겨야지 공동체가 유지되는 것 같아요. 저랑 산하가 같이 살았지만, 파티라는 같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서로 생활에서 유사점이 없었다면 그 안에서도 소통이 없었을 것 같거든요. 서로 간의 공통된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건축가로서 이번 제안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장영철: 건축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공간을 멋있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간을 멋있게 만들면 임대료를 높일 수 있는 근거가 되죠. 이게 아이러니한 부분입니다. 양재동의 재건마을에서 작업했을 때도 이들에게 주거 공간은 결코 멋있는 공간이 아니었어요. 매우 소박한, 어떻게 보면 누추하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공간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건축가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거리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훨씬 더 낮은 가격에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겁니다.
‘협력적 주거 공동체’ 경험 전후로 어떻게 스스로 바뀌었나?
PaTI 서지수: 보통 친구를 만나거나 같이 작업하려면 학교가 아닌 밖에서 만나게 되는 경우, 커피값이 최소 5,000원, 밥값이 최소 7,000원이에요. 친구를 만나려면 무조건 돈을 써야 해요. 학생으로서는 부담이 컸는데 <피타집> 이후에는 늦게까지 작업을 해도 부담 없고, 컵라면이 아니라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작업 얘기도 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그래서 <피타집>을 철거한 다음에는 참 허망했죠.
PaTI 이산하: 저도 비슷한 맥락인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협력적으로 생활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문 앞에 도시락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면서 ‘이게 사람 사는 거구나’ 하고 느꼈어요. 아침 걱정을 하던 중에 누군가가 놓은 도시락을 보면 행복하고, 화장실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마음대로 쓰라고 하고… 이렇게 나누는 생활이 생각보다 어려운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직접 경험해보니 스스로도 조금은 변했고요.
PaTI 이상익: 그동안은 집값이 비싼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피타집>에 살고 난 이후에는 그게 부당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고 괴로워지기도 했어요. 이전처럼 모르는 채로 살아갈 수 있었는데 알고 나서 보니까 화도 나고 기분도 나쁘고. 하지만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것은 분명해요.
장영철: 건축가로서 작업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 생기지 않았나 해요. 그리고 청년 주거 문화도 심각한 문제인데 주목이 덜 되어 빨리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이 친구들이 지금 임대시장에 묶여서 주거가 해결이 안 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시(市)나 국가 차원에서 좀 더 관심을 갖고 풀어주지 않으면 이 세대들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PaTI(파티, Paju Typography Institute)
대안적 디자인 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2013년 파주출판도시에 세운 네트워크 학교. 서로 경쟁하지 않으며 너르게 배우되, 배우미와 스승이 함께 멋지어가는, 참 배움을 지향하는 배곳이다. 큰 디자이너 세종 이도의 한글 멋지음 얼뜻을 섬기며, 타이포그라피를 교육의 바탕으로 삼는다. 손에서 비롯되는 창의를 존중하고, 손-가슴-머리의 어울림 속에서 일을 통해 창의를 실천한다.
장영철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U.C.버클리에서 수학했다. 이로재, 스티븐 홀(Steven Holl Architects), 라파엘 비뇰리(Rafael Viñoly Architects)에서 실무를 익혔고, 현재는 전숙희와 함께 와이즈 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피타집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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